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한 초원 능선...소백산의 봄"

[알림] 3월의 백두대간학교, 아침 6시 서울 출발

프레시안 알림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3.04 10:48:00

크게 작게 스크랩 프린트

페이스북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미투데이 보내기 요즘 보내기 C로그 보내기 구글 북마크

백두대간학교(교장 최창남)의 <백두대간걸작선> 3월 산행(제29강)은 봄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는 <소백산 구간>입니다. 오는 봄을 만나기 위해 비경의 산, 지혜와 수행의 산 소백으로 들어갑니다. 이번 산행 주제는 <소백산의 봄>입니다.

<백두대간걸작선> 3월 산행부터 출발 시각을 조정합니다. 그 동안 백두대간학교는 새벽의 청명한 공기를 마시며 대지가 깨어나는 시간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새벽 1시 서울을 출발해 무박산행을 진행해 왔습니다. 처음 참가하는 분들이나 무박산행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 섣불리 산행에 동참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기존에 참여하신 분들도 이동하는 버스에서 선잠을 자며 도착해 산행을 시작하느라 피로를 호소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백두대간학교는 앞으로 산행 장소와 산행 거리에 따라 당일산행과 무박산행을 병행하고자 합니다. 산행지가 먼 곳과 1박2일 산행은 무박산행으로 출발하고 산행지가 가까운 곳들은 당일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 봄을 맞은 소백산 초원 능선 ⓒ소백산국립공원

3월 23(토)일, 백두대간학교 산행은 소백산입니다. 당일 아침 6시 서울에서 출발합니다.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넘나드는 죽령고개에서 산으로 들어갑니다. 죽령에서 소백산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까지는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습니다. 죽령에서 비로봉에 오르는 길은 평탄한 오르막입니다. 물론 몇 군데 가파른 오르막도 있지만 걷기에 평안한 길입니다. 군데군데 위치한 전망대의 조망을 보며 소백산천문대를 지나 제1연화봉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각자 집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도시락을 한데 풀어놓고 담소를 나누며 맛있게 점심식사를 합니다.

제1연화봉에서 비로봉에 가는 길은 시야가 확 트여 있습니다. 앞뒤좌우 산들의 중첩이 한 폭의 동양화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비로봉 가는 길의 주목군락(천연기념물 244호)과 탐방로로 설치된 나무데크 길도 소백산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로봉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가득 담고 어의곡으로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그리 심하진 않으나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있고 땅이 얼어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발걸음을 디뎌야 합니다. 어의곡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을 마칩니다.

▲ 소백산 비로봉에서 본 산그리메 ⓒ백두대간학교

[교장선생님의 산행지 설명]

봄입니다. 길게만 느껴지던 겨울 지나고 봄 왔습니다. 지난 겨울 참 춥고 시렸습니다. 봄 되면 파릇파릇 돋아나고 여름이면 무성히 잎 키우며 울울창창 숲 이루던 나무들이 가을이면 여름 내내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던 나뭇잎들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이유는 모진 겨울을 견뎌내기 위한 것입니다. 살 에는 한파 몰아치는 모진 겨울에서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모든 에너지를 한 곳에 모은 채 거친 눈보라 깊은 겨울을 견뎌냅니다. 그렇게 모진 한파를 견뎌내며 더욱 단단해지고 충만해진 생명들이 봄과 함께 움트는 것입니다.

자연에서 맞는 봄, 특히 산에서 맞는 봄은 언제나 감동적입니다. 눈보라를 이기고 파릇파릇 싱그럽게 돋아나는 여린 잎들의 경이로운 생명력에 절로 가슴이 떨려옵니다. 설렐 사이도 없이 절로 옷깃 여미고 마음 모으게 됩니다.

자연의 모든 변화가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 자연입니다. 산입니다. 며칠 전 찾았던 겨우 내내 눈 덮였던 깊은 산에는 벌써 봄이 와 있었습니다. 눈 덮인 바위 틈 사이로 깊은 땅 지나온 맑은 물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음 담그면 세상 살며 묻혀 온 지저분한 것들이 씻겨져 맑아질 것 같았습니다. 꽃망울들은 움트려고 움찔거리고 있었습니다. 온 산이 생명의 움틈으로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 봄이 활짝...소백산 야생화 ⓒ소백산국립공원

백두대간학교의 산행일인 23일(토)에는 완연히 봄 찾아와 산길마다 파릇한 기운 가득할 것입니다. 그 봄을 만나기 위해 아고산지대가 펼쳐 놓은 비경의 산, 지혜와 수행의 산 소백으로 들어갑니다. 바람 세차고 비와 눈이 자주 내려 키 큰 나무는 자랄 수 없는 아고산지대(해발 1300~1900m)는 바람과 추위를 잘 견디는 키 작은 나무들과 야생식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숲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세계를 산줄기 따라 펼쳐 놓았습니다.

