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를 암살하러 왔습네다"
"박정희를 암살하러 왔습네다"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②] 45일, 끔찍했던 고문의 기억

자다가도 몇 번씩 몸부림치며 일어납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흥건합니다. 간신히 정신이 들어 한숨을 돌릴 때면 이젠 욱신욱신 허벅지가 쑤셔옵니다.

김관섭 할아버지(81)는 밤이 두렵습니다. 어둠이 쏟아지는 밤마다 늘 똑같은 악몽에 시달립니다. 40년 전 끔찍했던 '그날들'은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꿈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됩니다. 머리가 기억하고 몸이 기억하는 일, 아무리 잊으려 애를 써도 소용없습니다. 단칸방에서 홀로 사는 노인은 어둠 속에서 다리를 주무르며 다시 잠에 들기만을 기다립니다.


▲김관섭 씨. ⓒ프레시안(서어리)


"나는 북조선에서 온 사람입네다"

물이 빠지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자정 무렵,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습니다. 40년간 그가 나고 자란 고향 산천에 작별을 고했습니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서둘러 바다 위에 고무 튜브를 띄우고 몸을 실었습니다. 손에 쥔 건 권총 한 자루뿐. 1974년 8월 25일 자정. 그는 목숨을 걸고 드디어 '탈북'(脫北)했습니다.

세찬 조류 속에서 7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도착한 곳은 경기도 강화군 양사면 교산2리 해안가.

숨 고를 틈 없이 납작 엎드려 총을 쥔 채로 좌우를 살폈습니다. 이른 아침, 해안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조심스레 일어나 다시 논두렁을 걸어가던 중 멀리서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남한 땅에서 처음 마주할 사람이 누굴까, 긴장감에 심장이 쿵쿵 뛰었습니다.

참새 떼를 쫓던 노인이었습니다. 경계를 풀고 다가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북조선에서 나온 사랍입네다. 지서가 어딥니까."

노인은 그를 자신의 동네로 데려갔습니다. 노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북한에서 온 사람이 왔다'고 했습니다. 젖은 속옷 한 장만 겨우 걸친 그를 본 동네 주민 조모 씨가 그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삼삼오오 모여든 주민들 앞에서, 그는 젖은 속옷을 홀딱 벗고 조 씨가 준 새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생존 본능 앞에서 부끄러움 따위 없었습니다.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7시간 물질을 하며 잊고 있던 허기가 밀려왔습니다. 조 씨에게 총을 맡기고 순식간에 밥을 해치웠습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순경 두 명이 들이닥쳐 총을 겨눴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저는 북에서 귀순한 사람입네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처음 만난 노인이 포상금을 노리고 '간첩' 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김관섭 씨의 귀순 경로. ⓒ프레시안(서어리)


"오늘, 김 선생은 고문을 받습니다"


순경을 따라 경찰서로 간 그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차가 멈춘 곳은 서울 영등포구 '대성공사'. 국군 정보사령부가 운영하는 기관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양치질을 했습니다. 향긋한 치약 냄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에선 치약이 귀했던 터라 치분(가루치약)을 썼습니다. 식사도 내줬습니다. 주는 대로 우적우적 먹어치웠습니다. 몸이 나른해져왔습니다. 긴장이 조금씩 풀리자 이제야 '살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남한에 충성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모진 고문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자마자 쉴 새도 없이 심문관들이 그를 독방으로 끌고 갔습니다.

"북한에서도 탈출할 궁리를 하느라 일주일간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또 그날은 물길을 7시간 헤엄쳐 왔으니 내 정신이 아니었어요. 살아있으니까 '아, 내가 살아왔구나' 했죠. 그런 상태에서 바로 조사를 받았어요. 그래도 정신없는 와중에도 틀림없이 귀순 동기를 진술했습니다."

이튿날, 권 모 심문관이 찾아왔습니다. 그에게 책을 던져줬습니다. <나는 공작원이었다>, <나는 여간첩이었다> 두 권이었습니다. 왜 이 책들을 줬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호기심에 대강 읽어내려갔습니다. '아, 간첩이 이렇게 교육받는구나'.

다음 날인 1974년 8월 28일 오전. 권 심문관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오늘, 김 선생은 고문을 받습니다."


▲대성공사. ⓒ프레시안(최형락)


"박정희를 암살하러 왔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채 헌병을 따라 고문실로 가는 길, 복도에는 야구방망이, 곤봉 등 고문 도구로 보이는 것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그제야 곧 고문당하리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사시나무 떨리듯 온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고문이라는 걸 말로만 들었었는데, 제가 왜 고문을 받아야 하는지…. 분위기가 살벌해 대들지는 못하고 그냥 눈물만 났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그는 혹독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복도에서 본 곤봉이 먼저 날아들었습니다.

"너, 문세광이 사건 알지? 박통(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러 온 건가"
"아닙니다. 저는 남한에 귀순 왔습니다."

문세광은 1974년 8월 15일 발생한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의 범인이었습니다. 사건 후 열흘밖에 되지 않은 터라, 나라 분위기가 살벌하던 때였습니다. 한 마디로, 때가 좋지 못했습니다. '남한에 살러 귀순 왔다'고 누차 설명해도,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헌병들은 포승줄로 상반신을 묶어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리고 입과 콧구멍에 수건을 덮고 고춧가루 탄 물을 주전자로 들이부었습니다. 까무룩 정신을 놓으면 다시 물을 끼얹고 "왜 남한에 왔느냐" 물었습니다. 공포에 질린 그는 결국 눈물을 쏟으며 말했습니다.

