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경찰순경이 개인적인 의사와 양심을 내세워 시위 진압 임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이 정하는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이 의경이 불법·폭력적인 방법으로 시위 진압을 강요받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히며 판사는 실형 2년을 선고했다. 이길준의 얼굴에도 방청을 온 사람들의 얼굴에도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일반적으로 병역거부자들은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왔었고 이길준 또한 1심에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세 가지의 공소 사실-병역 거부, 명예 훼손, 명령 불복종을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명예 훼손에 대해서 이길준의 변호를 맡았던 이덕우 변호사는 "사건의 본질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와 국방의 의무를 위해 징집된 젊은이를 시위 진압에 사용하는 전·의경 제도의 문제점인데, 재판부가 언론 인터뷰의 한 부분만을 지나치게 확대해서 봤다"고 비판했다.
▲ 지난해 촛불 집회 진압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복귀 거부를 선언했던 이길준 의경. 최근 법원은 그에게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했다. ⓒ프레시안 |
백번 양보해서 이길준에게 명예 훼손과 명령 불복종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2년의 형량은 잘못된 판결이다. 각각의 행위가 연관성이 있다면 통상적으로 가장 큰 형벌(이번 경우는 병역법 위반이고 병역법 위반은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에 해당하는 것을 적용하는데, 이길준의 경우는 그 이전의 병역 거부자들 뿐 만 아니라 일반적인 형사처벌의 사례들과 비교해 봐도 형평성에서 어긋난 판결을 받은 것이다.
"허위 사실을 언론에 유포한 것은 공권력 행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으로 1심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말은 최근 용산에서 일어난 학살과 묘하게 맞물리면서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작년 촛불 집회 이후 공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훼손되어 있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책임은 이길준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이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한없이 추락시켜 온 것이다. 사실 한국의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살펴보아도 경찰에 대한 신뢰를 가지기는 힘들다. 독재 정권의 앞잡이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민주화 인사들을 고문해왔던 경찰 아닌가. 또한 영화 <살인의 추억>에도 묘사되었듯 데모 진압에는 출중하면서도 정작 국민의 기본적인 치안에는 지극히 무능력하지 않았나. 이한열, 박종철에서 전용철, 홍덕표까지 그 숱한 사람들을 죽여 가며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좋아하기 힘든 기억들을 간직한 경찰이 이제 와서는 아기가 타고 있는 유모차에까지 소화기를 살포하고 차 밑으로 피하는 여성을 군화발로 짓밟고, 철거 깡패를 비호하며 도시 서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딱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며 진실을 왜곡하던 경찰이 이번에는 자신들은 철거 용역업체와 합동 작전을 펼친 것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모든 철거 지역에서 경찰들이 철거깡패를 두둔한다는 것은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도 알고 <1번가의 기적>의 임창정도 알고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경찰을, 우리가 설령 예수님이나 부처님일지라도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을지언정 신뢰할 수는 없을 것이다.
▲ "경찰이 행사하는 과도한 폭력은 대한민국 경찰에게 국가권력과 시민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전무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용산 참사에서 컨테이너로 특공대를 투입해 철거민을 진압하려고 시도했던 경찰. ⓒ뉴시스 |
친일파들이 해방 후 대거 경찰의 요직을 장악했다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여러 차례의 기회가 있었다. 박종철을 물고문으로 죽였을 때, 이한열을 최루탄으로 죽였을 때, 전용철을 방패와 군홧발로 죽였을 때. 그분들이 죽음으로서 경고한 것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봤다면 말이다. 아니 그런 경찰 외부의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90년대 초반 전·의경들의 양심 선언, 이번 이길준의 외침과 같은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한 치도 변화하지 않았다. 그저 머무르기 만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백골단이나 다름없는 경찰특공대를 창설하고 2012년까지 없애기로 한 전·의경 제도의 존치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경찰청장에 올랐거나 오르려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강력한 법치의 실현을 이야기하며 마치 경쟁하듯 보다 강경한 진압을 일선에 주문할 뿐이다. 마치 이 극한의 비극적인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놓치기 싫다는 듯이.
소중한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이미 전에 우리에게 주어졌던 기회를 잘 살렸었다면, 경찰 폭력에 희생된 열사들의 죽음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길준의 외침에 경찰 당국이 귀를 기울였다면. 그래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려고 노력했다면. 아니 하다못해 전·의경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들의 저항에 무자비한 폭력 진압과 강제 해산이 아닌 방법들을 고민했었다면, 혹은 경찰 내부에서 부당한 명령에 대한 비판이나 개선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면 이번과 같은 비극적인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비판이 제압당하고 반성이 실종된 사회에서 비극은 언제나 악몽처럼 반복된다. 심지어 용산에서의 학살로 클라이막스에 다다른 이 순간조차도 새로운 비극이 꼼지락 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길준의 외침에 그저 보다 높은 처벌로 본보기 삼으려 하는 재판부와, 용산 학살에 겉으로는 입에 발린 애도를 표하면서 죽음을 조롱하며 인간이 가지는 가장 마지막의 수치심마저 잃어가고 있는 몇 정치인들과, 자신이 저지른 무수한 과오에 대해서 도대체 반성할 줄 모르며 오히려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저버리는 경찰은 "비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역사적 경험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제 2의 이길준, 제 3의 이길준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외침마저도 외면했을 때, 비극은 언제 어디서라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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