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이 불황의 특효? 건강해야 경제도 낫는다!
긴축이 불황의 특효? 건강해야 경제도 낫는다!
[프레시안 books]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긴축이 불황의 특효? 건강해야 경제도 낫는다!
경제 위기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상식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외환 위기를 '몸'으로 기억하는 만큼, 경제와 건강의 친화성은 크게 놀라운 것이 아니다. "IMF 시대엔 값싼 보건소, 약국 이용도 줄인다." 1998년 6월 22일 <연합뉴스>가 전한 기사 첫머리다. 서민의 값싼 의료 이용조차 줄었던 시기였다.

 

꼭 그런 경험이 아니더라도 논리적으로 경제와 건강의 연결 고리를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소득이 줄고 실업이 많아지면 먹고 입는 것이 나빠지고 아파도 병원에 덜 간다. 어느 나라에서 벌어진 위기든 지표로 나타나는 질병과 사망이 많아지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연구에서는 이런 상식을 거스르는 결과도 자주 나타난다. 불경기나 경제 불황 때에 사망률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일어난 1997~1998년 경제 위기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런 결과를 놓고 전문가들은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이나 행동이 줄어들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경제가 나쁘면 사람들이 덜 다니고 차를 덜 탄다. 위험한 행동을 덜하고 술이나 담배 같은 나쁜 습관도 돈 때문에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건강은 좋아진다. 물론, 한 부분만 본 것이다.

 

2009년 1월, 경제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거리로 나온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시민들의 모습. ⓒeveandersson

실제로는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하다. 데이비드 스터클러와 산제이 바수가 쓴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안세민 옮김, 까치 펴냄)은 2008년 국제 금융 위기로 국가가 파산 상태가 되었던 아이슬란드 사례를 소개한다.


 많은 사람이 짐작하는 것과 달리,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경제 위기가 닥친 후에도 우울증에 빠지지 않았다. '긍정적'인 증세를 보인 사람이 많았고, 원기를 회복하여 아침에 더 상쾌한 기분인 때가 많았다고 한다(127쪽). 저자들은 이런 긍정적인 증세가 일을 덜하고 여가 시간을 더 많이 가진 덕분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경제 위기를 겪는 모든 국가에서 그럴 수 있을까.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일하는 시간이 줄어서 여가 시간이 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멀리 갈 것 없이 한국 땅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2001년 발표된 송영종의 논문은 IMF 경제 위기 직후 자살률이 위기 발생 3개월 후부터 6개월 후까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관련 자료 : 한국의 IMF 경제 위기 전 후 질병 이환율, 의료 이용 및 사망률의 변화)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난 일은 같은 책에 나오는 그리스와도 크게 다르다. 그리스에서는 아이슬란드와 달리 경제 위기 이후 자살자가 17%나 증가했고, 우울증의 발병률이 계속 증가했다(157쪽).

 

무엇이 이런 차이를 불러 왔을까. 이 책의 저자들은 경제 위기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아이슬란드는 구제 금융을 받는 데에 필요한 IMF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 지출을 오히려 늘렸고, 공중 보건 예산을 줄이지 않았다. 아울러 음식, 일자리, 주택을 보장하는 사회 보장 체계를 계속 유지했다(130쪽).

 

어느 나라든 IMF에 의지하게 되면 비슷한 요구를 받는다. 핵심은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정부 재정 지출을 줄이는 것, 즉 긴축이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줄이게 되면, 건강과 직결된 지출, 예를 들어 의료비나 공중 보건, 예방 비용 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경우 보건 예산이 40%나 줄어들고, 그 결과 유례없이 에이즈/HIV 감염자가 폭증하고 영아 사망률이 증가했다. 국민 투표(!)를 통해 그리스와는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한 아이슬란드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관련 기사 : "자유로운 이혼을 허하라!" 국민 투표로 물어 보니… )

 

서로 다른 길을 갔지만, 그들은 IMF의 공통된 요구를 받았다. 국제 정치경제의 시각이 필요한 부분이다. 공공 분야의 재정 지출을 줄이면 건강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IMF라고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IMF는 정부 지출이 늘어날수록 경제가 위축되기 때문에 긴축을 통해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를 위해 건강과 교육 같은 공적 가치를 당분간 희생하자는 것이다(제프리 삭스와 로렌스 서머스 같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경제학자들이 러시아에 처방한 급격한 민영화와 경제 자유화의 논리 가운데 하나다(75~79쪽)).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데이비드 스터클러·산제이 바수 지음, 안세민 옮김, 까치 펴냄). ⓒ까치

그러나 저자들은 이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일축한다. 저자들이 계산한 정부 재정 지출의 '재정 승수'는 1.7이고, 이는 정부 투자가 약 70%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뜻한다(119~120쪽). 경제만 놓고 보더라도, IMF의 처방은 경제를 부활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위축시킨다는 것이다(이 책은 긴축 정책을 쓴 영국 보수당 정부의 정책이 영국 경제의 부진을 낳고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한다).

