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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연금술', 세상을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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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연금술', 세상을 홀리다"

[신자유주의, 그 뒤엔?]<1> 전제부터 흔들린 파생금융상품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은 나이 희끗한 철학자 할아버지가 뒷짐지고 산책하면서나 던질만한 질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추상적이고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지긋지긋하리 만치 따라다니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나름의 답변 하나씩 가지고 있을 때 잠도 편안하게 잘 수 있고 뭘 하나를 하더라도 마음 다잡고 할 수 있는 법이다. 요즘처럼 '하던대로 하면 되지'라는 관성만으론 불안함을 떨쳐버리기 힘든 하수상한 시절에는 특히나 중요한 질문이겠다.

크게 보려는 시도가 필요한 때다. 한 때 무슨무슨 '공학'이니 '예측 모델'이니 하는 것에 기대는 것이 삶의 안정감을 찾는 방법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학과 모델들은 특정한 규칙이 존재하고 많은 이들이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어서 규칙다움이 유지되고 있을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과거를 규정했던 게임의 규칙 자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하는 상태라면, 분석의 세밀함보다는 각각의 제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그 역사적 현실은 어떠한지, 특정 국가, 특정 시장이 지구적 자원 순환 패턴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포괄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다소 성기더라도 지구적 금융 규제 시스템, 주요국 중앙은행 정책, 조세-재정 순환의 관행과 논리, 회계의 원리, 산업과 에너지의 생산-배분 체계 등의 변화양상과 현실에 대해 살피려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름의 의미있는 답변을 도출할 수 있길 바란다. <필자 주>


전세계 곳곳에서 금융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추상적인 선언들을 반복하고 있는 G20(주요 20개 국)회의에서, 그나마 구체적인 합의를 진척시키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 문제다.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해 한편에서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금융기관들의 로비가 폭증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의 규제가 투기와 버블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빗발친다. 일각에선 금융위기 이후 겪어야 할 홍역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조금 큰 맥락에서 이 사태를 살필 필요가 있다.

효율적 시장에 대한 이론이 금융 파생상품 시장을 부활시키다

1970년대 초, 시카고 상업거래소(Chicago Merchandise Exchange)와 상품거래소(Chicago Board of Trade)는 금융 파생상품 거래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고정환율제가 흔들리고 인플레이션 위협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통화선물이나 주식 옵션 같은 파생상품은 대박상품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현실적 장벽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대공황을 거치면서 나타난 '파생상품은 투기이자 도박'이라는 관념이었다. 1936년 상품 거래법 이래로 농산물처럼 물질을 기초자산으로 하지 않는 선물거래나 옵션은 소규모 장외 시장을 제외하고는 금지되어 있었고, 1970년대 당시까지도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같은 규제기구나 정부관료들은 금융 파생상품 거래에 대해 공공연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갈등 상태에서 금융 파생상품 거래를 확산시킬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동한 것이 블랙(Fisher Black)과 숄즈(Myron Scholes)의 옵션 가격 이론과 같은 금융공학 이론이었다.

전 시카고 옵션 거래 위원회 자문위원 리스만(Burton R. Rissman)은 이렇게 말한다.

"블랙-숄즈는 거래를 활성화시켰다. 1960~70년대에 우리는 옵션 거래는 곧 도박이라는 이슈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 문제는 사라졌고 나는 블랙-숄즈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옵션 거래는 투기나 도박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과정이 됐다. 나는 시카고 옵션 거래 위원회에서 거래되는 주식 옵션에 대해 다시는 도박이라는 단어를 들을 수 없었다"

블랙-숄즈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효율적 시장을 가정한 상태에서 위험을 더 많이 감수할수록, 더 높은 수익을 올린다는 논리를 옵션이라는 금융 파생상품(풋옵션, 콜옵션처럼 특정한 가격으로 미래에 자산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에 적용한 것이었다.

적절하고 정당한 옵션가격이 효율적 시장에 기대어 계산될 수 있다고 이야기되는 한, 옵션은 투기나 도박이 아니라 합리적인 자본시장이 가격을 발견해가는 과정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매우 순수한 형태의 정보와 계산 자체가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다시금 인정받는 순간이었으며, 그만큼이나 이것을 정당화하고 지지하는 논리적 기초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 금융 파생상품 거래는 확대되기 시작했다. 모기지 담보 채권 선물 거래, 재무부 증권에 대한 선물 거래, 인덱스 선물 거래 등으로 거래 상품 범위가 속속 확대되기 시작했고, 관련 신용 거래에 대한 규제나 수수료에 대한 제한도 폐기됐다. 이후 숄즈가 직접 창립한 롱텀 캐피탈 사가 대규모 파산을 겪었을 때에도, 2000년대 초 이른바 신경제 버블이 무너져내릴 때도, 금융 파생상품 거래는 이렇다할 머뭇거림 없이 그 기초에 자리잡고 있는 논리들과 함께 확대되어 갔다.

