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한 발짝 행동으로, '동무' 만만세!
더 늦기 전에 한 발짝 행동으로, '동무' 만만세!
[주권자 인민 정치혁명·①] 의도된 언어 멸종 시대에 대하여
더 늦기 전에 한 발짝 행동으로, '동무' 만만세!
* 이 글에서는 '국민'이란 용어 대신 주로 '인민'이란 말을 일부러 쓰고 있다. 이 붙임 글은 2005년 12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으로서 왜 인민, 동무라는 말을 다시 써야 하는지 그 까닭을 밝히고 있다. - 필자 주

북극 지역에 거주하는 이누이트 족은 어떤 종류의 눈과 얼음, 그리고 바람이 사람과 개와 카약의 무게를 견뎌주고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그것이 생존에 필수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눈과 얼음과 바람에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인다. 한국인은 눈을 그냥 눈이라고 하나의 종류로만 부르지만 이누이트 족은 서로 다른 눈 종류에 따라 눈을 부르는 수십 개의 말이 있다.

해양 생물학자인 R. E. 요하네스는 1894년에 태어난 팔라우 어부 한 사람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이 어부는 서로 다른 물고기 300종 이상을 알고 있었고 전 세계 과학 문헌에 기재된 어종 자료의 몇 배나 되는 어종에 대해 그 음력 산란 주기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필리핀 북서쪽 민도르 섬에 사는 하우누족은 450종 이상의 동물과 1500종 이상의 식물을 구별한다. 이 지역 식물에 대한 하우누족의 분류는 서구 과학에 따른 분류보다 400종 이상이나 많은 것이다.

인류학자인 다니엘 네틀과 언어학자인 수잔 로메인이 함께 집필한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김정화 옮김, 이제이북스 펴냄)에는 이런 사례가 수도 없이 나온다.

서시베리아에 살던 한티족의 언어에는 '새'나 '물고기'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특정 종에 해당하는 말만 있을 뿐이다. 한티어의 80%는 동사이며 특히 소리에 관련된 단어가 엄청나게 많다. '오리가 물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소리'가 따로 있고 '곰이 크랜베리 숲을 걸을 때 내는 소리'를 지칭하는 단어가 따로 있다. '풍부'라는 단어는 한티어로 '산딸기가 많다'는 의미이고, '행복'은 '내 마음이 즐겁다'이다. 한티족은 유럽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이름을 붙일 때 자연에서 표현을 빌려왔다. '사진'은 '물이 고요히 고여 있는 웅덩이'라 불렀고, '모자'는 '비를 맞지 않게 해주는 위쪽이 넓은 나무'로 번역했다. (안나 레이드, <샤먼의 코트>, 98쪽, 미다스북스, 2003)

언어는 문화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보물 창고이다. 언어는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사실상 생태계 보전과 문화 종 다양성 보존의 열쇠는 언어 속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언어 멸종 시대

그런데 그 언어가 지금 자살이 아닌 학살을 당하면서 멸종을 향해 치닫고 있다.

1974년 영국령 맨 섬에서는 맹크스어를 할 줄 알았던 마지막 사람 네드 매드럴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과 함께 옛 맹크스어는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1987년 캘리포니아 주에 살던 로신다 놀라스케스가 94살의 나이로 죽자 쿠페뇨어 사용자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와포어의 마지막 사용자 로라 소머설도 1990년에 죽었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의 원주민 언어 187개 가운데 149개가 이제 아이들이 더 이상 배우지 않는 언어로 추정된다. 1992년 카프카스 북서부 지역에 사는 마지막 우비크어 생존자 테비크 에센크의 죽음과 함께 우비크어도 이 지상에서 멸종되고 말았다. 유럽과 접촉하기 전까지 250여 종에 달하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언어는 이제 거의 사멸되어 버렸다.

