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TK 대부' 신현확이 한국현대사에 남긴 족적
'영원한 TK 대부' 신현확이 한국현대사에 남긴 족적
고등문관, 의원, 총리, 이건희 후견인 등…주류 중의 주류
2007.04.26 16:47:00
'영원한 TK 대부' 신현확이 한국현대사에 남긴 족적
'TK의 영원한 대부'로 꼽혀 온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26일 오전 향년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제1~6 공화국을 거치는 동안 정 ,관, 재계를 넘나들며 국회의원, 국무총리, 삼성물산 회장 등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고인의 족적은 한국 현대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고인은 박정희 개발 독재기에는 각종 요직과 경제부총리를 지내며 큰 영향을 미쳤고 12.12에서 5공으로 넘어가는 격동기에는 국무총리 자격으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가결하는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1980년대 정관계를 떠난 뒤에는 삼성그룹과 관계를 맺어 이병철 전 회장으로부터 이건희 현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등 어떤 분야에서든 '주류'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23세 약관 나이에 일본 상무성에서 관료생활 시작
  
  1920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제대 법문과에 재학 중이던 지난 1943년 일제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당시 조선인으로선 이례적으로 일본 상무성 본청에서 근무했고 해방 당시 직책이 일본 군수성 군수관리관이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고인은 1951년 상공부 공업국 공정과장으로 임용되면서 대한민국 관계에 뛰어들었다.
  
  고속승진을 거듭한 끝에 1959년 39세의 나이로 경제기획원의 전신인 부흥부 장관에 임명됐지만 이듬해 4.19 혁명 직후 '3.15 부정선거'에 관련된 혐의로 2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출옥 후 한때 경제과학심의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내는가 하면 동해전력, 쌍용양회 사장, 상공회의소 부회장 등으로서 재계에 머무르던 고인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호출로 1973년 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군위ㆍ성주ㆍ칠곡ㆍ선산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새로이 자리 잡았다.
  
  역사의 격변기, 신군부 세력의 대부로
  
  그 뒤 그는 보건사회부 장관, 경제부총리로 승승장구하다 10·26을 맞으며 또 다른 의미로 역사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그는 신군부가 10·26 사건 수사와 관련,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연행하며 최규하 대통령 직무대행에게 재가를 요청할 때 최 대행 곁을 지키며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을 거칠 것'을 요구하는 등 깐깐한 면모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신군부로부터 '최규하보다 경북 출신 신현확이 더 큰 인물이다'는 '인정'을 이끌어냈다.
  
  그는 80년 서울의 봄 당시에도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개헌 등 정치적 사안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해 대학생들로부터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함께 퇴진 요구 대상으로 거명됐고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결정한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대구경북'과 '신군부'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박정희 이후 신흥 TK 세력의 대부로 떠올랐다.
  
  그는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1980년에 헌법개정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5공화국 헌법을 추인했고 1981년부터 1988년까지는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홍진기와 더불어 이건희 회장의 후견인 역할도
  
  1980년대 이후에도 그의 영향력을 줄지 않았다. 고인은 1986년, 이병철 당시 회장과의 친분 및 화려한 인맥과 경력을 바탕으로 삼성물산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삼성그룹의 핵심계열사였던 물산의 회장을 지낸 그는 1987년 이병철 당시 회장의 임종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그는 이병철 전 회장 사후 유족과 삼성 그룹이 장남인 이맹희 파와 3남인 이건희 파로 갈라졌을 때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도 한몫 했다.
  
  이건희 회장의 장인인 홍진기 당시 중앙일보 회장과 함께 이 회장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인은 '이건희 체제'가 확고해진 뒤에야 삼성을 떠났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의 영향력을 녹슬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대구에서 고인을 만나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약속했을 정도. 당시 그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한편 고인의 외아들은 신철식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차관급)이다. 고인으로부터 생전에 재산의 일부를 미리 상속받은 신 차장의 올해 등록재산은 191억1724만 원으로 행정부 소속으로는 단연 1위다.
  
  한국 현대사의 거의 전 시기에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아 개입하며 때로는 냉정한 현실주의자로서 역사의 수레바퀴에 올라타기도 했던 그도 이제는 모든 영욕을 뒤로 하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고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뤄지며 유해는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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