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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늘 배반당해도 믿을 건 국민밖에 없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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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DJ, 늘 배반당해도 믿을 건 국민밖에 없었던 사람"

[인터뷰] 김대중 평전 쓰는 김택근 전 <경향> 논설위원

사전을 찾아보면 자서전은 "작자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스스로 짓거나, 남에게 구술하여 쓰게 한 전기", 평전은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다. 둘을 가르는 것은 '평가'의 유무. 자서전 역시 단순히 사실의 나열이라 하긴 어렵지만, 해당 인물의 삶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한 판단은 고스란히 평전을 쓰는 작가에게 맡겨진다.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한 정치가, 그것도 산맥같이 거대한 사람의 자서전에 이어 평전의 작가로 나선 사람이 있다. 지난해 <김대중 자서전>(삼인 펴냄)을 쓴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이다. 지난해 봄,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자서전은 아주 조심조심했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못한 것들이 있다"고 고백한 만큼, 평전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갈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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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자서전>(보급판 1권, 삼인 펴냄). ⓒ삼인
한국에서 전기 문화는 매우 미약하다. 미국에서는 링컨 전 대통령 사후 무려 180여 권에 이르는 링컨 평전이 쏟아졌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아무리 걸출한 인물의 평전이라 하더라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은 환경에선 나은 질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여기서 평전의 질을 담보하는 것은 당사자의 생애에 대한 광범위한 '사실' 위에 자신만의 관점을 섞어 넣을 수 있는 작가다. 우리는 그런 작가를 가졌는가?


<김대중 자서전>으로 누구보다 인간 김대중의 일생을 치열하게 들여다보았을 김택근은 우리도 그런 작가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김대중의 삶만큼, 작가 김택근이 어떤 관점으로 그것을 얘기할 지가 궁금해진다. 오는 9월 1일부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프레시안>을 통해 이뤄질 '김대중 평전'의 공개를 앞두고 11일 <프레시안> 편집국 회의실에서 김택근을 만났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프레시안(손문상)

"평전에선 '맨살 김대중'을 보일 것"

프레시안 : <김대중 자서전>에 이어 평전을 집필한다. 일단 어떻게 해서 그의 전기 작가가 된 건지 궁금하다. 생전에 김대중 대통령과 사적인 인연이 있었던 건가.

김택근 : 아니다. 사적으론 전혀 그분을 몰랐다. 전기 작가로 발탁된 정확한 경위는 모르겠지만 2004년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인 김한정, 최경환 비서관이 나를 찾아왔다. 대통령 퇴임 후 동교동엔 적막감이 도는 가운데, 총선에선 민주당이 참패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진행하는 등 그분에겐 가슴 아픈 시절이었다. 그런데 비서관을 보내 내게 자서전의 집필을 제안한 것이다. 당연히 깜짝 놀랐고, 너무 엄청난 일이라 생각해 처음에는 고사했다. 하지만 이후에 김 전 대통령을 실제로 뵙고, 쓸 결심을 하게 됐다.

프레시안 : 왜 발탁되었는지에 대해 나중에라도 들은 말은 없는가.

김택근 : 없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의 일기에서 "김택근은 글을 잘 쓴다"는 내용의 구절이 발견됐다. 그게 대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프레시안 : 김 전 대통령의 구술 작업은 어떻게, 얼마나 이루어졌나.

김택근 : 2006년부터 2년 정도 했을 거다. 공식적으론 41회였고 한 번 뵐 때마다 2시간가량 진행했다. 그 외에 세부 사항이 필요하거나 확실치 않은 부분이 있으면 틈틈이 개인적으로 찾아가 묻곤 했다.

프레시안 : 이번엔 평전이다. 그의 일생을 또 한 번 쓰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택근 : 평전에서 소화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았다. 말로는 할 수 있어도 직접 글로 쓸 수 없는 대목들 말이다. 자서전에선 선현하게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그분의 인간적인 면모는 따로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줄곧 있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자서전엔 못 들어갔지만, 이번엔 새로 들어가는 내용을 살짝 밝힌다면.

