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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위험사회'…당신은 안전한가?

[안종주의 '위험사회'] 현대는 과연 위험사회인가?

안종주 전국석면환경연합회 회장 2010.06.28 09:53:00

지진, 전염병, 기후 변화, 핵무기, 직업병 등 날마다 각종 위험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안종주 씨가 이런 위험(risk)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칩니다. 각종 위험을 둘러싼 과학 논쟁, 위험을 양산하는 제도·정치, 전문가와 일반인 간의 위험 소통의 문제 등을 살펴보면서 위험사회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에 대비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세를 점검합니다.

안종주 씨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보건학)를 받았습니다. <서울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한겨레>에서 사회부장, 심의위원, 보건복지전문기자(2004년) 등을 지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상임이사 등을 거쳐 현재는 전국석면환경연합회 회장으로 석면의 위험을 공론화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안종주 씨의 '위험사회'는 격주 월요일 또 각종 위험이 화제가 될 때마다 독자 여러분을 만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현대인들은 과거보다 더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은 과거보다 더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 평균수명만 놓고 본다면 덜 위험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해야겠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녀 모두 계속 큰 폭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개인이 느끼기는 날이 갈수록 더 위험한 사회가 되고 있다. 증가하는 암, 교통사고, 유해 식품, 산재와 직업병, 환경오염, 농약과 살충제, 실내 공기 오염, 사이코패스와 연쇄 살인 범죄, 아동 성범죄를 포함한 성범죄의 증가, 자살, 테러, 인터넷 중독, 신종플루와 같은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과 확산 등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산업과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은 과거 인간이 매우 위험하다고 느낀 많은 것들을 위험하지 않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예를 들어 우리 조상들은 장티푸스, 콜레라와 두창(천연두), 소아마비 등과 같은 각종 전염병의 희생물이 됐다. 이러한 역병은 그 원인을 잘 몰라 때론 괴질로 불리며 공동체를 파괴했다.

중세 유럽을 휩쓴 페스트(흑사병)는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몰살시켰다고 하니 목숨이 붙어있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루하루를 절망과 위험 속에 보냈을 터이다. 가뭄 등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 일도 잦았다. 페니실린 등 항생제의 개발로 각종 세균 감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수확량이 많은 농작물의 개량으로 식량 증산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오늘날 우리들은 조상들보다 훨씬 오래 살고 있다.

하지만 현대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달은 사회의 위험을 줄이는 데만 기여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조상들은 자동차 사고나 비행기 추락 사고를 염려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와 폐수, 자동차 매연 등 각종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염려하지 않아도 됐다.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위험을 걱정하지 않았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대형 건물과 공장을 짓고, 대형 유조선을 건조하고, 대형 여객선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교통 혁명과 물류 혁명이 이루어졌지만 사고가 날 경우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1984년 인도 보팔에서 터진 유니온카바이드의 농약 공장 가스 누출 사고 참사가 대표적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도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과거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더 풍요롭게 살고 있으면서도 더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느끼는 것은 현대 사회의 위험들이 대부분 예측 불가능하고, 대형화하며, 많은 위험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한 곳에서 발생한 위험들이 발달한 교통과 활발한 지역 간, 국가 간 교류로 삽시간에 퍼져나가며 그 피해 상황이 실시간으로 인터넷과 방송 등 대중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전파돼 위험이 사회적으로 증폭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보기로 몇 년 전 지구촌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지난해 맹위를 떨쳤던 신종플루, 그리고 미국 수입 쇠고기 인간광우병 위험 문제를 둘러싼 촛불 집회 등을 꼽을 수 있다.

▲ 1918~1920년 지구촌을 강타해 5000만 명 가량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임시로 마련된 병동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이런 전염병의 위험은 21세기 들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wikipedia.org

