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뛰어난 저널리스트였다?
문창극, 뛰어난 저널리스트였다?
[윤재석의 쾌도난마․47] '문제적 인간' 문창극 심층 연구<2>
2014.06.16 09:53:02
문창극, 뛰어난 저널리스트였다?
△1975년 중앙일보 기자 △1987년 정치부 차장대우 △1989년 외신부 차장대우 △1991년 워싱턴 특파원 △1993년 정치부 차장 △1994년 정치부장 △1996년 논설위원 △1998년 편집국 부국장 △1999년 미주 총국장 △2001년 회장 비서실장(이사 대우) △2003년 논설위원실장 및 논설주간(상무) △2005년 주필(전무) △2006년 대기자(부사장)

화려한 이력, 그러나 실력은?

신문기자라면 누구나 부러워 할 이력이다. 그 좋다는 정치부 기자에, ‘특파원의 꽃’인 워싱턴 특파원을 두 번씩이나 지냈고, 주간과 주필을 거쳐 대기자로 언론인 생활 마감. 정말 부럽다.

뿐인가! 퇴직 후에는 고려대 석좌교수(미디어학부)와 서울대 초빙교수(언론정보학부)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으니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그렇다면 문창극은 과연 그처럼 화려한 이력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 걸까? 다른 부서에선 함께 근무한 적이 없으니, 필자가 중앙일보 외신부 기자로 있던 시절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文을 겪은 경험을 얘기하는 것으로 평가에 대하고자 한다.

1991년 당시 필자는 3년간의 로스앤젤레스지사 근무(특파원 아님)를 끝내고 외신부에서 미국 담당으로 일하고 있었다. 미국 담당이란 대외적으론 주한미국대사관을 출입처(?)로 한미·북미 현안을 취재하며, 내부적으로는 미국 특파원(워싱턴·뉴욕)의 캐처(catcher)로 그들이 송고한 기사를 다듬어 출고한다. 이따금 텔렉스(참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나 외지(미국신문, 일본신문)의 미국 관련 내용을 번역해 기명(記名) 출고하거나, 아주 이따금 취재일기를 쓰기도 한다.

박준영 對 문창극, 차원이 달랐다

그런데 그 때 정말 문창극 때문에 시쳇말로 열 받아 죽을 뻔했다.

당시 뉴욕엔 문창극보다 3기 선배인 박준영(DJ정권 청와대 공보수석, 전남지사 3선)이 있었는데, 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성균관대와 미국 오하이오대(석사) 출신인 박준영은 그야말로 일벌레(workaholic). 미국에서 한 번 그 집에 가봤더니 얘기하면서도 CNN, 밥 먹으면서도 CBS(미국), 화장실 가면서도 뉴욕타임스였다.

그러니 보내오는 기사의 질은 보나마나다. 글씨도 국민학생처럼 반듯하다. 안 나갈 걸 뻔히 알면서도 하루에 두세 꼭지씩 꼭 보낸다. 박준영은 당시 기준으로 '얼리 어답터'였다. 임기 중간 쯤, 중앙일보 해직 후 8년 간 기식했던 대우그룹을 협박해 취득한 퍼스컴 ‘르모’로 기사를 마구 찍어 보냈다.

그래도 그가 좋았다. 왜? 실력 좋고 열심히 일하니까. 후배들의 귀감. 참고로 난 전라도 사람 아니다. 5대 째 서울토박이다. 이 얘기 왜 하는 지 나중에 알게 된다.

문창극, 외신부원의 은인

이번엔 문창극. 

우선 글씨가 엉망이다. 지식인은 악필? 조선시대(‘이조’)엔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글씨가 사람을 결정했다. 글씨 엉망인 건 봐줄 수 있는데, 기사 또한 엉망이다. 도대체 뭔 얘길 쓴 건지 부원 몇이서 숙의해야 해독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문장은 ‘~것이다.’로 끝난다. 그래서 외신부에선 한 때 그를 ‘것이다 성님’으로 부르곤 했다. 

기사를 부지런히 보내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부장이나 미국 담당이 전화로 독촉해야 겨우 한 꼭지 보내는데, 그게 또 폭탄. 그럼 그 시절 그가 썼던 수다한 워싱턴發 기사의 정체는? 안(외신부)에서 착한 후배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텔렉스 찢어다 번역하고 바이라인만 ‘워싱턴=문창극 특파원’으로 달아줬기 때문이다. 조선민족에겐 게으르고 기대는 DNA가 있다는 데 文은 역시 ‘순수 조선 혈통’이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분류할 수도 있다. 똑게, 똑부, 멍게, 멍부. ‘똑똑하고 게으른 게’ 상지상(上之上)이요, ‘똑똑하고 부지런한 것’이 상지중(上之中)이고 ‘멍청하고 게으른 게’ 중지하(中之下)이면, 멍청하고 부지런한 건 최악이다. 박준영을 ‘똑부’라고 한다면, 문창극은 ‘멍게’다. 오히려 게으른 게 우리로선 다행이었다. 덕분에 외신부 아그들 영어공부 많이 했으니까. 김상도, 강영진, 곽한주 등 당시 있었던 다른 기자들로부터 확인 사살해도 좋다.

