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뜻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모습이다. 332만 명으로 장담했던 수혜자는 10분의 1 수준인 32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규모도 18조 원에서 1조5000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도 넉 달 뒤인 7월에야 채무 재조정이 가능하다. 정부가 금융권의 거센 요구에 무릎을 꿇었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된다.
실효성 논란 일어
국민행복기금은 가계 부채 해소를 위해 만든 공약으로, 과중한 채무를 진 가계의 부담을 '일시적·한시적'으로 경감하자는 대책이다. 29일 출범하는 국민행복기금은 자산관리공사(캠코)의 신용회복기금을 전환한 기구다. 여러 금융 회사에 분산된 장기 연체 채무를 매입한 후, 채무자의 고금리 채무를 저금리로 전환하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이다. 지원 대상은 올해 2월말 현재 연체 기간 6개월 이상, 대출금 1억 원 이하며 연소득이 4000만 원 이하인 사람이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아이슬란드 정부가 시행한 대책을 본떴다.
그러나 이 대책은 공약이 제시된 직후부터 역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채무 연체가 있는 가구만 대상으로 하다 보니, 오히려 연체하지 않고 제대로 빚을 갚아나간 저소득층에게는 불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국민행복기금 확정 원안은 이와 같은 지적에 정부가 한 발 물러선 모양새로 완성됐다. 금융소비자협회는 27일 논평을 통해 확정안을 '은행행복기금'이라고 지적하고,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소비자협회는 전국은행연합회 자료를 근거로 "6개월 이상 장기 연체자는 112만4711명"이라며 "국민행복기금은 32만 명을 제외한 80만 명의 채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고 지적했다.
또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이 대부분 제외된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채무조정협약에 참여한 회사 중 대부업체는 대부금융협회에 가입한 54개로, 전체 등록대부업체 9170여 개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이번 지원 대상에서 담보 대출이 제외된 게 큰 문제라고 금융소비자협회는 지적했다. 전체 가계 부채의 40%가량은 여전히 재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인 셈이다. 현재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채권을 매입하는 시장의 약 70%는 유암코와 우리F&I가 차지하고 있다.
금융소비자협회는 "작년 한 해 동안 부실 채권 시장에서 유암코와 우리F&I의 영업 이익은 각각 1298억 원, 363억 원에 달했다"며 정부가 "은행의 부실 채권 돈벌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해주고, 이 시장을 자산관리공사에 내주지 않기 위해 담보 대출을 국민행복기금에서 제외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25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금융위원회 브리핑룸에서 '국민행복기금 주요 내용 및 추진 계획'을 발표 하고 있다. ⓒ뉴시스 |
은행행복기금?
나아가 국민행복기금의 부실 채권 매입가가 높아, 결국 은행의 수익 사업으로 전락하리라는 전망도 제시했다. 금융소비자협회에 따르면 6개월 이상 연체된 신용 대출의 매입가는 원가의 5% 정도인데, 국민행복기금의 예상 매입가율은 8~10% 수준이다.
이와 관련, 국민행복기금은 연체 채권 매입 가격 산정 방식으로 사후 정산과 확정가 매입 방식 중 하나를 금융회사들이 선택하도록 했다. 연체 채권 회수율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는 금융 회사는 국민행복기금에 연체 채권을 판 후, 향후 추가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회수하고 손해는 국민행복기금이 부담하는 사후 정산 방식을 선택한다.
확정가 매입 방식은 국민행복기금이 미리 확정가로 연체 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방식이다. 국민행복기금이 비싼 가격에 연체 채권을 매입해주면, 그만큼 은행으로서는 일반 연체 신용 대출 판매보다 많은 이익을 얻는다.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날 논평을 내 "오히려 회수된 이익금이 많으면 금융 회사에 배분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서 금융 기관의 채권 추심 업체를 하겠다고 자청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국민행복기금이 기존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자산관리공사의 바꿔드림론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아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소비자협회는 "그동안 개인워크아웃을 통해 3개월 이상 연체자에게 채무 감면과 함께 상환 기간을 10년까지 연장"해 줬으나 시행 10년간 "워크아웃을 통한 신용회복 성공률은 21%에 불과하고, 중도탈락률은 29%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소비자협회는 국민행복기금의 신청 기간이 올해 10월31일까지로 정해져 있어,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날 확률이 높다고도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개인파산, 개인회생제도를 개선해 채무 구제를 위한 법적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채무 당사자에게 채권 거래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채권 양·수도 법률을 개정하며 △최고 금리를 20%로 인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식 의원은 "채무자의 상환 능력과 신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대출과 영업을 통해 수익을 챙겨 온 은행, 신용카드사 등 금융 기관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한 제도적 개혁 방안이 빠져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밀실 행정에 의한 가계 부채 1000조 시대 1805만 명의 대출자 중 '2%'를 위한 일회성 부채 탕감 정책인 국민행복기금 추진은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진후 진보정의당 정책위의장도 "현재 채무 감면을 받은 사람 10명 중 3명이 다시 과다 채무자가 되는 이유는 최대 39%에 이르는 고금리 때문"이라며 "이자제한법 개정으로 평균 신용 대출 금리가 37.8%에 이르는 대부업까지 예외 없이 법정이자율 상한을 20% 이하로 낮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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