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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연연 말고 한 테이블에 앉아 진지하게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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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득권 연연 말고 한 테이블에 앉아 진지하게 고민하자"

[인터뷰] 김부겸 의원 "민주당 지도부 치밀한 전략 부족"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통해 야당에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며 동시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가. 야권에서는 '통합'과 '새로운 리더십'이 화두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의 얘기를 들어봤다. 어느덧 수도권 3선 중진 의원의 된 김 의원은 '1인 지도자 리더십'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 '제도와 시스템화된 리더십'을 찾아야 할 때라고 했다.

'지도자' 리더십에서 '시스템' 리더십으로

김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그들의 삶 자체가 대중들 삶의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연계돼 대중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음 세대의 변화도 꿰뚫어 보는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 김부겸 의원. ⓒ프레시안
전통적인 산업화시대에서 벗어나 정보화 시대를 준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안정망 확충에 대한 신념이 있었고, 남북 적대 상황에서는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는 "선지자적 혜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보복을 안 했다"는 점을 김 의원은 김 전 대통령 통치의 높은 항목으로 꼽았다. 김 전 대통령이 겪은 역정을 생각하면 '한 풀이'도 가능했겠지만, 상대 세력에 배타적이지 않고 '공존'을 시대정신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국민들은 시대정신을 가진 자에게 기회를 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뛰어난 1인 리더십을 더 이상 찾기 힘들다고 봤다. 김 전 대통령은 스스로 갖춘 안목과 시대정신으로 대중들을 이끌 수 있었고, 과거에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뚜렷한 전선이 있었지만 정보화가 이뤄지고 다양한 가치와 욕구들이 표출되는 열린 사회에서는 "대중이 절대적 지도자의 판단을 추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정치 리더들과 대중 사이의 관계와 소통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며 "이제는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접근과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단순 분노 표출을 넘어서야

문제는 민주당이 '제도적인 접근'의 한 축을 제대로 담당하고 있느냐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은 높지만 이 힘이 민주당에 모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작년 촛불시위 이후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통로가 인터넷 등으로 다양해졌다"며 "인터넷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자연스레 광장에 나와 모이기 때문에 굳이 기존 정당에 매력을 느낄 필요가 없어졌다"고 분석했다. 김 의원은 특히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정당에 투사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의원은 "현재 정치체제는 대의 민주주의이고 아직 이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제도가 없는 이상, 대의제의 여러 장점과 효율을 살려나가는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단순한 표출에만 그치지 않고 제도(의회)라는 장치를 통한 개선으로까지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민주당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각종 지지율 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은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김 의원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전통적 지지층이 돌아온 것은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새로운 지지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전략이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김 의원은 "아젠다 설정 순위에서 민생 아젠다를 전면에 내세웠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삶의 문제에 대한 투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전격 등원을 결정한 데 대해서는 "정세균 대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투쟁의 과정에서 "강경한 흐름이 내부 토론을 막고 말들이 너무 앞서나갔다"고 비판했다. 앞을 내다보고 2안, 3안을 준비해두는 치밀함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간 목표가 없고 의원들 사이에 소통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의원들 개개인이 투쟁의 준비가 돼 있지만, 구체적 전략이 부족하고 내부 논의가 잘 안 돼 언제까지 어떻게 싸워야 할지 잘 몰랐다는 것이다.

▲ ⓒ프레시안
출발선 보다 결승선을…

또 다른 화두인 '통합'과 관련해 김 의원은 "우리 모두 흠결을 갖고 있다. 국민들 보기에는 모두 같은 세력이고 누릴 만큼 누린 세력이라고 본다. (우리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 같다"고 일침을 놓았다. 김 의원은 "잘난 척 하지 말고, 기득권에 연연해 하지 말고 한 테이블에 앉아 정말 전지하게 앞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 내부적으로는 당의 혁신을 강조하면서도 '기득권 포기'와 관련해 민주당이 호남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로 호남 지역 의원들을 무조건 기득권 세력이라고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다.