현대 사회의 위험들이 대부분 예측 불가능한 것은 위험 발생에는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서로 복잡하게 얽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복잡계를 설명하는 카오스 이론은 혼돈 현상 속에도 어떤 숨겨진 질서가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 이론이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2년 뒤 뉴욕에서 허리케인으로 나타난다'는 이른바 나비효과로 널리 알려진 이 이론은 1961년 에드워드 로렌츠라는 미국의 기상학자가 기상 모델을 연구하면서 제시한 것으로 지구상 어디에선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비유이다. 과학자들은 복잡계 속에서 어떤 질서를 찾아내려고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날씨와 주식 금융 시장의 변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현대 과학기술과 수학, 컴퓨터 등을 동원해 애를 쓰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지구 전염병(팬데믹·pandemic)으로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도 198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환자가 속속 드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그 뒤 연구 결과 1960년대부터 이미 환자가 발생했으며 아프리카에서 서식하는 녹색원숭이에서 원인 바이러스가 유래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베이징의 나비 날갯짓이 2년 뒤 뉴욕의 허리케인으로 나타난다'는 비유가 에이즈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다만 그 시간만 차이 날 뿐이다. 이처럼 한 지역에서 발생한 단 한 명의 환자나 지역 풍토병이 한 순간에 지구촌 전체를 강타하는 팬데믹이 되는 사례를 사스와 신종플루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경험했다.

우리나라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도 건설 당시 이미 위험을 잉태하고 있었지만 이를 미리 알아차리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인 암도 나비효과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악성중피종, 폐암과 같은 석면 암과 석면폐의 경우도 노출로부터 10~5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뒤 발병하기 때문에 위험 노출이 가져다주는 피해를 미리 알아차리기가 극히 어렵다. 이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은 언제 어떤 인체 부위에서 암이 나타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지낸다. 어떤 이들은 몸에 약간만 이상이 생겨도 혹시 암이 아닐까 하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면서 진단을 받는 등 암 염려증 환자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소한 위험이 엄청난 위험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인간에게 편익만 줄 것으로 보였던 것들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위험으로 다가온 사례를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냉장고 냉매 등으로 엄청난 양이 사용됐던 프레온(염화불화탄소)은 지구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뒤늦게 밝혀져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됐다.

또 석탄과 석유와 더불어 현대 문명을 떠받친 '삼돌(三石)이'로 불린 석면은 과거 '기적의 물질' 또는 '마법의 광물'로 찬사를 받으며 3000종이 넘는 각종 제품에 쓰이다 악성중피종, 석면폐 환자 등 엄청난 피해자를 양산한 뒤 1급 발암 물질임이 드러나 이제는 '침묵의 살인자' '조용한 시한폭탄' '죽음의 먼지' 등의 악명을 날리며 서서히 퇴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플라스틱 등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가소제 구실을 하는 프탈레이트류 화합물과 같은 내분비계장애물질(환경호르몬) 등에 대해 인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는 주요 위험 가운데 하나로 보는 사람도 많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편익과 위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현대인들은 과학자나 기업들이 사람과 생태계에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GMO(유전자재조합식품 또는 유전자변형식품)의 안전성에 여전히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각종 가공 식품에 쓰이는 식품 첨가물은 규격 기준 이내에서는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식품영양학자나 독성학자의 주장도 불신의 대상이 된다.

현대 사회 위험의 특징은 자연재해와 같은 위험이 과거에 견줘 더 자주 발생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 피해 면에서는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거대도시화이고 도시 또는 거대도시 지역에 지진이나 홍수, 태풍, 허리케인 등이 생길 경우 그 피해 또한 엄청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례를 최근 발생한 인도네시아 쓰나미, 미국 카트리나 허리케인, 아이티, 칠레, 중국 강진 피해에서 똑똑히 보고 있다. 이런 대형 자연재해는 영상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됨으로써 보는 이에게 각인효과를 남기며 실제보다 더 위험하게 느끼게 만든다.

또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비인간화, 소외, 경쟁 등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말미암은 병리 현상도 갈수록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도박이나 술, 담배, 마약 등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에 매우 해로운 것에 탐닉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 지난 1월 아이티를 강타한 초대형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 잔해 현장에서 서방 구조요원들이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 한 여성을 구하고 있다. 통신의 발달로 이런 위험을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본 지구촌 사람들은 지진 위험에 대해 더욱 심각하게 느끼게 된다. ⓒwikipedia.org

현대 사회에서는 자연재해와 전염병 등 기존 전통적 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과학기술 발달과 새로운 화학물질 사용 증가 등과 관련한 신종 위험이 공존하고 있다. 또 재해의 규모는 점점 대형화하고 그 피해 또한 대형화하는 추세이다. 오늘날 지구촌은 일일생활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교통과 통신이 혁명적으로 발달했다. 이는 즉각 위험이 확산되고 피해가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현대인으로 하여금 위험사회라고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현대사회가 위험사회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현대사회의 위험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정말 위험한 것은 무엇인지, 이런 위험을 사전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지, 또 어떤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살펴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