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선거운동? 박원순 시장이나 가능하죠"
"조용한 선거운동? 박원순 시장이나 가능하죠"
[이상한 나라의 선거기자단] 지방선거 나선 청년 정치인 4인, ‘이상한 선거’를 말하다
"조용한 선거운동? 박원순 시장이나 가능하죠"
지방선거가 끝났다. 많은 이들이 그 누구도 이기고, 지지 않은 선거였다고, 민심은 실로 절묘했다고 이야기한다. 각자 승리와 패배의 원인에 대해 유추하고, 이번 선거 결과가 향후 정세에 끼칠 영향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이 와중에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정치 혐오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정치를 만들어보겠다며 과감히 출마했던 이들이 경험했던 현실 정치의 높은 벽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선과 낙선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당선자나 낙선자 모두가 다 '정당'이라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가 선거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고 물으니, 박원순 시장의 조용한 선거운동이 군소정당의 젊은 후보자들에겐 오히려 어려움을 주었다고 한다. 다들 돈 없는 활동가들인데 선거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냐는 질문에 광역단체장 후보는 정치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반면, 시·구의원 후보들은 모금할 수 없어 대출과 '엄마론'을 빌려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모두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정당, 강한 정당을 만드는 것 밖엔 없지 않느냐"며 "열심히 해야죠"라고 겸연쩍게 웃는다.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이 6.4 지방선거에 나섰던 청년 정치인들을 만났다. 목소영 새정치민주연합 성북구의원 당선자, 이기중 정의당 관악구의원 후보, 이태영 녹색당 서대문구의원 후보, 황종섭 노동당 서울시의원 후보와 함께 6.4 지방선거에서 느꼈던 현실 정치의 높은 벽과 이런 가운데 발견했던 희망과 연대의 끈에 대해 이야기 했다. 지난 12일 마포구 정치발전소 사무실에서 열린 좌담의 진행은 김경미 정치발전소 정책팀장이 맡았고, 대학생 유권자이자 선거기자단인 이심지 씨가 함께 참여했다. 총 2회에 걸쳐 좌담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목소영 새정치민주연합 성북구의원 당선자, 이기중 정의당 관악구의원 후보, 이태영 녹색당 서대문구의원 후보, 황종섭 노동당 서울시의원 후보. ⓒ이현석


김경미(사회자) : 각자 소개를 부탁드린다. 

이심지 :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다. '여정'이라는 서울지역 정치외교학부 연합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이상한나라의 선거기자단을 하고 있다. 

목소영 : '성북구 의원 정릉의 목소리' 목소영. 감사하게도 재선의원으로 당선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다.

이태영 : 녹색당 서대문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웃음) 

황종섭 : 노동당 서울시당 조직국장 황종섭. 양천구 4선거구 서울시의원으로 나갔었다.(웃음)

이기중 : 정의당 부대변인 겸 서울시당 부위원장 이기중. '여러분과 함께 이기는 중'이었지만 낙선했다. 2010년 선거에도 나갔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떨어졌고, '강한 후보'로 찍혀서 2인 선거구에 나갔는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단수 공천을 하면서 진보정당 후보 중 최다득표율인, 28%를 득표하고도 낙선했다. 

당선과 낙선의 가장 큰 이유? '정당' 

김경미 : 각자 당선의 가장 큰 이유와 낙선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목소영 : 당선의 가장 큰 이유는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였다는 점이 컸다. 우리 지역구는 정릉 2,3,4동인데 3명을 뽑는 지역이고 후보가 총 8명이었다. 새누리당 3명, 우리가 2명을 냈다. 그런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 2명을 배출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 과제였다. 

