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시민들은 경찰서 앞으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였으나 이 과정에서 화염병이 등장하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토트넘을 휩쓴 폭동은 런던 전역을 넘어 잉글랜드 중북부의 도시들까지 번졌다.
곳곳에서 방화와 약탈 등 무법행위가 자행돼 서구 문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영국을 무질서와 혼란에 빠트린 이번 폭동의 배경으로는 양극화와 청년실업, 정부 재정 감축으로 인한 공공 서비스의 축소에 대한 불만 등이 제기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그런 '구조적'인 분석만 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폭동에 정치적 의미가 있다 해도 그것은 사후적인 해석일 뿐이며 폭력과 약탈에 직접 가담하는 청년들에게서는 어떤 형식적인 논리나 스스로의 정당성에 대한 주장조차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유 없는 반항으로 거리에 나간 청년들도 많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런던 폭동은 '68혁명'과는 대별된다.
런던 서쪽의 일링 지역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영화학교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함창우 씨는 8~9일 현장에서 이번 폭동을 지켜본 생생한 기록을 <프레시안>에 보내 왔다. 함 씨가 영국인 동료들과 현장을 찾아 수집한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의 사진이다. <편집자>
▲ 폭동으로 인해 불타고 있는 차량에 진화 작업을 펼치고 있는 소방관. ⓒ프레시안(올리버 쿠스버츤. Oliver Cuthbertson) |
#1.
"10대 폭도들이 우리 상점을 약탈하기 시작해서 바로 경찰에게 연락했죠. 경찰들이 곧 온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지금까지 오지 않았어요. 결국 모든걸 잃었습니다."
런던에서 자영업을 하는 애니타 파텔 씨의 말이다. 피해액을 묻자 "30만 파운드"(약 6억 원)이라며 "그런데 보험 보상은 5만 파운드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숨지었다.
"도대체 경찰들은 뭘 하고 있었고, 이 10대 폭도들의 부모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요? 그들은 고등학생들이었는데요."
▲ 내부가 완전히 불에 탄 수퍼마켓. 영국에서 이 글을 보내 온 함창우 씨는 종종 이 가게에서 산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프레시안(새뮤얼 찰튼. Samuel Charlton) |
#2.
런던 서쪽의 일링(Ealing) 지역에서 폭동에 가담한 한 젊은이에게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잘 알아듣기 힘든 속어(슬랭)을 남발하던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재미있잖아요."
순간 좌절감이 밀려왔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 터전을 약탈하고 불태우는 이유치고는 너무 뻔뻔하고 태연했다.
▲ 런던 서부 일링 대로변의 모습. 이번 폭동으로 인한 피해가 막심했던 지역이다. ⓒ프레시안(올리버 쿠스버츤) |
2011년 런던 폭동
지난 4일 런던 북동부 토트넘에서 경찰에 의해 총격 사살된 마크 더건의 추모 시위로부터 촉발된 '2011 런던 폭동'은 아직 진압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9일 오전 11시 성명을 통해 "약탈에 가담한 자들은 가장 단호한 조치로 처벌받을 것"이라며 "만약 당신이(폭동 가담자들을 지목해) 범죄를 저지를 만큼 충분히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해 범죄에 가담했다면 그건 처벌을 받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캐머런 총리는 또 "CCTV와 모든 경찰력을 동원해 약탈과 방화에 가담한 자들을 체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국가 비상사태를 공식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군 병력을 투입하는 옵션은 아직 배제하고 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군이 대기중이라고 영국 내 한 소식통은 전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엄포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폭동은 진정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지역에서는 오히려 10대 청소년들의 폭동이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 파괴된 공중전화 부스 ⓒ프레시안(올리버 쿠스버츤) |
정부의 경찰예산 삭감으로 인해 규모가 작아진 런던경찰청은 인력부족으로 인해 진압작전에 어려움을 겪고있다.
경찰은 평시의 10배가 넘는 인력을 동원해 가담자 색출과 진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점조직 형태이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락을 취하고 있는 10대들은 경찰을 비웃듯 소규모 약탈을 자행하고 있다.
런던 시내엔 이미 1만6000명의 경찰 인력들이 순찰을 돌고 있으며 상점과 주점은 일치감치 개점휴업에 들어간 상태다. 아직 공격받지 않은 지역의 번화가는 경찰에 의해 출입이 통제됐다. 사실상 런던 시내 전체가 개점휴업에 들어간 셈이다.
부분적으로는 지역 시민들에 의한 복구작업이 시작됐지만 아직 긴장과 공포가 거리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 길을 통제하며 경계근무 중인 경찰관 ⓒ프레시안(올리버 쿠츠버슨) |
"어떻게 대도시 런던에 이런 혼돈이?"
이번 사태는 더건의 사망에 항의하는 평화적 시위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과 복지 예산 삭감으로 인한 정부에 대한 분노가 결국 시위를 폭력사태로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혼돈의 근원이 과연 실업률과 복지예산일까?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폭동 가담자들이 정부의 예산 감축과 실업률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10대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학교에 가지 않고 방황하며 평소에 조직적으로 마약 등 반사회적 범죄를 일삼는 '아이'들, 마약과 성범죄에 대한 가사가 주를 이루는 '갱스터 랩'과 폭력적인 전자오락 게임에 취한 영국 10대들이 이번 폭동 참가자들의 태반이었다.
실업과 복지 예산 감축에 대한 빈민층의 분노와 좌절로 설명되기에는 그들이 자행한 범죄는 너무 잔인했다. 만약 그들이 정당한 이유로 정부의 정책에 반대했다면 그들 자신들이 사는 동네를 약탈하고 방화하며 불타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폭동에 가담한 몇몇 10대들은 SNS에 자신들이 자행한 약탈에 대한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은 이들이 자신의 나라와 동네를 사랑하지 않는 약탈자에 불과하다는 증거다. 길 스콧-헤론의 노래 제목처럼, TV에 방영된 광경은 '혁명'이 아니었다. 어리석은 범죄극일 뿐이었다.
또한 최근 영국의 중앙 및 지방 정부는 비행 청소년들을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와 사회로 복귀시키는 지역단체에 대한 예산을 삭감시켰다. 날로 급증하는 범죄율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단지 '허리띠를 졸라매자'면서 복지·경찰·병원 예산을 줄인 것이다. 결국 당국은 이번 폭동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 폭동 가담자로 알려진 한 영국 10대의 트위터 계정. 약탈의 전과가 자랑스럽게 떠벌려져 있다. |
'뒷수습' 나선 시민들
시민들은 거리를 치우기 위해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런던 서부의 일링과 남부 브릭스톤 등지에서 이들은 "청소하자!"(We Want to Clean)는 구호를 외치며 국적도 인종도 직업도 묻지 않고 복구 작업에 힘을 쏟았다.
시민들은 피해로 생활 터전을 잃은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길거리에서 다같이 노래를 합창했다. 청소가 시작된지 불과 2시간 만에 이들은 거리의 쓰레기 더미 80% 가량을 모두 치워버렸다.
그러나 집권 연정 소속인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보수당)과 닉 클레그 부총리(자유민주당)가 피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이들은 일제히 야유로 화답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경찰의 늑장 대응과 정부의 경찰 예산 삭감에 대한 비난과 항의의 차원이었다.
이들은 현장을 찾은지 1시간도 채 안돼 시민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하는 '립서비스'만을 남긴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 런던에서 복구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영국인답게 '티 브레이크'(Tea Break)를 가지고 있는 소방관들의 모습 ⓒ프레시안(새뮤얼 찰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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