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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국회의원', 왜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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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국회의원', 왜 안되나요?

[정치제도, 이렇게 바꾸자·<3>] 주권자의 권리를 청소년에게

저 '젊은' 얼굴들은 어디서?

세간에 오르내리는 화제의 이름들이 있다. 시리자(SYRIZA)와 포데모스(Podemos). 저 멀리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정당들이다. 특히 한국의 좌파진영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입장에 따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눈살을 찌푸리게는 하지만, 활로가 보이지 않는 한국 좌파의 입장에서 눈여겨볼만한 정치활동임은 분명하다. 좌파뿐만이 아니라 우파도 이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보수언론조차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그들의 활동상황, 정치적 파급의 강도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한편 근래 한국 정치권의 관심을 받았던 국제적 사건으로 2014년 하반기에 홍콩을 뜨겁게 달궜던 우산혁명을 들 수 있다. 전국인민대회에서 선출된 3명의 후보 중 한 사람을 홍콩 행정장관으로 선출하라는 본토의 압력에 대한 홍콩시민들의 답변은 '센트럴 점령(Occupy Central)'이었다. 월가 점령을 연상케 하는 홍콩시민들의 저항은 본토와 홍콩의 정부를 당황하게 하는 한편, 정체상태를 면치 못하던 한국의 시민사회에도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 홍콩 '우산혁명' 이끈 조슈아 웡. ⓒ연합뉴스
시리자, 포데모스, 우산혁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정치적 역동의 한 가운데 서있는 사람들의 면면이다. 그리스 시리자의 대표이자 2015년 총선에서 41세의 나이로 최연소 그리스 총리가 된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 스페인 포데모스를 주도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지도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Pablo Iglesias), 우산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10대의 조슈아 웡(황즈펑, 黄之锋)이 그들이다.

그들의 주장이나 향후 전망에 대한 논의는 본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건너뛰자. 주목하는 부분은 이들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경로이다. 어떤 성장의 과정이 이들에게 오늘의 생각과 행동을 하게 만들어주었는가?

시리자의 대표로 그리스 총리에 오른 치프라스는 고등학생 당시 공산당 청년동맹에 가입했고 그 조직과 함께 학생운동의 한 가운데 서있었다. 이러한 그의 정당활동은 이후 급진좌파연합을 구성하고 그리스를 강타한 금융위기와 긴축재정의 상황에서 시리자가 급부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리더십을 형성했다.

포데모스의 젊은 지도자이자 '스페인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고 평가되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14세에 스페인 공산당 청년연맹에 가입했다. 스페인 사회노동당을 설립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와 같은 이름을 지어줄 만큼 정치적 관심이 높았던 부모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해박한 지식과 면밀한 논리를 전개하며 포데모스를 폭풍의 핵으로 만들어갈 자질을 연성시킨 것은 이른 시기부터 시작한 정당활동의 훈련과정이었다.

17살에 우산혁명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조슈아 웡은 14살에 아예 자기 스스로 중고등학교 운동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를 결성하고 12만 명이 참여한 본토식 국민교육과목 도입반대운동을 주도했다. 조슈아 웡은 학민사조를 홍콩 우산혁명의 중심단위로 만들어냈고, 역으로 학민사조를 통한 운동의 과정은 그를 '홍콩 시위의 얼굴'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애들은 공부나 해라!'

이들은 일찍부터 정치에 참여하고 미래세대의 주체로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10대 초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하면서 주권자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우리의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은 청소년의 정치참여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정당법 제22조는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사람'으로 당원의 자격을 한정한다. 공직선거법 제15조 제1항은 '19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여 19세 미만의 사람이 정당의 발기인이나 당원이 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한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 제2호는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위반하여 19세 미만의 사람이 선거운동을 하게 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6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선거운동본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미성년자가 선거운동에 참여할 경우 자칫하면 당선무효까지도 가능한 제한이다.

