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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 파산 2년, 미국은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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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만 파산 2년, 미국은 무슨 생각을 할까

[기고] G20, 미국의 새로운 돌파구

1. 달러, 전무 아니면 전부

오늘(2010년 9월 15일)은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한 지 꼬박 2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세계경제의 향방은 좀처럼 안정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더블 딥(double dip)의 우려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아니냐는 경고성 목소리가 힘을 더해가고 있을 뿐이다. 2차 위기는 이제 시간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미 연준의장인 버냉키나 오바마는 가까운 장래에 이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비관론자로 분류되는 루비니나 크루그만 그리고 로고프 같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말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이러한 비관적 예측에 눈이 더 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글이 특히 관심 갖는 것은 미국 주류의 견해와 이들이 생각하는 미래다. 다만 모든 것을 해명 할 수는 없고 달러로 상징되는 미국 경제의 미래와 미국 주류가 달러가치 안정화를 위해 어떤 입장과 정책을 시도하려는 지에 대한 것만 보도록 하겠다.

2. 달러의 딜레마

먼저 달러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와 미래를 과거가 지배한다고 하지 않나. 현재를 아는 방법에 역사를 들춰내는 것만큼 유익한 일은 없다. 여하튼 달러는 지금 체코 지방의 한 골짜기 은광의 이름으로 요하임스탈러(Joachimsthaler)라고 불리던 것이 점차 줄어져서 지금의 달러가 되었다. 원래 영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화폐단위인 '원'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네 사정도 좀 그렇다. 일본인들이 식민지 시절에 자기네 '엥'과 발음이 비슷하다고 억지로 만든 것이다. 그걸 해방 후 그대로 적어버린 게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달러는 좀 나은 편일까? 여하튼 수백가지 달러가 통용되던 미국 초기 역사를 의원들이 다 휴가 가는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인 1913년 12월 23일 연방준비제도법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서명하여 달러는 미국의 공식화폐가 된다. 미국인들은 달러의 단위, 가치 등을 미국 헌법에 명시하였다. 지금처럼 연준이 관리하게 된 것은 미 의회가 연준에 이 업무를 위임하였기 때문이다.

달러가 지금처럼 아주 힘이 센 국제 화폐가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다. 1944년 뉴햄프셔지방의 브레튼우즈에서 전후 국제경제질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달러금본위제가 본격적으로 가동하였다(사실 정확히는 금환본위제인데 편의상 이렇게 쓰기로 하자). 이렇게 보는 건 각국이 금보다 달러를 더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뉴 팔그레이브 화폐금융 사전"의 '달러' 항목에 보면 당시 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이 항목은 하버드 대학의 제프리 프랑켈이 썼다)

"달러의 국제적인 지위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 하여 완전히 바뀐다. 1945년 이전까지 대부분의 나라는 파운드스털링을 대외준비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후 달러가 실질적인 대외보유자산으로 여겨지며 보유량 또한 급등하게 된다. 물론 1944년 뉴햄프셔의 브레튼우즈에서 금을 공식적인 자산으로 정하였으나 실질적인 준비자산은 달러였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한 이래 1970년대까지 소위 달러금본위제시대를 구가하며 달러는 국제적인 기축통화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할 당시에도 달러가 민족화폐임과 동시에 기축통화로 동시에 역할 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취지의 염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트리핀 딜레마로 알려진 이러한 주장은 로버트 트리핀이 의회 청문회에서 발언한 다음에 잘 요약되어 있다. "미국이 경상적자를 허용하지 않고 국제 유동성 공급을 중단하면 세계 경제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적자 상태가 지속돼 미 달러화가 과잉 공급되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해 준비자산으로서 신뢰도가 저하되고 고정환율제도 붕괴될 것이다."