 

모든 정부 지출의 효과를 하나의 숫자로 뭉뚱그려 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 초등 교육에 대한 지출과 군비 지출은 경제 효과가 명백하게 다르다. 저자들이 계산한 것을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공중 보건과 교육은 재정 승수가 3이 넘는 반면, 국방비와 은행의 구제 금융은 1보다 훨씬 작았다(120쪽). 대부분 나라에서 사정이 비슷하지만, 국방비는 새로운 일자리와 소비를 낳기보다는 강대국의 군수 산업을 살찌우는 데 쓰인다. 구제 금융에 쓴 돈이 탐욕스러운 국제 금융 자본의 손에 들어가는 것도 분명하다. 국내의 경제와 경기를 진작시키는 데에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정부 재정을 공중 보건과 교육 같은 분야에 추가로 쓰는 것이 경제 위기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는 동시에 경제를 부활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주장은 이 책이 사례로 분석한 다른 국가들, 즉 미국과 영국, 러시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IMF가 등장하진 않지만, 다른 시기의 일인 미국 대공황 때도 정부 재정과 긴축의 효과가 나타나는 원리는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경제 위기에 맞서 새로운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증거를 받아들인다면, 경제는 회복되고 국민의 건강도 좋아지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저자들은 이런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세 가지 원칙을 따를 것을 제안한다(236쪽).

 

첫째는 "해롭게 하지 말라'는 오래 된 윤리 원칙이다. 사회 정책과 경제 정책이 국민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책을 미리 평가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그러나 일과 워크페어, 생산적 복지 등을 유별나게 강조하는 '정치'는 조심해서 해석해야 한다). 특히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경기 부양 정책이 필요하다. 공중 보건, 교육, 사회 보장 같은 분야다.

 

셋째, 공중 보건에 투자해야 한다. 경제 사정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고, 질병 예방 프로그램을 튼튼하게 유지해야 한다. "힘든 시기에 공중 보건 프로그램 예산은 감축이 아니라 증액되어야 한다."

 

이 책,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는 생각할 만한 상식을 구체적인 수치와 통계를 통해 '증거'로 바꾼 중요한 성과라 할 만하다. 특히 '자연 실험' 개념을 적용해 서로 다른 정책을 택한 나라들을 대비시킨 분석 방법이 돋보인다.

 

그러나 그 때문이겠지만, 정치적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계량적 분석을 중시하는 것은 불만스럽다. IMF의 긴축 처방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IMF가 그런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국제 수준의 정치경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각 나라가 서로 다른 결정을 하게 된 국내 상황과 배경도 '분석'이라고 하기는 부족하다. 본래의 의도나 다루려는 주제의 범위를 넘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이 관심을 두는 경제, 사회 정책은 또한 국제, 국내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비슷한 '증거'를 가지고도 미국 오바마 정부와 영국의 보수당 정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숫자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 아닌가 하는 점도 지적해야 하겠다. 노력이 많이 들어간 통계 분석, 그리고 거기서 중요한 증거를 새로 만들어 낸 점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저자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그냥 보아 넘기기 어렵다.

 

진정으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책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정책이 증거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해야 한다. (…) "신이라면 믿겠지만, 신이 아니라면 데이터를 가져와야 한다." 때로는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사실, 수치,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 사회 이론과 경제 이데올로기라는 선입견에 바탕을 둔 사상을 퍼뜨린다. (236쪽)

 

보건경제학과 전염병학을 전공한 두 저자(특히 미국과 영국에 삶의 터를 둔 연구자)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에서는 저자들의 의도가 왜곡되기 쉽다. 데이터와 통계를 통해 증거를 찾을 수 없는 때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는 이런 증거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수치와 통계가 크게 부족하다. 미국 대공황 시기에 만들어진 사망 자료를 분석했다는 저자들의 설명을 부러워하는 연구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꼭 과거의 일만도 아니다. 현재도 데이터와 수치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국가의 '관심'에서 빠져서 데이터와 정보가 생산되지 않는 일은 흔하다(한국에서 노숙인 자료는 매우 부실하다). 통계와 정보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나아가 증거들이 있을 때에도 해답이 자명한 것은 아니다. 모든 증거들은 구체적이지만, 흔히 일관되지 않고 더 많은 경우에 구체적인 맥락에 따른다. 여러 증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지를 두고는 중립이 되기 어렵다.

 

누구나 동의하는 증거가 결정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면, 그런 것이 없는 상태에서의 정책 결정은 흔히 권력 균형의 산물이 아니던가. 이 책이 비교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경제 정책 모두 증거에 근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정책 결정은 증거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격렬한 정치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정책의 관점과 그를 둘러싼 권력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아이슬란드가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긴축 정책을 거부한 것이 또 다른 좋은 예다. 이들이 좁은 의미의 증거에 기초해서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 구성원 전체를 위해, 또는 정책에 의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집단과 피해의 성격을 '정치적'으로 고려했다.

 

아이슬란드와 그리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예에서 보듯, 흔히 정책적 대응을 결정하는 것은 (개별 증거를 넘는) 한 국가의 기본적인 정책 기조다. 그리고 그런 정책 기조가 더 크고 넓은 범위에서 정치적, 경제 사회적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 위기와 그 대응이라는 면에서 볼 때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관련 기사 : 경제 위기는 약자의 건강 위기다)

 

아이슬란드와 그리스, 또는 1998년 한국의 경제위기와 비슷한 위기가 또 다시 닥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경제 위기 자체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도 모든 국가가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다시 기억해야 한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는, 당연히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에 달렸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경제 위기가 닥친 그 때가 아니라 지금,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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