이제 아메리카 원주민의 언어는 미국의 일부 주 이름으로, 다시 말해 대평원이란 뜻의 인디언 말에서 유래한 와이오밍, 친구라는 말인 텍사스와 다코타, 잔잔한 물결이란 뜻인 네브래스카, 붉은 사람이란 뜻의 오클라호마, 미래의 땅이란 뜻의 켄터키 등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지난 몇백 년 동안 세계에 알려진 언어 가운데 절반가량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자연에 깊이 뿌리내린 아주 풍부한 내용을 자랑하던 문화, 지역 생태계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지혜도 사라져 버렸다. 그와 함께 자연 속에서 자연의 한계 안에서 살 수밖에 없던 생태 순환의 삶도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얼굴 흰 사람들의 제국주의 침략과 원주민 대량 학살과 정확히 일치한다. 영국인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을 짐승보다 못한 동물 취급하면서 강간하고, 사냥하듯 가죽을 벗기며 마구잡이로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처음 접촉한 지 75년 만에 모두 몰살시켜버렸다. 물론 태즈메니아어는 언어학의 관점에서 매우 희귀하면서도 가치 있는 언어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비크어의 사멸도 19세기 말 러시아의 시베리아 침략과 원주민 대학살의 결과였다.

가끔 우리 사회에서도 영어 공용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참으로 단순무식하면서도 그처럼 위험한 파시즘 발상이 나올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토양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미국이나 서양의 문화 제국주의에 깊숙이 침윤된 '누런 피부 흰 가면'의 친미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1950년 6월 25일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 수백만에 이르는 민간인이 억울하게 대량 학살당했다. 이 끔찍한 홀로코스트의 상처는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는 빨갱이란 용어가, 북한에서는 반동분자라는 용어가 무소불위의 저승사자 역할을 하며 남북한 사회를 각기 기형의 정신 병동 사회, 증오와 학살을 당연시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만들어 버렸다.

그 가운데 남쪽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상과 문화를 반공이라는 가시 철망투성이의 절대 감옥에 가두어 놓아 버렸다는 점이다. 반공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을 아예 싹까지 잘라 내 버리는 기형의 사상과 문화가 몇십 년을 지배하고 있었고, 여전히 지금까지도 시시때때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물론 북쪽 또한 반미와 주체사상이라는 극단의 고립된 철벽 감옥을 높이 쌓아놓고 자유로운 사상과 문화의 꽃을 아예 질식시켜 버렸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사라진 언어, 동무와 인민

'동무', '인민'이란 말의 역사는 아마도 제일 도드라진 경우일 것이다. 동무와 인민이란 말은 해방 후 좌우대립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무참하게 학살당한 언어였다.

동무는 친구라는 조금은 딱딱한 듯한 말이나 동지라는 다분히 이념의 냄새가 풍기는 말에 비해 정말 따뜻하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뒷동산의 풀과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감 어린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근 반세기 동안이나 마음 놓고 쓸 수 없었다.

인민이란 말도 마찬가지이다. 인민이 천부인권을 받은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하는 말이라면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국민이란 말은 엄밀히 말하면 서구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과 함께 만들어진 용어로서 국가주의의 용어이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황국신민'을 줄여서 쓰던 황민과 함께 국민이란 말을 대일본제국을 강조할 때 늘 사용했다. 인민과 국민은 명백히 다른 개념의 말인 것이다. 굳이 선후를 따지자면 인민이 먼저이며, 인민이 있어야 국민도 생길 수 있다. 국가가 없어도 민, 인민은 살아갈 수 있지만 국가가 없으면 국민은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린다.

인민이란 말은 영어의 피플(People)을 번역한 것이다.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민주주의를 정의한 그 유명한 연설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번역한다. 루소의 정치사상은 인민 주권론이라고 번역한다. 이런 데서나마 인민이란 말을 가끔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 한국에서는 인민이란 말은 소멸 직전의 위기로 내몰리고 말았다.

애초에 대한민국의 제헌국회 헌법 초안은 인민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제1초고. 1948년 4월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조선 인민은....
제2조. 국가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발()한다.
- 유진오, 헌법기초회고록, 108~111쪽, 일조각, 1980.

 

그런데 초대 국회의장으로 대통령에 선출될 것이 거의 확실한 이승만이 인민이란 말은 공산주의자들이 쓰는 말이기 때문에 써서는 안 되고 국민이라는 말을 쓰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윤치영이란 자(여기서 者는 놈 자임)가 국회에서 이의를 제기해 결국 헌법 초안에서 인민이란 말이 국민으로 전부 바뀌고 만다. 나중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체제와 비슷한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다가 4.19혁명으로 '인민'에 쫓겨난 이승만답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헌국회 헌법 초안 제정 작업을 했던 유진오는 회고록에서 인민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정말 아까운 말을 빼앗겼다고 안타까워했다.

