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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는 죽음 직전 '행동하는 양심'을 외쳤다.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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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는 죽음 직전 '행동하는 양심'을 외쳤다. 당신은?"

[기고] 'DJ의 비서관' 최경환 "민주주의자의 삶에 은퇴란 없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인 최경환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가 기고문을 보내 왔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과거 민주화운동 인사들의 '조로(早老)'현상을 비판한 최 교수는 이번 글에서도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야경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 교수는 명분과 현실을 조화시키려 했던 DJ의 리더십을 소개하며 "투쟁의 명분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성공하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칙에 따른 '차별화'만 추구하는 진보 진영 일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다.

최 교수는 이 글을 12일 저녁 열리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독서클럽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민청련은 1983년 전두환 정권 당시 결성된 청년 민주화 운동 단체다. 최 교수는 현재 김대중평화센터의 공보실장 겸 대변인, 민청련동지회장으로 있다. <편집자>


'김대중 리더십' - 민주주의자의 삶

민주화 운동의 성취

지난 70~80년대 민주화 운동 참여자들은 김대중 대통령 말대로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를 실천한 사람들이다. '서생적 문제인식'에 투철하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당당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다. 역사의 보상을 명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성취해낸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앞장서고 국민들이 함께 참여한 민주화 투쟁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3개의 독재정권을 물러나게 했다. 4.19민주혁명, 70년대 반유신투쟁, 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과 반군부독재투쟁, 87년 민주대항쟁, 97년 여야간 정권교체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유래가 없는 40년간에 걸친 시민혁명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운동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우리나라는 보수 정치인, 족벌언론, 재벌, 기능 지식인, 군부가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보수 유착사회가 강고하게 뿌리내렸을지도 모른다. 동남아 국가에서 보듯이 정치 후진국, 경제 후진국으로 전락하거나, 설령 경제발전을 이룩했다해도 싱가포르, 일본, 대만처럼 정치 후진국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둘째,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등장한 지난 10년의 민주정부(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자율과 책임의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관과 민간, 세대갈등과 같은 사회적 충돌도 완화되었다. 지금의 동사무소, 정부 민원창구는 국민의 봉사기관, 서비스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치행태만큼이나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세대간 관계도 동등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로 그 방향이 바뀌었다. 학교와 가정은 물론 심지어 병영, 교도소 등에서도 변화가 이루어졌다.

셋째, 민주화 운동은 시민사회를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과거 민주정부로의 이행기간에는 소수 명망가나 단체들이 시민사회를 대표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단체들이 만들어지고 시민사회운동 영역도 지역과 부문으로 확대됐다. 정치, 사회, 환경, 통일 등 거대 담론뿐 아니라 먹거리, 주거환경, 교통 등 주거와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자신들의 요구와 수준에 맞는 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다. 민주국가의 거버넌스의 기초인 정부, 시장, 시민사회의 3대축이 형성된 시기가 바로 민주정부 10년이며, 그 기초는 민주화 운동에 있다.

넷째, 민주화 운동 유전자는 '촛불세대' 등 후세에게 전해지고 있다.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을 가진 시민들은 과거처럼 길들여지고 순응하는 시민으로 되돌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율, 창의, 자유의지와 같은 민주적 가치를 체득한 시민들은 정치사회적 이슈와 계기를 쫓아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2000년 낙천 낙선운동,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와 '효순 미선양 사건' 촛불시위,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 2008년 광우병 수입소 반대 촛불시위 등에서 보듯이 대중적 국민운동으로 발전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지금 우리 사회의 발전은 민주화 운동이 성취한 역사와 경험과 밀접히 연관돼 있으며, 이 경험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과 진보성을 지켜내고 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 기간이었던 지난해 8월 22일 필자인 최경환 비서관이 김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남긴 서신 사본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찰

민주화 운동이 이룩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자신의 인생을 명예로운 삶, 성공한 인생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못하다. 가치 있게 살아온 점에서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성공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 인사들은 자신이 이룩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하다.

