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야권이 '반민주주의' 요구하는 이유
태국 야권이 '반민주주의' 요구하는 이유
[해외시각] 남북으로 갈라진 불평등과 분열
2013.12.18 17:00:00
태국 야권이 '반민주주의' 요구하는 이유
태국의 '정치적 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태국의 야권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태국은 미국이 투표권의 성차별을 폐지한 수정헌법보다 20년 앞선 1897년 남녀가 지방선거에서 동등한 투표권을 가질 만큼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역사가 가장 오래 된 국가이다. 또한 1932년에는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이후 불안정하나마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입헌군주제 도입 80년이 지난 지금 태국의 야권은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총리가 대안으로 내놓은 조기총선이라는 민주주의 절차를 거부하고 있다. 총선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부하는 반정부 시위대 지도부의 명칭이 국민민주개혁위원회(PDRC)라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태국 군부는 '정치 불개입'을 선언했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를 비롯해 미국· 유럽연합(EU) 등 40여개국이 태국의 정정 불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민주주의와 법의 원칙에 맞는 평화적 위기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도대체 태국 정치판은 어떤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태국의 사태는 나라가 더 잘 살게 되어도 불평등과 분열이 극심한 사회는 민주주의 자체가 언제든지 퇴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이 '민주항쟁'으로 얻는 민주주의가 도로 후퇴된 이유를 태국의 사태가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16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가 '태국 사태의 본질'에 대해 분석기사를 내놓았다. 다음은 이 분석기사의 주요 내용이다(☞원문보기
). <편집자>

▲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총리 퇴진, 조기총선 거부하는 반정부 시위대. ⓒaP=연합

야권 요구가 총선 거부라니...

아랍의 봄 등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혁명적인 움직임에 익숙해진 세상에서 태국에서 야권이 요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거리에 나선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축소하자는 것이다.

방콕의 상징물인 '민주주의 기념광장'에 모인 시위대들은 투표가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에서 선택된 사람들로 '국민회의'를 구성해서 의회를 대체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잉락 친나왓 총리가 사태를 해결하겠다면서 조기 총선을 제안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원하지 않는 게 바로 총선이다.

그렇다면 태국 국민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 좀 덜하자는 것은 소수다. 그런데 그들은 부자와 권력을 쥔 자들이며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몸서리를 친다.

"99%에 대한 1%의 반란"?

시위대 지도부에는 태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누군가는 태국의 시위에 대해 "월가 점령 시위의 정반대 유형"이라고 묘사했다. 즉, 99%에 대한 1%의 반란이라는 것이다.

현실은 좀 더 복잡하다. 시위대에는 부자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 방콕 거주자와 태국 남부의 많은 사람들은 현정부와 정권의 기반인 북부 지역에게 투표권을 박탈당했다고 느끼고 있다.

시위대를 결집시키는 최대 요인은 바로 집권 타이락 타이당을 해체하려는 욕망이다. 타이락 타이당은 지난 2001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승리해왔다.

태국이 반민주주의 운동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측면이 있다. 태국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가장 일찍 도입한 나라 중 하나이다. 1897년에는 지방선거에서 남녀에게 동등한 투표권이 부여됐다. 미국에서 남녀 투표권 차별을 폐지한 수정헌법이 나오기 20년 전이다.

잘 살게 되면 민주주의 요구가 더 커진다는 상식 깨

태국의 반민주주의 시위는 나라의 부가 증가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진다는 상식을 깨고 있다. 태국은 20년 전 보다 훨씬 부유한 나라가 됐다. 그런데 나라는 훨씬 더 분열됐다.

방콕의 역사지구인 '민주주의 기념광장'에 모인 수많은 시위대는 '1인 1표'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일단 집권 다수파와 선거에서 계속 패배하는 소수파의 권력투쟁이라는 측면이 있다.

왕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체제와 탁신의 대결 구도

하지만 태국의 위기는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왕의 존재까지 있어서 더욱 꼬여있다. 시위대가 분노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잉락 총리의 오빠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인기가 왕과 왕정을 훼손하고 위협해 왔다고 느끼는 것이다. 탁신은 태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가문 친나왓 파의 수장이다.

탁신은 지난 2006년 군사쿠데타로 축출됐다. 하지만 탁신의 지지자들에게 이 사건은 그를 순교자로 비치게 하고, 그에게 씌여진 각종 부패 혐의 등을 더 이상 문제로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버드 출신의 한 태국 변호사는 "강력한 관료층과 왕의 추종자들은 탁신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엘리트들이 자신들을 대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정부 시위대의 배후에는 방콕의 최대 토지소유자인 왕실자산관리사가 있다"면서 "태국에서 가장 큰 기업들도 거느린 이 자산관리사의 경영진들이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정부 시위대 일각에서는 최근 1932년 절대왕정을 폐지한 것이 실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시위 지도자들은 왕이 총리를 지명하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태국의 드라마 스타 아누치드 사판퐁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패한 정치인들이 혐오스럽다. 차라리 절대왕정 시대에 태어났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아직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를 포함해 민주주의가 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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