ⓒ프레시안(손문상)
김택근 :
글쎄,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 있다기보다 (자서전과) 결이 다르다. 본인 스스로 얘기할 수 없었던 마음속 품은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가령 그분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잘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지만 이미 자신의 마음에서 떠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 자기 입으로 자기 자랑을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지 않나. 이런 얘기, 그러니까 본인의 입으로 증언되지 않은 얘기들은 제 3자의 '평'으로만 해줄 수 있다.

그리고 평전은 그분의 인간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는 흔히 업적이나 사상, 철학만을 갖고 김대중을 논하지만 그분에겐 인간적인 면이 굉장히 많았다. 굉장히 감동스러운 삶인데 자서전에선 그 울림을 고스란히 담을 수 없었다. 그 감동을 오롯이 건져 올리고 싶었다. 다시 말해 김대중의 '맨살'을 쓰자는 것이, 평전을 쓰게 된 주요한 동기다.

프레시안 : 김대중 자서전과 평전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김택근 : 공식 자서전은 (김대중의 일생을 기록하는) 최상의 수단이고 평전은 '인간 김택근이 보는 김대중'이다. 그 사람을 가장 많이 관찰하고 그 사람과 관련된 인물을 가장 많이 만나본 사람이 다시 보는 김대중.

사실 자서전을 쓴 사람이 평전에 도전한다는 것은,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김택근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다시 펜을 쥐게 되었다. 김대중의 인생이 추상이 아닌 구상(具象)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삶을 추상으로 파악한다. '뭔가' 사상이 좀 그런 사람, 확실치 않은 사람, 그래서 '막연히' 싫은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의 삶은 굉장히 구체적이다. 평전을 통해서 그런 막연한 편견을 불식시키고 싶다.

자서전, 너무 '좋게만' 썼다?

프레시안 : 자서전 출간 이후에 껄끄러운 얘기도 있었다. 가령 김 전 대통령이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자기합리화로만 넘어갔다든지, 김택근이 원래 김 전 대통령을 존경했고 같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 못했다든지.

김택근 : 늘 신경 쓰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마 비판하는 분들은 이해(利害) 관계가 걸려 있어서 그럴 거다. 일단 정치적으로 김대중과 이해관계가 엇갈렸던 사람들은 그분의 고뇌나 결단, 진정성을 믿지 않고 예단을 했을 것이다. 한편 그분을 따랐던 사람들로부턴 '나도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데 왜 부각되지 않았나' 하는 불만이 들려오기도 했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이런 우려도 제기한다. 평전 쓰는 방법에 답은 없지만 입체적인 평전을 쓰기 위해선 해당 인물만큼 그의 주변 인물들을 깊게 인터뷰해야 하는데 김택근이 그런 부분에 충실한가 하는 지적이다.

김택근 :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 지금도 몇 십 명에 이르는 각계의 증언들이 있는데, 좋은 것 나쁜 것 안 가리고 거의 다 봤다. 그분의 통치 기록, 국정 노트, 일기, 육필 메모, 연설집 등 엄청난 양의 자료들도 꼼꼼히 챙겨 봤다. 그래서 입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문제가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평전을 쓰기 위해 여러 평전을 읽었는데 평전마다 특색이 다 다르다. 답이 없는 거다. 어떤 평전은 현학적인데 어떤 평전은 동화 같다. 솔직히 우리나라 평전 문화가 일천하지 않나. 김대중 평전으로 그 문화를 개선한다는 건 과욕이고 거창한 얘기지만, 적어도 조금은 기여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그냥 겸손하게, 그분의 감동적인 일생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다.

프레시안 : 사람들이 김대중의 삶을 잘 모르기 때문에 무턱대고 비난한다고 했는데, 설령 그런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 한계와 약점이 있으니까 비판도 나오지 않았을까. 정치가로서 30년 이상 한국 사회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사람으로서 완벽하진 않았을 텐데, 어떤 약점이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김택근 : 김 전 대통령의 삶이 위대한 이유는 그에게 닥친 무수한 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금과 납치를 당했고 '대통령 후보 역할론'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으며, 은퇴할 때 '아름다운 퇴장'이니 하는 대못을 박혔고 그래서 다시 돌아오자 거짓말쟁이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거기에 대해 절망하지 않고 어디서든 다시 일어나 새 출발을 했다. 사형수 신분으로도 '용서'라는 수필을 쓰고 내일을 설계한 사람이다. 이렇게 '지역감정 (조장)'이니 '용공'이니 '거짓말쟁이'니 하는 모함에 꽉 짓눌려 있는 인생에, 그 치명적인 덫에 걸려 헤어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생에 대해 약점을 찾는 일은 내게 너무 가혹한 일 같다.