이러한 트리핀의 경고는 각국으로 하여금 1oz.t 당 35$인 달러금본위제의 기본 룰을 견지하기 위한 골드풀을 결성하도록 한다. 물론 브레튼우즈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케인스는 달러금본위제가 아니라 방코(bancor)라고 하는 세계화폐를 만들어 IMF가 세계중앙은행으로서 이를 관리토록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 측은 이러한 케인스안 대신 화이트가 주도하는 달러금본위제로 가닥을 잡고 전후 국제금융아키텍쳐를 디자인 하였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위에 세워진 골드풀의 결속력과 이들이 수행해 나아가야 될 임부는 막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골드풀은 제 역할을 수행해야 될 결정적인 순간에 붕괴되었다. 브레튼우즈체제가 순전히 제도로서 붕괴된 것은 아니지만 골드풀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이를 활용 하여 국제공조를 발휘 할 수 있었지만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한편 올드 케인스주의자였던 제임스 토빈은 브렌트우즈체제하에서 각국의 거시정책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환율의 변동을 잡고가기를 원했다. 토빈은 방코르 같은 세계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거시경제정책의 자율성은 환율의 안정 위에 가능하다며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잡기위해 외환거래세를 제안한다. 토빈세라 불리는 이 처방은 정치적 트릴레마라고 불리는 고정환율하에서 금융의 자유로운 이동, 거시경제정책의 자율성, 그리고 환율의 안정성 중 두 가지만 선택 할 수 있다는 논리의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금융이동의 자유가 시작되자 이 조건하에서는 거시경제정책의 자율성과 환율 안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곤란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토빈은 거시경제정책의 안정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자 환율안정을 위해 외환거래 시 세금을 부과하여 투기적 외환거래를 제어하고자 외환거래세를 제안 한 것이다. 물론 이는 각국의 협조와 합의가 뒷받침 되어야 하나 실제 미국과 영국의 금융중심지에서 가장 대규모로 투기 행위가 벌어져 사실상 실행불가능하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그러나 최근 폴란드의 헤이키 페토마키에 의해 주장되는 일국에서 이행가능 한 외환거래세와 G20 정상회담에서 한 참 논의 중 일(?) 은행세와 더불어 자본통제에 관한 국제적인 공조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전후 브레튼우즈체제는 달러금본위제였다. 이는 달러와 금가격 사이의 교환비율을 고정한 가운데 국제금융질서를 설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금가격이 달러에 고정되는 한도 내에서 만 거래되라는 보장이 없기에 다른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대외자산으로 금을 거래하는데 있어 달러금본위제가 디자인 한 국제환율을 유지를 위해 다른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말하자면 포트녹스에 보관하고 있는 금이라는 준비자산이 계속해서 고갈되면 미국 연준은 달러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금과 달러사이의 교환비율을 재조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민간의 시장참자자들은 금을 안전자산으로 인식하고 금에 대한 재정거래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아이켄그린이 설명하는 것처럼 자국 통화가 고평가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금융시장으로 자본이 유입되고 통화공급이 빠르게 증가하여 결국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거시경제 건정성에 심각한 위협이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1961년 11월 6일부터 12월 2일 사이에 골드풀이 결성된 것이다.

그러나 골드풀은 매우 합리적인 국제공조를 지향하고 있었지만 골드풀의 제도적 장치는 이에 턱없이 모자랐다. 즉 골드풀은 집행 메커니즘이 없었다는 점, 포괄범위가 완전하게 않다는 점,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문제인 누가 골드풀을 준수하고 누가 골드풀을 위반하고 있는지가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취약하였다고 할 수 있다. 아이켄그린이 인용한 바에 따르면 "골드풀의 활동이 비밀에 쌓여있지 않았다면 그 효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먼저 이탈한 것은 프랑스였다. 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알려지자마자 다란 나라들이 모두 따라했을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이로써 6년여 기간 동안 존속했던 골드풀은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즉 가장 필요한 때에 붕괴하였던 것이다.

