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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교사로 살아갈 조남규 선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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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스팔트 교사로 살아갈 조남규 선생에게"

[기고] "영혼 없는 권력의 미친 칼날을 맞으며"

교사들 169명의 목을 쳐낸다고? 도대체 이게 말이야, 당나귀야! 아무렇게나 내뱉으면 그게 다 말이 되고 기정사실이 되는 건가? 지난 일요일에 교과부의 어처구니없는 발표를 접하고, 아무리 막 가는 장권이라지만 상식도 원칙도 없는 행태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어요. 분노와 허탈감에 잠시 멍한 상태로 있다가 불현듯 조남규 선생, 당신이 떠오르더군요.

작년까지 오남중학교에서 5년을 함께 근무하고 올해 당신과 나는 서로 다른 학교로 옮겼지요. 그러다가 오남에서 함께 한 분회원들이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우니 독서모임이라도 만들어서 가끔 만나자고 했고, 그래서 지난달에 첫 모임을 가졌어요. 그게 조남규 선생 얼굴을 본 가장 최근의 일이었나요? 아니지, 5월 16일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교사대회장에서 한 번 더 만났군요.

돌이켜 보니 생각이 나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나서 얼마 안 된 시점에 당신이 민노당에 후원금 내던 걸 끊었다며, 학교에서 잘리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던 말! 이명박 정권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랬노라며 스스로 비겁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책망해 가면서 하던 말! 그랬는데, 결국 그 일로 이번에 해임자 명단에 올랐더군요. 2006년 1월부터 2007년 1월까지 한 달에 1만 원씩 겨우 13만 원 낸 걸 가지고 교사의 목을 자르겠다니!

지방공무원법에 따르면 "제73조의2(징계 및 징계부가금 부과 사유의 시효) ① 징계의결 등의 요구는 징계 등의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2년(금품 및 향응 수수, 공금의 횡령·유용의 경우에는 5년)이 지나면 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더군요.

그러니 후원금을 끊은 지 2년이 넘는 당신은 애초에 징계 대상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런 경우가 대상자 중 절반이 넘는데도, 교과부는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망나니의 칼날을 거둬들일 자세가 아닙니다. 조폭의 행태나 다름없는 그들의 행위를 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걸까요?

조남규 선생, 엊그제 당신이 전교조 남부지회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읽었어요.

직위해제 한다는데, 분노하고 어떻게 투쟁할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수행평가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큰일 났네……
우리 반 애들 수련회 가는 거 돈 없어서 지원하기로 한 애들 챙겨야 하는데……
5월말 월말 통계도 내놓고 가야 하겠네……
이것들 병원 진단서며 언제 내라고 하나……
우리 학교 '맹자 읽기'는 매주 목요일인데, 이걸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학습 부진아 반 하라고 해서 그제 처음으로 4명 와서 시작했는데, 이게 유지가 될라나 말라나……
3차 폭자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열어야 하는데, 이걸 내가 기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짐은 언제 싸나…… 완전히 떠날 걸로 생각하고 싸야 하나…… 며칠 쉰다고 생각하고 싸야 하나……
컴퓨터 하드도 좀 정리해야겠네
아이고 이번 주말에 혼자 나와 일해야겠네
헐…… 이런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그냥 가슴이 먹먹해지는 게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조남규 선생, 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겁니까? 울분이라도 토해놓는 글이었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 텐데, 바보같이 천상 선생 티를 내고 말다니요. 그래요. 5년이나 한솥밥을 먹었으니 당신이 어떤 사람이란 걸 내가 잘 알지요. 전교조 활동으로 지금까지 견책을 3번이나 받을 정도로 열성적인 활동가인 동시에, 누구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여린 마음을 지닌 교사라는 걸.

뒷산회, 생각납니까? 교사들끼리 동호회를 만들 때 조합원 선생님들 몇 사람이 '뒷산회'란 이름의 동호회를 만들어서 어울리곤 했지요. 동호회 활동을 하는 날이면 뒷산을 넘어가서 거기 호젓하게 자리잡은 '항동 순두부집'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나누던 이야기들! 아, 그 흥감스러운 기억들이라니! 2007년 이맘때쯤이었을 거예요.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돌아가면서 시를 한 편씩 읊었지요. 나는 내가 지은 시를 읊었던 것 같고, 뒷산회의 주동자인 서동석 선생은 정희성 시인의 '꽃자리'라는 시를 읊었어요. 그리고 조남규 선생, 당신은 역시 정희성 시인의 '봄소식'을 읊었지요.

당신을 생각하며 그 시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봅니다.

