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 1월 28일 말을 바꿨다. 박 당선인은 "국민 연금에 가입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인 분에게 20만 원의 기초 노령 연금을 주고, 국민 연금에 가입되어 있는 분들은 20만 원이 안 되는 부분만큼만 재정으로 채워주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했다. '20만 원'이라는 금액은 맞추되, 국민 연금 가입자에게는 차등 지급하겠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국민 연금 고갈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다. 상당수 시민은 "내가 낸 돈을 못 받을 것"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않는다. 일부 언론이 부풀리는 "국민 연금 고갈"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공적 부조'인 국민 연금을 '사적 보험'과 똑같은 것으로 간주해서 생긴 일로, 국민 연금에 대한 사회적 토론 부재가 한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말 바꾸기를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박 당선인이 말을 바꿨는지 여부가 아니다. '노인에게 안정적으로 생계에 도움이 되는 정도의 기초 노령 연금을 어떻게 지급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 '연금 재정의 안정화를 어떻게 이룩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프레시안>과 사회민주주의센터는 이 간단치 않은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조원희 사회민주주의센터 준비위원(국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 준비한 이 글이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토론의 계기를 제공하길 바라며 전문을 싣는다. 특히 박근혜 당선인과 참모들의 일독을 권한다. <편집자>
국민 연금과 기초 연금의 기본 설계도
나이든 어르신들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연금 제도는 복잡하다. 우리의 국민 연금 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동료 경제학과 교수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노후 연금 제도에 관하여 다소 도식화하고 단순화하여 설명을 하려고 한다. 어렵더라도 단순화한 설명을 알아야만 기초 (노령) 연금 개혁과 관련해 그동안 제기된 여러 논점의 본질을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만 의미 있는 진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국민 연금은 평균 소득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고 있다면 국민 연금 보험료를 더 많이 납부하게 되어 있고, 그것에 비례하여 나중에 국민 연금을 더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지만 국민 연금은 소득과 완전히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즉 국민 연금은 고소득자보다 저소득자가 납부 액수에 비해 더 많은 연금 혜택을 받는 소득 재분배 기능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이 점을 무시하고 일단 평균 소득자를 기준으로 논의하겠다.
국민 연금은 제도적으로 '평균 소득자'가 최소한 10년간 보험료를 납부하면 대략 60세부터 (앞으로는 점차 수급 연령이 높아져 2033년부터는 65세부터) 국민 연금 혜택을 받기 시작한다. 10년만 납부한 사람은 그 수급 개시년도 1인당 국민 평균 소득(A값)의 10퍼센트, 즉 A값의 0.1을 받는다. 이 때 국민 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10퍼센트라고 말한다.
2013년 현재 1인당 평균 국민 소득이 약 190만 원 되지만 편의상 200만 원이라고 치자. 그 10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은 약 20만 원이다. 그리고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한 기초 연금 20만 원이 바로 A값의 약 0.1이 되는 값이다.
한편, 10년이 아닌 20년간 국민 연금을 납부하였을 경우 평균 소득자가 지급받는 소득 대체율은 10퍼센트가 아닌 20퍼센트이다. 30년간 납부하였다면 30퍼센트이고 최대 가입 기간인 40년간 납부하였다면 40퍼센트이다.
다른 한편, 위에서 본 것처럼 국민 연금 가입자들이 지급받는 연금 수급액은 1인당 평균 국민 소득(A값)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즉 앞으로 한국 경제가 꾸준하게 잘 성장해서 1인당 평균 국민 소득이 계속 상승하게 되면 노후에 지급받게 될 연금 액수 역시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렇듯 노인들의 노후 복지 역시 한국 경제의 성공 여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한국 경제가 잘 될수록 미래의 국민 소득도 올라갈 것이고 이렇게 되면 노후 연금 혜택이 당연히 증대한다. 그에 반해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침체하게 되면 국민 연금 지급액도 별로 올라가지 않는다.
이렇듯 노후 연금 지급액은 전적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인구의 절대 규모가 줄어들어도 노후 연금 지급액은 줄어든다. 따라서 만약 현재와 같은 저출산 상태가 지속되어 우리나라의 인구가 쪼그라들거나 또는 경제가 계속 침체하게 되면 국민 연금 가입자들은 '더 내고 덜 받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국민 연금 납부금은 내가 낸 보험금이다?