아고산지대가 소백산에 풀어 놓은 아름다움은 넘치도록 충만한 생명력을 비워내는 비움의 아름다움입니다. 비웠으나 가볍지 않고 장엄한 아름다움입니다. 화려한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황홀한 아름다움입니다. 산 길 걷다 보면 저 홀로 젖어드는 황홀함입니다.

그 길에는 큰 산이 품고 있는 큰 나무와 커다란 바위 등은 찾을 길 없습니다. 그저 바람에 출렁이는 여린 풀들과 내내 그 자리에서 기다렸을 것 같은 야생화들만 흔들리고 있을 뿐입니다. 걷다 보면 절로 마음공부를 하게 되는 산길입니다. 사실 소백산 비로봉을 향한 이 길은 모두 마음공부를 위한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백산 줄기는 죽령의 저 남쪽 저수령에서 시작됩니다. 저수령으로부터 소백산 비로봉을 잇고 있는 봉우리들은 마치 하나의 산줄기이고 하나의 산입니다. 모두 소백산의 최고봉인 비로봉(毘盧峰, 1439.5m)을 향해 있습니다. '비로'(毘盧)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줄임말로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즉 '부처의 진신(眞身)'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 저수령에서 소백산으로 가는 산줄기의 봉우리들은 모두 부처를 향해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저수령에서 고개를 숙이고 산길로 들어서면 불 밝혀 길을 인도하는 촛대봉(1081m)이고, 하룻길 애써 땀 흘리며 걷다 보면 묘적봉(妙積峰, 1148m)과 도솔봉(兜率峰, 1314m)에 이르게 됩니다. '묘적'은 참선하여 삼매경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고, '도솔'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니 산길은 그저 산을 지나는 길이 아니라 수행길이기도 합니다. 불 밝혀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촛대봉을 지나 참선을 통해 삼매경에 든 후 도솔천에 들어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렇게 도솔봉을 지나 내려서면 죽령입니다. 옛날 어느 도승이 길을 가다 대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죽은 지팡이가 살아났다하여 죽령이라는 심상치 않은 이름을 얻게 된 고개입니다.

우리의 산행은 유서 깊은 이름을 가진 죽령에서 시작합니다. 연화봉을 향합니다. 연화봉(蓮花峰, 1394m)은 사바세계에 내려오신 부처님을 상징합니다. '세속에 드러난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이 봉우리를 틔운 것이 바로 연화봉입니다. 그 연화봉에서 진리의 삶을 이루게 되면 바로 부처님을 만나게 됩니다. 부처님의 진신인 비로봉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백산 비로봉을 향해 가는 산행은 그것 자체가 수행이요 깨달음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첩첩히 늘어선 산줄기들도 걷는 자들도 모두 하나의 산이고 하나의 산행이며 하나의 마음인 것입니다.

소백산(1,440m)은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상월봉으로 능선을 따라 백두대간 태백산으로 이어집니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비경을 품고 있습니다. 비어 있으나 가볍지 않고 장엄하며, 아름다우나 화려하지 않고 황홀한 아름다움입니다. 하늘에 가까운 하늘길이지만 그 길은 하늘을 향해 있지 않고 사람들 몸 비비며 살아가는 땅을 향해 있습니다. 사람의 길입니다. 봄을 맞아 생명력 충만한 그 길, 하늘이 사람을 위해 내려 준 길을 따라 걷는 것이 3월 산행입니다. 소백산이라는 이름에는 '작은 백두산'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부드럽지만 백두산의 기상을 품고 있는 정기 어린 산입니다.

죽령에서 산이 내어준 길을 따라 걷다보면 나란히 선 연화봉들을 만나게 됩니다. 연꽃이 여러 송이 피어난 것입니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입니다. 연꽃은 진흙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함초롬히 꽃을 피웁니다.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고 정갈한 자태를 지킵니다. 그러하기에 연꽃은 세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상징하는 꽃이 된 것입니다.