더욱이 민주화 운동은 그 운동이 성취한 역사 속에서 진보 진지의 구축에 실패하고 있다. 수만명이 감옥에 가고, 또 두 번의 민주정부를 세워 민주주의 가치를 실천했지만 민주개혁진영은 여전히 소수파고, 비주류이다. 최근에 와서는 '친북좌파'니 하는 '뉴라이트류'의 저급한 공세에도 맥을 못춘다. 조롱을 받으면서도 무감각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명박 정권은 지난 2년간 보수우익 진지를 착실히 구축했다. 물리력을 앞세운 강압통제, 부자 편향과 개발독재시대의 경제사회정책, 보수일색의 언론환경을 재편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것은 한 정권의 통치방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 한국사회의 성격을 강제하는 시스템으로 안착될 정도로 그 강도가 세고 깊다. 매우 위험할 정도이다.

반면에 민주개혁진영은 정치, 경제, 복지, 사회 모든 영역에서 담론의 생산과 유통에 실패하고 있다. 성공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민주주의를 체득하고 창의와 개성에 넘쳐나는 세대들이 있고, 인터넷 등 커뮤니케이션 수단까지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주의 성향, 신자유주의 환경이 개혁과 진보 가치의 담론 생산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주장은 '대중'과 '상황'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은 '대중의 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리더십의 위기'가 문제다.

'김대중 리더십'

우리 현대사는 해방, 전쟁, 분단, 독재, 민주화 투쟁의 역사였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양극화, 평화정착과 통일,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세우는 문제 등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미래의 모습을 그려볼 때 김대중이 추구해온 정신과 가치는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유용하다.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를 정치의 기본으로 삼아 실천했고, '햇볕정책'으로 60년 한반도 분단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치', '중도주의와 통합의 정치', '화해와 관용의 정치'를 실천했다. 역사와 국민의 맨 앞에 서서 길을 열었다.

'김대중 테제'는 수십년은 지속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남북이 '사실상의 통일단계'로 들어서고, '동아시아 평화구상'이 실현되고, 우리가 세계시민으로 우뚝 설 때까지는 '김대중 테제'는 유효할 것이다.

첫째, 김대중에게서 배울 점은 정치적 창의성, 정책적 창의성이다. 정치적 창의성은 70년대의 '40대 기수론', '망명투쟁', 'DJP연합'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정책적 창의성은 '대중경제론', '4대국 평화보장론', '햇볕정책', '외환위기 극복', '생산적 복지', 'IT정책'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김대중은 시대와 세계의 변화와 조류를 인식하고 정치와 정책을 대중의 요구에 맞게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김대중은 정치를 하면서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국회나 장외의 연설, 말과 글, 정책을 통해 대중의 관심과 공감을 얻었다. 항상 새롭고 변화된 모습으로 대중을 만났다.

둘째, 김대중은 국민과 역사를 믿는 원칙과 철학의 정치인이었지만, 동시에 현실주의적 리더십을 추구했다. 명분론을 비판하고 현실을 중시했다. 김대중은 '지사형' 리더십과는 다르다. 항상 최선의 방도를 찾고자 했지만 차선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실사구시', '상인적 현실감각'의 리더십을 추구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대중은 정치와 정권을 자신의 철학과 이념을 실현할 현실적 수단으로 생각했다. 정치와 정권의 문제를 논외로 놓지 않았다. 이에 비해 진보진영 인사들은 원리원칙과 명분이 강하다.

셋째, 김대중은 또한 현실에서 성공하는 인생을 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하면서 성공하는 인생을 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거나 말한 적이 있는가? 감옥, 고문, 구타, 거리투쟁, 유인물 배포, 조직 활동, 학습과 토론 속에서 희생과 헌신만을 이심전심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하면 큰 정치인, 시민운동가, 훌륭한 문필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서로 할 수 있었다면 운동은 더욱 풍부해지고 폭은 넓어졌을 것이다. 투쟁의 명분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성공하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민주화 이후의 리더십에는 더욱 이 점이 필요하다.

넷째, 무당파주의, 관조적 태도는 김대중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 민주화 운동 인사 상당수는 여러 언설과 주장과 달리 무당파적이고 관조적 태도를 취한다. 그 진보성만큼이나 낭만적이다. 정치 문제에서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보수 정치인일 뿐이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반대진영(보수진영)의 비난을 감수하며 싸우는, 집요한 권력욕 역시 부족하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사회의 진보와 개혁은 정당의 선택, 즉 투표행위에서 출발한다. 모두가 정당운동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충실하게 사는 행동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행동하는 양심'은 참여와 실천의 리더십을 말한다.

