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강단 떠나는 두 역사학자 ③]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1>
2013.06.21 14:08:00
한국 사회에서 현대사는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졌다.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현대사의 진실을 아는 걸 원치 않았다. 또한 두려워했다. 그래서 진실을 파헤치려는 움직임을 힘으로 눌렀다.

그런 탄압을 딛고 진실의 문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직 충분치는 않지만 적잖은 현대사의 실체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 이들 중 두 사람이 2013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을 떠난다. 서울대 국사학과 동문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와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다. 서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히며, 진보적 역사 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를 오랫동안 이끌었다. 안 교수는 30년 넘게 한국사를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활동한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 전문가다.

<프레시안>은 안 교수와 서 교수를 11일과 13일 차례로 만났다. 올해 들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역사 관련 사안들에 대한 견해와 퇴임 이후 계획을 들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각각 2차례씩, 모두 4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아래는 서 교수 인터뷰 앞부분이다. <편집자>


강단 떠나는 두 역사학자
[안병욱 ①] "일베-뉴라이트-<조선>은 이어져 있다"

[안병욱 ②] "남로당식 사관? <조선>, 흉기 들고 난동"

프레시안 : 대선 후 어느새 반년이 흘렀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도 100일이 넘었다.

서중석 :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크게 우리 사회에 드리웠다. 박정희 신드롬은 정치인 박근혜가 인기를 누리는 데도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큰 힘으로 작용했다.

박정희 신드롬이 지워지고 약화되는 것이 우리 사회에 굉장히 중요하다. 민주주의로, 인권으로, 남북 평화와 교류 협력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데, 박정희 시대는 너무나 그것과 대척적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신드롬은 커다란 장애물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이 된 건 어떤 점에선 박정희 신드롬을 지우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5년을 거치는 동안 그 신드롬을 적극 활용한 세력의 국정 운영 능력이 명확하게 드러나면, 박정희 신화에 대한 지지자들의 믿음이 줄어들 것이라는 뜻인가.

서중석 : 그거다. 그 이야기 그대로다. 박근혜 대통령은 주로 유신 시대의 정치를 보고 경험한 사람이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인 20대의 대부분을 유신 체제의 중심에서 보냈다. (유신 체제의 멘털리티를 떨치지 않는 한) 성공적인 정치를 하기 매우 어렵다고 본다.

▲ 서중석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정부, 박정희 신드롬 지우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수도"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가 출범 후 보인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나.

서중석 : 우선 윤창중 같은 사람을 대변인으로 쓴 일 같은 것이 정상적인 게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기에 정말 옳은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는, 정말 신뢰하는 어떤 그룹 혹은 개인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쪽에서 (윤창중을) 천거한 것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정상적인 정치인이면 윤창중을 천거를 안 했을 거다. 또 (대변인 임명 후) 여론이 좋지 않았다. <조선일보>조차 뭐라고 하지 않았나. 여론이 그렇게 나쁘면 '윤창중을 걷어찹시다', 이럴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끝내 박 대통령이 (윤창중을) 지킨 것 아닌가. 그러다 미국에서 사건이 터진 것이고. 박 대통령이 (사안을) 판단하는 데 있어 참 큰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와 비슷한 걸 여러 번 느꼈다. 그중 하나가 '별' 4개짜리(4성 장군 출신)를 국정원장, 안보실장, 경호실장에 앉힌 것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각지를 다니며 사상·안보 교육을 한 사람이다. '4.3은 북한에서 사주해서 일어난 폭동'이라는 논리를 편 사람 아닌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박 대통령이 국정원장 자리에 그런 사람을 앉혀놨다는 건 상당한 우려를 하게 만든다.

(참고로) 역대 국정원장 중엔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굉장히 부정적인 작용을 한 사람이 많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조차 그랬다. 물론 임동원·김만복 전 원장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안보실장도 마찬가지다. 그런 자리를 설정한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그건 결국 대통령이 직접 꿰차고 뭔가를 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거다. 그 자리에 그런 사람을 앉혀놨다는 것은 상당히 군인 중심의 사고를 가진 데서 나온 발상으로 보인다. 경호실장에 별 4개짜리가 앉은 것도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나. 옛날에는 대개 별 2개나 3개짜리를 앉혔던 자리다. 관례라는 게 있는 건데….

