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 대법원은 정리해고가 무효라라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회사는 5월 31일자로 또다시 2차 해고를 통보했다. 법도 소용없는 셈이다. 7월 23일자로 강제해고 2000일을 맞은 콜트‧콜텍 노동자들. 이런 그들을 돕고자 국내 문화예술가들은 7월 15일부터 인천 부평구의 비어 있는 콜트 공장을 점거해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텍전시회'를 열고 있다. 30일로 전시회는 마무리됐다. 일명 '스쾃'이다.
입주작가는 성효숙, 전진경, 정윤희, 상덕, 황승미, 전시작가는 19명과 그룹 '빨간뻔데기', '약손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시회 이후에도 지속해서 이곳에서 작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편집자>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지 않는 한 그것이 삶의 목표라는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다." 체게바라
체게바라의 이 말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2000일 하고도 열흘이 넘도록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이다. 예술가로 사회에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좌절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필자로서는 존재와 의지가 관철되지 않는 세상에서 오랜 시간 동안 투쟁을 할 수 있는 그들의 강인한 의지에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 공간인 부평 콜트악기 공장은 얼마 전 건물주가 바뀌었다. 새로운 건물주는 노동자들에게 공장 밖으로 나가기를 종용하고 있으며 용역들을 고용하여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제를 넘어,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혁명가를 떠올리게 한다. 부당해고라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 하는 혁명가들 말이다.
예술가, 예술적 행위, 연대, 스쾃
필자는 3개월 전에 콜트악기 공장에 작업실을 차렸다. 먼지 쌓인 공장 내부의 공간 배치와 멈춰버린 기계들은 무엇인가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불러 일으켰으며, '예술로 즐겁게 투쟁하며 희망을 말하자'는 발랄한 의지 또한 발동시켰다. 더불어 거창한 꿈일지는 모르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투쟁 현장에 예술적 행위로 개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술적 점거행위-스쾃의 일환으로 작업실을 차리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위해 용역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에게 퇴각을 종용하는 상황들은 필자가 생각했던 여러 가치들 보다 '저항의 공간'을 함께 지키는 연대 행위를 더욱 중요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의 일련의 예술적 행위들은 착취당하는 노동의 현실과 괴리감이 있었다. 공장에서 전시를 열고 고작 두세 달 함께 지냈다고 해서 지난 5년간 꿋꿋이 버티고 있는 노동자들 앞에서 어떻게 멋진 예술행위를 이야기하고, 예술로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적다가 지웠다가 반복하기를 여러 번하고 있는 이번 글쓰기의 과정을 통해 예술가로서 또는 한 개인으로서 겪었던 혼란들을 정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 공장에서 수집한 물건. ⓒ정윤희 |
작업
이곳에서 나의 관심은 '사회적 문제에 예술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전시는 노동자들과 함께 협업으로 이루어진 아카이브 전시와 점거 기간의 기록, 그리고 협업의 과정에서 가졌던 개인적인 소회를 시각 이미지로 재현한 영상 작업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으며, 공간을 나누어 필자의 실천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어두운 공장 안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모으는 일은 마치 노동자의 낯선 일상을 추적하는 것 같았다. 낡은 작업복, 만들던 기타의 잔해, 분진을 막던 얇은 마스크, 노동시간을 담은 출퇴근 카드, 허울뿐인 공로패, 생산량을 독려하던 슬로건, 먼지가 묻은 얼굴을 확인하던 거울 등을 모았다. 공장안의 달력은 모두 공장이 문을 닫던 2008년 8월에 멈춰있었고 마시던 커피도 옷도 가족의 앨범도 먼지와 곰팡이가 싸인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거기엔 사람만 없었다.
자료전시 '노동: 인권: 콜트콜텍 Archive 展'은 콜트‧콜텍의 방종운, 이인근, 심자섭 씨와의 심층인터뷰, 자료 확인 분석, 시각적 이미지로 재현작업 등에서 협업의 과정을 거쳤다. 당초 노동자들의 참여는 심층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으로 상정했었지만, 어느 날 콜트의 방종운 지회장이 지난 5년간 부당해고를 증명하기 위해서 서류들을 보관해왔다는 얘기를 듣고 방 지회장이 전시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권유했다. 방 지회장은 다행히 흔쾌히 수락하셨고 조합원분들도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해주셨다. 특히 방 지회장은 전시를 하기로 결정한 그 날부터 자신이 모은 서류와 사진을 꼼꼼히 챙겨 가져다 주셨다. 산더미 같은 서류는 그의 지난한 투쟁의 역사가 녹아있었다.
