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넓얕> 채사장은 어떻게 스타 저자가 되었나?
<지대넓얕> 채사장은 어떻게 스타 저자가 되었나?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①]
2015.07.24 09:35:36
출판업계가 불황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겠지요.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인 1인당 연간 독서량이 9.2권, 월 0.76권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즐길 거리가 점차 많아지는데다, 책을 읽을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이 원인일 겁니다.

그러나 위기에도 기회는 오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불황을 이긴 베스트셀러는 나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출판사에서 좋은 글을 가진 작가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편집자,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독자에게 멋진 책 한 권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은 이 불황의 시대에 독자의 마음을 훔친 베스트셀러를 이모저모 뜯어보고, 그 성공의 이유를 분석하는 새로운 월간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시작합니다.

출판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베테랑 두 분을 모셨습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전 민음사 대표)와 이홍 출판기획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둘은 황금가지, 민음사, 리더스북스 등의 출판사에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만들었던 출판계의 신화로 불리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때로는 신랄한 비평가이자 때로는 친절한 컨설턴트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권씩, 이들이 직접 베스트셀러 한 권을 선정해 책의 성공 이유와 이후 과제를 짚어봅니다. 현장에서 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편집자, 기획자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봅니다. 교보문고가 전국의 판매 데이터를 제공해 분석의 신뢰를 더욱더 높였습니다.

첫 번째 책은 총 40만 부가 팔리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지음, 한빛비즈 펴냄) (<지대넓얕>)입니다. 총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인문형 자기 계발서'를 내세우며 수개월째 출판 시장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인문 서적의 불황 시대임을 감안할 때, 가히 신드롬이라 칭할 만합니다.

이 책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 책의 성공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또 출판계는 이 책의 성공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지난 14일 오후 5시 30분,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지대넓얕>의 이모저모를 따져보는 첫 모임이 열렸습니다. 장은수, 이홍 두 분이 지금 여러분을 만나러 갑니다!

▲프레시안의 새 기획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이끄는 이홍 출판기획자(왼쪽)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오른쪽).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좋은 책을 새로운 각도로 여러분께 알려드리겠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지대넓얕>은 인문학의 스낵 컬처"

이홍 : 장은수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좋은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네요. 이번 기획 대담을 통해 우리 출판업계에는 위기를 돌파하는 아이디어를, 독자에게는 좋은 책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지대넓얕>을 두고 대담에서 나눌 이야깃거리를 미리 뽑아봤습니다. 첫 번째 주제가 '이 책은 제목에 걸맞은 책임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입니다. <지대넓얕>을 읽고 정말 지적인 대화가 가능하냐는 거죠.

우선 제 소감부터 말씀드리죠. 흥미로운 책을 색다른 느낌으로 읽었어요. 읽기 전에는 제목을 보고 선입견을 가졌는데, 읽고 난 후 제 스스로의 생각이 달라졌어요.

장은수 : 달라진 생각이 뭔가요?

이홍 : 이 책이 각 권마다 주제별 세부 챕터를 나눠뒀잖아요? 읽기 전에는 역사 따로, 정치 따로, 이렇게 부분 부분으로 각 챕터가 분리된 책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읽고 보니 1권(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은 이분법, 2권(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편)은 삼분법으로 해당 주제를 꿰뚫는, 하나의 덩어리로 내용이 이어지는 책이더군요.

단편 지식을 다이제스트 식으로 묶어주는 보통의 기초 인문 서적이 아니었던 거죠. 저자가 주관을 앞세워 이야기를 쭉쭉 이어가는 모양에서 흡사 7080학번 세대가 대학 다닐 당시 사회 과학서를 읽고 우리 사회의 본질적 모순을 알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던 때를 연상케 했습니다. 장 대표님은 읽으신 소감이 어때요?

장은수 : 굉장히 재미있게 봤어요. 무엇보다 빨리 읽을 수 있어 좋더군요. (웃음) '인문학의 스낵 컬처(snack culture, 스낵처럼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트렌드)'로 이 책을 꼽아도 될 것 같아요.

저자가 독자가 원하는 만큼 이야기해주는 데 굉장히 훌륭한 재능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문학에서 이와 같은 시도를 한 사람이 거의 없었죠. 쉽게 쓴다고 해봤자 청소년 물로 내려가거나 기존 학문 체계 안에서 변화를 꾀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 분은 자유로운 방식으로 콘텐츠를 재구조화했어요.

