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1차, 2차, 3차, 4차, 5차 희망버스는 11월 10일 고공농성 중이던 김진숙이 크레인에서 걸어 내려와 땅을 밟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희망버스 기획을 했다는 이유로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실장은 부산의 구치소에 수감된다. 89일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그들은 한동안 재판을 받으러 부산으로 향해야 했으며 희망버스 탑승자들은 무거운 벌금으로 정신적, 경제적 고통 속에 있다. 그 금액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참가자가 아니더라도 귀찮게 시달리고 있음은 마찬가지다. 왜 쌍용을 떠나 그 먼 곳에 있는 한진으로 갔냐는 내 질문에 이창근 실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김진숙의 진정성이 무서웠어요, 죽음을 각오하고 크레인에 오른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알았어요.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
'사회적 타살'을 외치는 고함소리
송경동 시인은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어 옥중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출판한다. 주인공이 없었던 출판기념회에서 그의 아내는 눈물로 감사함의 마음을 읽어 내려갔다. 희망버스를 함께 하고, 송경동 시인의 수감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던 지인들의 도움으로 50권의 책을 구입해 읽고자 하는 분들께 혹은 여전히 희망버스를 모르는 분들께 선물하는 '희망 릴레이'도 할 수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에 방송대 이정호 교수는 "내게 물어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를 연신 반복하시며 내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하셨다. 시인의 바람은 그렇게 사람들의 희망을 타고 점점 그 공간을 넓혀갔다. 희망버스에 모아졌던 관심과 연대가 쌍용으로, 재능으로, 콜트콜택으로 또 다른 투쟁사업장으로 향할 것을 창살 너머에서 호소하며 갇혀 있는 몸이 미안하다고 시인은 말했다. 항상 노동자들 옆에 있었기에 구치소에 있는 것도 당연하다던, 지금은 진보신당의 사무총장이 된 정진우 씨는 여전히 정치인보다는 투쟁하는 이의 모습, 노동자의 모습이다.
한진으로 향했던 희망버스가 평택으로 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는 가운데 쌍용차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희망텐트'가 12월 24일 평택 공장 앞에서 시작됐다. 폭설주의보가 내려진 날씨에도 삼삼오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밝은 미소로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켰다.
마음을 어떻게 보태야 할 지 모르겠다는 고등학생부터 자기덩치만한 크기의 카메라를 맨손으로 들고 다니며 현장을 기록하던 이수정 감독, 행사 때마다 상징물을 만들어 내는 이윤엽 작가, 평범한 주부, 직장인…. 수많은 색의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한 장소에 모여들었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엄마가, 아빠가, 언니가, 오빠가, 든든한 이웃이 되어준 많은 분들이 있다. 세상의 폭력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에 좌절하고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방법 '죽음'을 강요받은 이들. 조용한 고함 '자살'의 시작이다. 오로지 자살만을 선택으로 남겨준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타살'의 시작이다. 그들의 조용한 고함소리는 하나, 둘 모여져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우리들의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알아들었으니 제발 그 처절한 고함을 멈추어 달라고, 그렇게 절규하는 소리를 일찍 듣지 못해 미안하다고.
| ▲ 희망텐트. ⓒ프레시안(최형락) |
노동자·시민의 피땀이 만든 쌍용차 청문회
하지만 또 이어진 3월 30일 22번째 조용한 고함소리. 대한문에 4월 5일 분향소를 만들기 시작한다. 찬 바닥에 영정사진 하나 눕혀 놨을 뿐이다. 그 영정사진 한 장도 참아낼 수 없는 사람들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뜯기고, 짓밟히고, 쓰레기통에 쳐 박히고, 연행되기를 반복하는 사이 시민들의 관심과 발걸음이 대한문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많은 시선이 향하는 곳에서는 폭력이 일어날 수 없다. 시민들의 든든한 시선의 방어벽 안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아슬아슬하게 대한문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고 있다. 자살을 선택하는 대신 함께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 시민들도 그들의 손을 굳게 잡고 함께 살겠다, 손을 놓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다.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그 요구가 9월 20일 청문회를 이끌어 냈다. 여야의 의원들은 이 청문회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자신을 지켜낸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피땀이 만들어낸 청문회다. 사망자의 숫자에 의구심이 생긴다면 흩어진 해고노동자들을 찾아 밝혀볼 일이다. 쌍용차 이야기를 다룬 <의자놀이>가 담아내지 못 한 것이 있다면 놓치고 있는 것을 찾아 낼 일이다. 금융감독위원회가 부실회계의 의혹을 밝히지 못했다면 능력 있는 구성원을 꾸려 다시 밝혀 볼 일이다. 낱낱이 파헤쳐서 진실을 밝히고 강력한 처벌로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누가 정치적 판단에 앞서 쌍용차 문제의 진실을 규명하려 하는지 지켜 볼 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이번 청문회는 노동자들의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 미래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동료들을,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보듬어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여기 무슬림 경전에 나온다는 글귀를 마지막으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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