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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2번째 죽음만큼은 막으려 했건만…"

[쌍용차를 기억하라·③] 19일 서울역과 대한문으로

2005년 나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시오" 라고 핸드폰 문자로 해고된 노동자다. 너무 억울하고 기가 막혔다. 노동부에서 불법파견이라고 판정이 났지만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처음엔 불법파견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어서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하더니 2007년 비정규직법 개악 이후에는 불법파견이라도 2년 이상 근무해야 그나마 고용의무조항이 생긴다고 했다. 불법은 회사가 했는데 그 고통은 고스란히 노동자들만 떠안아야 하는 현실에 속이 터졌다. 속 터지는 현실이다 보니 우린 치열한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해고시키지 말라고 점거파업농성을 하고, 공권력에 의해 쫓겨나 공장 앞에 천막치고 농성을 하면서 교섭에 나오라고 30일 단식을 해야 했고, 우리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50리 걷기, 삼보일배, 높은 곳에 올라 두 번이나 고공농성을 하고, 94일을 굶고, 삭발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아침 회사 앞으로 출근하는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사실 우리만 싸웠다면 좌절하고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부와 회사는 편법으로 면피만 하려했고, 법마저 우릴 외면하자 아예 우리가 억지를 부린다고 부라렸다. 우리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곳 법과 기관 그리고 정당은 없었다.

그런데 너희들의 싸움이 옳다고, 힘들지만 함께 싸우자고 함께 해 주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어서 우린 힘을 얻었다. 특히 2008년 죽음을 문턱에 둔 우리의 투쟁에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힘든 상황이지만 힘이 났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우리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 고통을 함께 했던, 함께 비를 맞았던 이들이 있어 1895일 만에 투쟁은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또 하루도 쉴 수 없는 함께 비를 맞는 이가 되어야 했다.

▲ 2010년 10월 27일 13일째 단식농성 중이었던 기륭전자분회 윤종희, 오석순 조합원. 2006년 30일, 2008년 94일에 이어 세 번째 단식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기륭전자 6년 투쟁을 함께 해준 사람들

21번째 생떼 같은 목숨을 잃고 22번째 죽음은 막아야 한다며 흐느끼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기억한다.

'어떻게든 싸워서 골방에 갇혀 있는 조합원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하자',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도록 하자'며 호소하고 절규하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무엇이라도 해 보겠다고 나설 때 나는 나의 모습을 본다.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표현하지 않아도 안다. 이 마음은 장기투쟁을 하는 모든 이들은 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연대의 행군에 나섰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해 나가자는 기치 아래 '희망 뚜벅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 비정규 투쟁사업장 동지들과 함께 1월 30일 재능을 출발해서 세종호텔, 시그네틱스, 콜트콜텍, 포레시아, 3M, KEC, 코오롱, 대우자판, 현대자동차비정규직, 풍산마이크로텍, 파카한일유압, 유성기업, 인천남동구시설관리공단 등 비정규직, 정리해고 투쟁사업장을 돌아 2월 11일 평택 쌍용자동차까지 300km를 걷고 또 걸었다.

50년 만에 강추위라고 했던가.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도 어김없이 걸었고 저녁에는 지역 노동자, 시민들과 문화제를 했다. 많은 이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주고 발걸음에 함께 해 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던 세종호텔 동지들이 승리로 투쟁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힘든 일정이었지만 모두들 의기충천했다. 뭐든 하면 된다, 함께 해 보자는 마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3월에는 '희망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이 모여 시청광장을 희망광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이 땅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이 모여 우리의 희망을 함께 이야기 하자는 호소는 정권의 탄압에 멍들었다. 1인 시위도 맘 놓고 하지 못했고, 꽃분홍 조끼를 입고 움직이기만 하면 여지없이 경찰이 앞길을 막고 둘러쌌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경찰들과 실랑이를 하면서도 우린 기세를 잃지 않고 직접 밥도 해 먹고, 동지들과 사업장이야기도 나누고 고민도 나누면서 함께 희망을 만들어 갔다. 3월인데 동지섣달보다 매서운 바람에 모진 고생을 했다. 하지만 함께 참여한 동지들의 마음만은 더욱 따뜻해졌다.