김 의원은 다만 지난 재보선에서 호남 지역 무소속 당선에서 볼 수 있듯이 "준비 안 된 후보라면 호남에서도 민주당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친노신당'에 대해서는 "지분 나누기 식이어서는 국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 논의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출발선을 맞추자고 하면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고 템포 조절을 주문했다. "최종적으로 결승선(대선) 전에만 같이 갈 수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보다 "타당한 비판을 빨리 받아들이는 우리 내부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열린우리당을 추억처럼 되뇌여서는 안 된다"며 "당장 고칠 수 없는 부분들을 서로가 무리하게 비판만 하고 있으면 손실만 가져올 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지난 2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김 의원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뒤 민주개혁진영의 통합이 화두임에도 세력별로 독자적인 움직임이 눈에 띈다. 통합의 경로는 어떻게 진행돼야 한다고 보는지?

김부겸: 내부적 결속과 외연적 확장 두 가지가 병행돼야 한다. 내부적 결속이라 하면 지난 10년 동안 민주당과 동교동계, 친노 진영을 비롯해 우리에게 우호적 역할을 해오면서도 별다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시민사회의 세력들이 흩어져있다. 민주당이 기득권을 버리고 제 세력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논의해 동지애도 확인하고 결합력도 높여야 한다. 특히 정치권 세력들은 잘잘못을 탓하거나 기득권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모두 흠결을 갖고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모두 같은 세력이고 누릴 만큼 누린 세력이라고 본다. 연민이 없는 것 같다. 잘난 척 하지 말고, 기득권 연연하지 말고 한 테이블에 앉아 정말 진지하게 우리의 앞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외연 확대와 관련해서는 정치적 지향점과 전망이 다른 진보정당들과 시민사회세력이 있는데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금 시기에 어떻게 반영할 지 고민해야 한다. 일단 정치권에 들어왔으면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고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하지만 대통합에 진보진영을 함부로 섞어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의 주장 자체를 무시하고 통합하자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낮은 단계의 공동투쟁과 정책연합을 할 수 있고, 가장 최고의 단계는 선거연합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신뢰를 우선 쌓아야 한다.

대통합의 역사적 교훈은 1987년에서 얻을 수 있다. 사실 문제는 간단하다. 그 당시에는 대통령 직선제, 민주헌법 쟁취라는 최소한의 요구에 야당과 재야, 학생, 노동, 농민, 종교까지 제 세력이 모두 뭉쳐 가시적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최소 강령으로 최대 연합을 이뤄내야만 민주주의, 민생, 남북평화 3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프레시안: '민주당 중심의 대통합론'이 패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세균 대표 등은 통합을 위해 기득권 포기를 언급했는데, 민주당이 포기할 수 있는 기득권은 무엇인가?

김부겸: 과거 김대중 총재 시절의 야당이나 민주정부 10년 간 집권여당일 때와 달리 지금의 야당은 별로 나눌 게 없다. 나눌 게 있다면 우리가 누리는 어떤 기득권인데, 지금 최대 기득권이라면 다른 야당보다는 많은 민주당의 의석수와 호남 지역에서의 압도적 강세다. 그렇다고 지금 호남 민주당 의원들이 과거처럼 계보에 줄 서서 되신 분들이 아닌데 이들더러 기득권 세력이라 할 수는 없다.

공천을 비롯한 당내 시스템에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4월 재보선에서 (호남) 두 곳에서 졌다. 후보가 경쟁력이 있고 준비된 후보가 아니라면 민주당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서 민주당이 배워야 한다. 이제 문호 개방 한다고 해서 필요한 사람만 받아들여서도 안 되고, 상대방을 무조건 내 틀로 들어오라는 것도 안 된다. 특히 공천 제도 변화 등을 통해 획기적인 자기 쇄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공천심사위원회를 외부 인사 중심으로 만들어 편견 없이 훌륭한 인물들을 공천할 수도 있다.

프레시안: 이른바 '친노신당'이 민주당과 신경전을 벌이며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출발선에 함께 서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김부겸: 그들이 민주당을 해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각 세력들이 출발선을 똑같이 할 필요도 없고 불가능하다. 정치적 결합도 모두 똑같이 할 수만은 없다. 그들이 비판하는 내용은 지역 당에 안주하고 있고 가치연대가 아니라 현실 정치공학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조직화해내는 것이다. 첫 번째 큰 싸움은 내년 지방선거일 텐데 가급적 빨리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결승선(대선) 전에만 같이 갈 수 있어도 된다고 본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타당한 비판은 빨리 받아들이는 우리 내부의 자세이다. 내부에서 혁신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출발선을 맞추자고 하면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

지분을 나눈다는 것도 국민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일이다. 제 세력이 기득권에 매몰되지 않고 모두 다 힘을 합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자는데 동의하지만, 실패한 실험을 전가의 보도처럼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열린우리당을 추억처럼 되뇌여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은 받아들이지만 주장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자신들의 방식대로 스타트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한 틀이 돼 돌파하자는 것이다. 무리하게 서로가 당장 고칠 수 없는 부분들을 비판만 하고 있으면 손실만 가져온다.