현재 국민 연금 납부액은 소득의 9퍼센트이다. 이 때 피고용자의 경우 그 절반인 4.5퍼센트는 고용주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국민 연금은 내가 낸 국민 연금 보험료에 이자가 추가적으로 붙어 노후에 지급받는 것이라고 잘못 오해하고 있다. 내가 납부한 보험료를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적립하여 금융 자산으로 잘 운용해서 추가적인 수익을 내고, 그 돈을 노후에 지급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마치 국민 연금을 민간의 보험 회사와 비슷한 기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민 연금 보험료(납부액)와 국민 연금 지급액은 서로 단 1퍼센트의 관련성도 없다. 연금은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공적 부조'이지 개인 저축이 아니며 따라서 민간의 보험 회사와 단 1퍼센트의 유사성도 없다.
기초 연금 20만 원을 모든 노인에게
자, 이제 기초 연금을 보자. 현재는 위에서 말한 평균 소득(A값)의 5퍼센트 즉 2013년 현재 월10만 원 조금 안 되는 금액을 65세 이상 노인의 약 70퍼센트에게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은 이 수치를 5퍼센트에서 10퍼센트(20만 원 가량)로 올리겠다고 공약했으며 그것도 70퍼센트의 노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노인들에게 지급하겠다고 했다!
만약 이렇게 되면 노후 연금 제도의 성숙을 상당히 앞당기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즉 노인들의 절대 다수가 평균 소득의 40퍼센트(즉 0.4A)를 노후 연금으로 받는 시점을 노후 연금 제도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경우, 박근혜 당선인의 기초 연금 향상 방안은 그 성숙기를 5년 앞당기는 효과가 있다.
즉 앞서 말했듯이 국민 연금 납부 기간이 10년이면 10퍼센트, 20년이면 20퍼센트로 국민 연금의 소득 대체율이 향상되는데, 만약 기초 연금을 평균 소득의 5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5퍼센트 확대한다면, 소득 대체율을 5퍼센트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5년을 기초 연금이 앞당기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국민 연금 제도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유지한 채 새롭게 추가적으로 기초 연금 20만 원을 모든 노인들에게 지급할 때나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박근혜 인수위원회의 '꼼수' 연금 개혁
그에 반해 박근혜 인수위원회가 최근 초안으로 제출한 기초 연금-국민 연금 재편 방안은 기초 연금을 20만 원으로 확대 지급하면서 동시에 기초 연금과 국민 연금을 통합하여 운영하면서 결국은 국민 연금 혜택을 상당 부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제시되어 있다. 결국은 1인당 지급받는 연금의 평균값도, 소득 대체율도 늘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꼼수 부리다가 본전 찾기도 힘든 그런 방안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 제대로 하려면, 먼저 70퍼센트가 아닌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 연금을 평균 소득의 10퍼센트(즉 0.1A)로 확대하고, 동시에 국민 연금 혜택도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초 연금을 국민 연금과 통합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평균 소득자를 기준으로, 노후 은퇴자들이 지급받는 공적 연금의 합산액이 1인당 평균 소득의 40퍼센트(0.4A), 즉 올해인 2013년 기준으로 매달 200만 원의 40퍼센트인 매달 8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는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 연금은 현행 제도와 혜택을 전혀 손대지 않고 유지해야 한다. 즉 현형 국민 연금의 제도와 수급액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기에 추가하여 기초 연금을 평균 소득의 10퍼센트 즉 20만 원으로 늘려서 더 주겠다고 했다면, 박근혜 인수위원회의 제안은 아쉽지만 나름대로 훌륭한 정책이었을 것이다.
그 경우, 아래 그림에 보는 것처럼, 국민 연금에 가입하여 그 보험료를 납부한 적이 없는 65세 이상 노인들도 최소한 평균 소득의 10퍼센트(20만 원)를 기초 (노령) 연금으로 보장받고, 동시에 국민 연금에 가입하여 보험료를 납부한 가입자들은 그 국민 연금 혜택을 그대로 변함없이 받으면서 새롭게 20만 원의 기초 연금을 추가적으로 얻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 국민 연금을 30년간 납입한 가입자부터는 소득 대체율이 40퍼센트(기초 노령 연금 10퍼센트 + 국민 연금 30퍼센트)에 도달하게 된다.