연꽃의 의미가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물속에 떨어진 연꽃 씨는 오랜 세월 지나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움터 꽃을 피웁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부처의 심성도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부처로 꽃 피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꽃은 그런 꽃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를 상징하는 꽃이 된 것입니다.

그 연꽃 피어난 연화봉들을 지나면 소백의 아름다움에 취해 길 걷는 이들을 반기는 듯 수백 년의 세월을 의연히 서 있는 1천 여 그루의 주목들을 만나게 됩니다. 주목군락지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며 바로 부처의 진신을 상징하는 비로봉의 품입니다.

길고 힘들었던 가슴 시린 겨울 지나고 봄을 맞습니다. 2013의 봄을 소백산에서 맞습니다. 하늘에 가까우나 사람을 향해 나 있는 그 길에서 새로운 봄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추신> 소백산 연화봉에는 빨간색 우체통이 있습니다. 엽서나 편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2013년 새 봄을 맞으면서 소중한 분들이나 자신에게 마음을 담아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부드럽다...소백산 비로봉 능선 ⓒ소백산국립공원

▶구간소개

-산행코스 : 죽령→제2연화봉→연화봉/천문대→제1연화봉(각자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비로봉(1,440m)→어의곡 갈림길→어의곡탐방지원센터
-산행거리 : 약 15.9km
-소요시간 : 약 7시간(휴식시간 포함)
-난 이 도 : 중중(★★). 산행은 가파른 오르막이 없이 능선길을 걸어 평안하나 거리가 다소 길다.

[산행계획]

여유 있는 산행을 위해 일찍 출발합니다. 모든 산행은 전문산악가이드 두 분이 '안전제일'로 진행합니다. 산악가이드 이철승 선생님은 백두대간 종주 등 산행경력 30년의 공인 등산안내인이고, 엄재용 선생님은 백두대간을 3회 종주한 공인 등산안내인입니다.

<버스운행>

출발 시각 10분 전에 도착하여 버스에 탑승하세요. 버스 앞에 <백두대간학교> 표지가 붙어 있습니다. 김종선 기사님 전화번호는 010-4152-1055 입니다.

▶출발 시각이 변경되었습니다.
덕수궁 06:00 출발 덕수궁 대한문 앞 출발(지하철 1,2호선 시청 2번 출구)
양재역 06:30 출발 양재역 출발(지하철 3호선 12번 출구)
죽 전 06:45 출발 경부고속도로(하행) 죽전 버스승차장
*출발 시간은 산행에 따라 변경됩니다.
*아침식사는 버스 이동 중 미리 준비한 깔끔하고 맛있고 럭셔리한 김밥^^


<산행일정>

09:00 죽령 도착
산행 준비, 스트레칭 후 출발
10:30 제2연화봉
11:30 연화봉. 천문대.
12:30 제1연화봉-점심식사(각자 준비한 도시락)
*도시락을 꼭 싸오시기 바랍니다. 옹기종기 모여 맛있는 반찬들을 나누어 먹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산행을 기대합니다.^^
14:20 소백산 비로봉(1,440m)
16:00 어의곡탐방지원센터. 산행 마감. 버스 이동.
16:20 단양 <장다리식당> 도착. 온달마늘연정식(목살수육+두부구이+마늘영양밥
+밑반찬 10여 종+쌈+된장찌개 등)과 막걸리로 뒤풀이
18:00 서울로 출발
20:30 서울 도착 예정
*상기 일정은 현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소백산 산행로 ⓒ백두대간학교

[산행준비물]

등산복, 장갑, 등산모, 방풍의, 우의, 스틱, 물통, 여벌 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스패츠, 아이젠, 얼굴가래개(버프.), 그리고 반드시 점심도시락을 가져오세요.

<백두대간걸작선> 제29강 <소백산 구간> 참가비는 9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2회 식사와 뒤풀이, 강의비, 가이드비,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백두대간학교 홈피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을 이용해주십시오(산행에 관한 문의는 이철승 선생님에게 해주세요. 010-8727-0202). 아울러 백두대간학교 카페에도 많이 놀러오시고 회원 가입도 해주세요 (http://cafe.naver.com/baekdudaeganschool)^^.