2010년에 처음 출마할 때 성북구에서 최다 득표로 당선이 됐고, 그때보다는 표가 나눠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행이 2명 모두 당선이 됐다. 게다가 지난번에 받았던 표보다 더 많이 받아 재선을 했다. 첫 번째 요인은 '2-가'라는 정당기호 효과가 가장 컸겠지만 지난 4년간 열심히 했던 모습을 주민들이 좋게 봐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이기중 :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당일 것 같다. 단순히 당이 작다가 문제가 아니다. 첫 번째 출마 때와 비교를 해보면 2010년에는 진보신당 후보로 나와 19%를 얻었다. 그 때 민주노동당 후보가 14%를 받았으니 둘이 합치면 33%로, 만약 이번 선거에서 지난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유지되었다면 당선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것보다 5%포인트 적은 28%를 받았다. 정의당 인지도가 낮은 것이다. 

또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으면서 진보정당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안 좋아졌다. 민주당, 새누리당 아니면 다 통합진보당이라고 생각을 해 버린다. 선거운동기간 동안 계속 그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정의당이라고 그러면 "정의당? 이정희당?" 그렇게 물어본다. 그러면 "이정희는 통진당이구요, 노회찬 심상정 있는…". 이런 식의 뻔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직접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당을 보고 뽑을 수밖에 없다. 또 작은 변수이긴 했지만, 우리 지역에 젊은 인구가 많이 빠져서 그 만큼 표가 빠졌다.

황종섭 : 나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사실 준비기간이 짧아, 단순비교는 어렵다. 선거운동 기간 중 할 수 있는 것들이 물론 제한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 유권자들과 부딪혀 보니 당 변수가 정말 컸다. 이기중 후보와 마찬가지로 당에 대해 설명을 해야 했다. 나에 대해 설명하는 것보다 당에 대해 설명하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였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며 당이 가지는 변별력과 득표력은 무시할 수가 없다. 

이태영 : 이미 예상했던 이유밖에 없다. "녹색당이 당이냐"는 질문부터 한국녹색회가 구원파라서 "구원파가 아니냐"는 질문도 자주 들었다. 당 대표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하승수, 이현주라고 답하는데,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하나마나한 답이다. "하승수요"하고 말해도 누가 알겠나. (웃음) 

우리의 경우는 당 지지도의 문제가 아니라 당 인지도의 문제였다. 조사해 보면 처참할 것이다. 이번에 구의원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가져간 표가 굉장하다. 오히려 새누리당 나번 후보는 나와 2%포인트 밖에 차이가 안 났다. 1-가, 2-가 후보가 각각 30%씩 가져가고, 2-나가 15% 정도 가져갔다. 우리가 낙선한 가장 명백한 이유는 조직된 표가 없었다는 것이다. 풀뿌리정당 표방하고 나섰지만 정작 뿌리가 없었다. 셀 수 있는 표가 없었고, 당 지지도는 1% 미만이었다. 달리 이야기하면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는 정당인데, 그 바람이 녹색당을 향해 불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녹색당에는 평생 안 불 것이다.(웃음) 이번 선거를 통해 깨달은 것은 오히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조직을 길러내서 명확한 조직 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용한 선거운동? 박원순 시장에게나 가능한 것" 

▲사회를 맡은 김경미 정치발전소 정책팀장. ⓒ이현석

김경미 :
 세월호 참사가 본인의 선거 운동 과정에 영향을 준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선거운동 방법, 공약, 제1야당으로의 쏠림 등 어느 부분에서든지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면? 

이태영 : 예비후보 기간이 한 달 가까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못했던 공백 기간이었다. 조용한 선거라는 콘셉트가 있었는데 그게 누구한테 유리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박원순 시장도 조용한 선거를 표방했는데, 그것은 박원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녀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는가. 

우리 같은 경우는 어깨띠를 두르고 마을버스를 타도, 후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지역구에 출마한 구의원 후보 중 유일하게 앰프를 들고 정책연설을 했는데, 어떤 시의원 후보 측에서 '시의원도 안 하는 정책 연설 하느냐' 이런 말을 하며 항의를 하셨다. 과연 조용한 선거가 미덕일까. 어떤 이야기도 오고 갈 수 없는 선거를 만든 것은 아닐까. 

