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자던 아버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저녁 먹자던 아버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③] 하청 노동자로 왜 일하나
2012.04.05 08:48:00
저녁 먹자던 아버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연재를 시작하며:<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 기자가 체험한 조선소 하청 노동
<1>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2> "목숨 갉아먹는 유리 먼지, 여기가 지옥이다"
<3> 점심시간 1분만 어겨도 욕설에 삿대질, 경고까지
<4> "6미터 추락 반신불수, 책임자는 알 수 없어"

-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
<1> 발 헛디뎌 죽은 다음날, 회사가 한 말은?
<2> 노동자도 아닌, 사장도 아닌, 넌 누구냐?

서민진(가명·31) 씨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다. 올해로 9년 일했다. 결혼은 했다. 딸이 둘이다. 다음 달엔 셋째 딸이 태어난다. '아이들 먹여 살리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을 늘 입에 붙이고 다녔다.

조선소 근처에서 태어난 서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래저래 사고도 많이 쳤다. 술 먹고 돌아다니며 싸움질도 많이 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서 씨를 군대에 보냈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철이 들어서일까. 전역하고 집에 온 날, 자신의 손을 잡고 조선소로 향하는 아버지 손을 서 씨는 뿌리치지 못했다. 아버지는 조선소 하청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이 다니는 조선소 하청 업체 사장에게 굽실거리며 마련한 취업 자리를 뿌리치긴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더는 부모님께 누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나이 23살 때였다.

기다렸으나 오지 않는 아버지

ⓒ매일노동뉴스(정기훈)
막상 일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퇴근 후 실신하듯 잠들었다. 자명종에 일어날 시간을 맞춰 놓아도 번번이 늦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래도 지각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서 씨를 깨워줬다. 늘 통근버스를 타고 함께 출근했다.

그렇게 2년을 일했다. 일도 어느 정도 적응됐다. 그런 서 씨가 아버지는 뿌듯했나 보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소주 한잔 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보다 일이 일찍 끝난 서 씨는 먼저 퇴근해, 집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와 가끔 가던 식당이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서 씨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잔업을 마치고 집에 오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회사 통근버스에서였다. 하지만 보상금은 고사하고 산재신청도 못했다. 일하던 중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심장마비와 작업환경과의 연관성을 밝혀야 하는데 그런 지식도, 여력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억울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회사를 다녀야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딸아이를 하나 낳았다. 아이에겐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주기 싫었다. 아내와 상의 끝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경기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경기도에서는 공사판 막노동을 했다. 하루 일하면 7만5000원을 받았다. 2만5000원을 하루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5만 원은 저금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만5000원으로 생활하는 건 만만치 않았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많았다. 게다가 비가 오거나 몸이 아픈 날에는 일하러 가지 못했다.

명절 때,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내려가려 했지만 차비가 모자라 가지 못하기도 했다. 저녁식사 할 돈이 없어 굶기도 했다. 그렇게 8개월을 버텼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게 싫어 조그마한 제조업 공장에 취업했다. 나사를 조이는 단순 작업이었다.

하지만 100만 원 조금 넘게 받는 돈으론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예전 다니던 조선소에 재취업했다. 그나마 조선소 일이 노동 단가가 높았다. 그 후 지금까지 서 씨는 이 곳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도돌이표 인생인 셈이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30대 중반이 일하기엔 돈이 생각만큼 벌리지 않는다?

기자가 조선소에 취업한 첫날, 현장반장은 "조선소에서 일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30대 중반 나이에 이런 일을 하기엔 힘이 부치고 돈도 생각만큼 벌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현장반장은 "20대의 경우야 이곳에서 버는 돈이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정을 꾸릴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며 "경력이 아무리 붙어도 임금이 쥐꼬리만큼 올라가니 버티기 힘들다"고 진지하게 조언해줬다. 실제로 일을 가르쳐준 선임자를 제외하곤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자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이곳 조선소에서 일하는 경력 10년차 하청 노동자는 한 달 200만 원도 받지 못했다. 야근수당, 주말 수당을 다 합한 숫자다. 현장반장은 "여기 작업장에는 미처 이곳을 벗어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만 남아 있다"며 "잘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 조선소가 '한국 사회 축소판'인 이유

대물림 사회, 이제 개천에서 용 안 난다

부가 대물림 되듯, 가난도 대물림 된다. 한국사회에선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느냐가 삶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개천에서 난 용'이 된 경우는 점점 줄어든다. 계층 고착화 현상이 날로 견고해진다.

