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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속리산과 대청호의 신록예찬"

[알림]국토학교 3주년 특집 제30강 참가 안내

프레시안 알림 2012.03.26 14:19:00

다음 강의 준비중입니다.

국토학교(교장 박태순, 소설가)가 4월 봄맞이 답사(제30강)로 <속리산과 대청호의 신록예찬>을 마련합니다. 답사 키워드는 <중부 내륙 국토가 새롭다>. 국토학교 개교 3주년 특집 답사입니다. 지난 3년 30강을 이끌어주신 박태순 교장선생님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제30강은 4월 14(토)∼15(일)일 1박2일로 진행되며, 첫날 대청호반의 문의문화재단지를 둘러본 후 청남대를 답사하고 오리숲·법주사·세심정 등 속리산 일대를 트레킹한 후 청화산농원에서 1박합니다. 다음날 견훤산성, 화양9곡 탐방에 이어 쌍곡9곡 트레킹까지, 대청호, 속리산 일대의 실록예찬에 나섭니다.


▲ 문의문화재단지에서 바라본 대청호 ⓒ청원군

박태순 교장선생님은 이번 답사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속리산과 대청호반 일대는 중부내륙국토의 그린필드를 형성한다. 역사를 통해 살펴도 동과 서, 남과 북의 교차지대여서 유서 깊은 사연들을 저장해놓고 있다. 이미 5세기 무렵에 충주 남한강 일대를 점령한 고구려에 맞서 상당산성의 백제와 삼년산성의 신라가 동맹을 맺어 오늘의 대청호반 일대에서 격전을 벌이게 되었던 역사지리를 통해서도 그 국토문화사의 중요성이 새삼스러워진다. 금강, 한강, 낙동강의 3대강의 아기집을 이뤄온 속리산을 차지해야 3국통일 전망이 보이게 된다는 이치였다. 하건만 자연경제시대의 속리산 일대는 교통 불편으로 후진지역 쪽에 속하게 되기만 했다. 시인들은 속세의 안목으로서는 접근 못할 탈속의 장엄함이 있다고 읊었다.

중부내륙국토의 자연지리, 인문지리, 산업지리…. 새롭게 작성해보아야 한다. 우선적으로 대청호 일대와 속리산으로 찾아가는 길이 보다 명쾌해졌다. 서울의 수도권은 물론 대구, 부산, 여수, 광주의 어느 방면에서든 고속도로 접속으로 한달음에 당도할 수 있다. 비록 터널과 고가도로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차량 전용도로이기는 하지만 죽령, 새재, 추풍령에 이어 청원-상주고속도로는 제4차 영남대로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저속운행 지대이기만 하였던 중부내륙 지역이 교통 환경의 변화를 타고 지각변동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중부내륙>을 더 이상 등한시해서는 정치국토, 경제국토, 인문국토를 운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대청호반 산책과 속리산 고원 등반으로 모든 국토활동의 흐름을 한눈에 접어보고 싶다. 특히 이 4월에 국토학교는 개교 3주년을 맞이하고 그 답사가 제30강 째에 이르게 되었다. 기념 특집 아고라를 별도로 마련하지는 않기로 하는데 3년에 걸친 30회의 답사마다 각각 국토아고라였기 때문이다. 이를 속리산 자락에서 새삼 확인하고자 하는데 한자리 모임, 그러니까 속리산 아고라의 보람을 위하여 충실한 의제들을 준비하시기를….

<4월 14일(토)>

07:00 서울 출발 (6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 지하철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유진여행 <국토학교> 버스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 국토학교 제30강 답사 여로 ⓒ국토학교


09:30-10:30문의문화재단지(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

전통시대의 문의현(文義縣)은 티끌세상과 거리를 두려는 선비들의 문리와 의리가 숭상되던 고을이었으나, 1980년에 대청댐이 완공될 적에 거의 모두 수몰지역이 되고야 만다. 더구나 문화재단지는 1992년에 가서야 비로소 조성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으니 대청호의 경치 속에는 슬픔도 아픔도 껴묻어 있다. 객사이던 문산관(충북 유형문화재 49호)을 비롯하여 수몰지역의 양반가옥, 민가, 대장간, 주막집 등을 옮겨놓았는데 고대사의 문화유적들은 수몰지역이 아닌 곳에서조차 제대로 조사되지 아니하였다. 되레 각종 문화예술행사장으로 활용되고도 있다. 미술전시회가 자주 열리곤 하는 <문화유물전시관>은 소설가 오효진이 청원군수로 당선된 뒤에 건립된 것이었다.

