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은 특정한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다른 사회과학과 달리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그 이론은 세계적 차원의 일반이론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이론을 개발할 학자들은 세계 192국 중 한 나라의 국민이지 국경을 초월한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론은 학자의 국적배경을 떠나지 못한다. 학문의 내용이 국가안보와 같은 실천적, 정책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한 나라의 국제정치학계는 그 나라가 처한 국제정치적 환경과 그 속에서 전개되는 정책담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는 과학주의적 사회과학을 지향하면서 세계국제정치학을 압도해 온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과학적 일반이론을 지향한다는 그 자체가 다른 나라들을 객체로 인식할 수 있는 미국의 압도적인 국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 ▲ <조정기의 한미동맹: 2003~2008>(이수훈 엮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펴냄) ⓒ프레시안 |
게다가 그것은 북핵 위기의 재발, 반미시위, 이라크 전쟁 등 첨예한 현안 속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도 높았고 정치적으로도 커다란 논쟁의 대상이 됐다. 그처럼 뜨거운 논쟁의 와중에서 학자들은 그 배경과 내용을 학문적, 이론적으로 천착함으로써 논쟁의 범위와 방향을 정하는데 일조했다.
학자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당시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그 논쟁의 전면에 있었던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이 당시 학자들의 고민을 담은 논문을 함께 모아 책으로 펴냈다. <조정기의 한미동맹: 2003~2008>(이수훈 엮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펴냄)이라는 제목이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 김기정 연세대 교수, 김우상 연세대 교수 (현 주 호주 대사), 한용섭 국방대학교 교수,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등을 포괄한 필진은 현재 한국의 국제정치학계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학자들의 좋은 표본집단이다.
정책적 입장에서도 그렇다. 소위 보수와 진보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12편의 논문을 3부로 나누어 엮고 있다. 제1부는 한미동맹을 동맹이론에 비추어 분석한 논문들을, 제2부는 한미동맹과 관련된 주요 현안을 다룬 논문들을, 그리고 제3부는 노무현 정부 기간 있었던 한미동맹 조정의 경과와 내용, 그리고 평가를 담고 있다.
'갈등과 대립' '딜레마' 속의 동맹 정치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동맹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과 모순의 정치를 볼 수 있다. 공동의 적을 맞아 국력을 결집하여 적의 도발을 억제하고, 적이 도발할 경우 그를 압도적인 전력으로 격퇴하는 수단으로만 인식됐던 동맹의 이면에 정책적 자율성의 제약이라는 대가가 있다.
즉 안보라는 가치와 자주라는 가치가 상호모순의 관계에 있으며 그와 같은 현상은 동맹국 사이의 국력차이가 클 경우, 즉 비대칭적 동맹의 경우 특히 두드러진다. 동시에 한미동맹이야말로 그처럼 비대칭적 동맹의 전형이다. 따라서 일방적인 시혜관계로 인식됐던 한미동맹의 이면에는 정책적 자율성, 즉 자주의 희생이라는 대가가 있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동맹의 정치는 방기(放棄)와 연루(連累)의 딜레마 사이에 벌어진다. 동맹은 원래 '상호방위', 즉 서로 필요할 때 도와준다는 약속 위에 서 있지만, 내가 필요할 땐 도움을 받더라도 그가 필요할 땐 발을 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내가 필요할 때 상대가 동맹의무를 방기할 지도 모르는 위험은 상존한다.
그와 같은 위험을 줄이려면 공약의 강도를 높여야 하지만 그럴 경우 내가 발을 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연루의 위험이 커진다. 게다가 동맹국이 나의 도움을 확신한 나머지 무모한 외교행보를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연루의 위험은 이중으로 커진다. 연루의 위험을 줄이려고 약속의 강도를 줄이면 방기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이 둘은 긴장관계에 있고 정책결정자는 항상 두 가지 위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은 틀 속에서 한미동맹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선명해진다. 우선,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에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어선에서 제외하는 선언을 한 이후 북한의 남침을 겪었던 한국은 항상 방기의 망령에 시달렸다. 미국의 냉전적 세계전략에서 실질적인 전력으로서 도움을 주기보다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미국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더욱 그랬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국지적 분쟁이 전면적인 세계전쟁으로 비화될지 모른다는 연루의 위험에 시달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보유하여 한국군의 선제조치에 따른 전쟁을 발발을 견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한미군의 휴전선 부근에의 전진배치를 통해 북한의 남침을 억제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북한이 6‧25 한국전쟁처럼 전면침공을 감행할 경우 주한미군이 자동적으로 개입되고, 그를 통해 대규모의 추가증원을 담보한다고 하여 '인계철선'이라는 비유로 불렸다. 이는 자국을 적국의 핵선제공격에 노출시킨 채 보복의 협박을 통해 상대의 도발을 억제하는 '확실한 공멸'(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 핵억제전략에 비견될 정도로 비상하고 비장한 전략이었다.