프레시안: '화해와 통합'을 거론하며 이명박 대통령은 행정구역, 선거제도 개편 등을 과제로 던졌는데 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은?

김부겸: 국면전환용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민주당이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의 운영 틀인 행정구역과 선거구제 개편 등은 민주당이 주장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했으니 못 받겠다는 것은 소아병적 태도다. 다만 이 대통령이 진정성이 있느냐이다. 개헌까지 이어지는 것인데 국면돌파용이면 실패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미 17대 국회에서 도장만 안 찍었을 뿐이지 여야 합의로 내놓은 안도 있다. 특정 정치집단의 호오에 관계없이 지금부터 논의를 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의 정치개혁특위가 지방선거만 염두하고 구성돼 있는데 틀을 확대해 논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서 상주노릇은 민주당이 했는데,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김부겸: 국민정서상 조문정국 자체가 정쟁을 가라앉힌 분위기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장 요구를 받아들여 조금 양보한 것처럼 보이고, 큰 무리 없이 국장이 끝났다. 민주당이 상주노릇을 했지만 지지율 상승은 무리한 기대다. 대통령의 무난한 대응이 정치적 지지로 나타나는 것 같다. 민주당은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고정 지지층, 즉 집토끼들을 찾아왔다고 본다. 민주당 지지율이 10%대에 머물다 서거정국 이후 20% 중반으로 올라섰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새로운 전망을 가진 지지층이 늘지 않는 것 같다. 50대 이상 분들 뿐만 아니라 오히려 30~40대 이하 젊은 층의 지지율이 잘 오르지 않는 것 같다. 이 부분을 정확하게 잘 진단해봐야 한다.

프레시안: 1년이 지난 정세균 체제에 대한 평가를 해보자면? 대안야당과 투쟁야당을 사이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김부겸: 대안야당과 투쟁야당이라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이지만 야당이 (국회에서) 존재 이유를 부정당하면 투쟁야당이 될 수밖에 없다. 미디어법에 대한 정부여당의 오만한 강공은 투쟁야당이 될 수밖에 없게 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 시킨 것은 정세균 대표의 공이다. 다만 우리에게 새로운 기대나 전망을 거는 세대들도 모아야 하는데, 정체되고 있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데 한계에 부닥친 것 같다. 하지만 정 대표가 야당으로 바뀐 민주당을 이 정도면 잘 건사했다고 본다.

그런데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전략 문제인데, 구체적 중간 목표들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에는 뭘 얻기 위해 어떻게 투쟁을 하겠다는 목표 하에 어떤 활동을 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됐으면 한다. 또 하나는 의견수렴 문제이다. 국회의원들이라면 각자 전투를 수행할만한 역량은 있다. 그러나 전략이나 전술변화에 대한 상의가 부족하다. 투쟁을 하라면 하겠는데 어디까지 가고 어떻게 싸워야 하고 중간 목표는 무엇인가 잘 소통되지 않는 것 같다. 적극적인 가치와 깃발을 만들어 오래 싸우기 위해서는 이 점을 정 대표가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등원 결정이 불가피한 측면은 인정되나 패배적인 인상을 남긴다. 왜 이 시점에서 등원을 결정했어야 하는지?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5가지 요구조건을 걸었으나 하나도 받지 못하고 등원했고, 등원 후 미디어법이 통과돼 다시 장외에 나섰으나 역시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전격 등원을 선언했다. 이래서 다시 장외투쟁이라는 얘기를 꺼낼 수 있겠나. 양치기 소년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김부겸: 아픈 지적이다. 다만 정 대표가 이런 쑥스러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인해해야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세가 제1야당에게 요구하는 것이 장외로만 떠도는 것을 말하는 것 같진 않다. 국민들의 원성과 현안들이 쌓여 있다. 권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의회라는 공간을 포기하고 방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양치기 소년'이라는 말까지 듣게 된 데에는 전략 전술이 잘못된 점도 있다. 강경한 흐름이 내부의 토론을 막은 측면이 있다. 의회의 활용 방법이 많은데 너무 말들이 앞서나갔다. 과잉기대는 실망으로 되돌아오고 함께 투쟁했던 이들로부터 배신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국민들에게는 지략이 부족한 집단으로 비친다. 그 점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과거 재야의 훌륭한 지도자를 보면 국민들이 따라올 수 있는 수준만큼의 투쟁을 전개했고 2안, 3안을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투쟁을 주도했던 분들은 경험이 부족했다. 우리가 미디어법만 해도 작년 12월말에 치열한 싸움 끝에 방어를 해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함께 싸운 분들에게 패배감만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이런 부분들에 대해 투쟁에 동참한 세력들과 오해를 씻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목표를 재설정하기 위한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덧붙이면 한나라당이 의회 내에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너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의회로 대표되는 정치 자체에 시니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조건을 고려해 투쟁을 기획할 책임은 제1야당인 민주당에 있다. 정세균 대표의 '원내외 병행투쟁'이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다. 다만 허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치밀한 평가와 원내외 상호 소통이 필요하다. 목표설정도 필수다.