11:00-12:00 청남대 답사(청원군 문의면 신대리)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2003년 4월 청남대는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대통령 별장의 역할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56만평의 대규모 시설과 수려한 경관에 그냥 감탄만 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청남대의 건설은 일단 '개발국토'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환경국토'를 지향하는 현 단계에서 그 문제점들을 점검해 볼 필요가 생겨나고 있다. 지난 시대의 개발독재의 실상과 개발근대화의 병폐를 제대로 살피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청남대는 제5공화국 시대의 물량위주 건축공간문화와 조경문화를 오늘에 진찰해볼 수 있게 한다. 전통시대의 원림문화-누정문화를 반영하지 않고 있을 뿐더러 그 공간구성마저도 국적불명의 풍경 미학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더구나 충북도청에서 관리하는 이 단지는 아직 절반밖에는 시민사회에 돌아오지 못한 정황도 있는데, <대통령문화>를 너무 내세워 시민들을 종속시키려 하는 운영 방침이 보이기도 한다. 개방 초기에는 큰 반응을 얻어냈으나 시간이 갈수록 내방자들이 줄어드는 것은 대통령 별장지대의 랜드마크를 과감히 벗어내지 못하는 탓이 있다. 새로운 공간문화의 모색과 창조라는 테마를 떠올리게 된다. 시민공원으로 거듭 태어나야 할 청남대의 로드맵이 과연 어떠해야 할 것인지.
▲ 신록의 청남대 정원 ⓒ청원군

12:20-13:00 점심식사 (문의면 <호수식당>에서 두부전골요리)

13:40-17:40 속리산 일대 트레킹

속리산은 천왕봉을 비롯한 8개의 봉우리와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등 8개의 대를 갈무리하고 상주, 보은, 청원, 괴산의 사방팔방으로 수많은 계곡과 폭포들을 건사해낸다. 1984년에는 괴산 화양동계곡 일대와 쌍곡계곡 일대를 포함시켜 관할구역을 넓히기도 하였다. 백두대간의 흐름은 조령산-희양산-백화산으로 뻗어내려 군자산-칠보산-화양동계곡 일대로부터 거대산악군을 달리 구성해 나가기 때문이었다.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1,058m)을 '천황봉'으로 표기하는 기록자들도 있는데, 이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계략이 있었던 작명이었으므로 바로 잡아야 한다. 속리산 트레킹 코스를 다음과 같이 잡아보는데, 클라이밍이 어느 정도는 합류된다.

▶오리숲 : 속리산 관광단지를 벗어나 법주사 들머리에 이르는 숲길이 5리나 된다 하여 이런 명칭이 붙는데 활엽수림의 터널구역에서 신록예찬의 찬가를 아니 부를 수 없다.

▶법주사 : 이 사원의 불교 건축공간 조영은 여러 관점으로 관찰될 필요가 있다. 찾아올 적마다 그 진면목을 달리 아로새겨보곤 한다. 팔상전을 비롯한 3기의 국보와 마애여래의상(倚像) 등의 보물 및 기념물들은 내방자들로 하여금 이미 법신부처 상주처의 경건과 화평을 누려보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순례가 모두에게 한갓진 것일 수는 없겠다. 속리산 지킴이의 역할과 구실을 도맡아야 하는 데에서 경내의 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국가명승지역의 공간 기호학을 더욱 새롭게 해야 하리라.

▶세심정 : 속리산 알피니즘은 상주 화북 코스와 법주사 숲길 코스를 모두 선호하지만 세심정에서 갈래를 잡게 된다. 문장대, 천왕봉, 신선대 방면으로 갈라지는 길목이 되고 있다. 발 빠른 이라면 조금 더 상승해보려 할 수도 있겠으나 높이보다는 넓이를 택하여 탈속 공간 녹색 기운을 한껏 얻고 누렸으니 세심정을 반환점의 쉼터로 삼는다.
▲ 속리산 법주사 ⓒ보은군

19:00 저녁식사 및 숙박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청화산농원>, 돼지고기&채소정식)

<4월 15일(일)>

07:00 새벽 산보

청주-청원-보은 방면의 속리산에 비해 상주-문경-괴산으로 에돌아 나가는 속리산 자락은 아직 생소한 쪽이기에 그만치 새로운 탐구와 탐미가 필요하기도 하리라.

