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맹 여전사' 은수미, 19대 국회 기대주 되다
'사노맹 여전사' 은수미, 19대 국회 기대주 되다
[인터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새로운 노동 이야기 할 것"
'사노맹 여전사' 은수미, 19대 국회 기대주 되다
지난달 21일과 22일 <조선일보>는 이틀에 걸쳐 "'당 정체성 강화' 친야·노동에 사노맹 출신까지", "23년 전 박노해와 사노맹 결성한 은수미"라는 기사를 연거푸 냈다. 민주당 비례대표 3번을 받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인 은수미 당선자를 겨냥한 기사였다. 사노맹 뒤에는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라는 설명까지 빼지 않고 넣었다. 이 기사는 은수미 당선자의 이력을 자세히 다뤘으나, 동시에 '색깔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기사이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그를 '과격파'처럼 묘사한 것과 달리, 은수미 당선자는 16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에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그가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서 발표한 논문들은 구체적인 사례와 통계로 정평이 나 있다. 은 당선자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고 "'왜 이 신문이 나를 띄워주지?'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은 당선자는 1992년 초 당시 정부가 '반(反) 국가 단체'로 규정했던 사노맹 활동으로 구속돼 6년 간 강릉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는 오랜 독방생활과 안기부의 고문 후유증으로 결핵, 폐렴 등 각종 병을 앓았고 장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1997년 출소한 후 대학으로 돌아가 2005년 '한국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유형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이후 노동의 현장과 이론을 아우르는 노동문제 전문가가 됐다.

그는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이번 민주당의 영입 제안을 받고 크게 흔들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연구자로서 여러 정책안을 내도 현실에 반영되지 않는 상황의 답답함, '지금 가진 대안만이라도 현실화된다면'하는 기대 등이 동기였다고 했다. 특히 그는 "최근 4~5년 간 특히 정책안을 내도 이를 집행하고 피드백하는 과정이 막혀있는 것 같다"며 "보다 민주적이고, 소통을 많이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정권으로 바꿔내는데 기여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 ⓒ프레시안(최형락)

은 당선자는 간접 고용 문제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 쌍용차 문제 등을 "올해 안에 해결하고 싶은 시급한 과제"로 꼽으면서 민주통합당이 이번 총선의 공약으로 내건 현 50%인 비정규직 비율을 25%로 낮추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비정규직 관련 법은 당시 사회의 이해 수준과 문제의식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본다"며 "지금은 학자, 언론 뿐 아니라 고생하는 20~30대도 비정규직의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한 19대 국회의 환경은 결코 녹록치 않다. 은 당선자는 "새누리당이 발목 잡고 늘어지지만은 못할 것"이라면서도 "새누리당은 말로만 복지와 미래를 이야기했을 뿐 노동자, 여성, 청년 정책이 없는 '청년 포기당', '5만원짜리 보육당'이다. 과연 19대 국회에서 어떻게 나올지 지켜봐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앞으로 4년간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포부를 밝히면서 "지금은 새로운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다. 노동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음은 16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실에서 진행된 은수미 당선자와 <프레시안> 인터뷰 전문. <편집자>

"지난 4~5년간 정책안을 내도 현실화 되지 않아…꽉 막힌 느낌"

프레시안 : 왜 민주당의 비례대표로 나섰나? 정치 생각이 있었나?

은수미 : 그동안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적이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국책연구기관이라 정부나 사법부, 노사 모두의 요청에 응하는 것은 당연해서 민주통합당에도 1년 이상 자문 활동을 하고 필요한 경우 발표도 하고 했지만, 연구활동의 일환이었을 뿐 정치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그런데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추천했다며 갑자기 연락이 왔을 때, 크게 흔들렸다. 제안을 받은 날 주변 사람들을 급하게 불러서 '순리인 것 같냐'고 물었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순리인 것 같은가를 물었다.

