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시위가 드러낸 '1국가 2체제' 운명은?
홍콩 민주화 시위가 드러낸 '1국가 2체제' 운명은?
[차이나 프리즘] 향후 대만 통일방안에도 영향
홍콩 민주화 시위가 드러낸 '1국가 2체제' 운명은?
최근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2017년 예정된 행정장관(홍콩의 행정수반) 선거방식과 관련되지만, 보다 복합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그것은 홍콩의 미래는 물론 중국의 국내정치, 대만문제, 나아가 중국의 국제정치적 위상과도 관련된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홍콩의 온전한 민주화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중국내 민주화에 대한 요구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홍콩에 적용되는 '1국가 2체제'는 중국정부가 제시하는 대만과의 통일방안이기도 하다. 홍콩문제의 해법은 '1국가 2체제'에 대한 신뢰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대만정부가 최근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공개적인 동조를 보내는 이유이다. 

사실 홍콩의 민주화 문제는 역사적 맥락을 벗어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설정되고 있다. 이것은 정치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기도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홍콩반환 과정에서 합의된 규정과 그것의 실행 과정에 대해서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2년 9월 덩샤오핑(鄧小平)과 대처 영국수상의 협상 결과, 1984년 12월 영국과 중국 사이에 조인된 공동선언문의 함의와 1990년 홍콩기본법, 그것들의 실시현황과 쟁점을 하나씩 되짚어 보겠다. 

▲ 홍콩 민주화 시위대가 13일(현지시간) 바리케이트를 철거하겠다는 경찰에 맞서 경찰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도로에 나와 있다. ⓒAP=연합뉴스


홍콩은 맨 아래 홍콩섬, 중간 구룡(九龍)반도 그리고 맨 위 신계(新界) 등 크게 3부분으로 되어 있고, 전체 면적은 약 1100 제곱킬로미터, 인구는 2014년 현재 약 720만 명이다. 홍콩은 지리적으로 주강(珠江) 삼각주를 중심으로 중국 남부의 경제적 중심지인 광둥성(广东省)과 남중국해가 접하는 곳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서 영국은 아편전쟁 승리 이후 1842년 체결된 남경조약에서 홍콩섬을 영구히 할양하도록 하였다. 그 뒤 영국은 1860년 구룡반도를 조차하였고, 마지막으로 1898년 신계를 99년의 기한으로 조차하였다. 1997년 신계의 조차 기간 만료에 따라 규정이 없던 다른 지역들도 함께 중국에 반환되었다.

그렇지만 홍콩은 영국에 별다른 도움이 된 것 같지 않다. 홍콩은 광저우(廣州)나 상하이(上海)와 같은 다른 항구도시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940년대 초반 일본군에 의해서 3년 반 동안 점령되기도 하였다. 1949년 인민공화국 성립 직후에도 중국정부는 홍콩의 할양과 조차가 강대국에 의한 불평등조약에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환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실제 홍콩은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항구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1970년대 이후 한국, 대만, 싱가포르과 더불어 홍콩은 아시아 4마리 용 중 하나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무엇보다도 홍콩은 개방적 경제를 통해서 세계적인 무역과 금융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오늘날 국민소득은 4만 달러 이상으로 세계 10위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의 입장에서 홍콩의 가치는 1970년대 말 중국이 개혁과 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홍콩의 대규모 자본이 중국에 유입됐고, 동시에 수입과 수출에 있어서 홍콩은 절대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홍콩은 중국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것이다. 따라서 홍콩의 반환 기한이 다가오면서 1980년대 초 진행된 영국과의 협상에서 중국도 상당 부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1984년 양국 간 합의된 <공동선언>에 그대로 반영됐다. 거기에는 홍콩은 특별행정구로서 반환 후에도 광범위한 자치를 누린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더욱이 영국은 영국인 총독에 의한 식민지적 통치방식에서 벗어나 민주적 정치체제를 도입을 추진하였고, 그것은 홍콩기본법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 

홍콩기본법은 1990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에서 채택되었는데, 일종의 헌법으로서 홍콩의 정치체제 그리고 홍콩과 중앙정부의 관계에 대한 기본 내용을 포함했다. 여기에는 1국가 2체제의 원칙에 따라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港人治港)"의 구호와 더불어 홍콩에 광범위한 자치가 부여됐다. 중앙정부는 홍콩의 외교와 국방 업무를 담당하는 대신, 홍콩은 내치에 관한 거의 모든 권한을 보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정과 관련하여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행정장관과 입법기구인 입법회(立法會)의 구성 및 선출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었다. 다만 두 기구에 대한 선거 방식에 있어서 보통선거가 즉각적으로 도입되지 않고, 상황을 고려하여 점진적인 방식으로 도입하기로 하였다. 

