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마음 길 잇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마음 길 잇기

[화제의 책] 최창남의 <백두대간 하늘길에 서다>

서평이라면 아무래도 그 책 내용을 깊숙이 잘 알아서 몇 마디라도 보태거나, 아님 적어도 그 속내에 얘기 건넬만한 깜냥이 되는 사람이 쓰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나는 정말 아니다. 산을 잘 알지도 못하는 데다, 백두대간 들머리 노고단과 나들목 설악에 이르기까지 드문드문, 그것도 바퀴에 실려 콧바람이나 쐬 본 적 밖에 없는 푼수니 말이다. 또 타고난 서울내기에다 황량한 도시에서만 자라고 살아와 들풀이나 산꽃 이름 하나 제대로 맞춰대지 못하는 터수다. 게다가 오랜 동안 제 땅을 떠나 낯선 곳에서 남들이 먹다버린 지식의 찬밥 덩이나 구걸하고 다닌 탓인지 민족이니 전통이니 하는 큰 소리엔 아예 먹먹하다.

이처럼 아무리 안팎을 털고 뒤져도 궁핍하고 옹색한 꼴 무릅쓰고 서평을 쓰겠다고 나선 것은 그만한 사정이 있어서다. 글쓴이가 간절하게도 아니고 심드렁하게 부탁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마고 한 것은 오로지 내 옛 벗, 그것도 산천이 여러 번 변하게 시리 긴 세월 지나 다시 만난 벗을 기려서다. 그와 나는 열 서너 살 때 서울 언저리 중학교를 같이 다니며 한동안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다. 늘 얼어붙어 춥기만 한 그 시절, 지지리도 아프고 없는 사람들 모인 동네 살면서 영혼의 팍팍한 보리 고개를 함께 견뎠다. 학교까지 황토 먼지 날리는 언덕을 넘어 걸어 오가는 꽤 긴 시간을 우리는 늘 함께 하며 많은 얘기를 했다. 그는 참으로 착하고 여리고 고운 소년이었다. 예쁜 음악, 시, 꽃을 좋아했다. 내게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누구에게도 험한 말은커녕 목소리조차 높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뒤로도 자주는 아니어도 드물지 않게 어울리며 스무 살 남짓까지 가까이 지냈다. 그리곤 예감도 없이 헤어졌다. 하도 어지럽고 시끄러운 세월을 보낸 탓일까?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잊고 지냈다.

▲ <백두대간 하늘길에 서다>(최창남 지음, 애플북스 펴냄). ⓒ프레시안

삼 년 전쯤 문득 묵직한 메일이 날아들었다. 지난 마흔 해 가까운 삶을 몇 줄에 가늠하며, 어제 동네 골목길에서 헤어진 듯 그가 날 찾아내 불쑥 인사를 건넨 것이다. 며칠 뒤 만나 서리가 하얗게 내린 머리며, 세월의 더께 앉은 주름진 얼굴을 마주 보며 마치 시간여행 속에서 거울 보듯 깔깔댔다. 하지만 타고난 '선택적 친화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험한 시절 살면서 갖춘 '시대정신의 공유'라고 해야 하나... 대번 따로 또 같이, 어슷비슷하게 살아 온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그가 억압과 굴종에 맞서, 소외와 배타에 온 몸과 마음, 아니 온 존재로 마주해 온 '낟알'이라면 나는 그저 생각과 공부로 언저리나 떠돌아 온 '쭉정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불현듯 찾아온 벗은 먼 나라로 마실 다녀 온다 소식 한 점 던지고 훌쩍 떠나더니 거듭 감감무소식이었다. 한참 지나 나타난 그는 모처럼 어울린 긴 술자리에서도 산행 이야기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그러더니 두어 주 전 인편에 이 무겁고 가득해, 까마득하기만 한 책을 내게 던지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 댓바람에 서평을 쓰라고 주문을 넣었다. 그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서평을 하릴없이 쓰게 된 것이다.

▲ 숲으로 들어서다. ©이호상

나는 숨을 고르고 이 제법 무겁고, 아득한 책을 따라 백두대간에 들어섰다. 그가 그랬듯이 별 채비 없이 그저 뜻만 앞세우고 몸조차 단정하게, 매무새 가다듬지 않고 말이다. 처음 몇 줄부터 숨이 턱 막혔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 인식체계"며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산지 인식체계"라는 데서부터 그렇다. 스스로 말대로 처음에는 '낯섦, 두려움', 그리고 '설렘, 부끄러움'이 오갔으리라... 산맥이라는 교과서에 나온 일제 잔재에 따른 지리적 이해에서 잃어버린 전통과 더불어 자연과 생명을 되찾고자 나선 길이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면서 그는 마치 '잃어버린 어머니 품'에 들듯이 "마음 길 따라 걸으면 백두대간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이 책을 꿰뚫는 화두를 던진다. 그렇게 그는 백두대간 남쪽 구간, 도상거리로는 690킬로미터, 실제거리로는 1,000킬로미터를 걷는다.