물론 어머니나 오빠 등 가족들은 '또 고생한다, 편안하게 살라'며 반대했다. 가족들이 보기에,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내가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고, 남들이 겪어보지 않은 일을 꽤 많이 겪어서 나이 들어 또 왜 그러냐고 반대가 강했다. 어머니나 오빠에게는 한동안 미안했다.

프레시안 : 제안을 받고 '크게 흔들렸다'는 건 연구자로서의 어떤 갈증 때문일까?

은수미 : 한국노동연구원에 7년 정도 있었고 비정규직과 저임금 근로를 연구한 지 10년 쯤 됐다. 그러다 보니 이제 눈에 들어오는게 있다. 논쟁하지 말고 아주 작은 부분만 고쳐도 노동의 세상이 바뀔 지점이 보인다. 그런데 최근 4~5년 정도 정책연구를 해도 이를 집행하고 피드백하는 과정은 막혀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책과 정치가 정확하게 결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꽉 막혀있는 호스 같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대단히 간절했다. 계속 정책연구를 해서 더 좋은 정책안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가진 정책안 만이라도 집행이 되면 현재 위기에 처한 사람들, 특히 저임금과 근로빈곤, 우울증과 자살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20~30대가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데, 현재 입안된 정책만이라도 현실화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던 차에 난데 없이 '정치를 하면, 네가 간절하게 생각하는 것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제안이 들어온 거다. 그래서 크게 흔들린 것 같다.

또 하나는 나도 정권을 바꾸고 싶었던 것 같다. 투표와 정책 연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보다 민주적이고, 보다 소통을 많이하고, 보다 약자를 배려하는 정권으로 바꿔내는데 기여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모두가 간절하게 바꿔야 한다고 할때, 나만 멈칫하는 것 아닌가, 크게 흔들렸고 결정했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다른 당이 아닌 민주통합당의 비례대표로 나선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은수미 : 주변에서도 가끔 왜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민주당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단순하게는 통합진보당에서는 출마 제안을 받지 못했고, 노동 정책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봤다. 실천 의지를 따져봐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작년 6월 민주당 이인영 비정규직특위 위원장이 발표한 비정규직 대책을 저를 비롯한 전문가 그룹이 같이 만들었고, 이번 민주통합당의 노동 공약을 만드는 팀에도 들어가서 함께 만들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적어도 함께했던 분들에 대해서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신뢰가 꽤 쌓였다.

"새누리당은 '5만원 보육당', '청년 포기당'"
▲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번 민주통합당 공약을 보면 '현재 50%인 비정규직 비율을 25%로 축소하겠다'는 공약이 있다. 현실화 가능할까?

은수미 :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밀하고 섬세한 법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법은 가이드라인이다. 부부관계가 결혼 및 이혼에 관련된 법이 있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행이고 합의다. 근로 감독 행정만 강화해도 불법적인 고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사회적 관행이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비정규직을 함부로 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인식이 없을 때에는 법이 있어도 안된다. 국회의 입법 뿐 아니라 행정부, 사법부 관련해서도 다양하게 참여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러나 여전히 민주통합당이 이번 비정규직-저임금 관련 공약을 얼마나 잘 현실화 시킬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많은 비판을 받은 비정규직법도 당시 열린우리당의 합의가 있어서 통과됐다.

은수미 : 비정규직법은 노동이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그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이해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2006년 당시 비정규직법은 당시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 문제를 이해하고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또 당시 비정규직법은 대단히 부족한 법이었지만, 일단 만들어지고 나서 2년 정도는 뚜렷한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다 2009년 백만해고 대란설이 나오고, 기간제나 시간제 근로를 정책적으로 확대시켜 오면서 그 효과가 사라졌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정부나 학자들의 사회적 이해가 더 높아졌다. 연구 초기에만 해도 언론도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을 어려워했는데. 지금은 20~30대 젊은이들도 자기가 어떤 형태의 고용에 있는 노동자인지를 안다. 관료들 사이에도 비정규직은 핵심적인 화두다. 이렇게 높아진 이해수준과 합의 수준을 생각하면 입법에서도 더 많은 여지가 있으리라고 본다.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은 물론 새누리당도 무작정 입법에 발목잡고 반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프레시안 :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했는데, 새누리당의 노동-일자리 공약은 어떻게 평가하나.