지금까지 <지대넓얕>과 비슷한 포맷의 책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연결'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지요. 정치와 경제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경제와 철학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이죠. 반면 이 책은 이들 주제를 잘 이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명했습니다. 출판사 설명대로 '통일된 사고 프레임'을 제공하는 데 비교적 성공했다고 봅니다.

저는 베스트셀러의 조건으로 '장점의 효과적 전달'을 꼽습니다. 어느 책이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데, 일단 장점을 충분히 부각시키면 자기 역할을 잘 했다고 보거든요. 이 책이 그래요. 독자 입장에서 보면 '우리 눈높이에 가장 잘 맞는 책'이 나온 것 아닌가 싶네요. 우리 세대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성문종합영어>만 공부하다가 <맨투맨>이 나온 느낌이랄까요? (웃음)

이홍 : 첫 주제를 되새겨 보죠. 보통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나는 이것 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하잖아요? 정치가 어떻고, 문화가 어떻고, 스포츠가 어떻고…. 1권의 내용은 바로 이런 자리에서 써먹기 딱 좋아요. '너는 왜 지난 선거에서 새누리당 찍었느냐'고 할 때 감성적 판단이나 지역론이 아닌, 계급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근거를 줘요.

이 책이 말하는 '얕은 지식'이라는 게 얇고 가볍다는 뜻이 아니에요.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논리나 근거가 없죠. 대학 나온 고학력자가 많다고 하지만 말이에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인문학이 죄를 많이 지은 겁니다. 무수히 많은 '잘난' 인문학자가 쓴 책들이 그 동안 어떤 역할을 했나 반문하게 됩니다.

독자가 겪는 일상의 문제나 매체들을 통해 받아들이는 모호한 주제를 자기 식으로 인용하고 설명할 수 있는 기초적인 팁 하나 제공해주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니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도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반 계급적인 투표를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책은 인문학이 최소한으로 이행해줘야 할 역할에 굉장히 충실히 복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권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1권이 주는 빠르고 명확한 느낌이 사라졌어요. 처음에는 1권의 성과에 기대 급조하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였는데 그건 아니더군요. 1권과 2권의 집필 스타일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1권은 저자가 원래 아는 내용의 '썰'을 풀었다면, 2권은 저자가 공부하면서 쓴 느낌이에요.

장은수 : 저도 인문학 책을 계속 만들어 온 편집자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해드리죠. <지대넓얕>이 저자가 비전문가로서 공부해서 쓴 책인데요, 굉장히 좋은 요약 노트라는 느낌은 들었어요. 그러나 자의적 해석이 강해요. 범주의 오류(다른 범주에 속하는 내용을 같은 범주에 둬버리면서 발생하는 오류)에 해당하는 부분이 조금씩 눈에 띕니다.

2권은 '현실 너머'를 정리해 주는데, (2권에 들어간) '예술' '철학' '과학' 같은 게 정말 현실 너머에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거죠. 기왕 저자가 앞서 나가기로 했다면 '예술이 우리 삶 안에서 어떤가'를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텐데 말이죠. 예술과 사회는 어떠한지, 과학과 정치는 어떠한지를 논하는 게 더 시사점이 있겠죠. 그러다 보니 2권에서 다룬 주제들이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 식으로 현실 너머를 설정하려면 '윤리'는 왜 현실 세계에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1권에서도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예를 들자면 저자는 초기 자본주의-후기 자본주의-신자유주의-공산주의(사회주의) 식으로 경제 체제를 분류하는데, 간략히 말하자면 이는 체제와 정책을 혼동하는 거죠. 자본주의-공산주의는 등급이 같지만, 신자유주의는 거기 놓기 어렵죠. 등급이 다르거든요.

다만 저자의 의도는 분명히 알겠어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게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인데 이게 어디서 왔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이를 어떻게 성찰할 것인가 하는 숙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나눈 것 같아요.

이처럼 저자가 주관을 갖고 이야기를 쭉 이끌다보니 대화가 아니라 강의를 듣는 느낌이 들어요. 강의식 책의 전형적인 단점인 대화를 촉발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이 책에서도 드러납니다.

