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오늘날의 연극으로 거듭난 연극 '마라, 사드'는 모순된 사회 구조로 인해 늘 폭력과 저항이 함께하는 세상사에서 어긋나고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과 그 안에서 빚어내는 부분적인 통합과 개인적인 것들의 혼재 속에서 맺어지거나 해체되면서 인간의 내면적인 심리와 현재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립시켜 보여주는 총체극 형식을 띄고 있다.
| ▲ ⓒ뉴스테이지 |
원작에서처럼 20세기의 주목받던 혁명적 사상가인 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가 존재하며 아르토의 잔혹극과 브레히트의 서사극, 그리고 혁명적이고 통속적인 대중 음악극이 혼재되어 오늘의 시점에서 질펀한 축제처럼 한판 휘몰아치며 혁명적인 사상가들의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끄집어들인다.
무대는 기존의 다리막을 전부 제거 하고 천장과 벽 전체를 정신병원 주변의 광장처럼 설정되었는가 싶더니 욕조하나가 덩그러니 상수에 자리하고 있어 의아해 했는데 극이 시작되더니 블랙 아웃되며 어느새 마라가 욕조에 앉아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정신병동의 욕조로 변하며 작품의 서사적 구조에 맞춰 연극적인 놀이 공간으로 만들어진다.
마라의 최후의 혁명가적인 의식의 흐름과 외침은 사드의 보이지 않는 폭력과 조정으로 먹을 것, 따듯한 집을 갈구하는 민중들의 열망들과 개인의 의식을 파괴하며 마라를 결국 죽음을 맞게 하는데 현재도 그러하듯이 그 죽음에 대한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리며 오늘날, 사회적인 폭력이나 억압에 대한 개인적인 것이나 집단, 국가에 대한 현황에 대한 우리들의 의식의 흐름을 감지하게 한다.
결국 작품은 돈을 가진 자들의 위험한 탈선보다도 위선이라는 가면을 쓴 자들의 파괴적인 행위들이 개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칼과 도끼로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의지가 어떻게 성숙한 경로를 찾아 가야 하는지 우리들의 숙제로 남겨 둔다.
출연진들은 대부분 정신 병원의 소시민들과 간호사, 때론 변태적이거나 순간적으로 발작하더니 어느 순간 고도의 집중력과 응집력으로 작품을 해체하거나 융합하며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고 몰입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고 마라역의 김주완과 사드역의 강신구, 코르데역의 강지은의 연기적인 호흡을 머금고 순음을 이용한 농익은 화술과 연기는 작품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었다. 또한 음악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극적 상황의 정서를 도와주는 것만이 아닌 정서를 리드하며 활력을 주는 총체 음악극적 양상을 띠며 원작의 본질에서는 벗어 난 듯 보이지만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의 공감대를 확보 하는데 는 훨씬 효과적이고 매끄러워 보였다.
극의 결말 부분에 상부에 설치되어 있던 배수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와 욕조에 앉아있는 마라를 목욕시키던 물줄기가 혼재되며 무대는 미쳐버린 정신병자들만이 아닌 마치 모두가 미쳐가는듯한 세상을 정화시키려하는 한바탕 씻김굿처럼 질펀하게 놀아나며 무감각해진 의식들을 깨어나게 하며 2009년,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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