연대의 발걸음 희망뚜벅이와 희망광장으로

근 한 달의 광장 노숙 농성을 마무리 하며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도 점차 기운을 얻는가 했다. 그래서 이후 투쟁도 같이 잡아 보자며 논의 중에 청천벽력 같은 22번째 죽음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너무도 기막혔다. 우리 가슴이 이런데 쌍용차 노동자들은 오죽할까.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시민에게 알리고, 대한민국에게 보여주기 위해 4월 5일 대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분향소를 설치했다. 하지만 경찰이 폭력적으로 분향소를 짓밟았다.

최소한의 애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권력을 보면서 '분향도 못하게 하면서 우리에게 죽으라 하는구나! 저 금수만도 못한 권력과 경찰이' 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영정사진이 있는 현수막을 빼앗기 위해 몇 되지도 않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폭행을 했다.

하루 종일 빼앗기고 폭행당하고 울부짖으면서 왜소한 분향소지만 지켜냈다. 그 이후 거의 일주일을 매일 경찰과 싸워야 했다. 연행이 되고, 앰뷸런스에 실려 가고…. 어쩌면 쌍용차 노동자들만 있었다면 엄두가 나지 않을 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연일 계속되는 싸움에 희망 뚜벅이, 희망광장을 함께 했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온몸을 던져 함께 싸웠다.

이러한 상황들이 알려지면서 일반 시민들까지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한 번 얼굴 본적 없는 이들이 조문을 와서 절을 하고 눈물을 훔친다. 어떤 이는 분향소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눈물만 흘리고 서 있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보태고, 마음을 모으면서 100여분에 달하는 각계각층의 시민사회단체와 원로 선생님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하고 '범국민추모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정말 다행이다.

두들겨 맞고 연행되면서 지켜낸 분향소

이제 5월 18일이면 49재다. 처음 분향소는 정말 왜소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이들이 함께 하면서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번듯한 분향소가 되었다. 희망을 상징하는 꽃 화분도 등장했고, 돌아가신 분 배고프지 말라고 매일 빵을 사서 상에 올리는 분도 있고, 강원도에서 온 한 시민은 거의 생업을 포기한 채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차 희생자들의 분향소. 돌아가신 분 배고프지 말라고 시민이 상에 올리고 간 빵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조문을 오기도 하고, 길을 지나는 어린 학생들이 묵념을 하는가하면, 외국인도 분향소에 와서 조문을 하고 가기도 한다. 한 달 가까이 분향소를 떠나지 않고 노숙을 하며 지키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얼굴은 지친 기색은 있지만 힘을 얻고 있다.

많은 이들이 쌍용자동차하면 2646명의 정리해고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3646명이 해고되었다. 쌍용차 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당하기 전 비정규 노동자들이 '앗'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1000여 명이 잘려 나갔다.

그러고 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쌍용차 비정규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조직을 통합하고 함께 싸우고 있다. 77일 파업 돌입 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굴뚝에 올라 86일간의 농성을 한 바 있다. 당시 굴뚝에 올라갔던 비정규 노동자인 서맹섭 비정규지회장은 지금도 힘차게 함께 싸우고 있다.

정규직이 정리해고된 그 자리는 다시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쌍용차가 보여 주고 있다. 쌍용차 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 시대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실천의 중심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맞물려있는 쌍용차

이제 돌아가신 이의 대한 추모를 넘어 더 큰 투쟁으로 나아갈 때라고 생각한다. 5월 19일 전국추모대회가 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더 이상의 죽음을 막고, 생사를 오가고 있는 노동자를 살리기 위한 발걸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이 발걸음에 함께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다.

"지금 내딛는 당신의 발걸음이 해고된 노동자, 아직도 골방 속에서 생사를 헤매는 노동자를 살립니다!"

* 5월 19일 오후 4시 서울역과 대한문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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