예전에는 한국사회가 외국에 비해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경제적 지위 변화가 활발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가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941가구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저소득 가구보다 임금이 두 배 많은 고소득 가구의 자녀가 저소득 가구의 자녀보다 임금을 14.1% 더 많이 받는다.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다. 이 수치가 브라질은 58%,영국은 45%,미국은 37%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수치도 앞으로는 역전될 전망이다. 핵심은 교육이다. 앞서 인용한 통계에서 조사한 대상은 학교를 마치고 취업을 한 상태다. 이들이 교육을 받던 시기는 이미 오래 전이다. 당시에는 가난한 집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이런 경우가 빠르게 줄고 있다. 급팽창한 사교육, 아이들의 사교육 의존 심화 등이 맞물리면서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명문대 신입생 가운데 경제적 상위계층에 속하는 가정의 자녀가 차지하는 비율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관련 기사: 집안 잘 살아야 SKY 대학 간다)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 가능성은 줄어든 반면, 부모 세대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정규직 일자리가 계속 줄어든 탓이다. 부모 세대 가운데 누군가는 정규직 일자리를 잃고 비정규직을 전전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최대 고민거리가 '상속'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이 온갖 불법, 편법 행위를 통해 경영권 세습을 하려 한다는 점은 이미 여러 번 소개됐다. 굳이 재벌 총수가 아니어도,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 가격 급등을 거치면서 부유층에겐 자녀 상속 문제가 최대 화두가 됐다.

공부 못하면, 장사라도?…재벌이 장악한 골목 상권

부모 세대의 양극화는 그대로 자식들에게 대물림된다. 여기에 교육 양극화 현상이 겹치면서 이런 구조는 날로 견고해진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부를 못 한다면, 장사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것도 옛말이다. 소규모 자영업은 대기업에 잠식당한 지 오래다. 종잣돈으로 창업을 해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된 35개 민간 대기업집단의 계열회사 변동현황을 보면 대기업 집단은 지난 5년간 652개사를 계열사로 신규 편입했다. 흡수합병, 지분매각으로 빠진 259개사를 제외하면 393개사가 증가했다. 매년 집단별로 2.8개씩 증가한 셈이다.

22개 그룹의 계열사 74개사는 식음료 소매·수입품유통·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등 중소기업 영역에 진출했다. 삼성·신세계(각 7개사), 롯데·GS(각 6개), CJ·효성(각 5개) 등 순으로 많았다.

업종별로 보면 식음료소매 19개, 수입품유통 18개 등 순으로 많았다. 교육서비스(5개), 웨딩서비스(2개)도 있었다. LED램프·출판 등 중소기업적합업종 품목에 들어간 계열사는 14개사, 중소기업중앙회와 사업조정 중인 대형마트·서점·MRO 등 업종은 21개사다. MRO는 사실상 기존 문구점과 겹치는 업종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골목 상권에서 대기업과 경쟁해야 한다는 말이다.

승산이 없다. 대기업이 중소상인들의 업종에 뛰어든 경우는 대부분 총수의 자녀들이 지휘하는 경우가 많다. 쉬운 경쟁을 통해 경영 실적을 쌓으려 하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제빵 사업에 뛰어들었던 게 이런 경우다. 재벌 2, 3세가 빵집이나 문구점 사업을 할 경우, 재벌 계열사를 고객으로 삼을 수 있다. 판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영세 상인들이 경쟁상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원청 사장 자식은 원청 사장, 하청 사장 자식은 하청 사장, 노동자 자식은?

다시 조선소 이야기로 돌아가자. 조선업계 1위 현대중공업 최대주주 정몽준 의원의 재산은 2조227억6000여만 원이다. 그의 재산은 아버지 고 정주영 회장에게 물려받았다. 기사 본문에서 소개된 서 씨가 다니는 조선소 하청 업체 작업감독은 하청 업체 사장의 아들이 하고 있었다. 사장인 아버지가 물러나면 아들이 그 회사를 물려받을 예정이다.

원청 업체 사장 아들(정몽준)은 원청을, 하청 사장 아들은 하청을 물려받는 꼴이다. 아버지가 하청 노동자면 자식 역시 하청 노동자가 된다. 서 씨는 이런 대물림이 싫어서 발버둥 쳤지만, 결국 조선소 하청 노동자로 도돌이표를 찍었다. 조선소는 그래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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