▲ 뉴욕 증권 거래소. ⓒ로이터=뉴시스
계산가능한 위험, 자기조정적인 자본시장

효율적 시장에 대한 신뢰와 관련한 이론이 금융 파생상품 거래를 확산시킨 것 만큼 반대로 이 신념은 파생상품 거래, 그 외 여타의 제도적 변화를 경유하여 스스로를 확고하게 만들어 갔다. 지난 30여 년의 시기를 되돌아 볼 때 이 신념의 확산이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자산가격은 모든 이용가능한 정보를 통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적의 효율성을 반영한다. 자산의 현재 가격은 현재의 지식과 대비할 때 이미 최적 상태에 있고,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면 이 정보를 포함하여 새로운 최적 상태의 가격으로 나아간다. 단 이 때 '새로운 정보'를 포함하는 순간 '새로운 자산가격'은 어제의 가격과 질적으로 상이한 것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런 점에서 매일매일의 자산가격 변화는 무작위적이다.(Random Walk)

자산가격의 변화가 무작위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자본시장에서의 가격변화는 '확률적으로 계산가능한 세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동전던지기와 두 번째 동전던지기가 '독립적인 사건'일 때 계속적인 동전 던지기 게임은 정규분포에 기초하여 확률적으로 계산 가능한 대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어제의 자산가격 상승이라는 사건과 오늘의 자산가격 하락이라는 사건이 '독립적 사건'일 때 자산가격의 변화는 확률적으로 계산될 수 있다. 보통 자본시장에서 '리스크'라 부르는 것은 자산가격의 가격 변동성을 일컫는 바, 리스크는 확률적으로 계산가능한 것이 되는 것이다.

둘째, 자본시장은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합리적인 자원배분의 체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전을 무한히 던질 때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각각 1/2씩으로 동일하듯, 자본시장에서도 가격이 상승해서 무위험 수익률(혹은 시장수익률)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할 확률과 거기에 못미칠 확률은 결국 동일하다. 단기적으로 볼 때,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자본시장과의 게임에서 초과수익을 영구히 올릴 수 있는 이는 없다. 또 단기적으로 이익을 보는 경우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리스크를 감수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자본시장은 리스크를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자산가격을 통하여 최적의 형태로 자원을 배분해주는 곳이다. 전체로서의 자본시장이 창출해내는 효율성과 자기조정성을 믿을 수 있을 뿐 그 외의 세상은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곳이다.

정해져 있는 길은 없으며 따라서 한 인간, 한 집단이 세상을 아울러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대안은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대수익과 리스크를 놓고 저울질하면서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찾아나가면서, 자본시장의 영토를 조금씩 넓혀나가는 일이다. 금융 파생상품 시장의 지속적 확대는 이 세계상에 대한 신뢰 정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스냅 사진 같은 것이었다.

잠식의 사슬

영국 기업 재무담당자 연합(Association of Corporate Treasurers)의 마틴 오도너번(Martin O'Donovan)은 파생상품의 중앙청산소 청산 의무화에 대해 비판하면서, "파생상품 손익은 현금 흐름에 따라 조정된다. 재무담당자들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건 현금이 시장가치에 따라 변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파생상품은 변동성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규제 경향이 파생상품이 시장가치에 따라 거래되는 것을 제약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 발언은 주목할 만한데, 1970년대 금융 파생상품 시장을 창출했던 원동력이자 그 이후 별다른 흔들림없이 지속되었던 원리가 잠식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키드 셀링', 즉 1970년대 숱한 도덕적 공격을 뚫고 성사시켰던 '기초자산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파생상품 거래'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고 중앙청산소를 경유해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규제기관의 개입통로가 놓이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리스크 계산 가능성, 자본시장 자기조정성, 금융 파생상품 시장 같은 것이 잠식되어 가고 있는 방식이다. 일단 수십년을 지배해오던 원리에 흠집이 나고, 이에 동반하여 제도가 변화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기존 논리에 기반해 계산하고, 판단하고, 행동했던 파생상품 투자자에게는 미래에 대한 불안 요인으로 작동하게 마련이다.

파생상품 거래자들은 중앙 청산소를 통해 거래를 하게 되면서 중간에 발생할 수 있는 추가증거금 요구에 대비해 얼마만큼의 유동성을 준비해야 하고 이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가 될지, 이로 인해 이윤 변동성과 현금흐름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불분명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은 자본시장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파생상품 시장을 규제하려는 시도들은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창출하겠다거나 과거의 금융시스템을 해체하겠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자본시장 행위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것에 가깝다. 핵심적인 규제의 목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금융위기의 재발 방지', '파생상품 시장의 신뢰 회복' 같은 것이다.

자본시장과 관련되어 있는 주전 선수들 중 누구도 지난 수십년을 지배했던 원리와 그 원리를 지탱했던 제도들이 해체되기를 원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사정이 오히려 지배적 게임의 규칙을 잠식하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금융 파생상품 시장의 현 상태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심지어 지구적 자본시장 전체, 자원 배분 시스템 전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지엽적인 사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 파생상품 시장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 화폐 생산 시스템 전반에서, 채무-채권을 형성하는 관행과 제도 전반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체제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면 어떨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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