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쨌든 기성용 선수가 스승과 다를 바 없는 최강희 감독을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에서 수차에 걸쳐 조롱한 것은 정말 실망스럽다. 특히 선수의 선발과 출전은 감독의 고유 권한임에도 작년 쿠웨이트 전에서 최 감독이 자신을 교체 투입시킨 것에 불만을 품고 쓴 글에서는 철없는 오만을 느끼게 한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느꼈을 거다. 해외파의 필요성을. 가만히 있었던 우리를 건들지 말았어야 됐고 다음부턴 그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길 바란다. 그러다 다친다."
본인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에 더해 부친이 과거 유명 감독으로 축구계에서 발언권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도 "그러다 다친다"라는 표현을 쓰는 데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러다 다친" 감독들은 많다. 1990년 기아 농구팀의 창단 감독이었던 방열 대한농구협회 회장은 허재, 김유택, 한기범 등 중앙대학교 출신 선수들이 항명, 태업을 하는 바람에 감독에서 물러나야 했다.
연세대학교 출신인 방열 감독이 연세대 출신들만 챙긴다는 것이었는데 이들의 태업은 바로 고의 패배였다. 1990년 전년도 우승팀인 기아는 코리안리그에서 8전 전패한다. 결국 방 감독이 퇴진했고 유재학과 정덕화 선수도 이에 환멸을 느껴 은퇴한다.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가드라던 유재학 선수의 나이 28세였다. 이들 간 앙금은 지금도 남아 있다.
정말 그러다 다쳤다 :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스포츠계의 이별
▲ 기성용 선수. ⓒ뉴시스 |
박종환 감독이 대표 팀을 이끌던 1995년 한국 팀은 코리아컵 준결승전에서 예선에서 쉽게 승리했던 잠비아에 패했다. 그런데 이 경기 전날, 박 감독의 억압적이고 비인격적 훈련에 불만을 품고 있던 홍명보, 황선홍 등 주전 선수들이 경기 전날 술집에서 대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 사실이 언론에 보도가 돼 난리가 났다. 그래서 홍명보 선수 등은 징계 위기에 처했는데 이들은 그 제보자로 박 감독을 꼽았고 언젠가 앙갚음 하리라 맹세했다고 한다.
다음해 아시안컵 8강 대 이란 전에서 한국은 6대2로 참패한다. 유례를 찾기 힘든 처참한 패배다. 특히 전반에 2대 1로 앞서고 있었는데 휴식 시간 라커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후반에만 연속으로 다섯 골을 먹은 것이다. 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이 사건은 축구계뿐 아니라 축구팬들도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박 감독은 결국 감독에서 물러났고 당시를 회상하며 "자살까지도 생각했을 만큼 개인적으로도 충격이 컸다"고 했다.
당시 한 언론은 홍명보 선수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감독을 원한다"며 스파르타식 훈련을 고집하는 박종환 감독에게 노골적인 반기를 들었지만 누구보다도 체계적으로 지도했던 아나톨리 비쇼베츠 전 감독에게도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고 전한다. 현 대한축구협회 회장인 조중연 당시 KBS 해설위원조차 "홍명보가 선수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것 같다. 옛날에는 감독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고 한다.
선수들을 완전히 장악한 감독은 아마 거스 히딩크 감독이 유일할 것이다. 부임 후 선수들을 지켜본 후 그는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며 이동국 선수를 대표 팀에서 탈락시켰다. 이동국 선수는 당시 대표 팀 부동의 스트라이커였다. 난리가 났지만 히딩크 감독은 꿈쩍 않았다.