ⓒ프레시안(손문상)

"우리는 김대중이란 인물을 가지지 않았나"

프레시안 : 2004년 처음 김 전 대통령을 만났다고 했다. 만나기 전의 그와, 전기 작가로서 공부하기 시작한 뒤의 그가 어떻게 달랐나.

김택근 : 많이 다르다. 나 역시 그분을 '막연하게' 좋아했었는데, 알면 알수록 정말로 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깊이 생각하며 사는 분인 줄 몰랐다. 정책 하나하나, 상상 못 할 정도로 깊고 오랜 성찰과 고뇌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테면 1971년에 '4대국 안전 보장' 얘기를 꺼냈는데, 거의 30년 동안 연속적으로 그 고민을 이어온 결과가 바로 6자회담이다. 3단계 통일론 역시 마찬가지다. 초기 아이디어는 덜 익었었지만, 그 취지와 고민을 이어 임동원을 통일부장관으로 임명해 결국 그걸 완성시켰다. 어느 하나 즉흥적인 게 없었고, 오랫동안 숙성시킨 결과였다.

프레시안 : 역대 대통령을 대상으로 국정 평가나 호감도 여론조사를 하면, 늘 1등은 박정희고 김대중은 2등이다.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택근 : 보통 그런 여론조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선 '가난을 면하게 한 사람',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선 '민주주의를 꽃 피운 사람'이라는 게 응답의 주요 이유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1위를 하는 건) 단순히 그 두 가치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은 무려 18년간 집권하지 않았나. 안 해본 게 없었다. 게다가 비극적인 결말이라는 '스토리'가 있다. 1등이니 2등이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김대중의 진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히 발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전에는 민심이 따르지 않았지만, 한 세기가 지난 다음 보면 어떨까?

덧붙여 우리는 우리가 가진 위대한 인물의 가치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가서 '넬슨 만델라 같은 인물이 있어서 좋겠다'라고 하면 '너희에겐 김대중이 있지 않느냐'라는 얘기가 돌아온다고 하지 않나. 올해 '분노하라'는 프랑스 노장의 말이 유행했는데, 우리에겐 그보다 멋진 '행동하는 양심'이란 말이 있지 않나.

프레시안 : 중국 속담에 "황금 밥통을 들고 구걸한다"는 얘기가 있다던데 딱 그 모양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김택근이 자신 있게 말하는 김대중 삶 속의 감동이, 2011년을 살아가는 일반 독자들에게 잘 와 닿지 않았다는 방증 아닐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의 삶이 우리에게 어떤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프레시안(손문상)
김택근 :
많은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통해 감동을 얘기한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김 전 대통령 역시 못지않게 그랬다. 그런데 (김대중의 삶이 부각되지 않는 이유엔) 노 전 대통령을 따랐던 인물들이 그분 사후에 상당히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비해 김 전 대통령을 따랐던 분들에겐 역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생하게 증언할 분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셨거나 나이를 많이 드신 거다. 지금까지 그분 삶의 '디테일'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인간적인 감동이 별로 묻어나지 않았다. 내가 평전을 통해 하고 싶은 작업이 바로 그 부분이다. 링컨 대통령 사후에 평전만 180여 권이 나왔다고 하지 않나. 우리도 이념을 벗어나 역사 속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활발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자신과 김 전 대통령의 관계를 밝히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사실을 왜곡시키면 안 된다. 자신과의 작은 인연을 확대해서 그분이 가졌던 큰 생각이나 정확한 맥락을 비틀어 버리면 안 된다는 뜻이다. 대통령에게 선택 받은 사람으로서, 내겐 앞으로 쟁점이 있을 때 심판을 보거나 '사이비'를 가려 낼 의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삶 전체를 본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주장이 나오면 그 이유와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힘이 남아 있는 한 그런 감별사 역할을 하고 싶다. 하지만 일단은 이번 평전을 끝으로 대통령이 날 놔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김 전 대통령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김택근 : 국민한테 늘 배반당해도 믿을 건 국민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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