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임대료와 매장 내 국산품 50% 이상 의무 배치 조건 때문에 유찰
1차 입찰에는 업체가 한 곳이라도 참가했지만, 2차 입찰에는 단 한 곳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높은 임대료'와 '매장 내 국산품 50% 이상 의무 배치 조항'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자산 규모 5조 원 미만인 중견·중소기업에 참가 자격을 부여했다. 명분상으로는 중소기업을 우선 대상으로 했다. 1차 입찰에서는 제외된 술, 담배 판매도 2차 입찰에서는 가능케 하고, 운영 기간도 2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그럼에도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이 유찰된 것은 높은 임대료 때문이었다. 인천공항공사는 2차 입찰에서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해 온 면세점 매장을 두 개로 나눠 임대료 최저가를 379억여 원과 409억여 원으로 정했다. 1차 입찰보다 각각 120억여 원, 140억여 원이 올랐다. 그 결과 매장 면적은 관광공사가 현재 운영하는 면적에서 불과 57평 정도 늘어났지만, 입찰에 참가하려는 기업은 관광공사가 내는 임대료보다 매년 약 300억 원 이상을 더 내야 했다.
설혹 높은 임대료를 내고 인천공항 면세점 운영자로 정해지더라도 중소기업은 재벌 면세점과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한다. '국산품 50% 이상 배치' 조항은 중소기업에만 강요된다. 롯데와 신라, 두 개의 인천공항 내 재벌 면세점에는 국산품을 50% 이상 배치할 의무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중소기업이 이렇게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공항 면세점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 결국 어느 업체도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MB 임기 동안 재벌 기업 면세점 시장 점유율 늘어
한국관광공사노조는 "면세점 입찰 자격이 중소·중견기업으로 제한됐다지만, 이마저 재벌 기업으로 면세점을 넘기기 위한 순서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2009년 AK 면세점은 재벌 면세점과 힘겨운 경쟁 끝에 적자 폭을 견디지 못하고 인천공항에서 철수했으며, 롯데가 AK 면세점 지분을 인수해 인천공항 내 면세점 덩치를 키운 전례가 있다.
2차 입찰마저 유찰되자, 인천공항공사가 2월 말로 관광공사와 계약이 종료되는 면세점 운영권을 재벌 기업에 수의계약으로 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이에 인천공항공사는 2월 26일 언론 보도에서 "이번 공항 면세점 운영 사업장 선정 입찰은 입찰 조건 등을 완화해 신규 입찰 공고를 냈으나 입찰 참가 업체가 없어 유찰된 것으로 수의계약 대상이 아니다"라며 "따라서 대기업이 수의계약을 통해 면세점 사업권을 인수할 것이라는 추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인천공항공사는 "정부와 협의를 거쳐 조속한 시일 내에 후속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다음 번 입찰에서도 중소·중견기업 참가 자격은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공항공사가 면세점 입찰 자격을 중소·중견기업으로 제한한다는 뜻을 재차 밝혔지만, 이명박 대통령 임기 동안 면세점 시장은 롯데, 신라 두 재벌 기업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기 직전인 2007년만 하더라도 신라, 롯데 두 재벌 기업의 면세점 시장 점유율은 약 57%였다. 임기를 마친 지금 두 재벌 기업의 면세점 시장 점유율은 80% 이상이 됐다. 반면 면세점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했던 관광공사의 시장 점유율은 4%로 급락했다. 다른 군소 면세점 사정도 마찬가지다. 공기업 선진화 정책으로 면세 사업의 빈익빈 부익부와 독과점 현상은 깊어졌다.
| ⓒ한국관광공사노조 |
문제는 면세 사업의 공공성
면세 사업은 공익 목적상 국가가 징세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그에 따른 영업 특권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국가가 사업자에게 특혜를 준 사업이다. 관광공사는 '면세 사업으로 창출되는 수익을 공익적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1964년부터 지금까지 면세점을 운영해왔다. 총 2조 원 내외에 달하는 수익을 모두 한국 관광을 위해 재투자했다. 재벌 기업이 면세 사업 수익을 사유화한 것과는 달랐다. 이러한 공공적인 성격 때문에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면세점의 임대료는 높지 않은 대신, 관광공사는 수익을 사회에 환원했다. 면세 사업의 공공성이 유지되는 선순환 구조였다.