다섯째, 민주주의자로 사는 리더십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는 싸워서 얻은 것만큼 도둑맞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야경꾼이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는 지적하고 싶은 점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은 조로(早老) 현상이 강하다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혹은 '내 나이에 무슨 일을 더...'하는 태도를 많이 보인다. 이것은 반대로 자신이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자기고백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은 죽음 직전까지 민주주의 위기를 호소하고, '행동하는 양심'을 외쳤다. 김대중은 투철한 민주주의자로 살았다. 민주주의자의 삶에는 은퇴란 없다.

우리는 간혹 미래를 이야기하자며 과거 인물들은 이제 덮고 가자는 주장을 듣는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일면은 맞고 일면은 틀리다. 오욕과 비극의 역사는 땅에 묻는 게 좋다. 그러나 자랑스럽고 성취의 역사마저 묻는 행위는 자신의 눈을 가리고 손과 발을 자르는 자해행위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주장의 이면에는 정치적 이해득실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차별화라는 방법이 동원된다. 김대중의 경우 보수진영에서 생전에도 호시탐탐 노려왔던 방식이고 사후에도 진행되고 있다. 또한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차별화 전략은 정파나 특정세력을 모으기 위한 선동은 되었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는 차별화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되새김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김대중의 도전과 성취를 당대의 역사와 국민들의 아픔과 소망을 섞어 영웅의 역사로 만들 필요가 있다.

영웅 만들기는 비단 정치인 김대중에 국한될 일이 아니다. 정치, 종교, 과학, 교육, 경제, 스포츠 등에서 우리는 영웅이 너무 부족하다. 우리 풍토에서 마을마다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을 짓는 유럽의 풍경을 기대하는 것은 호사가 될 일이다. 하지만, 후대에 귀감이 되고 따르는 수많은 영웅들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인간의 삶과 역사를 부단히 되새겨보는 '되새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좋은 역사는 '회상'과 '기억'을 통해 발전한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입관식이 있던 날 비서실은 대통령께 마지막 보고를 올렸다. 필자인 최경환 공보비서관(왼쪽에서 두 번째)이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보고를 받아적고 있다. ⓒ김대중평화센터

과제

지난 70~80년대에 민주화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인사들이 수십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당대 역사의 주인공이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건강한 의식의 소유자이다. 우리처럼 민주주의 역사의 성공 경험을 가진 세력을 집단적으로 가진 나라도 없다.

아파트에 야당 당원, 시민운동가 한 사람이 사는 것으로 그 아파트 분위기는 달라진다. 학교운영위원회에 바른 말 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그 학교는 달라진다. '남산골 샌님'은 지역사회에 불편한 사람이면서도 옳은 말하는 사람으로 공동체 성원들에게 규율과 규범을 다시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옛날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산으로 들어가 해방투쟁을 벌일 때 밤마다 시간이 되면 하늘에 대고 총을 쏘았다고 한다. 산 아래 마을 레지스탕스에 자식을 보낸 가족들은 그 총소리를 듣고 '아직도 살아있구나'하며 안도하며 잠이 들었고, 토벌에 나선 독일 나찌 군대들은 '아직도 죽지 않았구나'하며 불안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 설령 작더라도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가 과거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싸웠는지를 말해주어야 한다. 또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추구할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가치와 방향을 말해주어야 한다.

지금은 보수진영에 맞설 대안세력의 존망이 걸린 시기이다. 민주화 운동에서 경험했듯이 운동은 양이 축적되는 가운데 질적 변화와 도약이 이루어진다. 시대의 담론을 열어가고, 참여와 실천이 쌓이고, 그 속에서 소통과 공감을 넓혀가는 가운데 변화는 찾아온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기관지 <민주화의 길> 창간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거대한 암벽을 기어오르는 자가 결코 추락의 공포에 떠는 일 없이 작은 바위 틈서리 하나 놓치지 않고 디디고 오르듯이 민주화 운동에 나선 우리는 아무리 작아 보이는 계기라 할지라도 적극적인 자세로 운동 발전의 디딤돌로 삼아야 합니다." (1984.3.25)

70~80년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자신의 민주화 투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민주주의자로서 자신의 삶을 생각한다면 '바위 틈서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사회발전의 '디딤돌'이 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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