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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통'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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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통' 대통령 노무현

[노무현을 기억하며] 이런 대통령이 있었다

14년 전 고등학교 윤리선생님이 들려주신 미테랑 대통령의 일화를 잊지 못한다. 14년을 살던 엘리제 궁을 떠나 그가 파리 시내의 아파트로 돌아가 여느 시민처럼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내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챙기고도 29만 원만 재산으로 남겼다며 우기시던 어르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 국민들의 피눈물이 마르지 않은 지금 특별법만큼이나 특별한 대우를 받고 계신 어르신이 내가 알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정치인을 넘어 성숙한 정치 문화까지 가진 프랑스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이후 한일월드컵이 있던 그해까지 정치학도로 한국정치 막장(?)사를 알아가면서 우리 정치인에 대한 나의 기대와 희망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그러나 지금껏 잊고 지낸 기대와 희망들이 뒤늦게 꿈틀거리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통한 서거로 연일 그 분의 평소 모습과 일화들이 지상파와 인터넷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동네슈퍼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모습과 허름한 점퍼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들, 관광버스 기사를 위해 '오라이'를 외치며 안내원을 자처하셨다는 일화, 지나치는 동네 분들마다 '밥 먹었나'하며 다정히 말을 거셨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토록 동경했던 프랑스의 정치인과 정치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후회 때문이었다.

보수 언론의 입만 보고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실 때면 품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토록 부러워하던 이웃집 아저씨같은 대통령을 얻고도 관심을 갖지 못했던 사실이 너무도 후회스러워 눈물이 났다. 용서받지 못한 죄를 짓고도 죄 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은 세력들을 좌시했던 것이 죄스러워 눈물이 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은 결코 개인의 원망도, 책임회피도 아닌 우리 모두의 무관심으로 인한 죄 값이다. 그가 지역주의 타파와 언론, 재벌 등의 부패한 기득권층과 싸울 때 발 벗고 나서 돕지 못했던 죄, 그의 하얗고도 아름다운 수족을 절단하는 치졸한 고문에 무관심했던 우리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가신 것이다.

새삼 미테랑 대통령 평전을 보며 노무현 대통령을 오버랩해 본다. 모든 프랑스국민의 '통통(아저씨)' 이었던 미테랑을 보면 밀짚모자를 쓰고 손을 흔들던 노짱을, 유럽통합을 위한 조약 비준시 위험이 예견된 국민투표를 선택한 그의 결단을 보면 탄핵 사태 때 보여준 정치인 노무현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찾을 수 있다.

엘리트 관료주의가 고착된 프랑스 사회에서 중졸의 수상을 등용시킨 미테랑에게서 고졸 출신의 인권변호사 노무현이 떠오르며, 유례가 없을 정도로 불편했던 미테랑과 언론과의 관계 속에서 보수언론을 향한 바보 노무현의 투지를 떠올린다.

프랑스인들이 나폴레옹, 드골과 함께 가장 존경한다는 대통령 미테랑! 나에게도 미테랑과 같은 '통통'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앞으로 3년 동안 그에 대한 그리움과 죄스러움으로 떨쳐버린 눈물들이 계곡이 되고 큰 강이 되어 넓고 푸른 바다를 이루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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