ⓒ프레시안 |
1인당 평균 국민 소득의 40퍼센트 지급을 목표로
이제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국민연금법은 1988년부터 시행되었으므로 2018년이 되어야 30년간 국민 연금을 납부한 가입자가 나오기 시작한다. 물론 그 사이에 제도가 바뀌어 이 때 60세에 도달하는 사람은 60세부터가 아닌 62세 즉 2020년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데, 이들이 65세가 되는 2023년부터 기초 연금까지 추가적으로 지급받기 시작한다.
30년 가입자라면 위에서 보았듯이 평균 소득의 30퍼센트(0.3A)를 국민 연금으로 받고, 여기에 추가하여 평균 소득의 10퍼센트(0.1A)를 기초 연금으로 지급받아, 합계 40퍼센트(0.4A)를 받게 된다. 말하자면, 기초 연금의 확대로 인한 10퍼센트의 혜택 덕택에 국민 연금 제도는 10년 일찍 성숙한 공적 연금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물론 그때(2023년)가 되더라도 국민 연금 수급권자의 숫자는 노인 인구 전체의 절반도 안 되며, 더구나 국민 연금 30년 납부자는 더욱 적기 때문에, 공적 연금 제도가 완전하게 성숙하기 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즉 아래에서 말할 것처럼 2030년대에 들어야 비로소 완전한 성숙기에 들어간다.
공적 연금 제도의 성숙을 되도록이면 앞당기자
그렇다면 국민 연금을 30년 이상, 예컨대 40년간 납부한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위의 표에서 보듯이, 30년 이상 국민 연금 가입자들에게는 추가적으로 받는 기초 연금을 줄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위에서 설명했듯이 국민 연금의 소득 대체율이 10년을 더 납부하였을 때마다 10퍼센트씩 더 높아지는 효과를 고려할 때, 이론적으로 국민 연금을 40년간 납부한 가입자는 기초 연금을 전혀 받지 않더라도 평균 소득의 40퍼센트(0.4A)에 도달하기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40년 이상 가입자는 기초 연금 수급권자에서 완전히 제외하면 된다. 2030년대에 접어들어야 비로소 국민 연금 40년 납부자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들에게는 기초 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국민 연금을 30~40년간 납부한 이들에게는 기초 연금을 0~10퍼센트의 사이의 값으로 지급하여, 국민 연금과 기초 연금을 합친 공적 연금 수령액이 그해 평균 소득의 40퍼센트에 도달하게 맞춘다.
따라서 현재 박근혜 인수위가 제안하는 기초 연금의 평균 소득 10퍼센트(0.1A) 확대 방안이 시행될 경우 2030년대가 되면 (1) 국민 연금 미가입자 노인과 (2) 국민 연금 30년 미만 가입자 노인에게는 평균 소득의 10퍼센트(0.1A)가 추가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동시에 (3) 국민 연금 30~40년 가입자에게도 공적 연금 합계액이 그 해 평균 소득의 40퍼센트(0.4A)를 보장해주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이렇듯 기초 연금의 10퍼센트 확대는 그만큼 공적 연금 제도의 성숙을 10년(그런데 이미 기초 노령 연금 제도에 따른 5퍼센트가 시행되고 있으므로 순효과로는 5년) 앞당기는 효과를 낸다.
기초 연금의 소요 예산, 2020년 이후에는 점차 감소
2020년 이후부터는 국민 연금 30년 이상 가입자가 점차적으로 늘어날 것이므로 기초 연금 지급에 필요한 예산도 그것에 비례하여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기초 (노령) 연금에 필요한 국가 예산과 소요 재원은 단계적으로 감소하고 따라서 국가 재정에도 별다른 부담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 공적 연금 제도가 이렇듯 성숙하게 되면 빈곤 노인과 관련한 여타의 사회 복지 예산의 지출(가령 기초생활수급자 노인들)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이것이 올바른 국민 연금과 기초 연금의 통합 방식이다.
