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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세월호를 침몰시키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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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세월호를 침몰시키겠다는 건가"

[기고]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만나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 별것도 아닌 무심하고 짧은 인사에 나는 때때로 멈칫한다. "그냥 그래요." 혹은 "맨날 그렇죠 뭐." 외에는 달리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면 대화는 짧은 순간 어색하게 서걱거린다. 해고된 이후 감옥 아니면, 투쟁 현장, 천막, 철야 농성, 단식, 크레인…. 투쟁 하나가 끝났다 싶으면 절망의 끝을 알 수 없는 동지의 죽음과 장례투쟁…. 그리곤 어김없이 이어지는 재판…. 남들에겐 참으로 희한하고 유별난 일이지만 우리에겐 허구한 날의 일상.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난 후엔 이런 인사도 받아봤다.

"요즘은 땅에 계시죠?"

그렇게 본인에겐 맨날 그렇고 그런 일상이지만 다른 이에겐 전혀 그렇고 그렇지 않은 일상을 10년째 살고 있는 사람. 최일배와 김혜란과 코오롱 해고자들을 생각해 본다.

10여년 전 구미에 있던 코오롱 노조는 웅장했다. 조합원 교육 시간이면 3000명의 조합원들이 체육관을 2층까지 꽉 채우곤 했다. 그 막강한 노조의 힘으로 구미 지역에서 누구나 부러워하고 들어가고 싶어 하는 회사를 만들어냈다.

아마도 그 노동자들의 힘이 싫었을 것이다. 자본이 가장 싫어하고 증오하는 노조의 힘. 때 되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근로조건 개선을 주장하고 그 요구와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파업을 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자신들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이 나라의 자본가들. 땅콩봉지를 정중히 까서 깍듯이 바치지 않았다고 승객들 250명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되돌려 '무례한' 사무장 승무원에게 "내 비행기에서 내려." 고함을 치고 진상을 부려 결국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한 새끼 자본. 그게 대한항공만의 문제가 아닌 게 이 나라 천민자본의 현주소다.

그걸 마음대로 못하니 민주노조를 깨는 게 절체절명의 지상 과제가 되고, 용역깡패들을 동원하고, 기업형 노조 파괴 전문가까지 생겨나고, 그런 업체들만 호황을 누리는 나라. 이른바 민주노조의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걷던 노동조합들은 전부 그 덫에 걸려 허우적거렸다. 수도권의 쌍용차와 기륭, 충남권의 유성, 영남권의 한진, 경주 지역의 발레오, 그리고 거대한 구미 공단의 코오롱. 고공농성 중인 스타케미칼, 콜트-콜텍 등 타켓이 된 노동조합들은 그 지역의 중심 노조로서 연대의 주축일 뿐만 아니라 지역의 민주노조들을 지켜내고 이끌어가는 혈관이자 척추였다. 그런 노조들이 차례차례 무너졌다. 정리해고, 직장폐쇄, 용역깡패 투입, 해고, 구속, 손배가압류, 그리고 복수노조 설립. 어쩌면 이럴 수가! 라는 탄성이 나올만큼 똑같은 방식으로 민주노조가 압사한 건 정권 차원의 매뉴얼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작년 일본에 갔을 때엔 옛 국철노조 조합원들을 만났다. 국철은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6개 회사로 팔려나가고 조합원들도 비정규직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끝내 국철노조 조합원임을 포기하지 않은 1047명이 있었다. 무심히 흐른 세월만큼이나 그들은 늙었지만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저 마음은 어떤 걸까. 이 땅의 노동자들도 다르지 않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6년을 싸우는 게 무슨 대단한 투사라서겠는가. 기륭이나 코오롱이나 스타케미칼,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10년을 포기하지 못하는 게 무슨 대단한 이데올로기를 이룩하기 위해서겠는가. 해고되는 순간, 영혼이 파괴되는 것 같던 고통. 인간임을 부정당하던 절망. 인간을 철저히 짓이기고도 제대로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던 벽들. 직장한테 물어봐도 위에서 한 일이라고 했고, 과장한테 물어봐도 위에서 한 일이니 난들 아냐고 했다.

아무리 기를 써도 코빼기도 볼 수 없던 그 '위'인 회장을 만나겠다고 본사에 '난입'을 하고, 그래도 만날 수 없자, 회장집 담을 넘은 코오롱 해고자 최일배의 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백 번, 천 번보다 훨씬 더 안다. 복직을 약속해놓고 복직이 되자 회사 문을 닫고 도망간 기륭전자 회장집 앞에서 아침마다 출근 투쟁을 하는 기륭동지들의 마음도 만 번 백만 번을 알고도 남는다.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동안 변치 않는 게 해고자의 마음이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조금도 덜어지지 않는 게 해고자의 억울함이다. 그건 제 자리로 돌아가야만 풀릴 수 있다.

지난 2005년 코오롱에서도 431명이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잘렸고, 그들 중 410명은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이 되었다. 그 희망퇴직을 거부했던 대부분이 노조간부였던 78명은 정리해고라는 이름으로 잘렸고, 그 중 12명이 10년째 투쟁을 하고 있다. 대법원에서마저 패소하고도 끝내 포기하지 못한 사람들.

그런 해고노동자들의 아픔을 비웃으며 이 정부는 정리해고 요건을 앞으로 더 완화하겠다고 한다.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 세월호들을 침몰시키겠다는 말인가. 거기에 맞서 이번 주 토요일인 12월 13일, 벌써 단식 40일차를 앞두고 있다는 코오롱 최일배와 해고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코오롱 연대의 날'이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열린다. 코오롱 해고자들만 지키는 날이 아닌 우리 모두를 지키는 날이 되길 희망해본다.

▲ 최일배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 위원장. ⓒ이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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