은수미 : 새누리당 공약을 꼼꼼히 봤는데 놀랐다. 언론에 사전적으로 발표했던 내용도 정작 공약에는 빠져 있기도 하고, 예를 들면, 현재 사회복지사나 보육교사의 임금 근로조건이 극히 나쁜데, 이는 아이에게도 좋지 않고, 맡기는 부모도 안심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는 점에서 극히 우려된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내놓은 보육교사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공약이 '월 5만원 수당 지급'이다. 이분들이 투잡을 해도 이것보다는 더 받겠다. 나는 새누리당 공약을 두고 '5만 원짜리 보육당'이라고 했다. 보육교사들이 적정한 임금 및 근로조건을 보장받는 것은 헌법 32조에 보장된 권리다. 그런데 5만원 씩 나눠준다는 것은 엄연한 권리를 가진 이들을 구걸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새누리당이 실제 의회에서 어떤 식으로 노동자 문제를 다룰지 감이 안 온다. 현재도 없기 때문에, 아예 안 다룰 것인지. 청년이든 여성이든 필요한 것은 돈 만원이 아니라 비전을 주는 것인데, 새누리당에는 그게 없다. 과연 저와 같은 사람들이 특정한 법안이나 정책을 제안할 때 어떻게 나올 것 인가. 청년 공약도 딱 두 개다. 하나는 자영업 육성, 다른 하나는 장학금을 주면 그 대가로 중소기업에서 일정기간 일해야 하고, 일하지 않거나 직장을 옮기면 장학금을 반납해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 정책과 일자리 정책은 결합하는 다른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또 돈 나눠주기로 대처하고 있다. 그야말로 '청년 포기당'이다. 여성에 대한 대책도, 일자리 대책도 없다. 국회 회기가 시작되어도 설마 이럴까. 두고봐야 한다.

프레시안 : 확실히 19대 국회의 여건이 만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은수미 : 올해는 대선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민간인 사찰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만 터질 거라서, 과연 이번 국회가 제대로 진행될지 걱정스럽다. 국회의원 했던 선배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 쉽지는 않겠지만 4년 길게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노동자와 20·30대의 지지로 이만큼이라도 됐다"

프레시안 : 노동 정책에서 큰 차이가 나는 데도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연대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 이유가 뭘까?

은수미 : 울산 창원에서 야권연대가 한 석도 안 되서 정말 놀랐다. 노동자들이 표를 던지지 않았다고들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민주통합당 및 야권연대가 문제였지. 노동자들이 지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8~9% 밖에 안 되는데 울산, 창원, 거제의 득표율을 생각해보면 지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또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은 것도 현실이고. 그 간절함이나 지지를 모아내지 못한 정치의 한계가 좀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만 보면 20·30대와 노동자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마저도 유지를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프레시안 : 노동 문제가 경제, 복지와 뗄 수 없는데 이번 선거에서도 개혁진영의 정책 의제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가령 재벌 개혁과 노동 복지의 문제나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 등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은수미 : 노동이나 경제나 복지 등이 따로 논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개혁진영이 따로 놀아서가 아니라 원래 사회복지 쪽은 노동을 잘 모른다. 정부만 봐도 보건복지부 정책 중에 노동법 위반 정책이 일부 있다. 한국 사회 자체가 전 영역이 따로 놀았던 거고, 시민들 역시 '피자를 30분 안에 먹고 싶은 소비자는 곧 3분안에 목숨 걸고 배달해야 하는 배달원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없다.