이동국 선수가 한 방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 당시 건방이 하늘을 찌르던 대표 팀 선수들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긴 머리 휘날리던 '테리우스' 안정환 선수는 머리를 자르고 '뽀글이 파마'를 하고 트레이닝센터에 나타났다. 이는 히딩크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 등 명문 유럽 프로 팀의 감독이었고 직전 월드컵에서 한국 팀을 5대0이라는 처참한 스코어로 짓이겨 버린 네덜란드 팀의 감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벌도 가지가지
이번 기성용 파문을 통해 대표 팀 내 갈등, 즉 파벌 문제가 존재한다는 문제도 불거졌는데 홍명보 감독 역시 이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위에 언급한 기사의 제목은 "축구계 '열하나회' 있다"였는데 연세대-고려대 출신이 주축이 된 열하나회라는 사조직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밝혔다. 당시 대표 팀에도 다섯 명의 열하나회 멤버가 존재했고 "이들이 대표 팀의 단합을 해치는 '보이지 않는 세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해외파'와 '비해외파' 간의 대립을 우려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연세대-고려대와 한양대학교 등 명문대파와 비명문대파 간의 틈새가 꽤나 벌어져 있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도 연세대-고려대 출신이 득세하는데 사실상 헤게모니는 고려대가 잡고 있고 홍 감독도 고려대 출신이기에 전례 없는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력을 가진 홍 감독이 어떻게 대표 팀을 이끌어 갈지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감독과 선수 간 갈등도 심각한 문제지만 선수 간 갈등도 그 못지않게 심각하다. 특히 축구의 경우는 선수 각각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야구나 출전 선수의 수가 적은 농구와 다르게 그 폐해가 극심하다. 축구는 열한 명의 선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모든 선수가 모든 선수에게 패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사이가 좋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간단하다. 패스를 안 한다.
1980년대 정기 연고전에서 연세대 축구팀은 고려대에 3대0으로 참패한 적이 있다. 유래 없는 골 차이였고 당시 전력으로 볼 때 이해하기 힘든 결과였다. 경기 후 한 연세대 선수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경상도 애들이랑 전라도 애들이 패스를 안 하는데 어쩌겠냐."
파벌도 참 가지가지다. 연중 가장 중요한 경기이고 감독이 사이드라인에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어도 선수들 간 감정이 생기면 아무도 못 말린다.
그렇다면, 과거야 어떻든 홍명보 감독은 과연 A대표팀을 맡아 지도하고 통솔할 수 있을까. 나는 홍명보 감독이라면 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대표 팀을 맡을 만한 축구인은 다섯 손가락도 안 되는데 홍 감독은 지도력, 경력, 통솔력을 갖춘 지도자다. 다만 적지 않은 축구인은 너무 빨리 A팀을 맡게 된 홍 감독을 걱정스럽게 보기도 한다. 협회가 시켜서 하는 것이지만 "저러다 다치지는 않을지…."
아름다운 이별
외국에서도 감독과 선수 간 충돌은 많다. 선수가 감독과 훈련 중 멱살잡이를 하는 경우도 있고 1992년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의 투수 롭 디블은 루 피넬라 감독과 TV 카메라 앞에서 주먹다짐을 벌여 이 싸움이 전국으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에서 많이 보게 되는 '뒤끝'은 찾기 힘들다. 서구 사회는 의례적일지라도 칭찬과 덕담이 일반화된 문화라서 그런지 문제가 있었어도 상대의 행운을 빌어준다.
스포츠는 직업의 특성상 처음 만나는 감독, 새롭게 만나는 선수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또 그만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없으면 이상한 거다. 그러나 갈등이 있었다 해도 서로 헤어질 때는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게 스포츠를 더 감동적으로 만드는 기본 중 하나다. 요즘 젊은 연예인들은 심지어 이혼할 때도 서로의 행복을 빈다며 헤어지지 않는가.
2010년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함께 했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결별하며 한참 시끄러웠다. 김연아 선수 측이 오서 코치에게 일방적 결별 통보를 한 것인데 당시 언론과 팬들이 제시한 이유들은 바로 몇 달 전 금메달 획득을 가능케 해준 스승을 사실상 해고하는 사유로는 어딘가 부족했다.
오서 코치가 아사다 마오 측의 코치직 제안을 받았고(거절했다), 그가 김연아의 전 소속사인 IMG와 계약을 했고(대부분의 유명 스케이터들이 계약하는 회사다), 그가 일본 애들을 가르쳤다(피겨 코치는 국적 차별해야 하나)는 이유들 말이다. 특히 논란이 진행되는 와중에 김연아는 자신의 트위터에 "제발 거짓말을 그만 멈춰 줄래요, B"라며 스승에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갈등을 거쳐 헤어지게 된 오서 코치는 뭐라고 했을까. 그 얼마 후 캐나다 TV에 출연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환상적인 스케이터다. 만약 그녀가 다른 방향으로 가더라도 좋다. 그녀에게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괜찮다. 감사하고 많이 배웠다. 그녀에게 최고의 일만 있기를 바란다. 나는 연아를 사랑한다. 지난 4년은 마법과 같았고 나는 나의 마음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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