08:00-08:40 아침식사(<청화산농원>에서 콩나물국백반)

09:20-10:40 견훤산성 트레킹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견훤은 문경 가은읍에서 태어났는데 당시에는 이 출생지가 상주에 속해 있었다. 오늘에 이르도록 상주-문경 일대에 견훤 전설이 산재하는데, 견훤이 쌓았다 하여 '견훤산성'이라 불린다는 설화는 반신반의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산성의 문화원형은 5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신라가 개척해낸 것이었다. 견훤산성과 삼년산성은 함께 비교 고찰돼야 한다.

3년이나 걸려 삼년산성을 쌓기까지 신라의 북진 방책은 집요한 것이었다. 속리산의 산남과 산북의 형세가 워낙 불퉁불퉁하여 계립령 같은 통로를 내볼 방도는 없었다. 이 때문에 신라는 점 조직 전략으로 나간다. 모로성 일모성 사시성 광석성 답달성 구례성 좌라성 등의 산성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군사도로 개설에 비하자면 엄청나게 노력도 많이 들고 유지시키기에도 벅찬 노릇이다. 그렇지만 속리산 월경(越境)을 위해서는 이러한 축성을 통한 진출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신라의 팽창노력이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견훤산성은 700m의 경사로를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데 오늘에는 남속리산의 빼어난 스카이라인의 전망대로서 각광을 받는다.

11:20-12:00 점심식사 (화양9곡 <화양손두부마을>에서 버섯전골요리)

12:30-14:00 화양9곡 탐방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송시열의 사적과 흥선대원군의 행적, 그리고 북벌론자들의 사대주의와 북학주의자들의 실사구시를 두루 헤아려보는 명상공간일 수도 있으나, 이는 모두 인간들이 가공한 것이고 회양동의 산천경개와는 일단 상관이 없다. 워낙 거대영상들에 익숙해진 탓에 화양계곡의 쫄깃쫄깃한 소품성(小品性) 미학은 눈에 띄지 아니할 수도 있으나 음미하고 또 음미하면 진수성찬의 풍경들임을 거듭 확인해볼 수 있다. 화양9곡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마다 명품이어서 바깥 세상에 덜 알려진 비경을 찾는 등산인들의 단골메뉴가 되기도 한다.
▲ 화양9곡의 제4곡 금사담 ⓒ괴산군


15:00-16:00 쌍곡9곡 트레킹 (괴산군 칠성명 쌍곡리)

뒤늦게 속리산 국립공원에 편입되었으나 보존 보호될 가치가 충분한 골짜기임에 틀림없다. 이황 성혼 정철 등의 전설도 있고, 송시열 또한 처음에는 화양서원을 이곳에 세우려 하다가 너무 호젓하다 하여 포기했다는 민담도 있다. 쌍곡9곡을 넘으면 괴산 산막이길과 연결이 되는데 이 일대의 군자산은 풍경사냥 호사꾼들의 독과점 품목처럼 되고 있다. 쌍곡9곡 중에서 제1곡이 되는 호롱소를 찾으려 하는데, 9곡의 명칭만 소개해둔다.

제1곡 호롱소, 제2곡 소금강, 제3곡 떡바위, 제4곡 문수암, 제5곡 쌍벽, 제6곡 용소, 제7곡 쌍곡폭포, 제8곡 선녀탕, 제9곡 장암.

16:00 서울 향발

국토학교 30강 참가비는 19만원입니다(교통비와 숙박비, 4회 식사, 입장료, 여행보험료,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홈피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세요.

[학습자료 : '494년 살수 전쟁'과 속리산]

<삼국사기>는 494년에 다음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고 기록한다(백제 동성왕 16년/신라 소지 마립간 16년/고구려 문자명왕 3년).

7월에 신라 장군 실죽(實竹) 등이 고구려와 살수(薩水)의 들판에서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견아성(犬牙城)을 지키고 있었는데 고구려 군사가 그곳을 에워쌌다. 백제 왕 모대(牟大; 동성왕)가 군사 3천 명을 보내 구원하니 고구려가 포위를 풀었다.

494년 7월의 삼국전쟁 상황에서 백제 응원군 3천명이 긴급 출동되었다는 것으로 보자면 신라군과 고구려군의 규모는 이보다 큰 인원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살수'라는 강과 '견아성'이라는 명칭의 장소가 어디인지 이를 고증해내는데 필요한 자료가 아주 적다는 점이다.
살수가 북한의 청천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리고 전쟁의 현장은 살수 벌판이라 하였으니 수전이 아니고 육전이다.