☞참가신청 바로가기

▲ 소백산의 봄 ⓒ소백산국립공원

[산행자료]

[죽령] 689m.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소백산에 있는 고개. 아흔아홉 구비의 험하고 힘든 고개로 유명한 죽령은 옛날부터 오르막 30리, 내리막 30리라 했다. 도솔봉(兜率峰, 1,314m) 연화봉(蓮花峰, 1,394m) 국망봉(國望峰, 1,421m)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교통로였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서쪽 사면은 충주호로 흘러드는 죽령천의 상류 하곡과 연결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에 이 고개를 사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비교적 높고 험한 고개이므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걸어 다녀야 했던 시절에는 이 고개에 도둑떼가 들끓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도둑떼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도둑소굴로 숨어들어 망을 보다가 사람들에게 신호로 "다자구야"라고 외쳐서 도둑떼를 사로잡는 데 공을 세워 이곳 주민들은 매년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에 모여 '다자구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중앙선이 이 고개를 통과하기 위해 '또아리굴'이라 불리는 루프식 터널을 건설했다. 대강면 용부원리 죽령역에서 풍기읍 희방사역으로 빠지는 중앙선 철도 길이 4,500m의 똬리굴(죽령터널)을 통하여 죽령 산허리를 통과한다.

죽령에서 단양까지의 서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높은 곳까지 개간되었고 동쪽 사면인 경상북도 풍기쪽으로는 산림이 우거져 있다. 부근에 죽령 봉수와 보국사, 희방사가 있다.

죽령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엎치락뒤치락 불꽃 튀는 접전장이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 신라 진흥왕 12년, 왕이 거칠부 등 여덟 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 뒤 영양왕 1년 고구려 명장 온달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아서도 죽령이 막중한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를 지날 무렵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우왕 8년(1382년)과 9년에 각각 왜구가 죽령을 넘어왔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

-죽령 산신당(용부원리) 설화
매바우(鷹岩)마을(일명 용부원리(用富院里)라 하는데 조선 시대 용부원이 있었다)에는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산신당이 있다. 죽령의 산신은 '다자구 할머니'다. 단양문화원이 펴낸 <단양군 민속조사 보고서>(김영진,1992)에 따르면 일찍이 신라시대부터 죽령에는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國行祭)가 있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봄가을로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보내 작은 제사를 지낸다"고 죽령 밑에 주석을 달았다. 지금의 죽령사(竹嶺祠)를 짓고 산신제의 틀을 갖춘 것은 대략 조선 중기로 보이는데 이때 등장하는 산신이 바로 다자구 할머니다.

당시 나라에 바치는 세금으로 삼베니 무명, 엽전 따위가 죽령을 통해 넘어가는데 고갯마루에 숨은 도둑들이 사람 물건 할 것 없이 빼앗고 해치지만 관병도 이를 다스리지 못했다. 어느 날 두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죽령의 산적을 잡는 데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던 토포군과 미리 짜고 산적굴에 들어갔다. '들자구야'는 기다리라는 신호였고 '다자구야'는 공격 신호였다. '다자구'는 모두 잔다는 뜻이고 '들자구'는 아직 덜 잔다는 뜻이다. 산적에게는 이름이 '들자구'와 '다자구'인 두 아들을 찾는다고 둘러댄 터였다. 마침내 산적이 모두 술 취해 잠 든 사이 노파의 "다자구야" 소리를 신호로 토포군이 들이닥쳐 산적을 섬멸했다.

이에 나라에서는 죽어 산신령이 된 '다자구 할머니'를 기려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후 나라에서 할머니를 찾으려 애를 태우자 관리의 꿈에 나타난 할머니가 "나는 사람이 아니라 산신이니 정 보답하고 싶으면 서울에서 연을 띄워 처음 앉는 자리에 사당을 짓고 1년에 제를 두 번씩 올려 달라" 했다. 두 번째 시도 끝에 지금의 터에 연이 내려앉았고 그 자리에 서있던 옻나무를 베어 산신당을 짓고 나라에서 하사한 사당 옆의 토지에서 얻은 곡식으로 국행제를 올리는 풍습이 시작되었다 한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이 땅의 모든 국행제를 금지시켰다. 죽령 산신제 역시 마을 사람들의 손에 의해 근근이 그 명맥을 이었다. 매바우에선 지금도 매년 음력 3월과 9월이면 어김없이 산신제를 지낸다. 날짜는 초정(初丁)인데 초정에 부정(不淨)이 들면 중정(仲丁)으로 넘겼다가 중정마저 부정이 들면 또 하정(下丁)으로 넘긴다. 도가(都家, 제사 준비를 맡은 집)로 뽑힌 집주인은 목욕재계하고 3일 동안 기도를 올려 정성을 들인다. 매바우에선 마을 사람 누구라도 산신당에 대한 믿음이 가히 절대적이다.

