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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행 준비 중? '아웃백'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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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행 준비 중? '아웃백'으로 가라!

[프레시안 books]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3년 전 퍼스의 한 헌책방에 들렀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 이 나라를 가장 잘 설명한 책을 찾을 목적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몇 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허름한 외관의 서점. 케케묵은 책 냄새가 낯선 곳에 대한 긴장감을 풀어줬다. 반나절 이상 허비한 서점 순례 끝에 왠지 모를 기대감에 휩싸였다.

그러한 기대도 잠시, 최대한 집중해 서가를 둘러 봤지만 시선을 끄는 책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인상 좋은 주인 아주머니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내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손끝으로 서가 한구석을 가리켰다. 한손에 딱 잡히는 크기에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바위인 울룰루(에어즈락)와 캥거루가 표지 삽화로 그려진 빌 브라이슨의 였다.

바로 이 책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이미숙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의 원문이다. 12년 전 출간된 책이지만 여전히 헌책방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매대에 있었다.

빌 브라이슨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반가웠다. 단순한 도보 여행기로 끝났을 수도 있는 애팔래치아 트래킹 이야기에 역사, 과학, 사회상을 넣고 버무려 진한 감동을 안겨줬던 이 저자에 대한 확신 같은 게 있었다. 일단 제목부터 상상력을 자극했다. 지구 반대편(DOWN UNDER)이라니!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여행기 시리즈답지 않은 간결한 제목이다.


▲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빌 브라이슨 지음, 이미숙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랜덤하우스코리아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지인에게 'DOWN UNDER'의 사전적 의미를 듣고서야 비로소 궁금증이 해소됐다. 수억 년 동안 지구 반대편에서 고립된 진화의 길을 걸어온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한 제목은 없을 것이다. 평생을 북반구 대륙에서 살아온 저자와 대다수 사람에게 오스트레일리아는 첫 만남부터 지구 반대편인 게 당연했다. 야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공항에 도착하면 뒤집혀 있는 전갈자리와 오리온자리가 북반구의 여행자를 처음으로 맞이한다.

누가 그랬던가? 좋은 글의 80퍼센트는 발이 쓴다고.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까지 오스트레일리아를 다섯 번 방문했지만 여행기 출판을 미뤘다. 진정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모습을 간직한 '아웃백'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스트레일리아 인 사이에서도 아웃백의 경계는 분명치 않다.

대다수 오스트레일리아 인이 해안가에 밀집해 살면서 등지고 있는 버려진 황무지를 '아웃백(Outback)' 또는 '부시(Bush)'라고 부르지만, 누구도 어디부터가 아웃백의 시작이고 끝인지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아웃백은 오스트레일리아 인에게 일종의 신화이고 꿈이며, 영혼이다. 대다수 오스트레일리아 인은 진정한 자신의 나라를 엿보려면 누구도 살지 않을 공허한 아웃백으로 가보라고 권한다.

저자도 처음엔 이런 말을 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이나 아름다운 해변을 추천할 거라는 고정 관념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몸소 느끼기 위해 시드니와 퍼스를 연결하는 인디언 퍼시픽 철도를 타고 대륙 횡단 여행을 감행한다. 4370킬로미터를 달리는 이 기차는 서너 군데 기착점을 빼곤 닷새 동안 끝이 없을 것 같은 황무지를 지난다.

저자의 이번 여정은 기존의 여정과는 다르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 풍경, 여유보다 끝도 없이 펼쳐진 오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궁금증 중에서 아웃백의 크기가 단연 첫 번째다. 도대체 아웃백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오스트레일리아는 지금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드넓은 지역이 황무지로 남아있다. 그 면적은 짐작하건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70퍼센트가 넘는 5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미국 텍사스 주를 그곳으로 옮겨 놓으면 아마도 망망대해의 작은 섬처럼 보일 것이다.

인구 밀도가 가장 작은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한 주(洲)가 남한 면적의 서른 배와 맞먹는다. 저자는 휴식을 위해 기차가 멈춘 사이 짬을 내 둘러본 오지 마을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열기와 먼지뿐인 무기력한 세상에 살고 있다.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 만한 인내심과 용기를 갖춘 사람을 발견하려면 아마 이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가 이곳을 방문한 때가 1996년도임을 감안해도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저자의 말에서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다. 10여 년 전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이 화성 탐사를 위한 최적의 연구지로 아웃백을 찾고 있다. 이곳이 지구상에서 화성과 지형이 가장 비슷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달로 보내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이 광활한 공간의 단조로움을 깨뜨리는 건 캥거루 몇 마리와 낙타, 그리고 가끔 오토바이 탄 카우보이가 전부다.

여정의 중반부로 가면서 그의 전매특허가 된 집요함이 엿보인다. 여행객이 여행 안내서를 볼 때 그는 방문국의 역사책을 탐독하고 사회상의 이면을 끄집어낸다.

알다시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역사는 유배지에서 출발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언제 최초로 유럽인의 눈에 띄었는지는 모르지만, 1770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케이프요크 북쪽의 토러스 해협에 있는 작은 섬에 상륙했다고 전해진다. 마침 죄수들의 유배지를 찾고 있던 영국이 영국 왕의 명의로 대륙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 뒤로 100년 남짓 유배지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1850년대의 골드러시를 시작으로 유배지에서 독립적인 국가의 면모를 갖춘다. 여기까지가 공개된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다. 황금이 발견되자 수많은 사람이 부를 찾아 오스트레일리아로 몰려들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저자는 황금 채굴을 놓고 벌어진 역사의 불편한 진실부터 유럽인의 등장으로 잊혀진 오스트레일리아의 토착 원주민 애보리진의 흔적을 차근차근 되짚는다. 유럽인의 세력이 확장되자 애보리진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토지와 생명 그리고 문화를 박탈당한다. 저자는 역사엔 기록되지 않았지만 대량 학살이 벌어진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수소문 끝에 원주민 전문가를 만나 가려진 역사의 진실을 파헤친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울룰루를 찾아가는 여정에서도 저자의 시선은 남다르다. 사막의 오아시스로 알려진 앨리스스프링스에서 들린 허름한 박물관에서 당대 최고의 비행사가 추락 당시 몰던 비행기의 잔해를 발견하는가 하면, 여전히 고단한 애보리진의 삶을 통해 그들의 삶을 진심으로 동정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또 황량함의 절정을 보여준 거대한 바위를 마주하며 존재의 깊은 곳, 내면과 만난다.

저자의 여행이 빛나는 이유는 마지막 순간에도 드러난다. 그는 여전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의 진면목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는 우연히 지질학자로부터 스트로마톨라이트의 존재를 접하고 까닭 없이 무시됐던 그 실체를 직접 찾아 나선다. 서오스트레일리아의 샤크 만은 지구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에게 아주 특별한 곳이다. 지구상에서 35억 년 전의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지구 대기에 산소를 만든 미생물이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불리는 버섯 모양의 바위에 살면서 숨 쉬고 있다.

20억 년 동안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대기 중의 산소 농도를 20퍼센트까지 증가시킨 덕분에 다른 생명체를 포함해 지금의 인간까지 진화해 올 수 있었다. 실제로 현장에 가보면 'In the Beginning'이란 글귀가 적혀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특유의 화려한 문장 대신 "이것은 진정으로 대륙을 건너올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이 진정한 아웃백에 대한 유일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오스트레일리아는 참으로 흥미로운 곳이다. 내가 할 말도 이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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