이기중 : 전체적으로 모든 정당이 한 달 정도 중단을 했었다. 그때 외에는 나는 시끄럽게 선거를 했다. 여유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우리 지역구에서는 다른 후보들도 그렇게 했다.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한 유권자들은 없었다. 한 달간의 선거운동 중단이 군소정당 후보들에겐 안 좋기도 했다. 군소정당 후보들은 선거 초반 인지도를 올려야 하는데, 그 타이밍에 선거운동이 중단되었다. 사실 박원순 시장이니까 조용한 선거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알아서 카메라가 따라오지 않나. 

황종섭 : 우리는 돈이 없어서 어차피 조용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양천구는 전체적으로 선거를 매우 조용히 치렀다. 투표일 3~4일 전까지는 선거운동 차량도 소리없이 왔다갔다만 하고 연설도 안했다. 우리는 명함을 나눠드리며 주민들께 인사하는 것에 주력했다. 조용하게 선거를 하면 아무래도 인지도가 높은 정당의 후보가 유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목소영 : 두 당에게 유리한 상황이 된 것은 맞다. 나도 연설은 안 했고 마지막 날 정도는 지하철역에서 세월호 이야기를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안 세력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기는 했지만, 거대 야당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세월호 사태 이후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국민들의 마음이 투표로 나타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투표율이 낮아서 실망하기도 했다. 선거운동 방법뿐만 아니라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김경미 : 유권자로서 이심지 씨의 경우에는 어땠나? 세월호 참사가 투표에 영향을 끼쳤나? 

이심지 : 개인적으로는 내가 던진 표에 세월호 사건이 미친 영향은 극히 미미했다. 어차피 새누리당에 표를 던지지는 않을 것이었기 때문에.(웃음) 안타까웠다. 나는 스스로 비교적 후보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유권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후보자 개개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선거가 너무 조용했다. 더 많이 듣고 싶었고, 연설도 보고 싶었고, 정치인의 카리스마도 보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가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이기중 : 선거운동도 문제지만 나는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정치적인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책임져라', '대통령을 지켜내자'라고 양쪽이 결집하면서, 작은 제3당을 볼 여유가 더 없어진 것 같다.

대한민국 선거판에서 정치 신인이 사는 법 

김경미 : 여기 모인 분들 모두 2030후보들이다. 정치 신인이 데뷔하기 어려운 정치 지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황종섭 : 어려움이 없었으면 당선 됐을 것이다. (웃음)

이기중 :  데뷔의 기준이 출마인가, 당선인가?

김경미 : 아! 미처 생각지 못한 질문이다. 그럼 일단 출마로 보자. 

이기중 : 소수 정당은 출마는 어렵지 않다.

이태영 : 녹색당은 출마하면 좋아한다.

황종섭 : 노동당은 출마하면 선거지원금도 준다.(웃음)

이태영 : 녹색당도 준다.(웃음)

이기중 : 목소영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공천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 목소영 새정치민주연합 성북구의원 당선자. ⓒ이현석

목소영 :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았다. 새정치민주연합에 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젊은 사람을 원한다. 그러던 차에 2010년도에 청년, 여성, 시민단체 중견 활동가를 중심으로 공천을 하려고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정치에 계속 관심에 있었고 여성이었고, 청년, 시민단체 활동가 8년차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수월하게 공천을 받았다. 나는 전략 공천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정치무대에 진입하기 위해서, 또 그동안 대표되지 못했던 세력들의 제도권 진출을 위해서 전략공천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안철수 대표가 중간에 전략공천을 안 하겠다고 하면서 여성 단체장 후보들이 경선으로 내몰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김경미 : 군소정당 입장에서는 출마 자체는 어렵지 않은 반면 당선이 어렵고,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과 같은 거대 정당에서는 공천 자체가 진입 장벽이다.

이기중 : 관악구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초강세라서 공천혁신 이런 게 없고, 대부분의 후보가 50~60대다. 오히려 새누리당이 젊은 후보를 낸다. 관악구 같은 곳을 보면 절대 젊은 사람이 지역정치에 진입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호남처럼 '공천이 곧 당선'인 곳일수록 공천에서 혁신이 이뤄지기 어렵다. 