인민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후에 국회 본회의에서 윤치영 의원은 인민이라는 말은 공산당의 용어인데 어째서 그러한 말을 쓰려 했느냐, 그러한 말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공박하였지만, 인민이라는 말은 구대한민국 절대 군권 하에서도 사용되던 말이고, 미국 헌법에 있어서도 인민 people, person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citizen과는 구별되고 있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인민을 의미하므로, 국가 우월의 냄새를 풍기어,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하다. 결국 우리는 좋은 단어 하나를 공산주의자에게 빼앗긴 셈이다. - 유진오, 헌법기초회고록, 65쪽, 일조각, 1980.


물론 국민이란 말은 조선 시대에도 사용한 용어이긴 하다. 1395년 태조 당시에 여진족이 모두 조선의 '국민'이 되기를 원한다(皆願爲國民)는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조선 시대 내내 주로 쓰인 민(民), 신민(臣民)이란 말 대신 때로는 다른 지역의 민과 견주어 나라를 강조하기 위해 국민이란 말도 사용했던 것이다. 또 임진왜란 당시 군사를 모집하기 위해 면천법(免賤法)을 시행하면서 사천(私賤)을 제외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유성룡은 사천은 국민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두 나라의 백성 민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래 조선에서 사용한 국민이란 말은 명백히 서구의 국민국가 개념이 도입된 용어였다. 1904년 창간된 대한매일신보는 처음부터 국민이란 용어를 동포, 민, 신민이란 용어와 함께 사용했다. 국채보상운동이 한창이던 1907년 2월 16일 자 <대한매일신보> 기사를 보면, "지금 국채 1300만 원이 있으니... 삼천리 강토는 우리나라의 소유도 우리 국민의 소유도 되지 못할 것이라... 2000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라고 쓰고 있다. 당시 막 태동하고 있던 국민 정체성은 일본에 저항하는 국민국가의 주체라는 정체성으로 형성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국민이란 말과 인민이란 말은 서로 비슷하게 혼용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일제시대 내내 그리고 해방 이후 한국전쟁 이전까지 인민이란 말은 누구나 입에 달고 쓰던 말이었다. 당연히 이승만도 일제 식민지 시대 내내,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인민이란 말을 사용했다. 심지어는 1948년 7월 17일 제헌 헌법이 탄생한 뒤에도 이승만은 공식 기념사나 담화문에 인민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 자신이 빨갱이 용어를 사용한 위험 분자였던 셈이다. 아래는 독립기념관에서 운영하는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에서 검색한 자료 가운데 몇 가지만 추린 것이다.
 
美國人民으로 하여금 韓國의 情形을 알지 못하게 하며 또 美國政府를 속이여 曰 韓國人民은 日本의 保護國됨을 情願한다 하니 그 外交手段의 怪惡함을 可知하리로다. 
-이 대통령 연설, 독립신문, 1919. 12. 2

동서양 각주에서 국제적 강도들에게 압박받는 나라 중 우리 한국인민의 고통이 가장 극심하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위원장 이승만
-태평양전쟁 발발에 즈음한 이승만의 성명서/공포서, 국민보, 1942. 1. 28

그런데 이 협의회는 인민의 여론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우리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과도기관이기 때문에... 
-이승만 독립촉성협의회에 대하여 언명, 동아일보, 1945. 12. 11

이때에 우리의 유일한 진행 방법은 대외 선전이니 선전만 잘하여 미국 인민의 동정을 얻어 가지면 통치문제와 三十八도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니 여러 동포는 이에 주의하시오.... 민국 二十七년 十二월 四일 서울에서 이승만
-미-포(미국 하와이) 우리 동포에게, 북미시보, 1946. 3. 1.