▲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소백산 주목 ⓒ소백산국립공원

[연화봉(蓮花峰)] 1,394m. 철쭉 군락이 뒤덮여 있어 매년 '소백산 철쭉제'가 열리고 있고 철쭉여왕 선발과 산신제 등 다채로운 행사가 거행되며 연분홍 철쭉과 울긋불긋한 등산객들로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곤 한다. 이곳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국립천문대와 공군 통신대가 자리잡고 있어 우리나라 천문공학의 요람이며 소백산의 여러 줄기에서 오르는 등산로의 합류 지점이다.

-연꽃이 불교의 상징적인 꽃으로 된 이유
부처님은 설법을 하실 때에 연꽃의 비유를 많이 들었다. 또한 선가禪家에서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묘법(妙法)"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느 날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부처님이 설법은 하시지 않고 곁의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였는데 제자 중에 가섭존자만 홀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이것은 마음으로 마음을 속속들이 전하는 도리로서 선종(禪宗)에서는 세 곳에서 마음 전한[三處傳心] 이치라 하여 중히 여기고 있다.

1. 처염상정(處染常淨)
진흙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함박스런 꽃을 피우는 연꽃은 처염상정이라 해서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아니하고 항상 청정한 자태를 나타내는 꽃이다. 이것은 마치 불자(佛子)가 세속에 처해 있어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아름다운 신행(信行)의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보살(菩薩)이 홀로 자신의 안락을 위하여 열반(涅槃)의 경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중생의 구제를 위하여 온갖 죄업과 더러움이 있는 생사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은 고해라는 사바세계에 피어난 한송이 연꽃과도 같다고 본다.

2. 화과동시(花果同時)
연꽃이 자랄 때는 씨방과 꽃잎이 함께 자라난다. 이것을 '연밥[蓮實]'이라 한다. 대부분의 꽃들은 꽃잎이 지고 차차 씨방이 여물어가지만 연꽃은 꽃잎이 막 피어날 때 씨방도 같이 여물기 시작한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가 늘 함께 있다는 불교의 진리를 상징한다고 본다. 현재 나의 몸과 내가 가진 생각은 바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결정체, 즉 내 몸과 생각은 온 우주 허공을 하나로 꿰뚫고 모든 세월을 함축해서 현재 이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연꽃은 불교의 진리를 나타낸다.

3. 연꽃은 불성을 상징
물 속에 떨어진 연꽃 씨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움터 꽃을 피운다. 이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부처님의 성품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썩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가 인연이 닿으면 부처님으로 꽃 피울 수 있다는 불교의 철학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연화장세계 [蓮華藏世界]
불교에서 그리는 세계의 모습. 연꽃에서 태어난 세계 또는 연꽃 속에 담겨 있는 세계라는 뜻으로, 그 모습은 교파와 종파에 따라 다르다.

불자들은 늘 연화장 세계에 살기를 꿈꾼다. 더 나아가 이 사바 세상을 연화장 세계로 만들기 위해 많은 선지식과 많은 지도자들이 일생을 다 바쳐 노력과 봉사로 일관해온 모습을 보여 왔다. 많은 이들이 오늘도 자신의 삶보다는 온 인류를 위해 연화장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고 정진하고 있다. 연화장 세계는 청정과 광명이 충만되어 있는 불자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불국토이기 때문이다.