가령 기업집단법을 예로 들자면, 경제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기업집단법은 공정거래가 중심이라면 노동에서 이야기하는 기업집단법은 사용자 책임이다. 대기업이 한편으로는 중소기업과 공정거래를 하도록 하고, 노동법 상으로는 일정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비정규직이나, 매우 예외적인 형태의 고용이 이렇게 늘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법이 필요 없이 불공정 거래만 없애면 되겠지만, 지금은 심각한 고용과 복지 문제로 대두됐기 때문에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논의는 시작됐다. 적어도 차기 정부에서는 이와 관련된 핵심적인 입법안 등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현재 한국사회의 노동 문제 가운데 국회에 들어가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있다면?

은수미 : 간접고용 문제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 등은 올해 안에 해결하고 싶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웃음) 간접고용 문제의 경우 한번에 다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파견법이면 파견법, 노조법이면 노조법 등에 파견의 판단 기준 정도는 넣었으면 좋겠다. '불법인가 합법인가'만이라도 판단해서 기업은 준법 경영을 하고, 노동자들은 안심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싶다. 또 너무 넓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도 법 개정 등을 통해서 대폭 축소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쌍용차 문제가 시급한 문제 중 하나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다. 전문가들과 이야기하면서 이들을 재고용하는 것까지는 어렵겠지만 명예회복과 자살도 산재로 인정하는 등의 배상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검토하고 있다.

좀더 장기적으로는 내년에 나오는 남녀고용평등법을 넘어서서 종합적인 고용평등을 보장하는 법안을 입안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분, 국적, 고용형태 등을 넘어서서 노동시장에서 평등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종합적으로 담아보면 어떨까 하는 구상이다.

"'사노맹' 운운 <조선일보>, 왜 나를 띄워주나"

프레시안 : 연구자로서 노동 현장을 많이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은수미 : 현장은 나의 힘이라고 할까, 나는 현장에서 많이 배운다. 학자마다 연구의 동력을 얻는 방법이 다른데, 나는 반반이다. 현장을 안 보면 물고기가 뭍에 올라온 느낌이다. 보통은 내가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기륭이나 뉴코아, 이랜드 등 장기 파업 등이 벌어지면 꼭 찾아간다. 현장에서 받은 경험과 고민이 결합되어야 연구에 힘이 붙는다. 물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현장을 다니지 않으면 힘이 사라진다.

가령 2007년 쯤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평균 70만 원 가량을 받는 것으로 나왔는데, 당시 이분들을 만나서 '얼마쯤 받으면 만족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그때 나온 답이 99만원이어서 기겁했다. 2007~2008년이었음을 감안해도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조차도 평균 급여를 받게 해주는게 힘들다. 80만 원 정도를 받고 일하는 이들이 120만 원 받게 하는 것, 흔히 '경비'라고 불리는 감시-단속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적용 유예를 없애는 것. 이런 작은 문제들이 대단히 힘들게 느껴진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많고, 이번 민주통합당 공약을 함께 만든 분들도 비슷해서 이번 공약이 굉장히 구체적이기도 하다. 현장을 많이 다니다 보니 큰 그림을 놓치고 지나치게 구체적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한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 이런 이야기도 존중하고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큰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면 나처럼 구체적인 수치를 이야기하고 대안을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스스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으로 말하지만, 얼마 전 <조선일보>는 은수미 당선자의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전력을 들어 대단한 급진주의자인 것처럼 기사를 냈다. 기사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은수미 : 당황스러웠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빨갱이' 소리를 안 들어본 것은 아니나, <조선일보>에서 다룰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내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왜 괜한 사람을 띄워주지? <조선일보>가 날 봐주나?' 싶기도 했다. (웃음) 실제로 이 기사 때문에 알게 됐다는 사람도 꽤 있다. 실제로 사노맹은 북한과 연계시키기가 대단히 어렵고, 나 자신도 별로 떠올리지 않는 오래된 일이기도 해서 뜬금 없기도 했다. 물론 앞으로도 불가피하겠구나 하고 생각하긴 하는데, 서로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비극을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상대가 어떤 생각과 성향을 지녔든 같이 가자고 이야기 하는 게 진정한 보수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사노맹 운동가에서 노동 문제 연구자로 돌아서게 된 이유가 있다면?

