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도 아닌, 사장도 아닌, 넌 누구냐?
노동자도 아닌, 사장도 아닌, 넌 누구냐?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②] 그 많던 정규직은 어디로 갔나
2012.04.04 08:16:00
○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연재를 시작하며:<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 기자가 체험한 조선소 하청 노동
<1>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2> "목숨 갉아먹는 유리 먼지, 여기가 지옥이다"
<3> 점심시간 1분만 어겨도 욕설에 삿대질, 경고까지
<4> "6미터 추락 반신불수, 책임자는 알 수 없어"

-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
<1> 발 헛디뎌 죽은 다음날, 회사가 한 말은?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한다. 그렇다고 임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되레 임금은 적게 받는다. 복리후생도 형편없다. 언제 잘릴지도 모른다. 게다가 언제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른다. 폭발 사고나 추락으로 죽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생계를 위해 죽어라 일한다. 그게 조선소 하청 노동자이다.

신원철 부산대 교수가 2003년 발표한 '사내하청공 제도의 형성과 전개: 현대중공업 사례'를 보면, 조선소 사내하청 제도는 조선소가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위임관리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제도는 경영자가 작업능률에 대한 직접 통제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선택할 수 없었던 간접적 노무관리의 일환이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제도를 사용한 이유는 경영자가 노동자들의 작업과정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관리체제를 갖추지 못했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조선소는 인력을 어떻게 관리할지, 어떤 일을 시킬지에 대한 고민이나 시스템이 없었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조선소 만들 때부터 있었던 하청 업체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이런 혼란이 사라졌다. 생산관리능력을 확보한 경영자는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을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 경영자는 생산 공정을 파악하고 관리능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자 노동자를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하도급 제도는 일정 시점이 지나자 생산성 향상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1979년을 기점으로 하도급 인력을 점차 줄여 직영화하기 시작했다. 1978년 1만2629명이었던 현대중공업 사내 하도급 인력은 1983년 5423명까지 줄어들었다. 반면, 이 시기 원청 노동자 숫자는 늘어났다. 1980년 6084명에서 1984년 1만7114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하청 노동자를 원청으로 전환시키지 않았다. 직접적 노무관리로 전환한 이후 일정 수의 하청 노동자를 남겨 고용조절기와 특수 작업부문 노동에 한정해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측의 의도는 1987년에 일어난 노동자 대투쟁으로 무산됐다. 원청과 하청 노동자가 함께 노동권 보장을 요구한 당시 투쟁은 1989년에 하도급업체가 현대중공업 내에서 거의 사라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노동자들은 하청 노동자의 원청 전환을 요구안으로 내걸었다.

노동자의 책임만 있고 권리는 사라지는 조선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이직률은 낮아졌다. 동시에 신규채용도 거의 중단됐다. 노동 고착화 현상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노조의 압박으로 임금은 매년 인상됐다.

경영자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고자 1990년대 들어 협력업체에 고용된 사내하청 노동자 비율을 증가시키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의 영향력 확대를 막고 임금 비용 삭감과 노동 유연화를 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러한 움직임, 즉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에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대기업 중심 기업별노동조합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보니 사용자는 하청 구조를 더욱 확대해갔다. 그게 결국, 지금의 원청과 하청 구조를 만들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한국 조선산업 전체 종사자 중 직업 고용된 정규직 기능인력은 3만6886명, 사내하청 노동자는 7만744명이다. 조선업계 상위 10대 기업의 사내 하청 노동자 비율은 2000년 33.2%에서 2009년 55.2%로 늘어났다.

다단계 하청이 늘어나는 조선소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주목할 점은 사용자들은 원·하청 구조를 뛰어넘는, 또 다른 착복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하청 업체가 또 다시 하청을 주는, 일명 다단계 하도급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100개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하청 업체가 있다고 하자. 이 하청 업체가 원청으로부터 150개의 물량을 받을 경우, 나머지 50개 물량은 정해진 시간 내에 소화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물량은 재하청을 준다. 하청이면서 그 밑에 또 다른 하청 업체를 두는 식이다. 하청의 하청을 일명 '물량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조선소 초창기부터 있어왔지만 그 수가 매우 적었다. 하지만 2009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우후죽순 조선 산업에 확산되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의 문제는 회사에 물량이 없어 일을 못할 경우, 노동자가 그 날짜만큼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에는 회사 사정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경우, 평균 임금의 70%를 회사에서 지급해야 하지만 조선소 하청 업체는 이를 지키고 있지 않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1년 10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울산지역 조선소 하청 노동자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업체 사정으로 일을 못할 경우 임금을 받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9.5%가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하청의 하청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한 달에 20일도 일하고 10일도 일한다. 일한 만큼 월급을 받으니 어떤 달에는 100만 원도 못 받는다. 창원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 박진수(가명, 54) 씨는 "지난 1월에는 일이 없다고 해서 닷새만 일했다"며 "그렇다보니 월급은 50만 원도 안 됐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회사가 '개인사업자' 등록 요구, 늘어나는 특수고용직

박 씨처럼 하청의 하청에서 일하는 경우는 차라리 낫다. 아예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이른바 '특수고용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도 존재한다. 울산에서 파워공(선박 표면 철을 가는 작업)으로 일하는 이기영(가명·45) 씨는 "회사에서 2009년에 서류를 주면서 사인을 하라고 했다"며 "보니까 개인사업자등록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회사의 지시로 일하는데 개인사업자로 등록하라는 게 황당했지만, 사인하지 않으면 일을 주지 않겠다고 해서 사인을 했다"고 밝혔다.

노동자가 개인사업자로 둔갑할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일하다 다칠 경우다. 노동자라면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지만 개인사업자는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으므로 일하다 다치면 아무런 대책이 없다.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노동자가 아니니 사용자가 해고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사업자간 사업자가 계약을 맺은 셈이니 계약을 해지하면 된다. 일을 그만둬도,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등은 꿈도 꾸지 못한다.

조선업체에서 이렇게 노동자와 계약을 맺는 이유는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수반되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조선하청노동자연대 관계자는 "노동자를 고용해 돈을 벌면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며 "하지만 원청은 하청을 고용해 그 책임을 회피하고, 하청은 또다시 하청 노동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원청-하청-다단계 하도급-개인사업자 구조로 노동 형태가 변화되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의 의무만 남고 권리는 사라지는 구조다.
kakir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