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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대계의 종잣돈을 없애자니…"

[기고] 교육세 폐지하면 희망은 더 멀어진다

대도시 출신 40대 후반~50대 초반 세대는 초등학교 시절 학급당 인원수 70~80명에 달하는 콩나물시루를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에는 담임 교사에게 관심 한 번, 칭찬 한 마디, 격려 한 마디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지금은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아예 동네에 따라 달라지지만 오래 전 서울은 한 동네 안에 잘 사는 집도 있고 중류층, 개천가 판잣집도 한데 어울려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한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하거나 가정 형편이 유복해 엄마가 학교에 드나들고 기성회비라도 빨리 내면 담임교사의 관심도 많이 받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나누어주라던 옥수수빵을 차지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한 학급에 학생이 너무 많아 교사가 쏟는 관심은 한계가 있었다. 학생이 공부를 잘하거나 학부모가 학교에 잘하는 한 20% 학생정도가 담임의 관심을 받는 정도였다.

어렸을 때는 담임교사가 내게 주는 편애와 차별에 대한 이유도 원인도 몰랐다. 그러나 내가 부모가 되어서도 콩나물 교실, 재래식 변소, 촌지등 한국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전혀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적어도 내가 당한 차별이나 내가 겪은 편애와 불편을 더 이상 물려주지 않으려고 교육 운동에 참여했다. 18년 전 일이다.

이후 오랫동안 교육 민주화, 교육 재정 확충, 공교육 강화를 주장해 왔다.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가 필수인 것처럼 한국 교육은 이 세 가지가 필수다. 그러나 이 목표는 늘 중도에 좌절되거나 왜곡됐다.

교육 민주화의 바탕인 사학법은 개정과 재개정을 거듭하다 원점이 됐다. 공교육 강화는커녕 해마다 사교육비가 늘어 사상 최대이다. 교육 재정 확충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 걸맞지 못해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아프리카나 방글라데시 수준이다. OECD 평균 공교육 재정이 GDP 5%이상이나 한국은 4.3%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교육세 없어져도 달라질 건 없다'?

그런데 최근 내가 왜 교육 운동을 시작했는지 초심을 돌아 보게 한 사건이 하나 생겼다. 교육세 폐지 논란이다.

교육 재정 확보는 특히 중요하다. 학부모가 되어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은 돈과 관련된 것이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아프리카, 방글라데시 수준에서는 선진국 교육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개별 학습도, 다양한 학습도 학급당 15명 이하에서나 가능하고 수준별 학습 역시 교육재정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육은 그 부분에서는 영 낙제점이다.

이렇게 교육 운동권이 교육 재정 확충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것과 달리 학부모들의 체감도는 떨어졌다. '교육세를 유지한들 절망에 빠진 교육이 뭐가 달라지는가'라는 질문도 받고 기획 재정 관련 공직자를 만나면 교육 재정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며 증액 요구를 경원시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2008년 마지막 날 국회의장 직권 상정에 의해 무더기 처리될 법안은 100여 개 안팎에 달한다. 쟁점 법안이 아닌 것이 없다지만 일부는 여론의 관심을 받지 못한 법도 있다. 그중 하나가 교육세 폐지 법안이다. 한나라당은 12월 한 달 동안 여론 분위기에 따라 쟁점 법안을 추가하거나 삭제하는 우여곡절을 거치고 있는데 교육세 폐지 법안 역시 결국은 무더기 법안에 포함되어 폐지될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인 '교원평가법', 교원노조의 단체교섭 대상을 후퇴시킨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교원노조법)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다행히 교육세 폐지 법안에 대해 민주당·한나라당을 망라한 국회 교육상임위원과 교육 운동 단체 전반, 시·도교육감협의회, 민주당 국회의원이 반대하는 일관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 281개 사회단체가 교육재정확보를 위해 꾸린 교육재정국민운동본부는 "경기침체와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인해 내국세 징수 총액이 감소할 경우 이에 연동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감소로 교육재정의 피폐와 불안정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진보와 보수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한국 교육에도 오바마 정책 철학처럼 '공통 분모'가 생기려는가?

한국 교육 발전 기여한 교육세, 이제 와서 폐지하자고?

돈 이야기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런 편이다. 그래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몇 자 적어 본다.

교육세는 1982년 교육 환경 개선을 통한 교육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수많은 논의 끝에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그 후 영구세로 전환되어 오랜 세월 동안 좋든싫든 국민은 교육세를 냈고 이후 노후 교육시설 개선, 과밀학급해소, 중학교 의무교육 확대 등 교육 현안 사업에 주요 재원으로 쓰이며 교육의 양적·질적 발전에 기여했다. 그런데 한나라당 기획재정위에서 세제 간소화와 재정 운영의 경직성 해소를 명분으로 교육세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세를 폐지하면 약 4조 원 정도가 줄어든다. 이를 본세와 통합해 교부금을 상향한다고해도 해마다 교부율이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세 폐지에 대한 교육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내국세 교부율을 20%에서 20.4%로 인상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일부 개정안을 12월초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교육세 폐지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일부에서 20.5%를 배정하자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20.5%가 되면 지금보다 교육 재정 총액이 1000억 원 늘어난다고 한다. 귀가 솔깃해지는 논리이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얼핏 들으면 교육 재정이 더 늘어나는데다가 이참에 세제를 간소화하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이 한나라당이 교육세 폐지를 밀어붙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지방 교육 재정이 매우 열악하다. 지방교육채 발행이 3조 원을 넘어섰고 교육 환경 개선, 공교육 내실화등 교육재정에 추가적인 수요가 발생하는 것이 엄연한 우리교육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혹시 교육세 폐지가 교육자치 약화로 이어져 일반자치단체 행정에 교육 행정을 통합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버릴 수 없다.

적어도 현재 내국세의 20%로 되어있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을 20.4%가 아닌 21% 정도로 대폭 상향조정하는 보전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교육세 폐지는 교육 재정의 부실화를 가져올 우려가 크다. 이마저도 현 정부의 '감세' 기조 아래서 충분히 확보되지 못할 수도 있다. 교육 재정이 미흡하거나 불안정해지면 장기적인 교육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교육 재정 확충은 공교육을 살리는 근본 처방이다

세계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재 양성이 살길이라며 교육 투자 확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 활성화 정책에는 노후학교 개선이 포함되어 있다. 교육 재정 확충은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 처방 중 하나이다. 당장 눈앞에 가시적인 효과가 없고 먼길을 돌아 가는 것 같지만 백년대계의 종잣돈이기 때문이다.

설령 교육세 폐지에 반대하는 교육 운동 단체의 주장이 이번에 직권상정 앞에 무력하게 패배한다고 해도 다가오는 새해에는 교육 재정 확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주문드린다. 내 아이에서 시작한 교육에 관한 고민,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너른 관심 속에서 우리는 비록 오늘 패배하더라도 내일은 이길 수 있고, 절망에 빠지려는 한국의 교육을 희망의 교육으로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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