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형이 부탁하신 희망버스 관련한 글 결국 못 쓰겠습니다. 물론 희망버스의 감회를 잊어서도 아니고 희망버스 탑승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치졸한 탄압에 분노하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2011년 6월 11일 85크레인 밑에서의 기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희망버스 기획이 변혁운동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지 않습니다. 지난 주 첨부한 원고가 잘못된 글이었음을 어제서야 깨닫고 다시 기억을 더듬어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속 깊은 곳에서 '안 돼!' 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쩌면 지난 주 원고를 날리고 엉뚱한 글을 첨부한 것도 그 목소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희망버스에 관한 글을 쓰려면 'G20 쥐 그래피티' 사건 얘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1차 희망버스에 합류하게 된 계기부터 경찰소환, 약식 기소, 약식 명령, 정식재판 청구에 이르기까지 희망버스와 그로 인한 송사는 쥐 그래피티 사건과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형이 저한테 기고할 글을 부탁한 것도 제가 쥐 그래피티 사건의 당사자로서 또다시 희망버스 참여로 재판받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쥐 그래피티와 김진숙 지도위원의 86크레인 농성이 무관치 않고, 쥐 그래피티 재판으로 얻은 약간의 유명세(그런 게 있다면)가 희망버스 관련 기소의 부당성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데 쓰인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죠.
| ▲ G20 행사 당시 홍보 포스터에 그려진 쥐그림. ⓒ트위터 |
형의 원고 부탁에 제가 응한 것도 실은 희망버스 재판과 관련해서 쥐 그래피티 재판 과정에 대해 공중에 할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2010년 11월 1일 새벽 종로와 명동 일대 가판대의 G20 포스터에 발칙한 쥐 그림을 그래피티(낙서)한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열 명 내외였다는 것, 그런데 사법적 대응 과정에서 나 혼자만의 작품으로 공식화 되었다는 것, 대법원 상고심까지 가면서 나로 모르게 쥐 그래피티를 나의 '업적'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 그 때문에 처음부터 함께 준비하고 실행한 친구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았다는 점을 말하려고 했습니다.
희망버스 재판과 관련해서 어떻게 그 얘기를 할 수 있나 할 텐데, 희망버스에 참여했다고 부산지법으로부터 약식명령('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주거침입죄에 의거 벌금 100만원에 처한다)을 받고 저는 범죄 사실 기록에서 저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없이 희망버스 기획 전체에 대한 내용만 있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정의로운 범법자로서의 나 개인이 존중받지 못했다는 데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저 500명 중 한 명으로 취급되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고 할까요. 아마 내 무의식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감히, 나, 박정수, 쥐 그래피티 사건의 당사자를 몰라봐?' 곰곰히 생각하니, 쥐 그래피티 재판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구속한 건 사법당국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쥐 그래피티를 나의 소유로 전유해 버린 나 자신, 나의 공명심과 자존심이 동료들의 표현을 구속했던 것입니다.
형의 청탁을 받고 이런 이야기들을 하려고 했습니다. 약식명령서에서조차 무시된 평범한 사람들 한명 한 명이 희망의 버스를 달리게 했고 그 익명의 개인들이 김진숙을 살렸고 해고는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알렸다고, 나도 기꺼이 그 이름 없는 희망버스 탑승객 중 한 명으로서 당당히 법정에 서겠다는 말로 마무리 지으려 했습니다. '쥐 그래피티는 나의 작품이 아니며, 재판과정에서 내가 절도한 것이다'라는 마음 속의 빚처럼 남은 말도 이 기회에 청산하면서. 그런데, 그건 희망버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쥐 그래피티에 대한 고백도 아닌 어정쩡한 글이었습니다. 어정쩡할 뿐 아니라 그것은 희망버스 기획단에게도 무례를 범하는 것이고 내 고백을 듣는 쥐 그래피티 동료들에게도 올바른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쥐 그래피티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희망버스 재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고, 쥐 그래피티에서 제가 한 잘못과 진실의 고백은 희망버스와 섞을 수 없는 지금, 형이 부탁한 원고를 끝내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글밖에는 쓸 수 없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내일이 첫 번째 재판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담담하게 진실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주거침입죄라고? 2011년 6월 11일 나는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에 유일하게 '주거'하고 있는 김진숙과 노동조합원들의 초대를 받고 정문으로 들어갔노라고. 나를 그곳에 가게 한 것이 어느 이름 없는 후배의 울먹이는 권유였듯이 그곳엔 '김진숙' 말고는 아무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 초대받아 와 있었노라고. 우린 그곳에서 이름 대신 뜨뜻한 눈물과 서늘한 미소만 주고 받았는데,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모두 '김진숙'이었기 때문이었노라고.
| ⓒ쌍용자동차 범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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