프레시안: 과거와 달리 민주당이 시민사회진영과 연대의 폭이 넓지 못한 까닭은? 진보야당과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김부겸: 시민사회와의 연대 폭이 넓지 못하다는 것은 민생에도 소홀했다는 지적인데 지금도 각 수준별 사안별로 긴밀한 협의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과거 여당 시절에 비해 폭넓은 연대는 어렵다. 야당이 갖고 있는 정책 실현 수단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수준의 투쟁을 하더라도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양김과 같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있을 때는 전략과 전술 운용을 막 바꿔도 재야나 시민사회가 묵묵히 따라주고 동의했다.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다. 소통하고 대화하는 과정은 드러나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해야 한다. 그 정도는 하고 있지만 민주당의 아젠다 설정이 결과적으로 폭이 좁았다는 비판은 받아들여야 한다. 정기국회라는 장을 활용해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삶에 관한 문제에 대한 투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진보야당과는 현재의 사안별 공동투쟁이 최선이라고 본다. 진보야당이 생각하는 문제의 원인과 처방, 궁극적 해결책은 민주당과 차이가 있다. 그런 차이를 굳이 부정할 수 없고 차이만 부각시킬 수도 없다. 다만 진보야당들도 점점 자신들이 성장해나간다는 확신이 있을테니, 과거와 같은 (민주당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반MB' 진영 내에서의 지나친 헤게모니 쟁탈전에서는 벗어났으면 좋겠다.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야 하듯이 민주당이 처한 현실적 조건도 무시하면 안 된다. 그걸 다 인정하고도 민주당과 진보야당들이 연대해야 할 일이 많다.

프레시안: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민생경제의 후퇴를 목도하는 국민적인 분노가 응축돼 있음에도 민주당을 경유해 표출되지 않는 이유는?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은?

김부겸: 아젠다 설정 순위에서 민생 아젠다를 전면에 내세웠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많은 국민들이 답답해하는 것은 경제 살리겠다고 이명박 정부를 뽑았지만 민생이 계속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좀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나 비전을 못 보여주고 있다. 과거 포퓰리즘 정권 때문이라는데 자신들도 구체적 대안을 못 내놓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우리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국민들의 분노와 여론을 모아냈으면 상당 부분 국민들이 동의하고 동참해줬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작년 촛불시위 이후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통로가 다양해졌다. 인터넷 등의 공간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자연스레 광장에 나와 모인다. 굳이 기존 정당에 매력을 느낄 필요가 없어졌다. 자신의 정치적 의사가 정당에 투사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정치체제는 대의 민주주의다. 아직도 이를 완전히 대체할만한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낸 예가 없다. 참여 에너지 자체를 소진시켜버리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기왕 대의제의 여러 장점과 효율을 살려나가는 방법을 같이 찾았으면 한다. 분노를 표출하거나 자기들 나름의 비평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의회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에너지 표출에만 그치지 않고 제도적 장치에 의한 산물로 연결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프레시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한 세대의 종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새 시대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김부겸: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시기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뚜렷한 전선이 있었다. 지도자의 굳센 의지와 지도자 나름의 중기적 전망만 뚜렷이 제시하면 전선 자체가 동요하지 않고 죽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은 무려 30년 이상 최선봉의 자리를 지켰고, 거기에서 얻은 민중들의 신뢰와 존경을 기초로 민주개혁진영을 이끌어 왔다.