연화장 세계를 일러 화장세계, 연화장장엄세계라고도 부른다. 비로자나불이 있는 세계이며, 한량없는 공덕과 광대장엄을 갖춘 불국토이다. <화엄경>에서는 연화장 세계가 삼신불, 그 가운데서도 노사나불의 서원과 수행에 의하여 현출된 이상적인 세계라 정의하고 있다. 이 세계의 가장 밑바닥에 풍륜이 있고 그 위에 향수해가 있으며, 이 향수의 바다 속에 한 송이의 큰 연꽃이 있는데, 이 연꽃 속에 있는 세계를 일러 연화장 세계라 한다. <범망경>에서는 노사나불이 1,000개의 잎으로 된 연화대에 앉았는데 그 1,000개의 잎이 각각 한 세계이고, 노사나불로부터 화현한 1,000의 석가모니불이 있는 1,000개의 세계가 있고, 한 세계마다 다시 100억 개의 나라가 있다. 이 100억의 나라 하나하나에 다시 석가모니불이 있어서 보리수 아래에 앉아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화엄경과 범망경에서의 연화장 세계는 삼신불의 사상을 드러내면서도 불교의 깊은 진리를 구체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 환상...소백산 일출 ⓒ백두대간학교

[희방사] 850m.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어느 날 두운조사가 신음하는 호랑이를 발견했다. 그 호랑이는 사람을 먹고 목에 비녀가 걸렸는데, 두운조사가 비녀를 빼주고 호랑이를 살려줬다. 그 후 호랑이는 두운조사의 은혜를 갚고자, 어느 양가집 규수를 물어다 주었는데 그 규수는 바로 경주호장의 무남독녀였다. 경주호장은 딸을 살려준 두운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이 절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절 이름도 은혜를 갚게 되어 기쁘다는 뜻의 희(喜), 두운조사의 참선방이란 것을 상징하는 방(方)을 써서 희방사(喜方寺)라 이름 지었다."

[비로봉(毘盧峰)] 1,439.5m. 우리나라의 산 중에는 비로봉이란 이름이 제법 많다. 그런데 그 공통점은 주로 산 정상 봉우리의 이름들이다. 묘향산 비로봉(1,909m), 금강산 비로봉(1,638m), 오대산 비로봉(1,563m), 치악산 비로봉(1,288m), 속리산 비로봉(1,057m) 등등. 비로(毘盧)란 불교 용어로 범어의 바이로차나(Vairocana)의 음역이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준말이다.

원래의 뜻은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法界)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것으로 '부처의 진신'을 일컫는 말이다. 비로자나불은 종파마다 각각 달리 불리는데, 화엄종에서는 석가모니불, 진언종에서는 대일여래, 천태종과 법상종에서는 법신불 등으로 부르는 부처다. 절에서 대웅전이란 석가모니를 모신 전각이니 그 큰 영웅[大雄]이 바로 불교에서 으뜸이신 부처! 석가모니다.

-비로자나불 [毘盧遮那佛, Vairocana]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 ·노자나불·자나불이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로 '태양'이라는 뜻인데, 불지(佛智)의 광대무변함을 상징하는 화엄종(華嚴宗)의 본존불(本尊佛)이다. 무량겁해(無量劫海)에 공덕을 쌓아 정각(正覺)을 성취하고, 연화장(蓮華藏)세계에 살면서 대광명을 발하여 법계(法界)를 두루 비춘다고 한다. 법상종(法相宗)에서는 노사나불(盧舍那佛) 석가불(釋迦佛) 수용신(受用身) 변화신(變化身)으로 쓰고, 비로자나불은 자성신(自性身)이라 하여 구별하고 있다. 또 천태종(天台宗)에서는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불을 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에 배치하여 설명하고 있고, 밀교(密敎)에서는 <대일경(大日經)>의 설을 계승하여 대일여래(大日如來)와 동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법신불로 즉 '공(空)의 인격화된 모습'이라 정의하고 있다. <화엄경>에서는 영원한 부처님인 법신불을 침묵의 부처님, 광명의 부처님으로 언급하며 비로자나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하여 흔히 연화장 세계의 교주로 받들어진다. 따라서 비로자나불은 3천대천세계의 교주이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부처로 인정받고 있다. 비로자나불의 산스트리트 표기는 바이로차나 붓다(Vairocana Buddha)이다. 바이로차나는 태양이 모든 곳을 밝게 비추는 특징 내지 태양 자체를 이름하는 것이다. 원래 '골고루'라는 뜻의 부사 '비(vi)'와 '빛나다'라는 뜻의 동사 원형 '루츠(ruc)'에서 파생된 것으로 불을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달을 지칭하기도 했다. 포괄적인 의미로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이 비로자나불은 우주의 일체를 비추며 포괄한다는 뜻이다. 현생의 부처님인 석가모니 부처님도 태양처럼 온 누리를 비추는 부처님이라고 했다.

