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학보사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숙명여대 학보사인 숙대신보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기사입니다. 편집자
"장학금 받지만 서류상 빈곤층일 뿐이에요"
올해 H대학교 2학년인 동현(가명·20) 씨. 동현 씨는 1남 1녀 중 막내다. 호적상으로 동현 씨의 직계 가족은 누나뿐이다. 동현 씨는 “사실 우리 집은 좀 특이한 경우예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저와 누나의 양육권은 회사를 운영하시는 아버지 밑으로 갔죠. 그런데 작년,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저와 누나는 호적상 고아가 됐어요.”
동현 씨는 서류상으로 고아며 가족 중 수입이 있는 사람은 누나 한 사람이다. 누나는 아버지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고, 누나의 차도 회사 소유, 집은 어머니 명의다 보니 공식적으로는 재산이 거의 없다. 그러니 차상위 계층(소득 1분위)으로 구분돼 국가장학금 I유형에서 225만 원을 받게 된 것.

동현 씨는 “회사 수입은 아버지가 운영하시나 어머니가 운영하시나 별반 다를 게 없다”며 “연봉은 잘 모르고, 회사 수입이 월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류상 고아일 뿐, 동현 씨와 누나는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생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아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는 올해 처음으로 국가장학금을 신청했다. 서류상으로는 자격이 되는 동현 씨에게 학교에서 국가장학금 신청을 권유했기 때문. 대학교에서는 국가에서 주는 인센티브를 받으려 학생들에게 국가장학금 신청을 독려한다. 많은 학생이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면 인센티브를 받은 확률이 높아진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국가에서 주는 등록금 대상자로 선정됐다. 225만 원의 등록금을 받았다. 괜히 주변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자신보다 조금 더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장학금이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얼떨결에 국가장학금을 신청해 돈을 받은 것은 좋지만, 친구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더 커요. 차라리 저한테 오는 장학금을 집에 빚이 많고 실질적으로 가계가 곤란한 학생들에게 줬으면 좋겠어요.”
“휴학 후 알바, 대출까지…한 번도 국가장학금 받은 적 없어요”
보민(가명·25) 씨는 올해 3학년이다. 보통 학생 같으면 이미 캠퍼스를 떠났어야 할 나이다. 보민 씨는 재수 후 11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1년 더 공부한 만큼 즐거운 대학생활을 기대했지만 그에겐 버겁기만 하다. 보민 씨는 학비 걱정에 3학기에는 바로 휴학을 결심했다.
“1학년 때까지는 어찌어찌 학비를 대주시던 부모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미안하지만 네가 돈을 벌어 학비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당시 고3이었던 동생은 돈을 벌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제가 일을 하기 위해 휴학했죠.”
그는 1학년을 마친 후 바로 휴학계를 내 1년간 유치원 보조교사로 일했다. 1학년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보육교사 양성원을 다니며 유치원교사자격증을 딴 덕분이다. 그렇게 1년 동안 번 돈이 약 1000만 원. 부모님께 별도로 용돈을 받거나 집에서 생활비를 지원받지 않는 보민 씨는 복학 후 1년을 그 돈으로 생활했다.
그러다 1년간 번 돈이 동나자 마음이 급하게 됐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와중에, 보민 씨의 사정을 접한 주변에서 국가장학금 제도를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아는 분이 자영업자세요. 그분 아들이 국가장학금 60만 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부잣집 아들도 국가장학금을 받으니 나도 되겠다 싶어 신청했죠.”
그러나 보민 씨에게 돌아온 결과는 ‘소득분위 탈락’이었다. 보민 씨 부모는 맞벌이 부부로 월 400~500만 원을 번다. 어머니는 어린이집 원장이고 아버지는 외국계 기업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럼에도 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빚 때문이다. 보민 씨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시절, 유일한 보유 부동산이었던 집이 재건축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집이 재건축 소송이 걸렸고, 10년의 소송 결과 패소했다. 보민 씨는 “당시 재건축 후 가세가 나아질 거라 기대했는데 정반대였다”며 “이주비로 받은 돈을 건설사에서 다시 회수했고, 우리 가족은 컨테이너부터 슬레이트 지붕만 있는 집,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았다. 자려고 누워 있을 때면 바퀴벌레가 얼굴 위로 기어가던 집이었다”고 말했다.

보민 씨는 “소득분위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나뉘는지 모르겠다”며 “국세청이고 통계청이고 국가기관은 물론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소득분위를 알아보려 했지만 어디서도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몇 분위라서 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민 씨의 꿈은 해외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보민 씨는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분들이 많지만 해외에는 더 어려운 분들이 있다”며 “내가 가진 재능을 그분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월드비전이나 유니세프 같은 구호단체에 기부해왔다. 그러나 요즘 상황이 매우 안 좋다 보니 유니세프 한 곳에만 기부하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에는 지금 상황으로는 요원하다.
“꿈은 있지만 아직은 꿈일 뿐이에요. 당장은 오늘 빌린 학자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죠. 지금 목표는 일단 학자금을 갚는 것이고, 이후에 꿈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국가장학금.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의지와 능력에 따라 고등교육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소득 수준에 맞춰 국가에서 대학생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대학등록금으로 인한 가계부담 완화를 위해 시행된 정책이다.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잡음이 많다. 시행 때부터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 여러 차례 지적했던 모호한 ‘지급 기준’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구체적으로 국가장학금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와 수혜자인 대학생들이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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