아쉽게도 ‘신문기자의 꽃’은 못했다

그럼 文은 어떻게 해서 계속 인삼뿌리만 먹게 됐을까? 그의 이력 중 ‘회장 비서실장’이라는 직책에 유의하라! 홍석현이 삼성코닝에서 서소문으로 들어와 <중앙일보>를 장악한 후, 가장 먼저 한 게 ‘기자 기죽이기’다. “네까짓 것 기자들 폼 재 봤자 머슴이야!”

그 표징이 바로 국장급 기자직을 자기 ‘꼬붕(子分:こうぶん)’으로 보임한 거다. 그 때부터 중앙의 편집국장 대부분은 비서실장 출신이 해먹었다. 아깝게도 문창극은 기자의 꽃인 편집국장은 못하고 논설실로 간다.

여기엔 비화가 있다. 회장 비서실장을 하고 있으니 문은 당연히 차기 편집국장 후보 ‘0순위’. 

이미 고교 및 신문사 후배인 이장규한테 추월당한 참이다. 근데 정작 2003년 인사봉투를 까고 보니 편집국장은 2년 후배인 김수길(현 JTBC 사장) 차지, 문은 논설실장. 두 번 채인 거다. 문이 홍석현 차문 열어주고 있을 때, 후배 두 명이 오이코시(追越).

이장규(현 서강대 대외부총장)와 김수길은 경제부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기자다. 김수길은 홍석현의 화동(K1) 후배이기도 하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의 홍석현이 스탠퍼드대에서 받은 경제학 박사학위의 논문 주제는 ‘한국경제 성장의~~~.’
 
“인삼 뿌리 먹어도 난 아직 배가 고파”

그래도 文은 신문기자로선 누릴 거 누린(편집국장 빼고) 행운아다. 게다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2005년),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이사장(2008년), 한국정치평론학회장(2011년) 등 언론관련 단체장도 두루 거쳤다.

그걸로 끝났으면 좋았겠는데, 문창극 욕심이 과했다. 이젠 학계로까지 마수(魔手)를 뻗친다. 중앙일보 대기자가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마지막 이력이 될 것을 내다본 文. 화려한 삶을 산 사람일수록 자리에서 내려온 후의 허전함은 크기 마련이다. 아무튼 2013년 고려대 석좌교수(미디어학부)로 변신, 학자의 길을 간다. 문은 총리 지명 전까지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2학년을 대상으로 ‘저널리즘의 이해’(선택 2학점)를 가르쳐 왔다.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불거진 문제는 따로 다룰 예정이다.

문제는 고대 석좌교수가 되는 과정이 상당히 고약했다는 점이다. 관훈클럽 신영기금 이사장 시절이던 2012년 12월, 文은 향후 1년간 고대 석좌교수로 강의할 언론계 원로 인사 선발회의를 주재한다. 그런데 회의 주재자인 그가 신상발언을 통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러자 회의 참석자들이 호선으로 문창극을 고대 석좌교수에 선임한 것. 사실상의 자응자점(自應自點).

언론계 참 빤하다. 특히 궂긴 소식은 더 빨리, 더 멀리 퍼져나간다. 하지만 문이 총리 후보 사퇴를 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이 사건은 결국 <조선일보> 14일자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건 약과다. 최근까지 현직으로 있던 서울대 초빙교수 건은 정말 고약스럽다. 여기서 문의 인간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2013년 1년간의 고대 석좌교수직을 끝낼 즈음, 서울대 총동창회 최고위 인사가 문창극을 식사에 초대한다. 풀이 팍 죽어 있는 文. 이 인사 맘 약해져서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서울대에 전화 넣는다.

“문 동문이 모교를 위해 애 많이 썼으니 초빙교수 자리 하나 주소!”

근데 학교 쪽 반응이 싸하다. 돈 달라는 눈치다. 서울대 참 한심하다. 그 학교 9년 다녔고, 박사학위까지 딴 유능한 동문한테 초빙교수 자리 하나 그냥 주면 안 되나?

총동창회 측 울며 겨자 먹기로 5000만 원(학부생 10명 1년 치 등록금 해당) 주고 文을 관악캠퍼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근데, 문창극 씨 그 후 동창회 모임에 와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하더군.”(S 원로)
“그걸 기대하시다니 참 순진하시네.”(필자)

문창극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모교를 망신시킨 대가로 초빙교수 진입 시 총동창회로부터 받은 5000만 원을 토해내는 게 도리다. 또 있다. 2006년 2월 받은 ‘서울대 언론인상’ 상금 1000만 원. 도합 6000만 원을 서울대 망신시킨 데 대한 사과 격으로 총동창회에 반환할 것을 동문의 자격으로 요구한다!

박준영 관련 얘기 중 예고한 ‘전라도’ 관련 일화. 홍석현 꼬붕 임기 마치고 드디어 편집국장에 오른 고흥길(전 한나라당 의원)이 어느 날 필자에게 물었다.

“당신 고향이 거기야?”
“거기라니?”
“아니 고향이 저 아래냐고?”
“나 서울 토박이요. 근데 그건 왜 묻소?”
“아니 그냥. 난 당신 고향이 거긴 줄 알았어.”

이게 2년 후 중앙일보을 휘몰아칠 ‘즐라도 출신 대학살’의 전초작업이었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onscar@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