골드풀에 대한 경험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국제금융에서 집단행동의 약속이행에 관한 것이다. 최근 통화 스왑 등 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위기를 국제공조 속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이니셔티브와 협약들이 맺어지고 있지만 골드풀의 교훈을 반영하는 협약들은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또 다른 경험으로 페이퍼 골드라고 하는 SDR의 사례를 들 수 있다. SDR은 당초 미국이 반대하였던 것인데 이유는 달러의 국제적인 지위를 침해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1968년 골드풀의 붕괴 이후 사실상 금 시장은 양분되었고 1972년 금달러본위제가 사실상 붕괴하면서 달러본위제가 출범하게 되었다. 국제준비금은 거의 달러였다. 그러나 브레튼우즈체제에서 대외준비금부족을 분지하기 위해 창설된 SDR은 1968년이라는 너무 늦은 시기에 만들어져 달러를 대체하거나 보완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SDR의 실제 배분은 1970년과 1972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SDR의 가치는 당초 금에 의해 표시되어 1달러와 같은 0.888671g의 순금과 등가로 정해졌으나 달러의 평가절하로 1973년 2월 1 SDR = 1.2635달러가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주요 선진국 통화의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으로 1974년 7월 이후 잠정적 조치로서 그 가치기준을 표준 바스켓 방식, 즉 세계 무역에서 비중이 큰 16개국의 통화시세를 가중평균하는 방법에 의해 매일 계산·표시하게 되었고, 1980년 9월 IMF총회에서는 표준 바스켓의 통화를 16개국에서 5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통화로 축소하여 SDR 표시의 간소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실제 SDR이 국제준비금으로서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사정이 이러자 터무니없는 특권(exorbitant privilege)에 대한 드골과 같은 반말이 터져 나왔지만 달러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불안해 한 것은 달러가치의 불확실성이었지만 정작 준비금의 대부분은 달러로 마련했었다. 이러던 차에 준비자산의로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이다. 특히 달러 평가절하가 큰 폭으로 전개되었던 77~78년과 85~86년에 준비자산으로서 달러의 지위는 크게 위협받기 시작하였다. 이는 미국이 주기적으로 써온 약한 달러 정책 곧 달러에 대한 benign neglect로서 교역상대국 통화의 평가절상을 즐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달러는 미국 국내통화이자 국제결제통화로서 기축통화이다. 이는 곧 세계시장에서 달러의 역할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의 경상수지적자가 용인된 하에서 기축통화로서 달러는 의미 있는 것이다. 미국을 그것을 막대한 생산력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유럽과 일본이라는 새로운 경쟁상대를 만나게 되면서 크게 위축되어 이들과 경쟁하게 되면서부터 달러의 지위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것이다. 이에 따라 1970년대 후반 경쟁통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나중에 유로(Euro)가 되는 1979년 Ecu의 탄생이 이를 말해준다.

3. 달러의 현재적 지위

1980년대 이후 특히 금융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달러의 지위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1990년대 대규모의 금융위기를 겪고 난 이후 국제금융시장은 말 그대로 카오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경제적 지위마저 흔들리고 있어 달러가 수행해야할 경상수지적자를 감내하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는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달러 인덱스로 확인 할 수 있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비 달러화의 평균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1973년 3월을 기준점(=100)으로 하여 미국 연준에서 작성하고 발표한다. 6개국 통화는 유로, 엔, 파운드, 캐나다 달러, 크로네(스웨덴), 프랑(스위스)이며, 각 통화의 비중은 그 국가의 경제 규모에 따라 결정된다. <표 1>은 달러인덱스 구성의 6개 통화 가능치이다. 유로화에 대한 가중치가 57%로 가장 많은 포션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러인덱스 챠트는 수치가 높으면 달러가치가 높은 것이고 반대로 낮게 나오면 그 만큼 달러가치가 하락한 것으로 본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달러인덱스는 2001년에 고점을 형성하고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다. 2008년 말에 상승하기 시작하여 2009년 중순까지 높아진 것은 미국의 경기부양책과 양적완화정책등에 힘입은 일시적인 상승일 뿐이다. 이 같은 근원적인 원에에 의하지 않은 달러가치의 상승이 과연 얼마정도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미국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관련된다. 2010년 9월 6일 현재 달러 인덱스는 81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달러인덱스가 기록된 1973년을 훨씬 하회하는 것이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현재의 달러의 상황이 1973년 브레튼우즈체제가 붕괴하고 난 시점보다 더 좋지 못한 상황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림 3>은 달러 인덱스와 달러대 원화 가치변화 추이를 비교한 것이다. 달러에 비해 원화가치는 거의 널뛰기 수준인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위에서 확인 한 것처럼 달러화의 가치변화보다 훨씬 큰 폭으로 상하운동을 반복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경제가 불안하게 전개되어 온 것이다.