"신라가 이기지 못하여 물러나..."라는 설명으로 보자면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신라군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고구려성을 직접 공격했던 것은 아니었다. 신라군이 고구려성에 닿기도 전에 고구려군이 산성 수비의 수동적 방어 아니라 능동적 공세를 취하여 살수의 '벌판'으로 나와서 맞불작전을 벌이는 상황이라 일단 추정해본다. 살수 벌판은 기마부대가 앞쪽에 배치되어 돌진하고 보병부대가 학익진을 펼쳐 놓으면서 뒤를 따르는 형태의 전투를 벌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을 것이다.

살수가 과연 어디였을까 하는 데 대한 역사추리는 다양하기만 하다. 충주시 살미면(乷味面)은 달천이 남한강 본류와 합수되는 두물머리 안쪽에 있는데 '살미'와 살수를 관련시켜 보려는 연구가 있다.

이병도는 괴산군 청천면의 괴강(달천) 상류가 살수 벌판이고 문경 가은읍의 산록에 견아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현지 지형은 협곡 지대여서 수만명이 동원되는 격전지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 있다. 문경문화원에서 펴낸 <향토사료> 제7집(1992년)은 견아성의 '문경설'에 대하여 의문을 나타내 보인다.

살수 벌판이 괴산군 청천면이라 상정한다면 그 지형으로 살필 적에 고구려군은 문경 가은읍을 통과하여 이 골짜기로 진입했을 것으로 추리해볼 수 있다. 따라서 퇴각하는 신라군이 가은읍으로 빠진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견아성은 문경 방면 아니라 보은의 삼년산성으로 가는 산록에 있어야 한다고 추정한다. 식민시대의 재야사학자 최동(崔棟)의 본직은 의사였는데 그의 <조선상고민족사>는 신라사관 보다는 고구려사관을 펼쳐 보이면서 고대사를 나름대로 면밀히 분석하여 오늘에도 애독되고 있는 방대한 저서이다.

살수 벌판은 청주 서남방의 금강 상류지역이라고 최동은 비정하고 있다. 즉 오늘의 대청호 일대라는 주장이다. 그런가하면 북한의 사학자 중에는 살수를 중국 요동의 태자하(太子河)라 추정하기도 한다 하고, 최근에 범람하는 인터넷 카페의 한국사 토론방 중에서는 견아성이 함경남도 원산 부근일 것이라 주장하는 글도 있다. 역사추리는 항상 중구난방이기 마련이기는 하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신라 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도 보인다.

삼년군은 본디 삼년산군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영현(領縣)으로 청천현이 있는데 본디 살매현(薩買縣)이었다.

삼년산군은 곧 삼년산성이 있는 오늘의 보은군을 가리킨다. 삼년산군에 속한다는 청천현은 오늘의 괴산군 청천면일 수가 있다. 청천현의 본디 이름은 '살매현'이라 하였다는데 여기에 고대한국사의 비밀을 푸는 언어기호학의 열쇠가 은닉되어 있다. 북한 청천강의 옛 이름이 또한 '살수'였으니 한자로 표기하면 '청천'이 되고 고대어 표음대로 적으면 살내(살수) 또는 살매가 된다.

'494년 전쟁'의 살수 들판은 오늘의 대청호이거나 청남대가 자리한 산록지대일 것이라고 나는 추정해보고자 한다. 국어학자 중에는 '살매'가 신라시대의 발음으로서는 '살물'이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494년 기사에 나오는 '살수 벌판-견아성'의 지리고는 이처럼 일치되지 않고 여러 설로 엇갈리고 있는데 앞으로도 하나로 일치되지는 않을 듯하다. 또한 딱히 일치시켜야 할 이유도 없다.

보은문화원은 속리산과 대청호 일대에 산재하는 고대 산성들을 조사하였는데 삼국전쟁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7개의 고성 자취들을 확인하였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옛 성들이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삼년산성과 함께 주목을 받는 것이 회북면 부수리에 있는 매곡(昧谷)산성이다. 나는 이 성이 '견아성'일 수 있다는 가정을 내세워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피반령 고개에 관한 짧은 고찰>

피반령(皮盤嶺)은 보은군 회인면 오동리에서 청원군 가덕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보은군과 청원군의 경계를 이룬다. 대청호를 경과하여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관광코스가 되고 앞전의 근대도로들에 밀려나 뒷전의 아리랑고개처럼 되어버렸으나 전통시대에는 충북과 경북을 단숨에 잇게 하는 지름길의 역할도 하였다.

