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는 정말 정치적 중립일까?
선관위는 정말 정치적 중립일까?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 태초에 선관위께서 계셨다?!
선관위는 정말 정치적 중립일까?
연재를 시작하며 

곧 있으면 6.4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길거리엔 후보들의 현수막이 나부끼기 시작했고, 출퇴근 길 후보들이 나눠줬을 것 같은 명함들이 길가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습니다. 거리 외관이 어지럽혀진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하지만 4년 동안 우리 지역을 위해 일할 후보에 대해 알 방법이 현수막과 명함 외에는 없어 불평하기가 어렵습니다. 4년 임기의 공직자를 선출하는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13일 뿐이고, 예비선거 기간 역시 지역구시·도의회의원선거, 자치구·시의 지역구의회의원 및 장의 선거의 경우 선거기간개시일 전 90일, 군의 지역구의회의원 및 장의 선거의 경우 선거기간개시일 전 60일 밖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정당은 특별한 정치적 현안 없이 지역을 순회하면서 선거구민을 대상으로 계속적ㆍ반복적으로 확성장치 등을 이용하여 정책홍보 연설을 하는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든 선거운동기간 전에 여러 사람이 모인 집회에서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당부한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당이 자신의 정책을 가지고 시민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이에 정치발전소와 정치외교학부 연합동아리 여정으로 구성된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은 직접 선거현장을 찾아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5~6월 두 달에 걸쳐 정치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현 정치관계법의 문제점을 르포, 영상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기로 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초에 선거운동 규제가 계셨다. 
이 규제가 선거관리위원회와 함께 계셨으니 이 규제는 곧 선거관리위원회시니라. (선관위 1장 1절)

김여원(26) 씨는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기 당의 당원들과 함께 선거운동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꼭 하게 되는 게 있다. "그런데 이거 선거법에 걸리는 거 아니야?"라는 자기 검열. 까딱 잘못하면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거나 과태료를 부과당하고, 심지어 고발까지 당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니 자꾸만 위축된다.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금지한다는 모호한 선거법에 입각한 선관위의 모호한 규제는 도대체 뭘 할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한다. 그러다보니 정당의 당원이기 전에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가진 한 사람의 유권자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소심하게 만드는 선관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고.

주지하다시피 선관위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공정한 선거관리를 주목적으로 한다. 전국적인 조직을 거느리고 있으며, 준사법권, 준입법권, 인사·예산편성권 및 특별사법경찰권 등 매우 크고 포괄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다. 이는 외국의 사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굳이 찾자면 필리핀의 선거관리기관 정도가 한국의 선관위와 유사한 지위와 권한을 갖는다. 필리핀은 소위 선진적인 민주정치를 하고 있는 나라와는 거리가 멀기에, 우리의 선거관리가 필리핀과 같은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거리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선관위는 지난 18대 대통령 부정선거 논란에서 보듯이 그 중립성에 있어서 의심을 사고 있다. 선관위, 이대로 괜찮은 걸까.

▲ 6.4 지방선거 홍보 슬로건을 외벽에 부착한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연합뉴스


선관위의 헌법기관화=공정한 선거관리?

한국에서 선관위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헌법기관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선관위는 '중앙선거위원회'라는 이름의 내무부 산하의 위원회였으며 그 업무는 후보자 등록이나 투․개표 사무 같은 단순한 선거관리에 한정됐다. 그러던 선관위가 헌법기관으로 만들어진 것은 1960년 이승만과 자유당 정부의 3.15 부정선거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었다. 부정선거의 경험은 집권자와 집권여당의 영향 아래에 있는 일반 행정기관에 선거를 맡길 수 없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은 헌법기관으로서의 중앙선관위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과연 선거관리기구가 행정부 외부에 설치되어 거대한 조직과 예산을 운용하는 기구로 만들어져야만 공정한 선거관리가 가능한 것일까?

이탈리아에서는 행정부처인 내무부 산하 '중앙선거관리국'의 일반 공무원들이 선거관리 업무 전반을 담당한다. 영국도 이탈리아와 흡사한데, 이들 나라에는 선거를 관리하는 상설 독립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에 유리한 선거관리를 했다는 논란은 찾아보기 힘들다. 

눈을 돌려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보자. 1963년 박정희 쿠데타 정부가 개정했던 헌법, 1972년 유신헌법에서도 선관위는 헌법기관으로 존재했지만 당시 선거관리가 공정했다고 믿는 이는 많지 않다. 그때의 선관위는 오히려 독재정권의 선거 이벤트를 정당화하는데 충실했던 핵심기관 중 하나였다. 선거관리기구가 큰 조직과 예산 및 권한을 가진 헌법기관으로 존재하면 공정한 선거관리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설득력이 없다.