이제 내 시에 쓰인
봄이니 겨울이니 하는 말로
시대 상황을 연상치 마라
내 이미 세월을 잊은 지 오래
세상은 망해가는데
나는 사랑을 시작했네
저 산에도 봄이 오려는지
아아, 수런대는 소리


해석이 참 여러 갈래로 나올 수 있는 시인데, 당신은 하필이면 왜 그 시에 마음이 갔을까요? 내 짐작이긴 하지만 '세상은 망해 가는데/ 나는 사랑을 시작했네'라는 구절에 끌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역사를 가르치는 당신은 누구보다 시를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시를 찾아 읽길 즐기고, 아이들이 돌아간 오후에는 빈 교실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요.

사랑이라는 말이 주는 다양한 함의를 생각해 봅니다. 조남규 선생, 당신은 참 사랑하는 대상이 많았어요. 그중에 전교조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학생들을 사랑하고, 동료교사들을 사랑하고,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을 사랑하고, 가난한 진보정당을 사랑했어요. 그리고 지금 그 사랑이 빌미가 되어 어처구니없는 고초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사랑의 대가를 만만치 않게 치러야 하는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군요.

조남규 선생, 영일이(가명) 생각나지요? 기륭전자 투쟁 중에 암에 걸려 사망한 권명희 씨의 아들이자 당신이 직접 가르친 제자였잖아요. 친구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못해 종종 싸우기도 하고, 친구들이 약을 올리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를 폭발시키곤 하는데, 당신은 그 분노에 한 같은 게 서려 있는 것 같다고 했지요. 아이들이 피하고, 선생님들도 다루기 어려워하던 그 아이를 당신은 참 다정하게 잘 대해줬어요. 영일이도 그런 당신을 무척이나 좋아하면서 따랐지요. 어디 영일이뿐이던가요. 당신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참 좋았고, 수업을 재미있게 한다고 소문이 났었지요. 생물학적으로는 비록 당신이 내 후배지만 그런 당신이 참 부러우면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조남규 선생, 당신은 늘 갈등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단호한 투사가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해 늘 고뇌하고, 그 때문에 마음앓이를 하곤 했어요. 수년 전 나와 여운모 선생님에게 당신의 진로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하던 걸 기억해요. 오남에서 생활할 때도 당신은 가끔씩 지친 모습을 보였고, 저러다 우울증이라도 걸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던 적도 있었어요. 당신이 늘 메고 다니던 묵직한 배낭처럼, 당신은 시대가 요구하는 짐을 마다않고 지고 다니면서도 그게 당신에게 합당한 일인지 언제나 고민하며 지금껏 실천의 길을 밟아왔어요.
▲ 1989년 전교조 합법화를 요구하다 연행되는 해직 교사들. 21년이 지난 지금, 이런 풍경을 다시 보게 됐다. ⓒ전교조

작금의 교육대학살 사태가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 때문에 일으킨 거라는 걸 모를 사람이 있나요? 그러니 누가 교육을 정치에 연결시키며 중립성을 해치고 있는 건가요? 자신들이 스스로 교육을 정치의 시녀로 만들면서 교사들의 정치행위를(그것도 간접적인 후원행위를) 문제 삼는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에 말이 아닌 당나귀 놀음을 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사태를 이처럼 끌고 오는 과정에서 교과부 관료들도 잠시나마 고뇌와 갈등이란 걸 했을까요? 그들의 머리 속에는 그런 낱말 자체가 저장돼 있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영혼이란 게 없는 존재들이라는 거지요.

아, 조남규 선생! 학부모 사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학부모 신문 <참깨>를 만들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던 모습, 분회 엠티 갔을 때 어항으로 천렵을 하며 즐거워하던 모습, 분회 참실(참교육실천보고대회) 행사 때 노래를 부르던 모습, 가끔씩 남교사 휴게실에서 지친 모습으로 누워 쉬던 모습…. 하나 같이 짠한 영상이 되어 스쳐갑니다.

교과부에서 직위해제를 잠시 늦출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해서 빼든 칼날을 다시 칼집에 넣을 것 같지는 않아요. 앞으로 교사로서 당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당분간 아스팔트 위의 교사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남규 선생, 당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교과부가 아니라 당신 자신입니다. 교과부가 지금 당장 교사의 직을 박탈할 수는 있어도 당신의 순수한 영혼까지 어쩌지는 못합니다.

지금은 절망마저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참혹한 시대지만,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는 한 당신은 승리자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의미는 내가 부여하고 우리가 결정하는 겁니다. 영혼이 없는 저들이 만든 틀에 갇히지 않을 때, 우리는 이미 자유인으로 스스로의 삶을 완성해 가는 도정에 들어서 있는 겁니다.

참, 6월 독서모임에서 만나 토론하기로 한 게 <쫓기는 아이>라는 제목의 책이지요? 이래저래 힘들고 정신없다고 해서 안 읽고 오면 안 돼요. 토론 끝나고 막걸리 한잔 나누는 기쁨을 생각하며,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길을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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