-정상석 뒷면의 서거정 비문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백 리에 구불구불 구름 사이에 솟았네/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소백산(小白山)] 조선조 유명한 풍수지리가이며 실학자인 격암 남사고(南師古)가 죽령을 넘어 가다가 이 산을 보고 '사람 살리는 산'이라고 말하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하고 지나갔다는 산이다. 이처럼 소백산은 백두산, 태백산, 지리산과 같이 우리 민족이 숭앙하는 산이었다.

소백산국립공원은 한반도의 등뼈와도 같은 백두대간의 줄기가 서남쪽으로 뻗어 내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갈라 큰 산계를 이루는 소백산령의 어깨격인 영주 분지를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다. 비로봉(1,439m), 국망봉(1,421m), 제1연화봉(1,394m), 제2연화봉(1,357m), 도솔봉(1,314m), 신선봉(1,389m), 형제봉(1,177m), 묘적봉(1,148m) 등 많은 영봉들이 어울려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로 수려한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겨울이면 특히 설경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데, 소백산이라는 이름 또한 '눈을 이고 있는 산'이라는 의미이자, 작은 백두산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산이다.

최창남 교장선생님은 백두대간 전문가이며 작가,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2008년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인문학적 산행기를 <프레시안>에 연재했습니다. <백두대간 하늘길에 서다> 등 다수의 책을 출간하였으며 <노동의 새벽>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 등 민중가요들을 작곡하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백두대간12걸작선> 3기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때로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백두대간을 걸어야 하나요?"


백두대간이 아니더라도 산은 지천이고 발 닿는 곳마다 길인데 굳이 힘들게 백두대간을 걸을 필요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본래 산길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길 따라 걷는 것이니 굳이 백두대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대답합니다. 백두대간이 한반도를 하나로 잇는 큰 산줄기이기 때문에 굳이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 길 따라 걷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백두대간이 부르고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한 사람들입니다. 그들만이 백두대간 1,625km, 남한 구간 684km의 깊은 산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백두대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을 품어 키운 생명의 땅입니다. 생명을 품어 키운 자비심과 지혜가 깃든 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 속한 신성하고 거룩한 땅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백두대간의 머리가 되는 산의 이름이 백두산이어야만 하고, 남쪽 끝인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인 산의 이름은 지리산이어야만 했던 이유입니다. 백두산(白頭山)은 '지혜의 머리가 되는 산'이라는 의미이고, 지리산(智異山)은 '머물면 사람 사는 세속과는 다른 종류의 지혜를 얻게 되는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백두대간은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걷는 길입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이어진 신심과 평화의 길 '산티아고'를 걷는 것처럼 제각기 마음에 담긴 신심으로 걷는 하늘길이다. 평화를 얻고 누리고 지키는 생명길입니다. 그러니 어찌 아무나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품고 걷는 자만이 백두대간과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리고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백두대간의 속살을 보며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백두대간12걸작선> 3기를 시작합니다.
<백두대간12걸작선>이라는 이름으로 도반들과 함께 산길 걸어 온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백두대간 남한구간 약 684km 중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비법정탐방로로 지정하고 있는 79.9km를 제외하면 걸을 수 있는 구간은 약 604km 정도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제법 많이 걸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3기를 마치면, 비법정탐방로와 험난하고 힘든 코스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걷지 못한 다른 구간들을 걷고 싶으신 분들은 대간 종주를 꿈꾸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백두대간12걸작선> 3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12걸작선> 3기의 산행 코스를 정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초보자 코스와 중상급자 코스를 철저히 분리하였습니다.
둘째, 초보자들을 위한 산행을 늘렸습니다. 산행거리도 이전보다 짧게 조정하였고 상대적으로 쉬운 코스를 선택하였습니다. 트레킹 여행의 의미를 담아 겨울의 끝인 2월에는 초급자들을 위한 1박2일 산행도 계획하였습니다.
셋째, 중상급자들을 위해 1박2일 산행을 3회로 늘렸습니다. 평소에 혼자서는 산행하기 쉽 지 않은 종주 산행을 포함했습니다.(설악산, 덕유산, 지리산 종주 등)
넷째, 산행 구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구간별 난이도 표시를 하였습니다.

페이스북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미투데이 보내기 요즘 보내기 C로그 보내기 구글 북마크

프레시안 알림 필자의 다른 기사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