한편, 이렇게 기존의 국민 연금 제도와 혜택은 그대로 두면서, 여기에 새롭게 추가하는 방식으로 기초 연금을 국민 연금과 통합하게 되면, 최근 국민 연금 혜택의 축소 논란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국민 연금 임의 가입자들의 탈퇴 소동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 공무원 연금과 사학 연금 등 특수직 연금도 차별할 필요는 없으나, 이들 연금 수급권자가 받는 연금의 액수는 이미 현재도 대부분 평균 국민 소득의 40퍼센트(0.4A) 이상을 받고 있는 까닭에, 그런 특수직 연금 수급권자들은 기초 연금 수급 대상에서 당연히 제외된다. 달리 말해서, 그런 특수직 은퇴자들에 대해서는 공적 연금 제도가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기초 연금을 매월 40만 원씩 지급하자!
ⓒ연합뉴스 |
그렇다면 국민 연금 보험료가 아니라 조세로 그 재원이 조달되는 기초 연금 제도가 더욱 빨리 확대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박근혜 인수위원회가 제안하는 기초 연금의 10퍼센트 소득 대체율로의 확대 방안으로는 겨우 10년(정확히는 5년) 앞당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 기초 연금을 월 20만 원(즉 0.1A)이 아닌 약 월 40만 원(즉 소득 대체율 20퍼센트, 0.2A)씩 지급하는데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이 경우 공적 연금 제도의 운영은 모든 점에서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고, 단지 공적 연금이 성숙기(즉 소득 대체율 40퍼센트)에 접어드는 시점을 다시 10년 더 앞당길 수 있다.
이 때 20퍼센트란 이미 현재 이미 시행되고 있는 국민 연금 계산식에서 '국민 연금 납부자의 소득과 관계없이' 주어지는 'A값의 20퍼센트 연금'에 근거한 값이며, 우리는 이 값을 '사회 연대의 최소값'이라 부를 수 있다. 물론 내가 제안하는 이 방안은 보수적인 박근혜 정부가 시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꼼수가 아닌 본질로 돌아가자!
그렇지만 설령 박근혜 정부가 월 40만 원으로의 기초연금 확대를 시행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월 20만 원으로의 기초 연금 확대는 그 자체 훌륭한 취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훌륭한 취지를 살리려면, 절대로 박근혜 정부는 현재 발표된 인수위원회의 제안처럼 국민 연금 받는 사람과 소득 상위 30퍼센트 부유층을 다른 범주의 노인들과 구분하면서 국민 연금과 연계하고, 그리하여 그들을 위한 공적 연금 지급액의 합계 값을 깎아버리는 꼼수를 도입하면 안 된다. 예산을 아끼려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하려다 보니, 인수위원회의 초안은 온갖 꼼수로 가득 찬 누더기 안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문제가 꼬일 때는 본질로 되돌아가서 생각해 보는 것이 해법을 찾는 첩경이다. 기초 연금은 대체 왜, 무슨 목적으로 탄생한 것인가? 그리고 국민 연금의 본질과 존재 이유는 무엇이며 그 작동 원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도대체 박근혜 정부는 무슨 이유로, 무슨 사상과 철학으로 연금 개혁을 하려는 것인가? 좋다고 하니까 이것저것 정책을 표절하고, 그나마 마지못해 하려는 척만 하려는 것은 아닌가?
현재의 기초 (노령) 연금 제도를 국민 연금과 통합하여 기초 연금 제도로 재정립하려는 박근혜 당선인 측의 구상은 그 자체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통합 과정에서 공적 연금의 본질을 훼손하게 되면 일이 꼬이게 마련이다.