넓게 보아 일단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선에서 진정국면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이를 공포지수라 불리는 변동성 지수(VIX: Volatility Index)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VIX란 시카고 옵션 거래소에 상장된 S&P 500지수 옵션의 향후 30일간 변동성에 대한 시장의 예상 심리를 나타낸 것으로 VIX가 높으면 불안도가 심하고 낮으면 그만큼 시장이 안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VIX는 증시와는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VIX는 대체로 20을 안정으로 본다. <그림 4>에서 보듯이 서브프라임사태가 발발한 직후 2008년 9월부터 급증하기 시작하여 2009년 상반기 까지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이후 20가까이 떨어졌다가 올해 5월 다시 50가까이 상승하다 진정국면을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하였던 것이다.


4. 달러의 미래? 국제협력의 질서: 위악을 가장한 위선

이제 달러의 미래를 볼 차례다. 이 글 가장 앞에서 말 한 것처럼 우리는 단순히 달러의 미래가 아니라 현재 미국 주류들이 생각하고 있는 달러의 미래를 볼 것이다. 아주 즐거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유익한 경험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씽크탱크들이 잘 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미 의회의 청문회(hearing)에 출석하여 의원들의 질문에 전문가의 입장에서 증언(testimony)하기 때문이다. 종종 경제학의 발전은 의회정치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이해 할 수도 있겠다. 의회 증언에서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학자들과 정책전문가들이 향후 정책결정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중 한 연구소가 바로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과도 인연이 깊다 이들은 바로 몇 해 전까지 한미21세기위원회를 만들어 워싱턴과 서울에서 교대로 한반도의 중요한 정책적 사안들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C. F 버그스텐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의 의회 증언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2009년 포린 어페어지에 발표된 C.F. 버그스텐의 "달러와 이중적자"는 의회에 출석하여 증언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여기서 버그스텐은 달러의 가치는 미국이 가장 주목해야 하는 정책적 목표라고 강조하며 이는 "단지 경제 사안이 아니라 대외정책 그리고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임을 강조한다. 즉 총체적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만 향후 달러가치의 안정을 가져 올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버그스텐에게 달러가치의 안정은 미국의 경제적 미래, 국제적 위상의 미래, 그리고 미국의 국가안보의 미래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는 문제인 것이다.