하여튼 이런 식으로 군인들을 (요직에) 앉힌 건 유신 시대와 관련 있는 발상이라고 본다. 유신 시대가 군인 정치(시대)는 아니지만, 박정희는 여차하면 군을 동원해 모든 걸 처리한 사람이다. (이번 정부가 군인들을 요직에 앉힌 건) 자유로운 공간, 정치 발전 등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고 반대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 거다. 퇴행적인 성격마저 지니고 있다.

그다음에 각료와 관련해서도 문제가 있다. 물론 이번 각료들 가운데 과거 이력이 괜찮은 사람도 있다. 한데 그런 사람까지 포함해서 국회 청문회 같은 데서 5.16 등에 대해 물어보면 거의 대답을 제대로 못 했다. (5.16쿠데타는)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하다가) 후보 시절 정정 발표하고 사과도 했던 사안 아닌가. 그런 것에 대해서조차 (대통령의) 노여움을 살까봐 (대답을) 제대로 못한 거다.

이건 뭐냐 하면 박 대통령 앞에서 많은 사람이 떤다는 거다. 유신 시대적인 발상이다. 대통령 앞에서 떨면 아무 일도 못 한다. 다시 말해 난 유신 체제를 이해하지 않으면 이런 게 이해가 안 될 거라고 본다. 좋은 사람들조차 자기 식으로 사고하고 정책을 집행하지 못하고, 유일한 분 눈치만 봐가면서 일하는 방식 아닌가. 유신 체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런 게 가슴에 와 닿지 않을 거다.

또 (대통령이) 너무 쉽게 선거 공약을 변경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진 면이 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젠 끝난 것처럼 이야기되는 부분이 있다. 앞으로 그런 게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치에서) 과거에도 그랬다. 지금은 공약을 하면 지켜야 한다고 언론 등에서 추궁하지만, 1980년대 무렵까진 '국민들한테 인심을 얻기 위해 공약을 일시적으로 할 수도 있는 거다', 이런 발상이 만연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모습에서) 그런 발상도 엿보인다.

유신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 역사를 너무나도 모른다.

유신을 이해해야 오늘의 박근혜 대통령이 제대로 보인다

프레시안 : 유신을 이해해야 오늘의 박근혜 대통령이 제대로 보인다는 뜻인가?

서중석 : 그렇다. 유신 체제를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게 정확한 표현이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대선 과정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5.16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고 유신 체제에 대해서는 역사에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나왔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두 개의 대법원 판결' 발언을 하며 대법원 판결 자체를 무시했다. 유신 시대의 잘못된 죽음이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안팎에서 추궁이 심해지고 '이런 식으로는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자, 그때 가서야 바뀐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나.

그런데 진보적인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사실상) 그걸로 끝내버리더라. 그게 아니라 유신 시대와 박근혜 후보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굉장히 다각도로 추궁했어야 한다고 본다. 난 박 대통령이 유신 시대를 제외하고는 권력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건 아니라고 본다. 또한 박 대통령은 1970년대에 영부인 역할을 하면서 상당히 많은 유신 지지 세력을 규합했다. 그 과정에서 고 최태민 목사와 함께 구국여성봉사단 등의 활동도 했다. 이런 걸 어째서 소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고, 깊이 있게 추궁하지 않은 건가.