이들 규정에 따르면 한국에서 19세 미만의 사람은 정당에 입당할 수도 없고, 선거운동을 할 수도 없다. 우리의 법제는 19세가 되기 전까지는 아예 정치 쪽으로는 얼굴도 돌리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이러한 법제도에서 10대에 정당정치에 입문하여 20~30대에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차세대 정치인을 양성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일 뿐이다.

선거권과 피선거권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보았듯이 우리의 선거권은 19세부터 부여된다. 피선거권은 각 선출직에 따라 연령제한이 달리 규정되어 있다. 대통령은 40세 이상, 국회의원 및 지자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은 25세 이상이다. 교육감의 경우 연령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학식과 덕망이 높고 교육경력 또는 교육행정경력이 3년 이상이거나 두 경력을 합하여 3년 이상이 되어야 자격이 부여되므로 실질적으로는 최소한 30세 이상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한국의 공직구조에서 10대에 국회의원이 되거나 40대 초반에 내각을 책임질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하다.

열아홉 살이 되어야 인정되는 선거권

한국이 청소년들의 정치활동 자체를 엄금하고,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이렇게 높게 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딱히 명확한 기준은 없다. 현행 정치관계법이 정치참여의 최저연령을 만19세로 규정한 근거는 단지 그 나이가 민법상 성년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기준은 없는가?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2013. 7. 25. 2012헌마174)에서 다수 의견은 19세 선거권 규정이 합헌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청소년은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으며 현실적으로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존성에 의해 청소년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민주적인 시민으로서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둘째, 물질적 정신적 측면에서 보호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경험이나 적응능력 등의 부족으로 인해 중요한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선거권 연령은 나라의 역사, 전통과 문화, 국민의 의식수준, 교육적 요소, 신체적·정신적 자율성의 인정여부, 정치적·사회적 영향 등을 종합하여 결정할 문제다. 이상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현행 제도는 합헌이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사실 선거권 연령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입법자들의 재량권에 속한 일이다. 기왕에 판단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이 제시되었기에 헌법재판소가 합헌의 논리를 만든 것일 뿐 헌법재판소라고 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선거권 연령은 각국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헌재 다수의견이 설시한 것처럼 각종의 요소들을 고려한 결과일 것이다. 16세 이상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는 나라로는 오스트리아, 니카라과, 쿠바 등이 있고 17세 이상은 북한, 인도네시아, 수단 등이 있다. 통계적으로 보면 선거권을 18세로 정하고 있는 국가가 110여개 국이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미주대륙, 오세아니아 일대의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선거권을 18세에 부여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일본 등 20세로 정한 국가들도 있고, 싱가포르나 쿠웨이트처럼 21세로 정한 나라도 있다.

그렇다면 헌재 다수의견이 제시한 각종의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판단할 때 한국에서 선거권이 19세 이상에게만 주어져야할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소수의견은 다수의견과 같은 취지에서 정반대로 선거권 연령을 하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직도 나이가 벼슬인 정치구조

청소년의 정치활동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입당 또는 선거운동에 연령하한선을 법으로 정하는 나라는 그 실례를 볼 수 없다. 물론 우리와 같은 형태의 정당법을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정당의 구성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사례도 찾기 어렵다. 공직선거법상의 연령에 따른 선거운동제한은 단지 선거과정에서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거운동기간 외에 통상의 정치운동조차 청소년들에게 허용될 여지마저 없애버린다.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이 제기한 현재 한국 청소년의 상태는 결과론에 불과하고, 국가후견주의적 발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견해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 긴 결정문의 내용은 청소년들이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로 축약된다. 과연 그러한가?

청소년이 정치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과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하다는 것은 달리 말해 이 사회가 청소년에게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오히려 그러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참여하면서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이 고무적일 정도니까.