공적 연금이란 그 근본 정신에서 보자면 노인에 대한 개인적, 가족적 봉양을 사회적 봉양으로 전환하자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게 전환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가족적 유대가 엷어지고 동시에 고용과 소득이 불안정해져서 도저히 가족 차원에서는 노인 봉양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의 경우 국민 연금이 성숙하려면 그 제도의 특성상 40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시장 개혁과 함께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사조로 득세함에 따라 가족 파괴와 함께 고용, 소득의 불안정이 심화되어 노인 부양 문제가 조기에 현재화되었고, 노인 부양이 중대한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그래서 국민 연금 혜택을 못 받는 연금 사각 지대를 부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현재의 기초 노령 연금 제도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행법에 따르더라도 장차 평균 소득의 10퍼센트(0.1A)로 상향하게 되어 있다. 단지 박근혜 당선인은 이를 앞당겨 시행하겠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민 연금은 내가 납부한 보험금이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 연금과 기초 (노령) 연금의 제도는 통합하되, 적립식으로 설계된 까닭에 그 성숙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국민 연금 제도를 기초 연금 확대로 보완하여 되도록 빨리 공적 연금 제도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공적 연금 제도는 국민 연금이건 기초 연금이건 빈곤층 구휼을 위한 제도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후세대를 낳아 잘 길렀으며 경제 발전을 위해 기여한 노인들의 사회적 공로에 대한 사회적 보상으로 주어지는 혜택이며, 노인 세대 모두에게 주어지는 '봉양 받을 사회적 권리' 또는 '사회적 청구권'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 권리의 제도적 구현은 사회가 매년 '그해에(!)' 생산한 부가 가치(GDP)에서 그 일부를 노인 부양을 위해 기꺼이 양도하는 데서 성립한다. 즉 국민 연금 등 공적 연금은 결코 은행 저축, 사보험처럼 내가 저축한 돈을 그 운용 회사가 금융 자산 운영을 통해 증식하여 나중에 돌려주는 사유재산권 제도의 개념이 아니다. 공적 연금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합의에 의해 사회적 '효'를 수행하고 그것을 뒤에 후세대로부터 되돌려 받는 개념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만 있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성숙한 공적 연금 제도, 예를 들어 모든 노인에게 평균 소득의 40퍼센트를 보장할 수도 있다. 또 지금 당장이라도 기초 연금을 월 40만원으로 인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재원은 세금 즉 일반 조세 또는 특별목적세로 충당할 수 있다. 이를 부과식 연금 제도라고 하는데, 이상한 제도가 아니라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수십 년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공적 연금의 재원을 구태여 공적 '보험' 제도를 통해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보험금(예컨대 국민 연금 보험료)으로 마련하지 않고, 전적으로 '세금' 방식으로 충당하는 나라들도 있다. 덴마크와 뉴질랜드 등이 그러하다.
물론 우리나라 국민 연금처럼 '보험료' 방식을 공적 연금 제도로 채택하게 되면 일정한 장점이 있기도 하다. 먼저 그것은 사회적인 '효'를 성실히 수행한 사람들(즉 국민 연금 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한 사람들)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낸 사람들(고소득자들)에게는 나중에 그에 상응하여 사회로부터 더 많은 봉양을 받도록 (즉 일정하게 더 많은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두어, 사람들이 공적 부양 제도에 기꺼이 협조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의 비율이 우리처럼 1950년대의 베이비붐과 2000년대 이후의 저출산으로 인하여 장기적으로 불규칙하게 변동하고 따라서 그 부양을 책임져야 하는 미래 청장년층의 부담 비율이 불규칙하게 변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완충 장치로써 일정하게 보험금을 적립하는 등의 완충 장치를 가동하는데 유리하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듯 '인구 변동 충격의 완충 장치'로써 국민 연금을 '일정하게 적립'하는 것과, 국민 연금에 납부한 보험료를 마치 개인 저축으로 간주하면서, 마치 '내가 낸 돈 내가 적립하여 증식한 뒤 나중에 돌려받는 것'인양 착각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국민 연금과 개인 저축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서로 다른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기초 연금의 장점과 박근혜 인수위원회의 패착
조세에 의해 완전 부과식으로 운영되는 기초 연금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부자건 가난하건, 모든 노인들에게 똑같은 액수를 지급하게 되므로 소득 재분배 효과가 강력하게 나타나며, 따라서 사회 연대 의식을 최고로 높여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박근혜 인수위원회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기초 연금을 확대하고 그 대신에 이미 국민 연금을 가입하여 수급권을 가지고 30~50만 원의 국민 연금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그 기초 연금 수급액을 차별적으로 삭감하려 드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인수위원회의 제안은 국민 연금의 조기 성숙에 대한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일반 조세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여 기초 연금 지급을 확대하는 것은 공적 연금의 조기 성숙을 위한 것이어야 마땅하다. 지금 빈곤한 노인들을 위하여 시급히 다수의 노인들에게 소득 대체율 40퍼센트가 보장되는 시기를 앞당겨야 하고, 이러한 목표는 국민 연금이 아니라 기초 연금의 강화를 통해서만이 달성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인수위원회가 구상하듯이 현재 불과 소득 대체율 10~20퍼센트에 불과한 국민 연금을 이미 받고 있다고 해서 그 노인들을 위한 기초 연금 수급액을 깎아버리겠다고 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부자 노인들에게도 보편적 기초 연금을!