김경미 :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은 한국에서는 아직 소수정당인데, 이른바 '군소 정당' 후보로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선거에 있어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이태영 : 정치를 하려면 거대 정당에 가야 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글쎄, 나는 녹색당 정체성이 강한 사람이다. 녹색당 후보로서 감수해야할 불이익에 대해 알고도 나온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정당이 발목을 잡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치관계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정당 자체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정당이 짐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이 정당에 있을 필요가 없다. 

황종섭 :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에 진보정당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없어졌다. 진보정당에 대한 관심 자체를 놓아버린 상황이 아닌가 싶다. 시민들이 관심이 없으려고 없는 게 아니라 언론 등에서 소수정당에 대해 다뤄주지 않은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노동당의 경우는 정당을 설명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정의당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있다. 이번에 당선된 구로구의 김희서 당선자를 보면, 노동당과 정의당 단일후보를 냈는데, 사람들이 처음에는 노동당 하면 '조선노동당', 정의당 하면 '이정희당'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당에 대해 몰랐다. 노회찬 전 의원이 와서 하루 선거운동을 함께 하니 비로소 사람들이 통합진보당과 다른 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노동당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 딱 한 명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정당에는 심상정, 노회찬 같은 스타 플레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기중 : 정의당, 노동당은 당 이름을 바꾼 지 2년밖에 되지 않아서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어떤 과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명을 최소한 4년 이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녹색당은 안정적이다. 

"공천이 문제니 폐지하라? 박근혜 '해경 해체' 논리와 다를 것 없어" 

김경미 :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거 초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다. 정당민주주의 근간을 헤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지역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의 우려가 팽팽하게 맞붙었다. 기초선거 후보들로서 정당공천제를 어떻게 보나? 

목소영 : 정당공천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천문제는 어쨌든 간에 운영의 문제이다. 기초 단위부터 중앙까지 하나의 맥으로 흐르는 것이 필요하다.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제는 그런 면에서 꼭 필요한 제도다. 

이태영 : 선거 전 정당공천 이슈로 굉장히 피로했다. 정당공천만 없어지면 마치 그동안의 모든 문제가 한순간에 없어지는 것처럼, 정당공천제가 왜 문제인지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이것이 문제니까 폐지하자'는 말만 나왔다. 문제의 핵심을 보지 못하고 공천의 폐지를 말하면 좋고, 아니면 새 정치가 아니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버려 민주진보진영 전체가 이 문제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다. 

▲ 황종섭 노동당 서울시의원 후보. ⓒ이현석

황종섭 :
 나는 정당공천이 잘된 예를 실제로 보았다. 우리 지역구의 경우 현직 시의원이 음주 운전 전과가 있었다. 그래서 정당 공천을 못 받고, 무소속 기호5번으로 나왔는데 떨어졌다. 정당공천제가 최소한의 자정 기능은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런 공천의 자정 기능도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정당공천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제기는 지금껏 공천을 해온 정당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지적하는 꼴이었다. 그럼 공천 문제를 어떻게 잘 해결할 것인가를 얘기했어야 하는 것 같은데,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해체'적 대응과 다를 게 없다. 

이태영 : 안철수 대표가 기초공천제 폐지를 이야기할 때 소속 의원들을 그렇게 불신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중 : 다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공천을 안 했다면 나는 어렵지 않게 당선이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한국 정치를 저해하는 담론이기에 절대 찬성할 수가 없다. 나에게 유리하다고 해서 찬성할 수 없다. 

기초의회도 정치가 이뤄지는 곳이다. 소속 정당에 따라 정책 방향이 다르다. 안철수 대표가 기초공천을 안 해도 정당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물색하겠다고 했을 때, 그게 사실 공천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새정치연합이 기초공천을 결정하기 전에도, 예비후보들이 안철수 대표랑 찍은 사진을 플랜카드에 붙여 놨다. 새정치민주연합 창당대회가 끝나고 수많은 후보들이 안철수 대표와 사진 찍으려고 몰려들었다. 이후 선거 공보물과 명함 등에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무공천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 '눈 가리고 아웅'이나 마찬가지다. 