스위스의 교육심리학자인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인지발달단계를 4단계로 나누고 그 최종 단계인 형식적 조작기에 해당하는 연령을 11~15세로 정리했다. 피아제는 이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미 추상적인 사물에 대해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후 성인기에 접어들면 인지의 질적 변화가 아니라 단지 지적체계의 정교함이 더해지는 과정으로 판단했다. 달리 말하면 16세 이상의 사람은 그 이상의 연령을 가진 사람들과 인지와 사고의 측면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청소년과 대별되는 성인들의 판단력은 어느 정도나 숙성되어 있는 것일까? 자신의 표를 던질 대상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판단력이 성인이냐 미성년자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까? 청소년보다 훨씬 많은 경험과 경륜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어 있고 타인에게 의존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인들이 실은 부정부패한 정치인을 선출하고 불통의 정권을 창출하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성인이라는 일종의 집합적 단위는 자신들의 이 부당한 행위에 대한 반성 없이, 청소년을 보호라는 장벽 안에 가두는데 급급하다. 청소년을 주체성을 가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인권인 참정권의 행사를 아예 봉쇄해버리면서 그것이 자라나는 미래세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스스로를 기만한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연령기준을 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정당가입과 정치활동 자체를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법으로 막아버리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위헌적인 태도다.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이 거론한 요소들을 종합해 검토하더라도 19세 연령제한은 터무니없다. 아닌 말로 한국의 청소년은 현재 단군 이래 최고교육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주입식 암기교육으로 단련된 청소년들에게 부족한 것은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자기발전을 도모할 계기다. 자신이 앞으로 접할 세계가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것인지를 청소년들은 알 권리가 있고 그것을 찾아갈 권리가 있다. 이를 통해 새롭고 기발한 정치적 상상력이 작동하고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설계자가 될 수 있다.

몇 가지 정리해보자. 우선 청소년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시각의 부적절함이다. 극복해야 할 것은 청소년들의 미성숙이 아니라 그들을 계속해서 미성숙한 상태로 두려고 하는 제도적·문화적 구태다. 다음으로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주권자로서 국민의 권리는 나이로 차별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의 직접적인 요청이 당사자의 목소리로 불거져 나올 때 자신들의 권익을 사회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예컨대 교육의 직접당사자인 청소년들이 교육감 혹은 교육정책을 설계하는 국회의원을 스스로 뽑을 수 있다면, 과연 이 땅의 청소년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마루타가 되어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그들에게 그들의 정치를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주요한 의제가 앞으로 정치관계법 개혁의 과정에서 다루어져야만 한다. 첫째, 청소년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해야 한다. 즉 정당법 상 연령제한과 선거운동을 비롯한 정치활동의 연령제한규정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 둘째, 선거권과 피선거권 연령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노동당은 선거권은 물론 대통령과 교육감을 제외한 현재의 선출직 공무원 피선거권의 연령을 16세 이상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많은 비판이 제기될 것이다. '16살 청소년이 국회의원이 되면 국가정책의 판단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다가 청소년들이 정치에 빠져 대학도 못가면 어떻게 하냐?' 등 예상 가능한 문제제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답변할 논리 역시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 16세라는 출마자의 나이가 그렇게 미덥지 않으면 표를 안 주면 된다. 이것이민주주의의 절차다. 상급학교에 진학할지 여부는 본인이 판단하면 된다. 그 정도 판단은 청소년들 스스로 알아서 잘 한다. 앞서 사례로 들었던 홍콩우산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은 데모도 열심히 했고 지금 대학생이 되어 학업도 열심히 하고 있다.

청소년을 성인과 함께 이 사회를 구성하면서 각각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를 가지고 있는 동료시민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들에게 널리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숨을 쉴 권리를 인정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어쩌면 청소년들의 정치참여 보장과 확대를 주저하는 것은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감당하기 어려운 기성세대의 곤궁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지 말고 마음을 열자. 그들에게 그들의 정치를 열어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이자 정죄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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