은수미 : 간단하다. 몸이 아팠기 때문이다. 35살에 나왔는데 감옥에서 나처럼 아픈 사람도 드물었다. 스스로 낙천적이고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안 아픈 데가 없었다. 폐렴, 폐결핵, 종양, 후두염… 소장과 대장을 잘라내는 수술도 두 번 받고 협심증 진단을 받고 응급약을 입에 물고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이 아픈 상황에서 감옥에서 나오니 35살 여성이, 아무 것도 없었다. 두발로 서 있기기 힘들었다. 당시엔 밀실공포증에 영화관도 가지 못했고, 고소공포증에 미끄럼틀도 못 올라갔다. 그게 이른바 고문 후유증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지금도 창문을 다 닫고 자는 건 힘들 때가 많고, 고소공포증도 남아 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복귀할 수 있었던 곳이 학교, 대학이었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자는 의지가 컸다. 다니던 과가 사회학과였고, 노동을 잘 알고 있으니 노동사회 영역을 선택했고 그게 이렇게 이어졌다.

1992년 소련이 망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가 도망다니던 때인데. 어느 날 TV에서 보리스 옐친이 나와 해체 선언을 하는 것을 보고 큰 쇼크를 받았다. 그때부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복기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속이 됐다. 감옥 안에서 책을 많이 보면서 '사회주의란 무엇이었는지', '노동이란 무엇인지' 등을 근본적으로 다시 물으며 공부했다. 몸이 아프기도 했지만 강릉교도소 교도관이 많이 배려해줘서, 지금도 감사한다.

▲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애초에 노동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뭘까?

은수미 :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이념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꽤 있다. 내가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람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20년 간을 신림동에서 살았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부유하게 자랐지만 내 친구들 상당수는 판자촌에서 자랐다. 인상적인 사건이 두 번 있었다. 한번은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놀다가 친구를 장난 삼아 밀었더니 벽을 뚫고 옆집으로 나간 일이 있었다. 벽이 뚫린다는 것 자체가 놀랐고, 우리집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또 한번은 중학교 때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을 찾아 갔더니 흙집에서 세를 살고 있었다. 그 때는 그 모습에 너무 놀라서 말실수 까지 했다. 그러고 조세희 선생님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도 나처럼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아마도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하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싶다.

프레시안 : 의원이 되어서도 현장을 자주 찾을 생각인가?

은수미 : 기본적으로 나는 무슨 일이 터졌을 때 가봐야 속이 시원한, 몸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긴 하다. 하지만 조절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입법 하나 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다고 알고 있다. 현장의 문제 때문에 중심축이 되어야 할 입법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원이 현장에서 얼굴을 비추는 게 100% 효과를 낼 때가 아니라면, 몰래 가면 된다. 연구자로서 현장에 결합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고 싶다.

프레시안 : 앞으로 의원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은수미 : 앞으로 4년간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나의 목표다. 새로운 노동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태초부터 노동은 있었다. 자본이 늦게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도 특히 육체노동은 천시되어왔다. 왜 그랬을까. 이 주제로 5월 말 까지 쓰고 있는 책이 있는데, 인간에게 노동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야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전세계적으로 양극화. 이중화의 문제가 심각한 시기 아닌가. 우리는 노동에 속박되어 있지만, 동시에 노동을 넘어서는 인간을 허용하는 사회를 꿈꾼다. 모든 사람이 노동자이고. 노동 3권의 적용을 받는 방법이 뭘까. 어떻게 하면 그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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