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독립운동 탄압한 악질 친일조직, '호국 영웅'이라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독립운동 탄압한 악질 친일조직, '호국 영웅'이라고?

[프레시안 books] 김효순의 <간도특설대>

여기 하나의 회고가 있다.

"우리들 만주군인 출신은 일제 압제 하에서 조국 땅을 떠나 유서 깊은 만주에서 독립 정신과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무예를 연마한 혈맹의 동지들이다. 우리는 타향인 만주에서 철석같은 정신과 신념 밑에서 철석같은 훈련을 거듭하여 8·15 해방을 맞이하였다. 건국 40유여년(有餘年)이 된 오늘날 50여명의 장성급과 다수의 영관급 고급장교가 배출되어 조국의 독립과 자유 수호에 공헌하였다." (김석범 외 엮음, <만주국군지> 1쪽)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한 김석범이 1980년 중반에 <만주국군지>라는 소책자의 서문에 쓴 글이다. 누가 읽어도 만주에서 간난고초를 겪으면서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 젊음을 바친 독립운동가의 회상으로 읽힌다.

그런데 아주 묘한 단어가 숨어 있다. '만주군인'이라니! 만주에서 군인활동을 했다는 말인데, 만주의 독립군을 말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만주군인이란, 1932년 일본의 괴뢰정권으로 만들어진 만주국의 직업 군인으로 종사한 한국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만주국군지>란 바로 만주국 장교 출신들이 노경에 접어 자신들의 기록을 남긴 것이다.

1930년대 이후 만주군의 1차적인 임무는 만주국과 이를 조종하는 일제에 저항하는 일체의 항일무장부대에 대한 '소탕'과 치안 유지였다. 김석범은 일제 말 만주국 봉천군관학교 출신의 장교로서, 백선엽, 김백일, 신현준 등과 함께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간도특설대는 1938년 말 만주국 특수부대로 당시 만주국 최강, 상승의 무적부대로 불렸다. 동북항일연군이나 팔로군 그리고 각종 재만 조선인의 반일운동을 탄압한 가장 악질적인 조선인 친일군사조직의 하나였다. 요컨대 항일독립운동을 가장 앞장서서 탄압한 인물들이 자신들을 '독립정신과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무예를 연마한 혈맹의 동지'로서 자처하고, 해방 후에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 수호에 공헌'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주장에도 맞는 사실은 있다. 만주군 출신들은 해방 후 대통령(박정희), 국무총리(정일권) 육군참모총장(백선엽, 정일권), 해병대사령관(신현준, 김석범, 김대식) 등 대한민국 권력의 요직을 차지했다. 그뿐 아니다. 간도특설대 출신인 김백일은 6.25 때 흥남철수작전의 '영웅'으로 치켜세워져 불과 2, 3년 전 거제포로수용소 안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생존한 백선엽 또한 위기의 조국을 구해낸 '6.25 호국 영웅'이자 고매한 인격자로서 공영방송에서 2부작으로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군 일각에서는 그를 육군 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줄기차게 진행하고 있으며, 국방부는 그를 기리는 뮤지컬까지 만들어 군 순회공연을 하기도 했다. 국립현충원은 그가 죽으면 서울현충원에 안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현재의 일이다.

독립운동을 최일선에서 탄압한 것을 독립운동을 한 것처럼 왜곡하고,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호국 영웅으로 대접하고, 온갖 기념사업이 횡행하는 대한민국의 꼬락서니란!

▲ <간도특설대>(김효순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여기에 대해 한 양심적 언론인의 진지한 대답이 나왔다. 김효순 전 <한겨레> 대기자가 쓴 <간도특설대>(서해문집 펴냄)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연변에 가면 누구나 기억하고 치를 떠는 만주국 최강의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의 숨겨진 역사를 이 책을 통해 전면적으로 복원했다. 저자는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자료들을 뒤져 1960년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정리한 간도특설대원 출신들의 공술 자료 위주로 구성된 간도특설대의 단면적인 연구 성과를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간도특설대 활동 전후 만주의 상황과 재만 항일투쟁의 역사, 간도특설대의 창설 배경과 부대 구성과 성격, 이들의 항일세력 '토벌' 활동에서 부대 해산에 이르는 과정, 간도특설대 출신들의 이후 행적에 이르기까지 간도특설에 대해 '통사적 접근'을 한 유일한 저작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938년 9월에 만주국 젠다오성(間島省) 성장 이범익(李範益)의 건의를 받아들여 옌지현(延吉縣) 특무기관장 겸 젠다오지구 고문인 오코시 노부오(小越信雄) 중좌가 주도해서 만든 간도특설대는, 조선인 밀집지역인 간도지역을 "조선인으로 조선인을 다스린다"는 일제의 정책의 산물이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곧 백두산지구의 동북항일연군을 토벌하고 반만 항일투쟁을 진압하여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 간도특설대의 창설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간도특설대는 만주 지역에서 소련(蘇聯)과 전쟁이 일어날 경우 대소(對蘇) 특수전을 수행하려는 임무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940년대에 들어 간도특설대는 중국 르허, 허베이성 일대까지 진출하여 이 지역 팔로군의 항일투쟁을 진압하는데도 종사하고, 마지막으로는 철석부대 산하의 독립보병대대(일명 철인부대)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일제 패망 후 진주(錦州)에서 부대 선임장교인 김백일의 지휘 아래 해산을 했다고 한다. 요컨대 부대 창설 이래 일제 패망 직후까지 시종일관 일제를 위해 충성을 다한 '천황의 군대'가 바로 간도특설대였다는 것이다.

<간도특설대>는 친일 군인들에 대한 일방적 비난의 태도 대신 간도특설대 출신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변호하고 있는가를 가감 없이 반영하고 있다. 그와 함께 그들과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한 시대 다른 삶'을 대비하였다. 항일운동에 참가했다가 끝까지 목숨을 바친 사람과 중간에 변절한 사람, 동북항일연군에게 다량의 탄약를 넘겨주고 자신의 목숨을 끊은 일본군 병사 등 동시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교차, 대비시킴으로서 당대 다양한 삶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살아야 했던 삶들을 이해하는 기반 위에서 역사적 평가를 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그 시대로 끌고 들어가 '나라면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를 생각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딱딱한 역사서 냄새 대신 담담한 문학적 향취마저 풍기고 있고, 엄중한 역사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도 읽기에 부담이 없다.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역사 사실의 복원에 있지 않다. 그의 책은 결코 분노나 증오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일제의 완전 식민지 아래 독립운동이 자신의 목숨만 거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명운마저 걸려 있는 엄혹한 일이었기에 항일을 기준으로 당대 모든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일제의 폭압적 통치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항일의 잣대를 일률적으로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항일 행위는 당사자의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의 파멸까지 초래했던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 그런 고난의 길을 걷지 않았다고 모든 사람에게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한편으로 단호하게 말한다.

"그렇지만 항일운동의 반대쪽에 섰던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파렴치한 짓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 간도특설대가 민족의 자랑거리였느니, 민중의 편이었느니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공비토벌'이라는 말이 항일영령을 악귀처럼 내쫓아 버리는 전능의 부적으로 사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 KBS1이 방영한 백선엽 다큐멘터리 중 한 장면.

요컨대 이 책은 당사자들의 역사의식 부재와 양심 불량, 그리고 이런 인물들마저 영웅으로 숭앙하며 기득권을 이어가려는 그 후예들이 판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간도특설대>는 과거의 역사를 현실로 끌고 오면서 우리 자신이 대한민국의 왜곡된 현실을 돌아보고, 우리 자신이 올바른 역사의 길을 바로 찾아가는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