해발 360m에 불과하지만, 이 고개를 넘던 가마꾼들의 손과 발이 피범벅을 이루어 <피발령>이라 부르던 데에서 피반령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는 설화처럼 이 고개의 문화지리학은 풍성한 쪽이다. 회인현은 아예 옛 군현의 지위마저 유지 못하여 지금은 보은군의 1개 면으로 되어 있으나 전통시대에는 청원과 보은을 연결 짓는 고장이었고 금강 상류 쪽으로 옥천과 영동을 연계시키는 교통환경의 중심지였다. 두메산골 오지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 찾아가 보기를 권면드린다. 그러나 회인에는 옛 자취라곤 없고 시인 오장환을 기리는 문학관이 새로 건립되었을 따름이다.

완행버스를 타고 피반령을 넘은 적이 있는데, 충북과 경북을 갈래짓게 하는 산골의 고개들이 어찌나 꾸역꾸역 나오기만 하는지 나름대로 역사퓨전을 궁리해본 적이 있었다. 그러하던 피반령이건만 고속도로의 덕분인지 폐단인지 이 고개마루의 역사와 스토리들이 모두 거품이거나 허풍인 것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놀랍기도 하여라. 이 고개가 엉뚱하게 각광을 받고 있는 중이다. 라이딩이니 바이크니 하는 이들의 자전거 일주 코스로는 최적이라 하여 와글바글 동호인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것. 아디오스 피반령! 묵은 피반령이여 안녕, 그러나 새 피반령이여 새로운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라.

[지난 3년 국토학교 30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9년>
제1강 (4월): 남한강 뱃길 따라 영남대로 옛길 따라
제2강 (5월): 영남 전통마을 순례 (답사 키워드 - 산은 책이다)
제3강 (6월): 호남의 누정문화 원림문화 (풍경의 발견과 재발견)
제4강 (7월): 북강원의 요산요수 (동해안 풍류길 되살린다)
제5강 (8월): 내포지방에 부는 바람 (백제의 미소와 제2의 지중해)
제6강 (9월): 금강문화권의 초대장 (옛이야기 재잘대는 실개천 휘돌아)
제7강(10월): 낙동강 따라 가야 달빛기행 (우리 땅의 고고학 상상력)
제8강(11월): 만추의 호남 단풍길, 침엽수길 (대자연 소자연 합자연)
제9강(12월): 동해에서 묵은해 보내기 (동해용왕과 수로부인과 해신당)
<2010년>
제10강 (1월): 임진강의 봄, 한탄강의 봄 (분단유목문화 가로지르기)
제11강 (2월): 얼쑤! 대보름 달마중 가세 (봄맞이 카니발 : 아산 공주 청양 부여)
제12강 (3월): 순천만에서 섬진강으로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제13강 (4월): 남한강 상류 녹색체험 (주천강, 영월 동강, 정선 아우라지)
제14강 (5월): 북한강의 흐르는 강물처럼 (홍천강-소양강-파로호-내린천)
제15강 (6월): 호남평야 황톳길 순례 (동학의 지평선과 하늘)
제16강 (7월): 신(新)택리지-안성(安城) 탐구 (고은 시인, 이반-김억 화백 현지 특강)
제17강 (8월): 강화만-경기만 서머플레이스 탐방 (스토리 간직한 황해문화를 위하여)
제18강(10월): 호남 가을 풍광...빛의 축제, 흙의 축제 (광주비엔날레, 강진도자기아트프로젝트)
제19강(11월): 만추(晩秋)에 찾는 경주지역 세계문화유산 (서라벌 아고라의 사랑이야기)
제20강(12월): 남해 바닷가의 겨울나그네 (진주-남해-고성-통영 블루투어리즘)
<2011년>
제21강 (1월): 소백산에서…봄을 부르는 노래 (금선정-선몽대-병산서원-죽계구곡)
제22강 (2월): 서해안 남도길 해토머리 풍광 (고창-영광-함평-목포-신안 한바퀴)
제23강 (3월): 해남반도와 보길도의 별천지 꽃길 (하염없는 동백나무 숲속의 산책)
제24강 (4월): 개교 2주년 기념 남한강 스페셜 투어 (영혼의 강(소울), 생명의 강(스피릿))
제25강 (6월): 부산갈매기의 꿈과 희망 (한국 속의 부산, 세계 속의 부산)
제26강 (8월): 웅진백제-부여백제 고미술 기행 (서해 해양문화유산 새롭게 살피기)
제27강(10월): 지리산의 원초적 본능 (높은 산, 넓은 산, 깊은 산)
제28강(12월): 설악-동해 특집 (저무는 해의 전송, 한 해의 마무리)
<2012년>
제29강 (2월): 굿모닝! 조강, 임진강, 한탄강 (새로운 언어로 탐구하는 남북분단지역)
제30강 (4월): 속리산과 대청호의 신록예찬 (중부 내륙 국토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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