이건 참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최태민 목사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보인 태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때 중앙정보부가 '최태민 문제가 심각하다'고 박정희에게 진언을 여러 번 했다. 민정수석실에서도 거의 똑같은 내용의 보고를 올렸고 법무부, 검찰 등에서도 조사해서 올렸다. 그런데 그 시기는 박정희가 더 경직되고 상황을 흐리멍덩하게 파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단적으로 대처하려는 모습을 보이던 유신 말기다. 그때 박정희는 (경호실장) 차지철(의 전횡) 문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그러니 차지철 문제보다 훨씬 아래 문제인 최태민 문제에 단호한 태도를 취할 자세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면,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이 최태민 문제에 대해 보인 태도는 너무나 소아적인 것이었다. 설령 '최태민은 억울하다'고 보더라도, 그렇게 여러 기관에서 보고가 올라오면 '그러면 최태민과 관계를 끊겠다'고 아버지(박정희)에게 이야기하는 게 정상인 거다. 그렇게 하지 못했으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건 국가를 운영하는 데 커다란 장애(요소)와 연계된다고 봐야 하는 거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추궁을 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유신 체제적인 발상이라든가 멘털리티를 못 갖게끔 하고 새로운 정신 상태를 갖도록, 언론이 적어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때까지 계속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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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유신 체제적인 멘털리티를 못 갖게끔 채찍질해야"

프레시안 : 새 정부 인사 등에서 드러난 판단력 문제가 유신 때 최태민 문제에서 보였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뜻인가?

서중석 : 그런 게 있고, 또 대통령 앞에서 설설 기게 하는 것, 이게 어떤 메커니즘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런 건 상당히 위험한 데로 흘러갈 수가 있다.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1990년대 후반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 후 유신 때와는 다른 많은 경험을 했다. 유신만 갖고 판단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도 그간 적잖이 나왔다. 그와 달리 박 대통령 정치의 근본에는 여전히 유신의 경험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는 말인가?

서중석 :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도 (유신 때의) 그 인맥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바깥으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박 대통령이) 진짜 믿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주요 공직자로 임명된 사람 중에 유신 시기를 비롯한 박정희 정권 때 그 아버지가 요직을 맡았던 사람이 여러 명 있다. (이런 인사는) 유신 시대와 아버지(박정희)에 대한 생각을 안 하면 안 나오는 것이다. 당장은 '아버지의 것을 약간 떨치고 나아가는 게 정책적으로 필요하다', 이럴 수도 있지만, 시기에 따라 얼마든지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는 징후로 볼 수 있다).

내 말의 핵심은 언론에서 채찍질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경계하도록 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쪽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더라. 그건 우리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유신 체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판결이 이어졌다.

서중석 : 인혁당 사건이나 민청학련 사건의 상당수가 이미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고 민사상 보상 판례도 나왔다. 유신 시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바로잡는 작업)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사법부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법정 투쟁 등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다. (정리하면) 중요한 사건의 많은 부분이,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이 문제에 관해 새로운 공약을 제시하기 전에 상당한 단계로 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유신 시대의 잘못을 치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책을 강구한다고 하면 그건 좋은 일인데, 아직 뚜렷한 건 없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백년전쟁>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일제 군국주의와 유신 연상시킨다"

프레시안 : 이승만·박정희를 다룬 <백년전쟁>을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인호 전 서울대 교수가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국사편찬위원장 등을 만나 대응을 주문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중석 : 이걸 국가 안보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일제 군국주의 시기 특히 1930년대의 쇼와 통치, 그리고 1970년대 유신 체제를 그대로 연상시키는 발상이다. 역사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 상식이다. 그런데 그걸 완전히 뒤집어버리고 그야말로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음직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한 것이다. 그런 때는 우리 역사에서 두 시기가 있었다. 일제 군국주의 시기와 박정희 유신 체제다. 이승만 시대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그래도 제한된 속에서 언론 자유가 있었다.

어쨌건, (<백년전쟁>에 대한 그런 식의 반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가 거기 끼어들 것까지는 없는 거다. (<백년전쟁>이 그렇게 맘에 안 들면) 이승만 지지 세력이나 수구 세력에서 그에 대항하는 언론 활동을 하든가 그런 작품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느 쪽이 더 올바른 주장을 하고 있는가를 시민들이 판단하게 하면 되는 거다. 그게 민주 사회다.

하여튼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바라보는 역사 인식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상당히 풍자적으로 또는 새로운 문화적 양식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해 반감을 가졌으면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 권력을 이용하려는 건 참 나쁜 자세다.