놀라운 것은 자기 세대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의 변화도 꿰뚫어 봤다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견 하에 전통적인 대규모 산업 조직과 정책으로는 다가오는 시대의 특성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안전망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남북이 적대시하는 가운데에서는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몇몇 탁월한 안목의 증거는 반공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던 70년대에도 4대국 안전보장론을 내놨다는 것이다. 선지자적 혜안이다. 대중경제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중이 그 시절보다 정보를 접하는 양과 폭이 비교가 안 된다. 소통의 역량도 비교가 안 된다. 과거처럼 대중이 절대적 지도자의 판단을 추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뛰어난 리더가 나오면 좋겠지만 열린 세상에서 그런 카리스마를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치 리더들 자신과 대중 사이의 관계와 소통 등 공존하는 방식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정치지도자와 국민의 소통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지도하고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한 사회의 중장기적 비전을 두고 소통해야 한다.

진지하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왜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신 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존경을 받느냐 하는 것이다. 이 분은 극한 상황까지 몰려갔었다. 80년대 중반 정치 해금이 된 후 연설할 때 광주민주항쟁 얘기를 하며 울부짖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광주에 부채가 있는 세대들에게는 그 정서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십수년을 더 고생해 대통령이 되신 후에도 정치보복이나 한 풀이를 하지 않았다. 여기서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우리 사회의 어느 한 정치세력이 상대 집단을 배타적으로 통치하는 단계를 넘었다는 것이다. 집권전략적인 측면이 있지만 김종필 대표와 권력을 나눴다. 노사정 합의도 시도했다. 다양한 형태의 권력 나눔과 사회적 대화를 통해 당신께서는 대한민국 공동체 내에서 한 세력이 타 세력을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어느 한 세력이 권력을 독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공존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가진 것이다. 결국 국민들은 시대정신을 가진 자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당에 필요한 것이 그런 안목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화합과 통합의 정신을 따르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국민의 정치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고 소통과 상생에 대한 전망들이 쌓여가야 우리에게 그런 기회가 올 수 있고, 기회가 왔을 때 성공하는 집단이 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 IMF라는 위기 상황이 아니고 객관적 경제 상황이 더 좋은 시기였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사적 흐름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양극화 등에 대해 한국적 극복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레시안: 70~80년대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겪었던 세대들과 촛불시위 세대들 사이에는 '민주주의 후퇴'나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 대한 정서적 괴리감이 있는 것 같다.

김부겸: 세대를 탓할 것은 아니다. 만들어 내야 한다. 세대의 역사적 경험 차이, 삶에 대한 전망 같은 것을 봤을 때 젊은 세대들이 더 오픈 마인드적이다. 시야가 상당히 객관적이다. 이러한 객관적 사람들마저도 분노하게 만드는 사회 현실에 대해 이들이 사회적 성취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은 대학 시절부터 취업문제 등 사회경제적 조건이 불안정해 삶의 긴 플랜 자체가 불확실하다. 이들은 당장 이런 것이 급한데 도덕 강의만 하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이들의 불안과 고민을 정확하게 읽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프레시안: 뉴민주당플랜을 다시 짜고 있다. 어떤 시대정신이 담겨야 하나.

김부겸: 솔직하게 토론해야 한다. 공동체의 위기는 무엇인지, 정당이 요구받는 것은 무엇인지가 아니라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아젠다를 주장해 논의를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정직하게 토론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어찌 우리 당만의 문제이겠는가. 정치적인 선진국들도 사민주의 국가들은 신자유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있고, 신자유주의 국가들도 사민주의적 요소를 채택하고 있다. 아직 성공적인 프로그램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가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들, 문화적 유산, 역사적 경험 등을 정직하게 토론하고 합의하며 국민과 소통해 얻는 결과물이어야 한다. 더디 걸려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루 아침에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식으로 기획된 정치적 아젠다가 나오면 어려워진다.

또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그들의 삶 자체가 대중들 삶의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연계돼 있었다. 그들은 대중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지도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접근과 노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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