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은 늘어만 가는데, 정신과 의사는 게으르다?!
정신병은 늘어만 가는데, 정신과 의사는 게으르다?!
[프레시안 books] 앨런 프랜시스의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정신병은 늘어만 가는데, 정신과 의사는 게으르다?!
DSM-5(정신 장애 진단 통계 편람 5판)는 2013년 5월에 출시되었다. 당시 (그리고 현재) 국립 정신 보건원 원장인 톰 인셀 박사의 DSM-5 에 대한 언급은 학회 내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는데 (☞기사 바로 보기), 같은 시기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던 미국 정신 의학 협회 연례 회의에 참석한 동료들 사이에서도 열띤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미국 정신 의학계에서는 그 해의 '스캔들'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앨런 프랜시스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이 점에 대해서는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앨런 프랜시스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도 약간은 언급을 하고 있지만 추가의 설명을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인젤 박사의 관점은, 정신 의학이 다른 의학 분야에 비해서 많이 뒤쳐져 있는 이유는 '생물학적, 과학적 이론'에 기반한 연구를 중심으로 발전해 오지 않았으며, 다양한 직종의 정신 분석학자들과 행동 심리 치료사들, 그리고 제약 회사들의 영리 등이 복잡하게 얽혀 마치 '바티칸 콘클라베' 식으로 그 내용이 결정되는 DSM(정신 장애 진단 통계 편람)으로는 더 이상 정신 의학의 발전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가 '연구'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RDoC (Research Domain Criteria, 연구 도메인 진단 편람)는 최근 신경 정신 의학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인간의 정신 의학적 문제를 뇌의 다양하고 복잡한 기전과 회로에 의해서 규명하려고 하는 체계라고 할 수 있겠다. 

미 국립 정신 보건원의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실제로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 주요한 정신 의학 분야의 연구는 여기서 연구비를 배정받는다), 이 부분의 파급력이 인젤 박사 스스로가 의도한 것보다 더 커져버렸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젤 박사가 DSM을 폐기하고, 자신과 자신의 친한 몇몇 사람들이 조직해낸 RDoC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명백한 오해이다. 

위에서 강조한 것처럼 인젤의 취지는 정신 의학의 '연구'에 있어서 생물학적 신경 과학적 메커니즘을 갖추지 않는 것은 무의미하며, 국립 정신 보건원에서는 이러한 기반이 없는 무의미한 역학 조사, 치료 효과 조사 등에는 더 이상 연구비를 배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된다. 물론 연구가 필수적인 부분인 대학 병원급 이상의 정신 의학 기관에서는 이것만으로도 꽤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위에서 설명을 길게 한 이유는, 이러한 점들을 이해하고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을 읽어야 훨씬 그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신 의학은 의학의 다른 분야들에 비해서 아직 갈 길이 매우 멀다. 특히 지난 30여 년 동안 연구에 꽤 많은 예산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률, 주요 우울증 유병률(특정 기간 동안의 환자들의 수), 정신 분열증에 의한 사회적 손실 같은 주요 지표들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정신 의학의 진단 수준을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19세기 의학의 중심이었던 영국에서 간 경변 환자들의 눈 흰자위 부분을 보고 간 경변의 정도를 판단하는 자세한 지침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될 것이다. 약간 불그스름한 노란색, 갈색에 가까운 노란색, 녹색을 띈 노란색, 밝게 빛나는 노란색…. 물론 이런 것에 신경을 쓰는 소화기 내과 의사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혈액 내 간 효소 수치와 초음파 검사에서 본 간 영상 소견으로 판단한다. 정신 의학에 관해서라면, '주요 우울증, 양극성 장애 우울증 삽화, 불안 장애의 우울 증상 합병' 등은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종류의 노란색을 묘사하는 것에서 크게 멀지 않다.

▲ 양극성 장애 우울증을 다룬 1993년 리처드 기어 주연의 영화 <미스터 존스>. ⓒRastar Productions


정신 의학이 그동안 게을렀거나 잘못된 방향을 나가고 있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물론 이전의 정신 분석학이나 장기 입원 치료(라기보다는 수용)와 같은, 현재로서는 폐기된 방법들을 사용하던 시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정신 의학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어떤 치료법들은 꽤 오래전부터 유용하게 쓰였다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나 아랍 제국 등에서 사용하던 환경 요법이 그렇고,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에 쓰이는 신경 자극제는 이미 1930년대에 그 유용성이 널리 증명된 바 있다. 