과도한 규제, 시민의 권리를 잠식한다
  
언급했듯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선거관리기관이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권한을 가진 국가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의 선거관리를 담당하는 '헌법위원회'나 독일의 '연방선거위원회', 일본의 '중앙선거관리회' 등은 조사 단속 및 수사권은 지니지 않은 단순한 선거총괄감독기관이다. 유독 한국의 선관위만 크고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선거기간 동안에 마치 선관위가 선거의 주인공인 양 부각되고 선관위의 활동이 종종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그 권한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특히 현재 선관위의 권한 사용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선거운동 단속권과 조사권을 모호한 기준에 따라 행사하면서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특정 정당에 관대한 편향성을 띠는 것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선관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4대강 반대'와 '친환경무상급식 실현'과 관련된 모든 운동을 금지시켰다. 일반 시민들이나 시민단체가 주도했던 서명운동, 현수막 게시, 사진전, 홍보물 등 모든 것이 제재의 대상이 되었고, 운동 당사자들에 대한 과도한 채증과 경고성 공문 남발 등이 이루어졌다(미국에서도 '연방선거관리위원회'가 시정명령을 행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선거 자금의 투명성에 대한 것이지 선거운동과 관련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반면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간부가 해당 부서의 정식 문건 양식으로 당시 한나라당 보좌관들과 '무상급식 쟁점과 관련된 선거 대책'과 다름없는 취지의 문건을 만들어 대책회의까지 열었음에도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정부·여당 측의 4대강 사업 홍보는 계속되고 있었는데도 철저한 단속이 없었다.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선관위엔 너무 버거운 정치적 중립성

결국 선관위가 4대강 반대 운동과 정부의 사업 홍보에 대해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고 직권을 남용했다며, 선거사상 최초로 시민단체 등이 선관위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기표된 용지배부, 야당 특정후보의 홍보물 누락 등 선거관리의 기초적인 사항에 대한 시비도 있었다. 같은 해 실시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 비서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 공격함으로써 유권자들이 변경된 투표소를 보지 못하도록 한 데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 과정에서 선관위 내부자의 공모 여부가 주요 조사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18대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면서 선관위의 공정성에 큰 의혹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을 둘러싼 이 같은 의혹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선관위 자체가 중립과는 무관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헌법 114조 제2항은 9인의 중앙선관위원을 대통령, 국회 및 대법원장이 공평하게 각각 3인씩 지명하여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행정, 입법, 사법이라는 고전적 삼권분립에 입각하여 선출된 위원들이 중립성을 담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선거관리의 공정성을 위협하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일 가능성이 높은데,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9명의 위원 중에서 대통령의 영향 하에 있지 않은 사람은 사실상 국회의 야당 추천 위원 한 두 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지난 4월9일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 주변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6.4 지방선거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대안으로서의 정당 간 견제에 입각한 선거 관리

딱히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존재할 타당한 이유도 없고, 권한을 남용하여 시민들의 일상적인 정치활동마저 규제하며, 선거관리기관으로서 반드시 지녀야할 정치적 중립성도 갖기 힘든 선관위를 지금 그대로 둬야할까? 더군다나 선관위는 막대한 조직과 예산을 가지고 있기에 적지 않은 세금을 쓰고 있다. 시민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낸 세금으로 스스로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자승자박과 같은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 어이없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선관위에 손을 댈 필요가 있다. 만약 그대로 둔다면 선관위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조직의 유지 보존과 확대의 논리에 빠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한답시고 더욱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면서 자가 증식할 것이 분명하다.

선관위를 해체하면 좋겠지만 헌법기관인 까닭에 해체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하므로 쉽지 않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사례처럼 선거관리기구를 각 정당의 추천 위원들이 서로를 견제하게 하는 방향으로 구성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선거는 각 정당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므로 서로가 철저히 부정을 감시할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제2공화국에서 9인의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을 여야 균형을 반영한 정당추천 6인과 대법원장 추천 3인으로 구성하여 문제없는 선거관리를 한 전례가 있다. 물론 중앙선관위원의 구성 역시 헌법으로 정해져있으므로, 정당이 위원들을 우선 추천하고 정당 간 비율을 고려해 대통령과 국회 및 대법원장이 그들을 지명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선관위 권한의 축소와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

선관위의 권한 축소와 분산 역시 필요하다. 부정선거 단속권과 조사권 등은 프랑스의 경우처럼 일반 형사사법기관에 담당하게 하고, 독일이나 미국과 같이 중앙과 각급 선관위는 선거의 총괄적 감독기관 정도로 존속하면서 선거 관리의 집행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해서 각급의 선관위 역시 정당 추천 위원들로 구성하면 된다.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핵심은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조항으로 가득한 선거법의 개정이 아닐까 한다. 선거법이야말로 선관위의 권한과 활동의 준거로서 곧 선관위라고 할 수 있으니까. 연재되는 다음 글들을 통해 한국이라는 '이상한 나라의 선거법'이 곧 그 뻔뻔한 맨 얼굴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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