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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노조를!"…해고된 朴대리 딸 "아빠 피아노 끊을게요"

삼성전자 박종태 대리, 공장 앞 1인 시위 현장

23일 오전 11시 30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중앙문에는 한 남자가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지난달 삼성전자 사내 전산망에 노동조합을 만들자는 글을 올리고 한 달도 채 못 돼 해고된 박종태 대리다. 그의 손에는 "이기는 것이 정의가 아닌 정의가 승리한다"는 내용의 피켓이 들려 있었다.

박 대리는 "회사 생활할 때 소신껏 정직하게 아부 없이 살아서 후회는 없다"면서도 "다만 부당해고를 당해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23년 동안 청춘을 다 바쳤는데 나가라니 처음에는 죽고 싶었지만,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복직투쟁을 하겠다"는 담담한 소회도 밝혔다.

하지만 막상 해고되고 나니 생계가 막막한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 작은딸이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아이가 커서 음악을 전공하는 게 꿈이에요.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있었는데, 제 해고 소식을 듣고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아빠, 피아노는 나중에 기회 생기면 또 배우면 돼요. 지금은 공부 열심히 할게요. 학원을 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박종태 대리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프레시안(김윤나영)
'열심히 해서는 안 되는 직책'에서 '너무 열심히' 활동한 죄

삼성과 박 대리의 갈등은 지난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리는 지난 2008년에 삼성의 노사협의기구인 한가족협의회 위원으로 당선돼 일했다. 문제는 그가 '너무 열심히 해서는 안 되는 직책'에서 '너무 열심히' 활동했다는 것. 박 대리는 여사원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가 눈에 밟혔다고 한다.

"전체 직원의 5%는 무조건 업무평가에서 하위 고과를 받도록 할당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하위 고과는 전부 출산휴가를 쓴 여사원들의 몫이 됐죠. 회사는 출산하고 복귀한 여사원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업무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계속 매기겠다고 겁을 줬어요."

박 대리는 "이러한 이유로 여사원들은 임신해도 회사에 말을 못한다"며 "임산부들이 하루 종일 계속 서서 일하다 보니 노동 강도를 버티지 못하고 유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보다 못한 그는 협의위원이 되자 인사그룹담당자와 술을 마시며 울면서 "여사원들이 유산당한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그가 '저지른'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박 대리는 "내 임기 동안 구조조정은 없어야 한다"며 회사로부터 직원 해고 시 협의위원이 알게 해달라는 내용의 약속을 받아냈다. 한가족협의회가 생긴 이래로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그는 곧바로 회사의 눈 밖에 났다. 한 화이트칼라 협의위원이 "박 대리 너무 세게 나가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그는 관리자에게 불려 가 "노조를 만들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전혀 노조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급기야 회사는 그에게 브라질로 출장을 가라고 명령했다. 당시 그는 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병원에 입원까지 한 탓에 "건강상 이유로 출장에 갈 수 없다"고 응했다. 올여름 그에게는 다시 러시아 출장 발령이 났다. 박 대리는 "다른 사람이 가기로 결재까지 난 상황에서 갑자기 상부에서 명단에도 없는 나를 보내라고 번복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다른 삼성 노동자와 박 대리를 떼어 놓기 위한 처사라는 것이다.

"노조 만들자는 직원 자르는 게 삼성이 말하는 '상생과 소통'인가?"

박 대리는 고민 끝에 지난달 3일 사내 게시판에 노조를 만들자는 글을 올렸고, 같은 달 26일 해고 통지를 받았다. 해고 사유는 △회사 기밀 유출 △허위사실 유포 △업무능력 저하 △업무지시 거부 등이었다. 박 대리는 회사의 해고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이마저 기각되면서 지난 7일 끝내 최종 해고됐다.

삼성 측은 '여사원들의 유산'이 허위사실 유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조분야에만 지금까지 유산한 여사원이 주변에 10명은 된다는 게 박 대리의 설명이다. 업무능력 저하에 대해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와 같은 조항이라고 주장했다.

회사 기밀 유출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박 대리가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이 <프레시안>에 보도되자, 삼성 측은 "사진에 사원들을 상대로 올린 '아동용 에듀테인먼트 UX 아이디어 공모'라는 제목이 외부에 유출됐다"며 "타사가 이 아이디어를 차용해 상품을 먼저 출시할 수 있으므로 회사에 손해를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박 대리는 "경영진 등 보안취급자 외에 볼 수 없어야 회사 기밀이 된다"며 "전 사원이 다 보는 제목이 어떻게 회사 보안 사항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러한 해고 사유가 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기라도 한 듯, 삼성 측은 상벌위원회 자리에서 박 대리에게 '출장 거부'만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노조 만들자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려서 해고된다는 말은 쏙 빼고 엉뚱한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독재 정권이 신문하듯 임원 5명, 관리자 2명, 인사담당자 1명까지 총 8명이 저를 둘러쌌어요. 핵심은 출장 안 간 것에 대한 유도신문이었죠. '너 안 갔지?', '몸이 아파서 못 갔습니다', 이 공방이 한 시간 반 동안 벌어졌어요. 회사는 저를 업무 지시 거부라는 사유로 해고하면 깔끔하다고 생각한 거죠."