프레시안 : 청와대 개입 의혹을 접하며, 뭔가 일이 생기면 권력 기관에서 불러 대응을 주문하는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게 자연스러워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서중석 :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걸 자연스럽게 여기는 태도가 퍼진다면, 참 큰 문제다. 내가 계속 이야기하는 건, 꼭 권력을 쥔 자들만 나무랄 게 아니라 그런 걸 보고도 방관하는 지식인들의 태도가 그에 못지않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결코 방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신의 발언이 권력에 의해 검색되고 통제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에 대해 당연히 분노해야 한다.

(하나 더 이야기하면) 이승만 살리기, 박정희 유신 체제를 옹호하는 분위기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건 1995년부터다. 그런데 왜 그때부터 그런 게 심해졌을까? 이게 요 근래 내 화두다. 그 이유를 난 이렇게 해석한다.

(1987년) 6월항쟁 때까지는 독재 정부가 이데올로기를 관리했다. 현대사에 대한 해석과 설명을 국가에서 홍보하고 선전하고 교육했다. 그것에 따라서만 사고하도록 한 것이다. 그야말로 수구 냉전 이데올로기, 극우 반공 이데올로기를 국민들한테 강요했다. 그래서 일부 수구적·극우적인 언론들은 절대 권력에 맹종하거나 야합하는 정도로만 있어도 괜찮았다.

그러다 6월항쟁 이후 개방된 분위기를 만나버린 것이다. 그런데다 그 전후에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혁명적인 현대사 해석이 나와 버렸다. 그건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현대사 해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컨대) 그때 내가 주장한 좌우합작 논리에 대해 '저건 낡아빠진 거고 미약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혁명적인 논리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장이다',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흐름이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학계에서 그랬다.

그러니까 극우 세력이 놀라버린 거다. 자신들이 과거에 기생하고 유착하면서 온존시킨 이데올로기를 권력이 옹호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 뉴라이트라고 하는 세력을 앞세운 거다. 그러면서 이승만을 살려내고 키워야만, 또 박정희의 유신 체제가 그렇게까지 잘못은 아니었고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식의 논리를 펴야만 자신들의 기득권을 영속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도 1990년대에 <조선일보>한테 된통 당한 적이 있다.

▲ 댜큐멘터리 <백년전쟁> 포스터.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는 권력의 소유물이 아니다

프레시안 : 1994년 국사 교과서 논란을 말하는 건가?

서중석 : 그렇다. <조선일보>에서 나를 이른바 좌경 용공 분자 비슷하게 몰아세웠다. (1994년 3월, 제6차 교육 과정에 따른 국사 교과서의 편찬 준거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서 교수는 당시 현대사 분야 준거안을 만들면서, 학계의 연구 성과를 폭넓게 반영하고자 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 세력은 서 교수에게 색깔론을 바탕으로 거센 공세를 퍼부었다. <편집자>) 그때 내가 놀란 것 중 하나가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일부 학자가 성급한 발언을 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문제 삼았다.

대통령이 학자들의 역사 해석에 일일이 끼어들려고 한 것이다. '대통령은 모든 걸 명령하고 결정할 수 있다. 그건 학문이나 역사 이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사고를 그때 난 봤다. (이게 YS만 그런 게 아니라)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대까지는 (역사 해석을) 너무나 당연하게 국가 권력의 소유물인 것처럼 생각한 게 사실이었다.

다시 정리해서 이야기하면, 이 모 교수가 청와대에서 신임 대통령에게 했다는 얘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학문적인 것에 대해서도 참견해서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식의 체질(이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걸 너무 오랫동안, 사실은 6월항쟁 이후에까지 가졌던 거다. 그게 (한동안 사그라진 듯하다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에 여러 가지 형태로 살아났다. 그리고 (<백년전쟁>과 관련해 "국가 안보 차원" 운운한 건) 이번에 새 정권이 등장하니까 다시 권력에 기대서, '2008년 이후 역사를 권력이 농단했듯이 또 농단을 해봐라'는 식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과 관련 있는 발언이라고 본다.

심각한 문제다. 이걸 단절시키지 못하면, 이런 식의 논리가 힘을 못 쓰게 만들지 못하면 어떻게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사고가 가능하겠는가. 참 당혹스럽고 경악할 만한 이야기다.

*서중석 교수 인터뷰 2편이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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