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기자가 체험한 조선소 하청 노동 <1>
2012.03.28 08:14:00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1> <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사람에 대한 '무감각'이었다. 조선소 하청 업체에서 일하는 동안 동료 노동자들에게 이걸 자주 느꼈다. 사람이 새로 들어와도, 그리고 나가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별 감흥이 없었다. 옆에 일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관심이 없었다. 자신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끼리도 대화는 거의 없었다. 동료지만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다들 각자 쉬고 각자 밥을 먹었다.

기자가 회사에 들어온 뒤, 친해지기 위해 술을 사겠다고 몇 번 말해 봤지만 다들 무감각했다.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반응이었다. 작업반장은 조선소 들어온 사람 중에 술 사겠다고 한 사람은 처음이라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면접을 볼 때도 그랬다. 무감각 그 자체였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매점에서 단 10분 만에 치러진 면접

취업을 위해 경남 지방을 내려갈 때만 해도 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아무런 기술도, 경력도 없는 30대 중반 남성을 채용해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하청 노동자라곤 하지만, 결국 배 만드는 기술자 아닌가.

하지만 취업을 도와주기로 한 노동운동 단체 활동가는 느긋했다. 이 활동가는 장애만 없으면 누구나 일 할 수 있는 곳이 조선소 하청 업체라며 조금만 기다리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와는 달리 취업은 의외로 쉬웠다. 활동가는 인터넷 검색 몇 번 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인터넷에 구직 광고를 낸 조선소 하청 업체였다. 그러고는 "초보자인데 취업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저쪽에서는 곧바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활동가는 기자에게 "취업 됐다. 같이 가자"고 했다. 그게 끝이었다.

곧바로 면접 보러 오라던 하청 회사는 선박 보온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당시엔 보온 업무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나중에야 일하면서 '왜 여길 택했을까' 하는 후회를 수없이 했다.

면접은 원청 정문 옆에 있는 매점에서 치렀다. 왜 사무실이 아닌 매점에서 면접을 볼까 싶었지만 알고 보니 사무실이 없어서였다. 원청 사무실에 공간을 마련해 경리 여직원 한 명이 사용하는 책상과 전화기 한 대 놓은 게 전부였다.

그렇다고 면접이 부담스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취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면접 장소가 호텔 로비든 매점이든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면접은 의외로 간단했다. 작업소장이 면접을 진행했고 면접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왜 조선소에 취업을 하고 싶은지, 서울에선 무슨 일을 했는지, 월급은 얼마 받길 원하는지 등 예상 질문을 뽑아놓고 모범답안을 만들어 놓은 게 무색해졌다.

작업소장이 질문한 건 '조선소 일이 힘든데 잘 버틸 수 있느냐' 이거 하나였다. 그리곤 내일부터 출근하라 했다. 그게 끝이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

ⓒ연합뉴스
생각해보면 일을 그만둘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작업반장에게 말할 때, '붙잡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됐다. 미리 별의 별 이유를 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작업반장은 그냥 고개만 한 번 끄덕이며 작업복은 반납하고 가라고 했다. 직장 동료들도 그만두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기자가 두고 가는 작업복과 작업화의 사이즈만을 물어볼 뿐이었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은 작업복을 자신이 직접 돈 주고 사야 했다.

다만 기자에게 일을 가르쳐 준 선임자만이 위로의 말을 건냈다. 서울사람치고는 잘 버텼다며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조선소에서 일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이 다 들어온다고 했다. 어떤 노동자는 일한 지 반나절 만에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이 너무 힘들어 도망쳐 집으로 간 거였다. 뿐만 아니라 족장(발판)이 무서워 아예 일은 시작도 못하고 그만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워낙 힘들다보니 쉽게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는 게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버거워 자기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 처지였다. 하루 종일 쇳조각 만지고 집에 돌아갈 때면, 온 몸이 쑤신다. 거기다 특근, 주말근무 등을 하면 하루도 못 쉬고 한 달을 일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작업환경은 조금만 실수해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정도로 열악하다.

그렇다보니 남을 챙기고 할 기력도 없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람에게 무감각해 있었다.

○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연재를 시작하며:<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 기자가 체험한 조선소 하청 노동
<1>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2> "목숨 갉아먹는 유리 먼지, 여기가 지옥이다"
<3> 점심시간 1분만 어겨도 욕설에 삿대질, 경고까지
<4> "6미터 추락 반신불수, 책임자는 알 수 없어"

-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
<1> 발 헛디뎌 죽은 다음날, 회사가 한 말은?
<2> 노동자도 아닌, 사장도 아닌, 넌 누구냐?
<3> 저녁 먹자던 아버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4> "5년동안 몰랐는데 내가 바로 불법파견이더라"

- 위험의 양극화, 대책은?
<1> 폐암 진단, 길고 긴 소송, 얻어낸 건 장례비
<2> "냉동고에서 질식사한 노동자, 그러나 회사는 무죄"
kakir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