지리산으로 들어선 백두대간 산행 길은 첫날부터 만만치 않다. 숲과 산의 지혜, 곧 공존과 상생을 떠올리던 그는 한편 아름다운 생명의 숲에서 벌어진 근대사의 비극, 곧 숱한 죽음의 아이러니에 전율하면서 서투르고 낯선 걷기에 이내 지치고 힘겹다. 다른 한편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고달파 잠들지 못한 첫 밤을 지내고 며칠을 고생하며 차츰 그 특유의 생각과 느낌들을 펼쳐낸다. 먼저 서로 기대고,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숲과 나무의 공존에 대해 곰곰 생각하고, 안개 피어올라 하나가 된 산 속의 숱한 꽃들이며 풀들을 느껴낸다. 그러다간 역사의 흔적이라든가, 사람들 삶의 자취와 같은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되새긴다. 백두대간이 분단으로 남북으로 허리 잘린 것만 해도 원통한 데, 서투른 개발과 서두른 성장의 대가로 여기 저기 또 끊어진 데 분노한다.

어느 날 산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보다가 그 별에 대해 무지한 자신에 화를 내다가 그만 지난날에 대한 회한에 빠지기도 한다. "왜 그때 사랑을 택하지 못했는지... 왜 그 때 그토록 분노하고 좌절했었는지... 왜 그 때 그처럼 어리석게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했었는지... 왜 그때 신념이나 상식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길을 따라가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는지..." 아무려나 봄날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백두대간을 따라 걸으며 그는 주로 아픔과 뉘우침과 깨우침의 길을 걷는다. 비 내리는 숲을 걷다가 생명의 신비에 경탄하다가도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아픔이"일어 "저미듯 아파왔다"가 "그리고 그리"웠다가 하며 마음으로 고통 받는다. 산행에는 익숙해지고 여기 저기 아픈 몸도 나아지건만 마음은 편하기는커녕 무겁고 버겁기만 하다.

이윽고 산행 중 어느 여름날, 덕유산 자락에서 그는 다시 묻는다. "나는 왜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일까? 왜 이 산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라고. 그러다간 거듭 스스로 답하고 또 묻는다. 이 땅의 등줄기라서? 민족의 유산이라서? 아름다운 강산의 자랑이어서? 선조들부터 사람들의 마음, 생각을 알고 싶고 전하고 싶어서? 조령 하늘재 넘으면서 그 의심과 회의는 극에 달한다. "이렇게 산행을 이어가도 되는걸까"하는 근본적인 물음마저 던진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산은 걸은 만큼 다가온다"는 사실을. 결국 그는 그 제사 고통의 끝, 아니 익숙해진 고통과 함께 걷는 일을 되찾은 데 고마움을 느끼고 즐거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거듭 걸음에 대한 생각을 펼친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걷는다는 것은 몸으로 모든 존재를 만나고 느끼는 것이다... 걷는 일은 몸만 살리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살린다. 마음 열고 걸으면 모든 존재의 미세한 떨림까지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걷는 일은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마음을 살리는 일이다."

그 회복은 기다림인 것 또한 깨닫는다. 곧 "몸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잃어버린 삶이 회복되기를, 사랑이 회복되기를.. 결국 영혼의 치유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쓴다. "나는 산을 걷는 내내 기다렸다. 산은 내가 산을 걷는 내내 기다림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산길 지나며 기다림을 배우는 동안 가까운 길 가더라도 먼 길 돌아가게 되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아이들도 아는 아주 간단한 삶의 지혜를 깨닫는 데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말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제 삶의 의미를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런 걷기에 대한 생각은 이내 '내 삶은 과연 조화로웠을까', 하는 성찰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느리게 걸으며 빠름과 정처 없이 떠돌아 온 삶의 부조화를 깨닫고 뉘우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사람과 삶, 그리고 길과 하늘에 대한 생각을 가뭇없이 펼쳐낸다. 특히 산마다 드리운 사람의 자취, 또 종교(특히 불교)의 흔적에 두루 마음이 머물고 손길이 간다. 사람들은 "나뭇입 한 장이 숲을 이루듯이 한 사람 한 사람 세상을 이루며 살았으리라"는 깨달음부터 그렇다. 마침내 백두대간 길에 나름대로 뜻을 매겨 나간다. "백두대간은 사람 지나며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하늘이 만들어 놓은 하늘길.. 물줄기 그 길을 따라 나뉘고 산과 숲이 일어나는 생명길... 사람이 낸 길이 아니다"라거나, 또는 "백두대간은 하늘길... 백두대간은 하늘이 만들어준 길인 동시에 사람들 마음이 품어낸 하늘길...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흐르는 하늘길... 백두대간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며 소통의 장소였다"라고 말이다.