목소영 : 기초선거 무공천을 주장하다가 선거일에 임박해 뒤집으면서 안철수 대표가 큰 타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새정치민주연합 구청장이 되느냐, 새누리당 구청장이 되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당연히 구의원들도 당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 친환경 무상급식이든 인권 이슈든, 구 단위에서 이런 것들을 실현시켜 갈 때 정당 간 차이가 크다. 

이심지 : 유권자로서도 후보들의 소속 정당은 투표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조금씩은 알아볼 수 있지만 후보 개개인을 자세히 알기가 힘들다. 정당은 당연한 준거가 되는 것인데, 그걸 의미 없게 만드는 것은 안 된다. 기초선거 공천 논란에서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프레임이 '약속을 지키는 정치'와 '안 지키는 정치'로 되어 버렸고, 왜 공천을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이 없이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 식으로 갔다는 점이다. 

"폐지해야 할 것은 정당공천제가 아니라 정당기호제!"

김경미 : 정치관계법은 결국 '게임의 룰'이 될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인 것이 선거의 정당기호제가 아닐까. 새누리당 1번, 새정치민주연합 2번 등 정당규모나 의석 수에 따라 투표용지에 후보자의 게재 순위를 정한 정당기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태영 : 거대 양당에게는 공천제 폐지보다 기호순번제를 개혁하는 것이 훨씬 큰 타격일 것이다. 지난해 민주당 정개특위에서 하는 기호순번제 토론회를 간 적이 있었다. 민주당은 공천제 폐지를 주장했지만 기호순번제에는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누군가 추첨으로 하자고 말했는데, 기호를 보고 투표하는 유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박원순 시장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함께 지역을 돌며 지지 유세를 하고, 구청장 후보는 '2번으로 몰아 찍으세요.'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녹색당의 경우 지역 출마자 번호와 비례후보 번호가 달라서, 비례후보 캠프가 지원 유세를 오면 지역주민들이 헛갈릴까봐 비례후보 피켓과 명함은 안 돌렸다. 녹색당 후보는 지역별로도 기호가 다 달랐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녹색당 기호는 이거다'라며 홍보할 수도 없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1번 찍으세요', '2번 찍으세요'라고 유세하는 걸 보면서 굉장히 억울했다. 초기 도입 과정의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이걸 어떤 방법으로든 뒤흔들어, '1,2번 아니면 안 찍는다' 하는 분들에게도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목소영 : 이 문제는 정당공천제의 필요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그때 선거 때마다 중앙당에서 추첨을 해서 번호는 통일하면 정당기호제에 대한 군소정당들의 불만도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이기중 :
 실제로 유신 이전에는 추첨제여서 박정희가 기호 6번인 적이 있었다. 기호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문맹률이 높았을 때 숫자가 필요했던 것 아닌가. 일본에서는 투표 용지에 후보 이름을 써야 한다. 브라질은 문맹률이 높아서 터치스크린이 있고 후보 사진을 보고 찍는다. 그러면 우리같이 젊은 후보에게는 좀 유리할 것이다.(웃음) 기호제라는 것은 기득권을 만들기 위한 것이고 1번, 2번이 단순히 맨 위에 있기 때문에 받는 이득이 분명히 있다. 바꿔야 한다.

황종섭 : 정당공천 폐지하고 기호를 추첨하면 4년에 한번 열리는 '로또'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일단 후보 등록을 한 후 추첨한 기호가 3번 안에 걸리면 끝까지 '고(go)' 하는 거고, 4번 밑으로는 적당히 사퇴하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목소영 의원의 얘기를 들어보니 전국 단위의 정당 기호를 배정하는 것은 정당 강화에 있어서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중 : 정당기호제 폐지에 대해서도 안철수 대표가 민주당과 합당 전에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절대로 안 할 것이다. 

이태영 : 그랬었나? 기초공천제 폐지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해놓고, 왜 그 공약은 약속을 지키지 않나? 이상하다. (좌담 2편이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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