"박정희를 암살하러 왔습니다."


▲김 씨가 기억하는 대성공사 위치와 대성공사 수용 당시 썼던 독방 구조. ⓒ프레시안(서어리)


구타, 물세례, 간지럼… 45일간의 끔찍한 고문

물고문은 새벽 네 시가 넘어서야 끝났습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니 고춧가루 냄새가 확 끼쳤습니다. 명백한 고문의 흔적이었습니다.

'왜 그때 고문을 못 참지 못하고 거짓 진술을 했을까'

분을 못 견뎌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습니다.

29일 오전, 고문에 지쳐 늘어진 그를 가둔 방문이 열렸습니다. 밤새 그를 고문하던 이들이 그를 끌어내 차에 태웠습니다. 차가 나가는데, 문 앞에서 누가 가로막았습니다. 대성공사 간부였습니다. 대성공사는 국군 정보사령부 소속입니다. 정보사령관의 허락을 받아야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 심문관들은 이를 뿌리치고 그냥 나갔습니다.

남산 중앙정보부에 가서도 독방에 갇혔습니다. 도착한 당일 한 간부가 찾아왔습니다.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습니다.

"정말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러 왔는가?"

털썩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고문이 너무 무서워 거짓말했습니다."

간부는 말없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고문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중앙정보부에 있는 45일간, 그는 별의별 고문을 다 받았습니다. 우선,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입니다. 심문관들은 독방에 1미터 높이의 백열등을 매달아 놓고 그 밑에 누워있으라 했습니다. 눈을 감아도 강한 빛과 열 때문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간지럼 고문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사람 미치게 만드는 고문 기술이에요. 온몸을 간질이는데, 처음에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나중에는 정신이 나가고 비명이 터져요.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르는 엄청난 고통이에요."

종일 서 있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 죽이러 왔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하면 맞고, '그렇다'고 하면 매질이 멈춰졌습니다.

어느 날은 서너 시간 동안 곤봉 등으로 구타를 당해 허벅지에서 피가 터지고, 또 어떤 날은 포승줄에 손목 피부가 다 벗겨지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고문 받을 때는 고통을 참지 못 해 "박정희를 잡으러 왔다"고 했다가, 고문이 끝나면 후회하고 "거짓 진술했다"고 답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어느 날 그를 부축해서 화장실로 데려가던 헌병이 속삭였습니다. "오락가락 말하면 안 돼요. 솔직하게 말하세요."


ⓒ프레시안(손문상)


'차라리 죽자' 자살 시도, 그러나…

45일 동안의 모진 고문이 끝나고, 다시 대성공사로 이송됐습니다. 처음 고춧가루 물고문을 했던 심문관들이 나타났습니다.

"예전에 여기서 신문받을 때, 고춧가루 냄새는 안 났었지?"

강압적인 말투. 고문 사실을 부인하라는 압력이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나 또 고문을 당할까 봐 겁이 났습니다.

"생각이 잘 안 납니다."

끝난 줄 알았던 고문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엔 다른 심문관들이 등장해 그에게 소주를 억지로 먹이더니 곤봉으로 온몸을 또 수없이 내리쳤습니다. 중앙정보부에서 생긴 허벅지의 피딱지가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허벅지를 집중적으로 때려 맞아 피가 줄줄 흘렀습니다. 한 달 동안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눈이 오던 어느 날, 그는 두 평짜리 특수독방으로 옮겨졌습니다. 콘크리트 맨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와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가 특수독방에 갇히자 헌병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습니다. '김관섭이가 곧 죽을 것 같다'고. 친한 헌병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오면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부르세요."

이제는 정말 고문을 받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결심했습니다.

'차라리 죽자.'

속옷을 찢어 끈을 만들고 그걸로 목을 맸습니다. 그러나 끈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슬퍼 엉엉 울었습니다. 독방에서 자살을 시도한 게 들키면, 또 고문을 당할지 몰라 허겁지겁 하수구에 끈을 감췄습니다.

이틀 뒤, 독방 문이 열렸습니다.


▲오른쪽 선글라스 낀 사람이 김 씨를 특수독방에 감금시킨 대성공사 심문관 김모 씨. ⓒ김관섭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헌병이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식당이었습니다. 한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오늘 저녁, 김관섭이는 죽게 된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이틀을 굶고 나니 식욕이 돌았습니다.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 나니, 헌병들이 속옷만 빼고 옷을 벗긴 뒤 검은 보자기를 씌웠습니다. 그 상태로 차에 실려 한두 시간쯤 끌려다니다 보니 문이 열렸습니다.

보자기가 벗겨졌습니다.

"김관섭이, 할 말 있으면 해보라"

얼마 전 헌병이 귀띔해준 게 생각 나 크게 외쳤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방으로 끌려갔습니다.


"너, 간첩 맞지. 간첩이 아니라면 그렇게 맞았는데도 '대한민국 만세'라는 말이 나오겠어?"

ⓒ프레시안(서어리)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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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eor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