관광공사는 인천공항 면세점을 운영하면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이 납품하는 국산품 매출 비중을 40%대까지 유지하고, 품질이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을 판매하는 전용 매장을 개설했다. 이는 공적인 정책 달성을 우선으로 하는 공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재벌 면세점들은 주로 수익성 높은 대기업, 외국 유명기업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관광공사는 중소기업 제품 판매 비중을 40%대까지 유지하면서도 2012년에만 약 1500억 원대 매출과 양호한 수준의 영업 이익도 기록했다. 오히려 롯데와 신라, 두 재벌 면세점이 적자를 기록하는 것에 비해 공기업 면세점은 경영을 잘하고 있다. 관광공사는 면세 사업의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모범적으로 면세점을 경영했다.
문제는 면세 사업의 공공성이다. 기획재정부도 이를 무시하지 못했다. 다만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한 언론을 통해 "면세점 운영은 굳이 관광공사가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공성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면세점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재부와 인천공항공사는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 자격을 중소·중견기업으로 제한하고, 국산품 매장 50% 의무 설치 조항 등을 넣었지만 입찰에 2차례 실패했다. 기재부와 인천공항공사는 면세 사업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여론에 밀려 입찰 자격을 다시 중소·중견기업으로 제한해 3차 입찰을 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가 한 번 더 입찰하더라도 면세 사업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민간기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재벌 기업에는 부과되지 않는 불리한 입찰 조건을 적용받아 면세 사업의 공공성을 유지하면서, 높은 임대료까지 내며 재벌 기업과 힘겨운 경쟁을 벌일 중소기업은 없다. 따라서 면세 사업의 공공성을 유지하면서 면세점을 민영화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면세점 공공성을 살릴 적임자는 바로 공공 기관이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굳이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면세점을 민영화하려 하는가. 한국의 공공 부문은 관료적 통제가 강하게, 거의 완벽할 정도로 작동하고 있다. 그 속에서 관료들의 사적 이익과 자본의 유착이 생겼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재벌 기업들의 면세점 시장 점유율이 대폭 늘어난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정부는 이를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으로 포장했다.
노사·여야 모두 면세점 민영화 반대…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해야
노조만 면세점 민영화를 반대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인천공항 면세점을 재벌 기업에 넘겼을 것이다. 면세 사업의 공공성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면세점 공공성을 지키겠다'는 말도 스스로 지키지 않는 후안무치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를 시도하면서 오히려 면세 사업의 공공성이 우리 사회에 새롭게 조명됐다. 노사와 여야 의원이 한목소리로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를 반대했다. 관광공사 이참 사장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전원도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를 반대했다. 지난 2월 7일에는 관광공사 면세점에 국산품을 납품하고 있는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대표 40여 명이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인수위에 전달했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후보 시절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에 대해 '관광공사의 운영 및 철수 시 문제점을 검토하여 판단, 문제점 보완 후 존치 수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 2월 7일 인천공항 관광공사 면세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사장단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광공사 면세점 민영화에 반대했다. ⓒ한국관광공사노조 |
기재부 관료들과 인천공항공사 경영진은 인천공항 면세점 민영화 논쟁에서 노동조합이 제기한 면세 사업 공공성이라는 담론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만 정부가 정책 결정자이기 때문에 대선과 정권교체기를 틈타 일방적으로 면세점 민영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이는 이뤄지지 못했다. 면세업계 관계자마저 "중소·중견기업이 진출하기에는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기재부와 인천국제공항공사 경영진이 지금 상황에서 출구를 찾는다면, 그동안 주장했던 면세 사업의 공공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재벌 기업에 면세점을 넘기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면세점 민영화를 중단하고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면세점을 존치하면 된다. 지금 재벌 기업에 면세점을 넘기기에는 스스로 한 말들도 있고, 너무 속내가 드러나기에 못할 것이다. 인천공항공사는 높은 임대료를 받기 위해 소탐대실하지 말고, 새 정부와 전향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밝혔던 입장을 지켜야 한다. 스스로 강조한 신뢰의 정치인이라면 대통령이 되기 전과 후가 같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시작한 면세점 민영화에 대해 약속대로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 인천공항 면세점 문제는 박 대통령이 본인 말대로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평가하는 시금석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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