박 대리는 마지막 진술을 할 때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삼성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부당해고에 대해 명확히 사실 관계를 밝히고 싶을 뿐이다. 그게 진정 삼성이 말하는 상생과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상생과 소통'은 김순택 부회장이 최근에 내건 삼성의 모토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리자, 삼성은 이에 대해 해명하는 글을 올리면서 '상생과 소통'을 강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 대리는 "해고 통지를 마치자마자 사측이 사원증을 빼앗고 제조그룹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여러 사람을 보내 밀착 관리했을 때가 가장 슬펐다"고 말했다. 그는 "사측은 일부러 저를 제조 건물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불러 해고를 통지했고, 제조 건물 문을 미리 걸어 잠갔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어떻게 해서든 건물에 들어가서 동료들에게 해고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회사 냉장고에 들어 있는 약을 가져와야 한다고 둘러댔더니, 저를 들여보내 주는 대신에 사원들이 낑낑대면서 그 큰 냉장고를 통째로 50m나 끌고 오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됐다'고 말하고 회사를 걸어 나왔죠. 나중에서야 동료들이 제 해고 사실을 알고 울어주더라고요."

"동료 못 만나기도 서러운데 화장실 갈 때도 보고하라니…"

ⓒ프레시안(김윤나영)
그는 해고를 당하기 전부터 사측의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고 주장했다. 사무직과는 달리 생산직은 휴게실에만 컴퓨터가 있는데, 11월 초에 노조를 만들자는 글을 올리고 난 다음부터 그가 휴게실에서 컴퓨터를 쓸 때마다 직원이 따라나섰다는 것이다.

"징계위원회 참석을 통보받고 나서 사장에게 부당하다고 이메일을 보냈거든요. 사장은 그 이메일을 열어보지 않았는데도 회사에서 다 알고 있더라고요. 제 이메일을 뒤졌다고 생각해요.

휴게실에서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직원이 뒤에 서서 '뭐 하느냐, 이메일로 뭘 보내느냐' 하고 묻더라고요. 하루는 6시 이전에 회사에 일찍 출근해서 컴퓨터를 하니 차장이 허겁지겁 따라나온 적도 있어요. 회사가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삼성 측 관리자는 그의 동료를 불러 "박 대리와 만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박 대리에게는 자리를 비울 때마다 무조건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담당자에게 보고해야만 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아내는 아크릴 수세미 만드는 '생계 전선' 내몰려

1987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을 때 그는 "뿅 날아가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매달 노모에게 부치던 생계비를 이제 더는 부칠 수 없다. 그의 딸은 "시골에서 처음 취직했을 때 할머니가 별 땄다고 좋아했다"며 "할머니가 아시면 이제 별이 떨어져서 실망할 것"이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시골에 계신 노모에게 그의 해고 사실은 여전히 비밀이다.

삼성에서 23년을 일하고 해고된 지금,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디스크, 우울증, 불안증, 역류성 위염 등으로 그가 하루에 먹는 약만 해도 30알. 그는 해고를 통지받은 이후부터 밤마다 회사에서 징계를 받는 꿈을 꿔서 잠을 설친다고 했다. 의사가 그에게 수면제 한 알을 더 처방하면서 그가 먹는 약은 하루에 31알로 늘어났다.

박 대리의 아내 최미영(가명) 씨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해고 소식을 듣고 나니 다음 달 살림이 막막하다는 생각부터 들더라"며 "전에는 아파트 관리비를 못 내서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내게도 닥칠 수 있겠다 싶다"라고 말했다. 최 씨는 아크릴 수세미를 만들어 하나에 2000원에 판다. 예전에는 심심풀이로 지인들에게 주려고 만들던 게 이제는 전업이 됐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위원장은 "사람들은 박 대리가 안 됐다고 하면서도 박 대리는 삼성에 23년이나 다녔는데 왜 이렇게 못 사냐고 한다"며 "삼성이라고 노동자 대우가 좋고 삼성 노동자는 잘산다는 것도 환상"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박 대리의 해고는 국민이 삼성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신화를 가졌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며 "이건희 씨 일가를 위해 삼성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모습은 은폐돼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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