| ▲ 용산 미군기지 이전 사업은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동맹 조정 작업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사진은 지난 2004년 8월 제11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회의 직후 당시 안광찬 국방부 정책실장(오른쪽)과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왼쪽)가 용산 기지 이전 사업 합의서에 관해 설명하는 장면. ⓒ연합뉴스 |
한미동맹 조정은 왜 시작됐나?
1980년대 말 냉전이 종식되면서 이상과 같은 전략적 전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미국의 입장에서 연루의 위험을 감수할 세계전략적 이유가 사라졌고 그에 따라 넌-워너법안을 통해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을 결정했다.
한국도 북방정책과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위협을 축소함으로써 그와 같은 변화에 대응하고자 했다. 1990년대 중반 그와 같은 변화의 흐름은 북핵문제의 돌출로 중단됐지만, 이는 한시적이고 불안한 균형에 불과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 변화의 흐름은 새로 시작됐다. 한국은 적극적인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이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으로 연결됐다. 이후 북한의 위협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반면 사상초유의 본토공격인 9.11 테러를 겪은 미국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를 새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즉, 2000년대 초반 한미동맹의 조정은 양국의 이해와 인식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 흐름이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 극적으로 표출됐다.
따지고 보면 노무현 정부 시기 한미동맹의 조정은 한미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한국으로서는 성장한 국력에 대한 자신감과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방기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그것이 민주화 이후 성장한 국민정체성과 맞물려 '안보'를 위해 희생한 '자주'를 회복하고자 하는 바람이 생긴 건 당연했다.
그것이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과 용산기지 이전 등으로 연결됐다. 미국으로서도 냉전이 종식되고 9.11 테러로 위협인식이 결정적으로 바뀐 마당에 연루의 위험을 더 이상 감수할 이유가 없어졌다.
실로 이 책의 기고자들은 노무현 정부기간 중 한미동맹의 조정이 미국측의 주도로 시작됐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첫째, 1990년대 초 제1차 이라크 전쟁으로 선을 보였던 군사기술의 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RMA)이 전략개념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둘째, 냉전의 종식과 테러공격은 위협인식에 확실한 변화를 가져왔다. 셋째, 9.11 테러의 충격은 전략과 전력의 변화에 필요한 정치적 추동력을 제공했다.
그리하여 미국은 해외주둔군대를 주둔군이 아닌 유동군으로 재편하는 군사력변환을 추진했고 그 결과는 주한미군 재배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제고, 전시작전권 전환 등을 둘러싼 한미 간 협상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동맹의 조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의 조정은 일부에서 한미동맹의 '파탄'을 우려할 정도의,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한미동맹 복원'을 언급할 정도의 논란을 초래했다. 이수훈 교수는 결론격인 마지막 논문에서 노무현 정부시절 한미동맹 조정이 동맹의 파탄과는 거리가 있고 동맹복원도 역사를 거스른다는 점에서 한미동맹 복원론을 비판하고 있다. 대체로 옳은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논란과 지금의 비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책에서 그에 대한 결정적인 대답은 제공되지 않고 있다. 다만 2002년 하반기의 반미시위, 북핵위기, 이라크전 파병과 도덕성 시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지역분쟁에의 연루 우려 등이 언급되고 있다.
아마도 우리사회의 이념적 분열이 주로 북한, 어느 정도는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남북관계 및 한미관계가 상당한 정도의 표 동원력을 지닌 한국사회의 정치적 지형 때문일 것이다.
그와 같은 정치적 지형이 존재하는 한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을 둘러싼 논란은 언제든지 재연될 소지가 있다.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한미동맹의 이념적 외형보다 정치군사적 실체에 주목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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