맥아더장군은 금반 일본인민의 민주주의적 의사발표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신선거를 실시하리라고 언명하고 있으나... 
-미국 체재 이승만 조선 문제에 관해 담화 발표, 동아일보, 1947. 2. 12

나는 전 민족에게 충고하노니 미국정부나 우리 인민이나 전적으로 정권 이양 키를 결정지은 것이요 
-이승만 행정권 이양교섭 경과 발표, 조선일보, 1948. 8. 11

이 제도로 성립된 정부만이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 기념사, 한성일보, 1948. 8. 16.

그러나 한 사람의 비법행위가 있더라도 이들 방임하면 모든 법을 무효로 만들기 쉬우니, 그 결과는 순량한 인민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승만대통령 양곡 매입에 적극 협력할 것을 당부하는 담화를 발표, 국제신문, 1948. 11. 2

남한공화국 대통령 이승만 씨는 말하기를... 미국 인민으로 하여금 자기들의 집들을 공산파 침격(侵擊)에서 방어하게 될 시일을 재촉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 철군설에 관하여, 국민보, 1949. 2. 23.

옹진반도의 전투 보고는 내가 믿기로는 침략을 악하다 혐의해서 자치에 대한 인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모든 인민을 고무할 것이다. 사실들은 분명하다. 우리는 동지역에 그 안전을 확보하기에 충분한 우리 군대를 이동시켰다.
-이승만 씨의 성명, 국민보, 1949. 8. 3.

 

'인민'에 자유로워져야 사상과 문화도 꽃피울 것

다시 강조하지만 인민과 국민은 개념이 다른 말이다. 인민을 빨갱이 용어라 사용할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은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하찮게 여기고 주권을 갖고 있는 주인으로서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정말 무식하고 무지막지하기 짝이 없는 독재자나 하는 소리이다.

인민이 제대로 서야 진정한 애국자 '국민'이 나올 수 있다. 수동의 노예에 가까운 존재로 전락해 버리는 국가주의 파시즘의 국민으로부터 진정한 애국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동무란 단어를 빨갱이 단어로 낙인찍고 인민이란 말을 쓰기가 겁나는 세상에서 사상이 깊어지고 문화가 꽃피울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사상과 문화가 꽃을 피우기는커녕 사상과 문화의 사막화를 초래하는 야만의 언어 학살, 사상 학살, 문화 학살이다. 그런 사회는 절름발이 사회, 아주 천박한 사상만이 판치고 단세포의 문화가 지배하는 불임 사회일 뿐이다.

단일 민족이나 단일 종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널리 잘 알려져 있다. 단일민족이나 단일 종은 종 다양성이 꽃피는 경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금방 멸종되어 버릴 위험성이 높다. 환경 적응력이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이다.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은 단일한 품종의 감자만을 재배한 결과, 병충해가 돌자 아예 감자 씨가 말라버려 생긴 재앙이었다. 오늘날 바나나가 이런 단일종과 단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조만간 바나나가 멸종되고 말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가 모두 나서서 다양한 해법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어떤 대안에 대해 그것은 사회주의 발상이다, 공산당 견해와 똑같다, 종북 빨갱이와 똑같은 짓이다 등등의 간 떨어지는(!?) 소리를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것도 집권을 한 정당이나 그 영향력이 막강한 언론, 경제 단체 등에서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이것은 참으로 근시안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그런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으려는 반공 전체주의자들이 자유로운 사상을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려 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과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이적행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북한 전체주의자들과 똑같이 대한민국을 유일사상의 감옥으로 만들고자 획책하는 매국 행위이다. 이런 행위는 인민으로 하여금 아무런 대안을 모색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 사회를 미래의 싹이 자라지 못하는 불모의 사회로 전락하게 만든다.

동무와 인민을 다시 되살리는 것은 우리 사회를 사상과 문화의 종 다양성이 꽃피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동무와 인민이란 말 위에 엄청나게 많이도 쳐진 가시철망들을 벗겨내고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대안을 찾고 미래의 종 다양성을 진지하게 모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동무'와 '인민'이란 말을 당당하고 또 거리낌 없이 쓰고자 한다.

이웃을 내 몸처럼 생각하는 '동무'들이라면, 저 쪽방에서 시들어가는 '인민'의 고통을 한 번만이라도 느낀다면, 열대 밀림이 껍질까지 벗겨지고 있는 지구 생태계의 신음을 단 한 번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러면 이제 더 늦기 전에 한 발짝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동무, 인민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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