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간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가 크게 진전되었다. 한국 사회가 "1대 99 사회"로 전락해 가고 있다. 그 결과 대다수 국민들의 삶은 피폐하고 불안하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대다수 국민들이 절망하고 분노하면서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갈망하고 있다.
기존의 발전 국가 모델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국가 발전 모델이 제시되고 그것을 구현할 정치 사회 세력이 확실히 형성되어야 국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복지 국가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지향해야할 새로운 국가 발전 모델이다. 발전 국가로부터 복지 국가로의 이행은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이 대망하는 시대적 과제다.
2011년 총선을 계기로 복지 국가 담론이 급부상하였다. 진보와 보수, 여와 야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로 복지 국가를 주장하였다. 복지 국가는 마침내 시대정신이 되었다. 이제 한국에서 복지 국가는 한 사회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지배적 가치관인 사회 패러다임(societal paradigm)이 되었다.
그런데 과연 어떤 복지 국가를 만들 것인가에 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복지 국가 논의는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는 단순한 논쟁에 머물러 있었다. 보편적 복지가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 내용과 실현 방법에 관해 포괄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제시된 바가 없다.
▲ <내 아이가 살아갈 행복한 사회>(이상이·김윤태 지음, 한권의책 펴냄). ⓒ한권의책 |
우선 저자들은 1인당 국민 소득이 2만 불을 넘었고 구매력 기준으로는 3만 불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우리가 행복하지 않는 주된 이유를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찾는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불평등한 양극화 사회와 불안 사회가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있다고 본다. 빈약한 복지 수준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본다.
저자들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를 위해서는, 복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빈곤층과 저소득층에게만 최소한의 복지 혜택을 주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는 논쟁이 아직도 전개되고 있지만 저자들은 보편적 복지를 해야 복지와 경제 성장이 선순환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지속 가능한 복지 체제 구축이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들은 단순히 조세를 통해 부유층으로부터 빈곤층으로 소득 재분배를 하여 빈민을 구제하는 것을 복지 국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서 복지 국가를 생각한다. 즉 경제와 복지를 하나의 유기적 통합체로 보는 관점에 서서 복지 국가를 새로운 발전 모델로 보고 있다.
복지 국가를 새로운 경제 발전 패러다임 혹은 새로운 발전 모델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학계에서의 복지 국가 논의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관점이다. 이는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는 현재의 논쟁을 넘어 우리나라 복지 국가 논쟁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하여 복지가 경제를 망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거짓말'을 질타한다. 복지를 확대하면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논리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의 재정 위기가 복지 과잉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자들이 잘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실제 남유럽은 복지 국가 수준이 낮으며, 복지 국가 수준이 높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복지 국가 수준이 낮은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경제 성장률이 높다. 이러한 사실은 복지가 경제를 망친다는 주장이 거짓임을 밝혀준다.
저자들은 '복지 망국이냐 토건 망국이냐' 하고 자문한다. 보편적 복지 정책을 펴고 있는 스웨덴 등 북구의 사례를 보면 복지 망국론은 근거가 없다. 1990년 거품 경제 붕괴 이후 토건 사업에 올인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사례를 보면 토건 망국이 사실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들의 답은 복지 흥국이요 토건 망국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길은 토건 국가가 아니라 복지 국가다.
그렇다면, 어떤 복지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가? 저자들은 복지와 경제 성장이 선순환하는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를 하는 스웨덴형 복지 국가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국가가 보육, 의료, 양로, 교육과 같은 사회 서비스를 모든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는 국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 주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과 혁신을 하게 만들어 사회 통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경제 성장이 지속될 수 있게 한다. 실업자에게 실업 급여만 지급하는 소극적 복지가 아니라 실업자가 재취업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교육 훈련을 실시하는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active labor market policy)을 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적극적 복지는 고용률을 높여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
이러한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가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에서 복지와 경제 성장 간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들임을 저자들은 적확하게 지적한다. 스웨덴의 사례는 선별적 복지와 소극적 복지에 머물고 있는 까닭에 저복지와 저성장 간의 악순환의 덫에 빠져 있는 미국의 사례와 극명히 대비된다. 한국의 복지 국가가 지향해야할 곳은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형이 아니라 스웨덴형 복지 국가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의 성공 요인 중에서 이 책에서 간과되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스웨덴 등 북구 복지 국가 모델은 지방 분권 국가 시스템 아래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 아래 지방 정부가 지역 노사 및 NGO와 파트너십을 형성하여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을 실시하고 보육, 의료, 양로 등의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 공동체(welfare community)가 잘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적시되고 있지 못하다.
중앙 집권적 복지 국가가 실업 급여와 같은 현금 급여를 통해 소극적 복지를 제공한다면 지방 분권적인 복지 공동체는 보육 등의 사회 서비스를 현물 급여를 통해 제공하는 적극적 복지를 실시한다. 복지 공동체가 형성되려면 지역 수준에서 복지 시설과 복지 전문가가 필요하다. 예컨대 공공 보육 시설이 대폭 확충되고 보육 전문가가 양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복지 공동체는 지역 일자리, 특히 여성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만약 사회 서비스가 공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을 통해 제공된다면 지역에서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가 확대될 수 있다.
저자들은 현재 한국에서의 일자리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 의료 불안, 보육 불안, 교육 불안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러한 불안 해소를 위한 개별 복지 정책의 방향을 잘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형 복지 국가 모델의 전체상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는 한국에서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의 실현 과정에 직면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여건과 제약 요소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고 발전 국가로부터 복지 국가로의 이행 과정에 대한 로드맵이 제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저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복지 국가를 실현하려면 사회적 대타협이 필수적이다.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재원 조달을 위해서는 누진세나 부자 증세가 필요하고 나아가 중산층을 포함하는 보편적 증세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이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려면 관대한 실업 급여와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 지출의 확대를 통해 노동 시장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후자를 위해서는 사회 복지 지출을 확대해야 하고 이를 위해 증세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복지 국가 정치 동맹을 조직하자고 주장한다. 원래 서구에서 복지 국가는 대체로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 타협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복지 국가 정치 동맹의 주체는 노사 양측을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복지 국가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동하여 복지 국가 실현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하는 주체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이다. 조직 노동자만이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도 시민으로서 선거 과정을 통한 의지 표현 방식으로 복지 국가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보편적 복지 중심의 복지 국가 건설에 저자들은 낙관적이다. 그 이유는 이미 복지 국가가 시대정신이 되었고 지배적 담론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 국가 정치 동맹을 조직하는 것은 저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난제일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복지 국가 담론을 국가적 의제로 부상시키고 보편적 복지 국가를 진보와 보수, 여와 야가 공유하는 비전으로 만드는 시민, 유권자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결집하는 것이 이 난제를 푸는 첫 관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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