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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 "오바마, 진보진영의 신뢰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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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 "오바마, 진보진영의 신뢰 잃고 있다"

"오바마, 좀비처럼 설치는 레이거니즘에 수수방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폴 크루그먼 교수는 그의 역저 <미래를 말하다>에서 국민의료보험 도입을 위해서라도 민주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오바마 취임 반년만에 크루그먼 교수는 오바마에 대해 극도의 실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오바마의 정책 실패를 넘어서 그의 진정한 의지에 대한 회의감마저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의 고정칼럼란에 '오바마의 신뢰 문제(Obama's Trust Problem)', '대통령의 좀비들(All the President's Zombies)' 등의 칼럼을 잇따라 기고하며 강도 높게 오바마를 비판하고 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최근 의료보험 개혁 등 각종 현안에 애매한 태도를 보여 진보진영의 분노를 사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미국 정치판, 여전히 레이거니즘에 지배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크루그먼 교수는 '대통령의 좀비들'이라는 글에서 "미국의 정치판은 여전히 레이거니즘에 지배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레이거니즘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주창한 이념으로 "정부 개입은 항상 나쁘고, 민간 부문에 맡기는 것은 항상 좋다"는 이데올로기다.

크루그먼 교수는 "순진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레이거니즘의 실패가 현실화되면 이런 풍조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레이거니즘은 '좀비 독트린'으로 모습을 바꿨다"고 곤혹스러워했다.

크루그먼 교수가 보기에 합리적인 사회라면 레이건 시대는 벌써 종말을 맞았어야 했다.
무엇보다, 현행 위기 이전에도 이미 레이거노믹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고소득에 대한 감세와 시장의 고삐를 풀어주는 규제완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극적으로 개선된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자들은 엄청난 혜택을 받았다. 미국인 중 상위 0.01%의 실질소득은 1980~2007년 사이에 7배나 증가했다. 반면 가계소득 중간 순위의 실질소득은 이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의 3분의 1에 못미치는 2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게다가 이 기간 중 보통 미국인들의 소득 증가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이뤄진 것이다. 레이거니즘을 그대로 반복한 첫 대통령이자 공화당이 지배한 의회까지 거느렸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허버트 후버 집권 시절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전형적인 가계의 소득이 거의 늘지 않은 첫 행정부를 이끌었다.

이후 1930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도래했다. 지난 2년여의 금융 재난은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레이거니즘의 노예가 된 정치인들이 금융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을 믿고 금융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뉴딜시대에 도입한 규제를 해체했다. 그 결과 금융시스템은 1930년대 같은 위기에 취약해졌고, 결국 위기가 터진 것이다.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대통령은 지난 1937년 "우리는 무분별하게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서 "이런 경제체제는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은 이런 교훈을 또다시 배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 정치판을 보면 변하지 않아도 이렇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 있을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크루그먼 교수가 보기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국민의료보험 도입, 금융개혁 모두 좌초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의료보험 개혁을 위해 공보험도 선택할 수 있게 하려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논리는 절망스러운 수준이다. 그저 국민들이 민간보험을 선택하지 않게 되면 나쁘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의 개혁 논쟁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개혁을 위한 추진력이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반대자들은 규제강화가 금융혁신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잘난 금융혁신이라는 것 때문에 금융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몰렸고, 국민 혈세를 대거 투입해 간신히 파멸을 모면한 것이 불과 몇 개월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좀비 이데올로기 배후에는 돈이 있다

그런데 좀비 같은 이런 이데올로기들이 왜 좀처럼 죽지 않는 것일까?

일단, 그 배경에 엄청나게 많은 돈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업턴 싱클레어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조건에 자기 봉급이 달렸다면,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이해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일갈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선거 후원금을 이 봉급에 비유했다. 의료보험 개혁을 가로 막고 있는 이른바 '6인조'에 속하는 민주당 의원들(벤 넬슨, 막스 보커스 상원의원)에게 막대한 자금이 보험업체들로부터 흘러 들어갔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오바마의 태도는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크루그먼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화살을 돌렸다.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 때 레이건을 찬양했고, '정부는 악'이라는 근본주의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오바마의 태도는 아이러니하다"면서 "왜냐하면 레이건의 정책이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에서건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미국의 사고방식과 세제를 뜯어고치려고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라면서 오바마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런 태도의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기회를 잃고 있으며, 우리가 방향전환을 할 시점에서 그 역할에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앞서 크루그먼은 '오바마의 신뢰 문제'라는 칼럼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부시 행정부 정책에 대해 도전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을 주저해 진보진영에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 진보진영 내에서는 오바마를 지지했던 자신들이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번지고 있다"면서 "의료개혁을 위한 공보험 도입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한 오바마의 태도에 진보진영이 엄청나게 분노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진보진영, 오바마 행정부가 허약하다고 느끼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며, 오바마가 지지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줄 것도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현실론을 내세워 유약함을 가리려는 상황이 있다"고 회의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진보진영은 오바마 행정부가 유약하다는 실체를 점점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면서 "오바마가 달랠 수 없는 사람들을 달래려고 몇 달을 헛되이 보냈다는 느낌을 피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진보진영은 이제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면서 "오바마는 그들의 신뢰를 당연한 것으로 취급했으나 도중에 잃어버렸다. 오바마는 그들의 신뢰를 되찾아야할 처지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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