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대가 서 있는 곳엔 사람사는 정성이 깃든다. 높은 장대 위에 새가 앉아 있다. 그 장대는 생명의 나무요, 그 새는 '하늘과 지상의 인간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신성한 중재자'(이덕일)다. 장승과 솟대는 민간신앙이지만 그것을 단지 미신으로 치부하기보다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민중들의 소박한 희망이 세워진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일제 강점기 을밀대를 점거농성했던 평양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 이후, 절박한 노동자들은 가장 절박한 심정으로 하늘로 올랐다. 1989년의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 농성 이후 지금 구미에서 고공 농성 중인 스타케미칼의 차광호까지,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우리 사회의 솟대가 되었다. 하늘과 땅과 사람에 복과 평화가 찰랑 넘쳐나라는 원(願)하나로 신성한 중재자가 되었다. 저 절박한 중재를 우리가 받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끝내 모든 사람다움에서 추방되고 말 것이다.
한국합섬에서 지금의 스타케미칼까지 해고를 불사하고 투쟁한 노동자들의 뜻은 분명하다. 좋은 회사 좋은 일자리를 지켜내자는 것이다. 반면에 자본은 오직 당장 쥘 돈(이윤)만으로, 그것이 생산이 아니라 파괴의 과정이라도 능히 사람의 가면을 벗고 날뛴다. 그 결과 일터는 사라지고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예가 되고 회사는 산산이 조각나 중소 영세업체가 되었다. 좋은 기업, 좋은 일자리를 가난한 기업, 더러운 일자리로 만들고 그 결과 399억 원에 사서 900억 원에 팔아 이윤을 남기려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동참한 노동자들에겐 몇 푼의 보상금이 주어지지만 그것이 자기 일자리를 파괴한 결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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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이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 그저 돈만 남기는 것이고 돈을 남기기 위해 어떤 짓을 해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한 것은 1997년 IMF 이후다. 신자유주의라고 이름 지어진 이 바이러스는 노동의 신성함과 인간의 존엄함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그가 지나 간 곳에서 발생되는 것은 인권과 복지의 파괴, 인류 공동체성의 붕괴, 정규직은 남을 쫓아내야 사는 마귀 노동을 하고 비정규직은 영혼 없는 좀비 노동이다. 양심과 염치가 사라지고 거기에 오직 이기와 탐욕이 넘실된다. 그들은 무슨 컨설턴트라고 하면서 마치 만병통치 명의인양 들어왔다. 그리고 주식 놀음과 땅놀음을 통해 기업을 생산의 기지가 아니라 투기의 수단으로 변질시켰고 그 결과는 회사의 사망이다.
그 전형적인 모습이 기륭전자다. 1000억 원이 넘던 회사가 지금은 달랑 6400만 원짜리 사무실도 실종된 유령으로 남았다. 만약 우리가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엄청난 빈부격차, 죽음과 차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최대의 병균 염치와 양심만 잡아먹는 잘못된 투기형 기업 경영을 막아내야 한다. 이들은 마약이다. 이들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마약 중독에 걸린 사람의 모습보다 참혹하다. 어디에서 왕따가 생기고 어디에서 묻지마 살인이 발생하고 드디어 세월호의 비극이 만들어 질 때까지 그 뿌리는 바로 여기에 닿아 있다.
스타케미칼 경영진의 마인드가 또한 투기 자본의 전형이다. 이들은 기업 경영을 '떴다방'쯤으로 여긴다. 한 기업 안에 담긴 노동자들의 피와 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과 생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제적 야수들인 이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도 유지하지 못한다. 그것이 2008년 미국 발 대 경제 위기의 교훈이다. 하지만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한국의 권력은 성찰할 줄 모르는 정치적 교활함만 특화된 괴물들이다. 세월호를 접고 민생정치를 하자며 들고 나온 것이 카지노와 영리병원이니 도대체 거기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제헌헌법 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각의 사람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 된다"라고 못 박고 있다. 또한 기업이 산출하는 이익을 근로자도 균점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18조)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공영화해야 한다고도(87조) 규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정의로운 규정을 규제라 하며 많이 퇴색되었다. 그럼에도 현행 헌법 119조2항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가 헌법의 규정이다. 지금 투기자본들의 행보는 완전히 그 반대다. 시장 만능의 무지와 경제력의 남용으로 조화는커녕 사탄(어용) 아니면 노예를 만들고 있어 민주공화국의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우리 시대의 솟대 차광호를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이 잘못된 자본의 탐학(貪虐)을 폭로하고 그들의 모습이 경제라는 이름의 마약사범들임을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기륭의 돈으로 기륭을 사고 공장부지 모든 것을 사사로이 팔아먹은 최동열도 그 짓을 새로운 경영기법이라 했다. 스타케미칼 자본도 수지맞은 장사 잘했다며 속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을 제거하고 양심과 염치도 포기한 행위를 공화국의 시민 된 자는 용서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살리는 노동, 생산적인 일 대신에 사람을 죽이고 일자리를 파괴하고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행위를 어떻게 인정한단 말인가. 경제 투기꾼들 이 사기꾼들은 반사회적 범죄자로 단죄되어야 한다.
프란체스코 가톨릭 교종이 지나간 자리에서 우리는 사람의 향기를 맡았다. 하지만 우리의 일은 우리가 해 나가는 것. 이제 우리는 우리시대의 솟대를 함께 보는 것으로 다음 행보를 시작하자. 하늘로 오르다 그만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저 위기에 찬 생명의 호소를 듣자. '좋은 일자리를 파괴하지 말라. 우리의 생과 삶은 이윤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사람의 소리를 듣자.
경세제민! 경영을 잘하는 것은 돈을 잘 버는 것이 아니라 제민을 잘하는 것이다. 모든 백성이 고르게 화목한 삶이 경제의 목적이다. 그것이 평화다. 평화(平和)! 벼화(禾) 즉 쌀이 사람의 입(口)에 공평하게 들어가는 것, 공평하게 나눠먹는 것이 평화다. 그러지 않는 경제행위는 약탈이요 사기요 범죄다. 이런 상식을 되돌려 세우는 것이 우리 시대 가장 절박한 과제다. 차광호의 농성은 사람이 중심인 새로운 상식을 세우자는 요구다. 차광호는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사람이라는 이 절박한 과제를 짊어진 우리 시대 솟대다. 그의 말을 들어라! 희망버스를 타자. 이것이 민주공화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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