▲ 낙엽 수북한 산길. ©이호상

여름날 3주쯤 쉬고 나서 다시 시작한 산행은 또 다른 차원의 길이다. 이제 정직한 산에서 겸허를 배우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특히 소백산 자락에서 도솔촌이며 연화봉이며 비로봉으로 주로 불교와 관련된 산줄기와 마루금을 지나며, 태백산 자락 천제단을 오르며 그는 많은 깨우침과 깨달음을 얻는다. 거듭 "이 길 따라가면 내 삶 다시 만날 수 있을까"싶어 옛적 즐겨부르던 '어디로 갈까나' 타령을 하다간, "산길은 마음으로 지나야 하듯이 산을 지키는 것 또한 마음으로 지켜야만 하는 것" 같은 깨우침을 얻는 것이 그렇다. 그러면서 지나온 산길들이, "산들이 살가워지고... 지나온 길 마음에 품고..." 하다간 거듭 대간에 대한 마음을 열어 보인다. 이제 비로소 산의 아름다움이 오롯이 와 닿는다. "어떻게 자연은 스스로 저토록 아름다운 것을 품을 수 있을까? 저 아름다움의 비결은 무엇일까? 자연스러움일까?" 또 자연과 문명의 본질적인 다름도 깨닫는다. "확실히 자연이란 가까이 보면 볼수록 아름답지만 문명이란 떨어져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문명이란 신기루인가보다"며 말이다. 또 생명의 신비는 어떤가? "살아 있으나 속이 텅 비어있는 나무 안에서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생명이란 저렇게 자유로운 것이다. 생명의 경이로움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했다."

단풍 물든 가을 산 설악을 넘어 진부에서 산행은 마무리된다. 비교적 한가롭게, 조화로운 산과 하나 되어 걷던 그는 이내 끊어진 대간에 그리고 허리 부러진 대간에 막혀 멈추며 거듭 좌절하고 분노한다. 금강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진부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부터 그렇다. 그는 쓴다. "나는 마음 허전하고 쓸쓸했다. 길은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진부령에 머물러 있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흐르며 이 땅 품어 수많은 생명이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 준 백두대간 하늘 길은 그대로 이어져 있건만 길은 더 이상 이어져 있지 않았다. '머무는 것은 떠나기 위함이니 이 길 흐를 날 있으리라. 흐르고 흘러 산줄기 시작된 백두산에 이를 날 있으리라'. 언젠가는 길이 이어지기를 기도했다. 언젠가는 이 길 이어져 이 길 따라 백두산에 이를 수 있기를 소망했다. 생명의 땅 백두대간이 끊어진 남과 북을 다시 이어줄 수 있기를 소망했다. 무너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기를 소망했다."

그렇담 그가 쓴 이 글은 어떤 울림과 뜻이 있을까? 먼저 그는 산길에서 많은 것들을 찾고, 바라보고, 더듬고 매만지다간 되짚고, 되살린다. 그의 눈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보인다. 나로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풀, 꽃, 나무... 산줄기 뿐 아니라 물줄기의 샘 그리고 그 숱한 갈래들... 그는 산을 다니며 사람을, 삶을, 생명을 더듬고 매만진다. 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제와 사랑을 되짚고 보살핀다. 그러다간 민족의 시름, 종교적인 깨달음까지 되짚고 되살린다. 무엇보다도 작은 생명 하나, 풀뿌리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여투는 그의 붓끝이 놀랍다. 내가 알기에 서울 언저리서만 자라고 살아온 그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풀들과 꽃들 이름을 알고 아껴주는지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설앵초, 개망초, 참으아리꽃, 기린초...넓은 잎잔꽃풀, 양지꽃, 바위구절초, 투구꽃, 어수리..." 그가 어쩌면 그렇게 세심하다 못해 소심하게 그 생명들과 같이 숨 쉬고 아파하는지 머리털이 일어설 정도다. 게다가 그가 어떻게 그 부실한 몸으로 온 고통과 벗 삼아 그 고행을 이겨냈는지 그저 눈이 크게 떠질 뿐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그토록 분노하는 문명의 만행에 따라 진저리가 쳐진다.

하지만 나를 가장 가볍게, 아니 그러면서도 가장 깊숙이 뒤흔든 것은 그의 소박하고도 간결한, 그러나 적확한 표현과 서술이다. 이를테면 "별 가득한 밤이었다... 지나온 산길이 마음에 가득한 밤이었다.... 그저 모든 것이 그립기만 한 밤이었다"부터 "하늘 눈부시도록 푸르른 날.. 그리움 사무쳐 그리움 잊은 날... 별빛 자비로운 밤... 마음 스러진 밤..."이라든가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사무치게 아름다웠다... 눈물 나도록 아름다웠다"까지 말이다. 이런 데서 나는 자주 읽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곤 했다. 또 그가 길동무들에게 멋진 한글 이름을 붙여주는 장면이 귀가에 아슬하게 남는다. 맑은 물, 너머 숲, 빈 산, 먼저 눕는 풀... 그러면서 비로소 제 스스로 지은 한글이름이 마음길이란다. 그래, 그렇다! 그대는 마음 길을 품고 마음 길을 걸었구나!

나는 바란다. 그가 터놓은 산길, 사람길이 이윽고 남북을 잇고, 남녀를 아우르고, 인종을 품고, 자연과 하나 되어 삶을 삶답게 살림으로 살려내는 마음 길, 나눔 길이 되기를... 어느 때쯤 나도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더라도 마음을 돋구어 마음 길이라 불리는 벗을 따라 그 길에 나서보리라.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