임기 5년의 행정장관의 선출과 관련하여 홍콩기본법에는 선거인단에 의한 방식이 규정됐다. 각 시기의 구체적인 선거방식은 규정에 따라 전국인대 상무위원회에 의해 정해졌다. 1997년 7월 1일 반환 시 취임한 첫 번째 행정장관 선출은 400명의 각 사회부문을 대표하는 선거인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두 번째인 2002년 선거인단 수는 800명으로 확대됐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공상·금융계 200명, 전문직계 200명, 노동, 사회복지, 종교계 등 200명, 입법의원, 지역적 조직대표·홍콩지역 전국인대와 정협 대표 등 200명으로 구성되었다. 2012년에는 그 수가 다시 1200명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선거인간의 구성으로 인하여 이제까지 행정장관은 충분한 경선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친중국적 인물들이 당선되고 있다. 

그렇다면 입법회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임기 4년의 입법의원 선출과 관련하여서도 기본법은 행정장관의 선출과 유사한 방식이 규정되었다. 다만 선출 방식은 처음부터 부분적인 보통선거 방식이 도입되었다. 입법의원 수는 60명인데, 1998년 선출된 최초의 입법의원은 임기가 2년이었고, 그 이후에는 4년이다. 최초의 입법의원은 지역구의 직접 선거를 통해 20명이 선출됐고, 위의 행정장관 선거인단에서 10명, 그리고 직능대표로서 30명이 선출됐다. 그 이후에는 매기마다 지역구의 대표들이 계속 증가됐다. 2012년 제5기 입법원은 70명인데, 그중 35명은 지역구 대표, 5명은 5개 지방의회 대표, 30명은 28개의 직능조직들의 대표다. 물론 직능대표는 친중국적 인물인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5기 입법의원 70명 가운데 43명이 친중국적 인사로 분류된다.

향후 홍콩의 정치일정과 관련하여 기본법은 분명한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고, 궁극적으로 중앙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행정장관의 선출과 관련하여 홍콩기본법은 "행정장관의 선출방법은 홍콩특별행정구의 실제 상황과 점진적인 순서의 원칙에 따라 규정하고, 최종적으로 대표성 있는 추천위원회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추천한 뒤 보통선거로 선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만 명시했다. 

보통선거의 확대를 위한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는 최종적인 일정 설정에 대한 압력을 받아왔다. 그리하여 2007년 12월 29일 전국인대 상무위원회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했다. 비록 2012년 선거에서는 보통선거를 행하지 않지만, 2017년 행정장관의 선출과 2020년 입법의원 전체에 보통선거 방식을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8월 31일 전국인대 상무위원회는 2017년 행정장관 보통선거 실시와 입법원 구성에 관한 구체적인 틀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순수한 보통선거가 아니었다. 과거 행정장관 선거위원회와 같은 방식으로 지명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명위원회의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얻는 2~3명의 후보만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한다는 것이다. 한편 입원의원 전체에 대한 보통선거는 적절한 시기에 실시한다는 말만 반복됐다.

전국인대 상무위원회의 2014년 규정은 보통선거에 간선제의 요소를 결합하고 있다. 중국은 사실상 간접선거를 통해서 홍콩에 친중국적 정권을 유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의 민주화 세력들이 거기에 반발하는 이유다. 물론 중국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홍콩의 민주화는 반환 이후 비로소 가시화되었다. 갑작스런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중국정부에게 조금은 부당한 셈이다. 더욱이 소수에 의해 주도되거나 외부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민주화의 요구에 단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실적으로 홍콩 내 보통선거에 대한 요구가 관철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 같다. 홍콩 내부에서도 다른 입장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정부도 양보할 여지가 크지 않다. 홍콩에 반중국적인 정권의 등장이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중국내로 확산돼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는 상당한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1국가 2체제' 방안의 한계가 드러났고, 이것은 향후 대만과의 관계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다. 중국은 또한 국제적 이미지에 있어서도 상당한 손상을 입지 않을 수 없다.  
jh1128@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