현장에 어떤 식으로 개입해야 하는지, 노동자가 예술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왔던 필자는 이번 작업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 수 있었다. 노동자들과 함께 새긴 시간의 깊이와 서로에 대한 관심, 그리고 예술을 통해 발언 하고자는 노동자들의 강한 의지가 예술작업에 투여될 때에 예술가와 노동가, 예술과 노동자가 의미있는 일치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노동: 인권: 콜트 콜텍 Archive展'. ⓒ정윤희 |
인정 투쟁의 장소
참여미술이나 커뮤니티아트라고 부르는 예술가와 참여자간 관계 맺기 과정은 상대적으로 예술가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동안 예술가가 제안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수행하는 형식이었다면, 이번 작업은 자료를 확인하고 연대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삶과 투쟁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재현하고 확장시키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행위는 현장예술의 다른 맥락을 제시한다. 노동현장(공장, 농성장)에서 노동자-예술가의 주체적인 행위는 예술의 사회적 실천으로서, '발언'의 도구로서의 예술 행위를 실현할 수 있었다.
콜트‧콜텍 농성장은 자본주의가 만드는 배제와 억압의 헤게모니에 저항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인정 투쟁의 장소이자 일상적인 투쟁의 장소이다. 사람은 비록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자신을 규정 하지만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적 시선, 자신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인정 투쟁을 한다.
이곳에서 예술가 또한 자신의 인정 투쟁을 위한 행위로서 작업실을 열고 전시에 참여하였다. 노동자의 투쟁공간임을 인식하여 노동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거나 노동자들이 작업에 주체적으로 개입한 경우 그리고 공간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온전히 예술가의 영감과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작업등은 예술가 각각의 예술적 태도와 행위를 드러냈다.
필자는 노동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며 노동자들이 작업에 주체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전시라는 시각 예술 매체가 발언의 행위로서 인정 투쟁과 연관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삶을 이야기하고 투쟁 연대기를 채워 갔다. 전시가 열리자 관람객에게 전시를 설명하는 도슨트를 자처하고 자료들을 가져와 연대기를 빼곡하게 채웠다. 또한 작업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콜트에서 일을 했던 한 아주머니는 익숙하던 물건이 벽에 걸리고 작품이 되어 자신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며 집에 보관하던 먼지 쌓인 작업복을 가져와 함께 연대기를 만들었다.
▲ 2012년 6월 16일 용역침탈 사건 이후 콜트 콜텍 농성장에서의 문화행동. ⓒ정윤희 |
정작의 하찮은 점령
노동자들은 담담하게 공장의 벽에 하나씩 기록들을 채워나갔지만 그 과정에서 당시의 분노를 부르고 외로움을 기억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시간의 의미를 다시 호명하여 의지를 굳건히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방 지회장은 필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한 적이 있지만 오히려 필자는 곁에서 눈물을, 역사를, 서사를 듣는 영광을 누렸다.
필자는 몸이 건강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지만 비실비실 그렇게 그 곳을 찾아갔다. 논문을 쓰고 있던 터라 시간도 늘 부족했고 백수여서 음료수 하나 사갈 돈도 없었다. 성격도 나빠 화도 잘 낸다. 다행히 예술가라는 특권으로 그것을 '정작의 하찮은 점령'이라고 프로젝트명도 붙이고 그렇게 비실비실 꾸준히 농성장을 간다. '나름 예술하는 것으로' 하고 말이다.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게임을 하고 별일이 없어도 그렇게 간다. 콜트‧콜텍 농성장은 서로를 걱정하는 집처럼 그 곳은 나에게는 늘 좋은 곳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낭만적일지도 모르지만 좋은 것을 생각하고 좋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좋은 것을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지난 몇 년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왔다. 콜트‧콜텍의 노동자들과 더불어 자본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로, 노래로, 그림으로 노동자들과 함께 도시의 소외된 공간을 문화투쟁의 공간으로 변화 시켜왔다. 며칠 전에도 용역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모였고 여느 때처럼 노래하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며 서로를 지지했다. 착취당하는 자본주의적 삶에 신물 난다면 그러한 의지를 지지받고 싶다면 서울역에서 버스타고 50분, 홍대에서 30분 걸리는 인천 초입의 콜트‧콜텍 농성장에 들르길 권유하고 싶다. 그리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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