버그스텐은 현재 미국이 처한 이중적자의 무제가 심각한 대외 채무 문제를 유발 할 것이고 결국에는 달러가치의 하락을 가져 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는 곧 미국의 대외적 지위와도 관련되는 것인데 지난 시기부터 미국은 군사력에 의해 달러가치를 조정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이중적자와 대외채무 문제를 근근이 유지시켜 나왔기 때문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와 1987년 루브르 합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다음으로 경제력을 갖춘 국가로서 독일과 일본이 자신의 통화가치를 높여 미국의 경쟁력을 보전해주고 그 부담을 떠안은 것은 미국의 순전히 군사력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타 국가들도 허덕이는 판에 일방적으로 미국의 말을 들어줄 수는 없다. 미국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동아시아가 있다. 특히 중국이 있다. 동아시아 수출달러 환류로 인한 미국의 달러가치 유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말미에 다시 애기하기로 하고 일단은 버그스텐이 현재 미국이 어떤 상황에 놓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경고를 들어 보도록 하자. 이 경고에 따라 미국 정책의 큰 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버그스텐의 경고는 같은 연구소의 윌리엄 클라인의 2030년도 미국의 경제상황에 대한 추정치 조사결과를 근거로 한다. 윌리엄 클라인은 백악관예산국과 의회예산국(CBO)의 자료를 바탕으로 2030년 미국이 닥칠 재정적자, 대외적자, 대외채무를 추정한다. 아래 <표 2>에서 보듯이 현재 GDP의 약 15%에 해당하는 경상적자 즉 무역적자는 2030년이 되면 두 배로 뛰어 약 30%에 육박하게 된다. 이것이 심각한 까닭은 미국이 매년 채무를 갚기 위해 해외로 이전해야 하는 비용이 GDP의 약 150%에 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버그스텐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대외투자수익이 외국인의 대미국 투자수익을 초과하여 순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2030년에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버그스텐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달러의 시뇨라지에 대해서 말하지만 사실 미국의 재정적자가 계속 될 경우 연방정부는 이자율을 불가피 하게 올릴 수밖에 없고 이는 달러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수출경쟁력은 당연히 낮아지게 된다. 버그스텐이 가장 우려하는 바가 바로 이 대목이다. 버그스텐의 해법은 예산적자를 해결하는 것이다. 사회복지 예산감축이 핵심일 것이다. 메디케어 같은 자연증가율을 최대한 억제하고 사회보장 개혁프로그램을 통해 재정지출을 최대한 줄이자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 지적하는 것은 현재의 "소비지향적" 미국경제를 "수출지향"적 경제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버그스텐은 그동안 미국은 세계의 최종소비자(consumer of last resort) 역할을 해 왔다고 하며 이러한 소비지향적인 경제로는 도저히 클라인의 2030년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수출에 무게중심을 두는 저책으로 선회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하면 미국은 "신중상주의적 정책"을 통해 미래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립궁핍화정책이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근립궁핍화란 이웃나라들을 이웃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자국 경제가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나라에 지목되면 말 그대로 끝장이다. 미국이 계속해서 우리나라에 한미FTA를 종용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버그스텐은 설사 자동차 배기가스조항 같은 양보하더라도 빨리 한미FTA를 가동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이 왜 우리나가 같은 중간규모의 나라에게 까지 못 잡아 먹어서 안달하는 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중국 애기를 앞서 하기도 했지만 달러에 대해 애기하면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위안, 루블, 유로나 엔 등이 달러를 대체해 기축통화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 어느 나라의 화폐가 단독으로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누리게 될 날은 아마 오지 것이다. 물론 현재 조건에서 말이다.

그보다 훨씬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는 대체계정(substitution account)로서 SDR이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하는 사람은 존 윌리엄슨이다. 존 윌리엄슨은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개념을 만들고 직접 적용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여하튼 버그스텐과 윌리엄슨등이 주장하는 내용은 SDR로 가는 것이 미국이나 중국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이다. 일단 미국에게 이로운 것은 달러라는 기축통화가 책임져야 하는 국제유동성 공급에 대한 부담을 벗어버려도 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SDR은 주요국 통화로 구성되고 이를 위해 각국이 IMF 분담금을 나누어서 내기 때문에 국제유동성공급의 부담을 미국 혼자가 아니라 여러 나라가 나누어서 부담하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손해날게 없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달러의 국제준비자산의 지위를 훼손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SDR 창설에 처음에 반대했지만 결국 미국의 동의하에 1967년 리우 데 자네이루 회의에서 통과된 것이다. 이미 알려져 있는 것처럼 주요국의 대외준비자산은 대부분 달러표시 미재무성채권이다. 금이 아니다. 이런 마당에 달러가치 하락은 모두 죽는 길이기 때문에 차이메리카라고 불리기도 하는 미국과 중국의 익숙하지 않는 동거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믿을 것은 동아시아의 수출달러환류밖에 없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계속해서 협조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불균형은 아직까지는 위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서는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는데 자국 경제도 사실상 어렵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각국이 금 할당을 채우고 자국의 경제력에 맞는 채무부담을 제공하여 가중평균한 SDR은 미국 달러에 대한 최선은 아니라 할지라도 '차악'(次惡) 정도는 될 것이다. 이것이 윌리엄슨이 말하는 SDR이 중국에게도 나름대로 보험이 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국제협력과 공조가 언급되는 대목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서 버그스텐은 세계정부가 없는 마당에 이를 논의하고 합의 할 공간을 찾는데 기존의 G7 정도로는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G20이 새로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최선의 협의체로 주목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끼게 된 것은 그만큼 돈 낼 나라가 많지 않음을 동시에 우리의 돈이라도 급전으로 쓸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동시에 작용하였으리라고 본다. 따라서 G20은 미국을 위한 새로운 뉴딜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G20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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