그보다는 이 뇌라는 기관이, 그리고 인간의 행동과 감정, 사고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내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체계이기 때문이라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저자 앨런 프랜시스도 책에서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뇌와 신경망의 구조와 기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시스템보다도 더 복잡다단하다. 우리의 이해는 매일매일 더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신경 과학적인 이론과 이해를 실제 임상에 적용하기에는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여러 가지 연구 과제의 문제도 있지만, 실제로 이런 신경 과학적 지식이나 교육, 훈련이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일선에서 정신 의학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이다. 보다 더 크게 나아가서,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은 인식론적‧철학적인 주제이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신 의학은 이러한 담론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 의료의 여러 분야들 중에서 정치인들의 임의적인 결정이 정신 의학 분야만큼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곳은 없다. 책에서도 이러한 사례는 잘 소개되어 있다.

인젤 박사와 여러 차례 이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한 입장에서, 나는 그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신경 과학자로서 정신 의학의 연구는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생각해 볼 점은, 이제까지 나온 정신 의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들은 대부분 '우연'에 의한 것이었지 신경 과학적 메커니즘을 기반에 둔 방향성 있는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1960년대 초반 항 정신병 약물 '소라진' 광고물. ⓒWikimedia Commons

가령 최초의 항 정신병 약물인 소라진은 혈압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왔고, 최초의 항우울제는 말라리아 제제를 개발하는 과정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가장 '메커니즘' 적인 치료였고 심지어 노벨 의학상을 받기도 했던 정신 의학 치료는 모니츠의 전두엽 절제술이었다. 물론 이 시술의 유용성을 지금도 주장하는 정신 의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분들을 모두 통틀어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은 주의 깊게 읽어야 하는 '자기 고백서'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책에서 상정하는 주요한 두 '적들', 그러니까 DSM-5를 발간한 미국 정신 의학회와 정신 의약품들을 적극적으로 판매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제약 회사들에 대한 저자의 통렬하고도 정교한 비난은 거의 대부분 옳고, 나도 지지하는 바이다.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도 물론 있다. 엘렌 리벤루프트 박사의 열성적인 연구에 의해 중요한 성과들이 밝혀진 DMDD(Disruptive Mood Dysregulation Disorder, 분열적 기분조절 장애)는 사실 데이터가 잘 구축되어 있고, 연구 성과들이 상당히 정확도와 신뢰도가 높은 진단군이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제약 회사에 의해 이 진단이 오용될 가능성은 매우 크고 그 부분은 당연히 지적되어야 했지만, 이 진단명 자체에 이르는 연구를 폄하하는 점에 대해서는 저자의 편향된 시각이 작용했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예일 대학 김영신 교수가 추진한 한국의 자폐증 역학 조사는 현재까지 이 분야에서 이렇게까지 광범위한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이토록 샅샅이, 가장 믿을만한 도구로 조사한 예가 없는 연구다. 저자가 이 유병률이 높은 데 대해서 놀라고 그 사회적 의미를 논의하는 부분에선, 마치 연구 자체의 타당성과 신뢰성에 의심을 던지는 듯한 논조를 비춘다. 이것 역시 중요한 연구에 대한 적절한 데이터로 뒷받침되지 않는 반발감, '느낌, 혹은 직감'에 의한 불안에 가깝지 않았나 생각한다. 

연구자들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성과가 사회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가 하는 점은 저자가 좀 더 정교하게 분리해서 다루어야 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DSM이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고려하는 여러 사람들이 밀실에 모여 '교리'를 쓰듯이 써나갔다는 것과, 앞에서 이야기한 리벤루프트 박사나 김영신 교수의 연구 성과들이 정확하고 정밀한 과학적 방법에 의한 믿을 수 있는 연구 결과이지만 그 사회적 적용과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점이 많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 우울증 신약에 얽힌 부작용에서 출발하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스릴러 <사이드 이펙트>(2013). ⓒEndgame Entertainment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무분별한 일반 대중에 대한 제약회사의 판촉이 거의 금지되어 있는 한국에서 이 책이 잘못 읽힐 수 있는 위험 말이다. 특히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한 금기와 낙인이 어느 사회보다 큰 한국에서, 저자도 경고하는 것처럼, 이 책의 내용을 오해하고 실제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효과가 없는 대안을 찾아 나서다가 결정적인 시기를 놓치는 환자들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정신과 의사를 하는 동안 그러한 사례들을 너무나 많이 봐 오기도 했고 말이다.
eon@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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