상대적으로 부유한 상위 30퍼센트의 노인에게는 기초 연금을 깎겠다고 하는 박근혜 인수위원회의 의도도 우려스럽다. 왜 모든 기초 연금은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노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가? 이는 이미 부과식 보험 제도로서 운용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을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된다.
우리의 건강 보험은 그해 발생한 소득에서 보험금을 거두어 그해 소요 재원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그 부족분은 국가 재정에서 일부 충당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내가 부자라고 해서 정부가 "당신은 건강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지만 소득 상위 부자인 만큼 병원 진료를 받을 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렇게 되면 "나는 건강 보험에서 탈퇴하여 개인적으로 의료 보험(사보험)에 들겠다"고 나올 수밖에 없다. 기초 연금이 인수위원회 초안처럼 이런 식으로 된다면 마찬가지 논리로 부유한 상위 30퍼센트는 기초 연금 확대 등을 위한 세금 인상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으며 모두의 건강은 우리 사회가 함께 지킨다" 또는 "부자건 가난하건, 모든 어르신의 노후는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진다"라는 연대의 정신이 견지될 때만이 기초 연금 등 사회 복지 제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보편적 노인 복지에 나서야 한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세계적 기준으로는 성공한 사례이며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부러워하는 것이 우리의 완전 부과식 보험 제도인 국민건강보험 제도이다. 그리고 이런 훌륭한 건강 보험 제도를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했다. 만약 그의 딸이 노인들의 노후를 위한 공적 연금 제도의 성숙을 앞당기는 일을 시작한다면, 이는 새 대통령의 큰 업적이 될 것이다. 보수 정권이라고 해서 부분적으로는 보편적 복지 제도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다만 정책을 직접 만드는 정책 설계자들의 잘못된 관념과 복지 혐오증, 특히 보편적 복지 기피증을 경계하여야 한다.
지금 65세가 넘은 분들은 1940년대 전후에 태어나 일본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경험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자녀를 다섯 명 이상 낳아 기르고, 한국 경제의 기틀을 놓은 분들이다. 이런 노인들을 가족이 저버리고 나아가 사회까지 저버린다면, '세대 간 연대'가 아니라 '세대 간 배신'을 보여준 세계사적으로 부끄러운 사건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 노인들의 극심한 빈곤과 세계 최고의 자살률 등 부끄러운 일을 하루 빨리 종식시켜야 한다. 사회 발전과 경제 발전에 기여한 노인들에 대한 존경과 최소한의 배려를 공적 연금 제도를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또 연대란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가 한배를 타고 있다는 정신이 표현되는 제도라야 한다. 부자라고 해서 차별하여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그 돈(세금)의 상당 부분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모르는 치졸한 발상이며, 연대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지급 대상에 포함하여야 마땅하다.
국민 연금과 기초 연금으로 구성된 공적 연금을 향후 장기적으로 어떻게 끌고 가고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지에 관하여 공적인 논의를 하지 않는데서 온갖 꼼수가 난무한다. 당장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 우리가 보였듯이 공적 연금 제도의 성숙을 분명한 목표로 제시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현 정권은 집권 5년 동안 어디까지 하겠다는 단기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위에서 우리가 제시한 제안과 유사한, 그래서 제대로 된 기초 연금 제도가 도입된다고 할 때, 정작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증세 문제이다. 단기적으로는 노인 인구의 빠른 증가에 따라 기초 연금 예산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므로, 그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가 기초 연금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는 증세 없이는 될 일이 아니다. 보수 진영이 기피하는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먼저 진보 진영이 제시하고 논쟁을 촉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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