이홍 : 교과서 해설을 읽는 느낌이죠.

장은수 : 책을 편집할 때 장별로 더 읽어볼 만한 책을 제시한다던가, 생각해 볼 거리를 나열하는 식으로 확장 가능성을 제시해 줬으면 어땠을까요?

이홍 : 이 책의 콘셉트인 '지적인 대화 도와주기'는 사실 모든 인문서, 특히 기초 범주의 책이 이행해야 할 역할입니다. 읽고 독자의 머릿속에서만 정리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돼요.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 사고가 확장되고, 이를 통해 다시금 새로운 주제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게 인문이고 책의 중요한 역할이죠.

당연히 <지대넓얕> 저자도 목적이 여기에 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 대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딱히 이에 반론을 펴거나 논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어요. 친절하고 편리할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 심심하죠. 일부 지나친 논리의 비약과 짜 맞추기씩 편성도 불편합니다.

독자의 지적 대화를 위해서는 너와 나의 다름을 알고 이를 나눠야 하는데, 이 책은 '이 부분이 지적인거야'라고 규정해버려요. 이 책은 장점이 많아서 이걸 굳이 단점으로 꼽아도 판매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아쉬움의 여지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서술 방식을 굳이 강의식으로 만든 이유가 있나요?
한빛비즈 : 채사장이 JTBC <김제동의 톡투유>에 가끔 출연합니다. 보면 일단 말이 길어요. 대화 스킬이 능하다기보다, '썰 푸는' 스킬이 굉장히 능해요. 논술 강사 출신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저자의 특징이 자연스레 책에 녹아났습니다.
장은수 : 저자의 서술 방식이 최근 인기를 끄는 인문학자의 화법과도 일치해요. 멀리는 강신주-굉장히 스타일이 다르니까요-, 조금 더 가까이는 이지성과 같은 저자들의 공통점은 강력한 프레임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비인문적'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이런 분들의 화법이 지금 세대에게 먹힙니다. 젊은 세대를 두고 결정 장애 세대라고들 하잖아요? 결정 장애 세대가 겪는 어려움을 '햄릿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현대 사회에 너무 많은 욕망이 길러지기 때문에 생깁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 거꾸로 자기의 결정을 계속 미루다보니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거죠. 이러한 결정 장애 세대에게 최근 인문학 스타의 명료함은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가는 듯합니다. <지대넓얕> 역시 인문학에 입문하고 싶지만 길이 너무 넓어서 겁먹은 사람들의 선택지를 확 줄여줍니다. 인문학 입문서로서 매력적이죠.

▲<지대넓얕>은 '요다이즘' 서적의 대표적 형태. ⓒ프레시안(최형락)


<지대넓얕>은 독자의 언어로 쓴 책

이홍 :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죠. <지대넓얕>은 친절하게 정리해주고 알려주는 '요다이즘(현실이 불확실하다보니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처럼 강력한 존재에 의지하는 현상)'의 대표적 형태입니다. 멜린다 데이비스는 "날로 분주해지는 일상에서 늘 시간이 부족한 대중의 구매 활동을 도와줄 에이전트나 가이드가 필요한 현상"이라고 했지요. 정리형, 요약형의 책, 압축본의 등장은 지식 과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대적 요구에 반응한 겁니다. 경박하고 고민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으나 달라진 독자 요구를 반영한다는 긍정적 요소도 있습니다. 그런데 출판계에서는 이런 흐름과 독자 요구를 인정하면서도 무엇으로 포지셔닝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요.

한빛비즈에서는 <지대넓얕>의 홍보 포인트로 '인문형 자기 계발서'를 표방했습니다. 요다이즘 서적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인문형 자기 계발서가 과연 이 책에 걸맞은 설명일까요? '인문형 자기 계발서'를 표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빛비즈 : <지대넓얕>은 인문학 콘텐츠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 책의 독자가 기존 인문학 독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문학을 아는 사람이 봤을 때는 장은수 대표께서 말씀하신 단점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젊은 세대는 다릅니다. 취업이 지상 과제가 되었고, 이 때문에 스펙 쌓기에도 허덕이는 지금의 젊은 세대라면 인문학에 갈증을 느낄 수 있다고 봤습니다. 자기를 계발하려는 욕구에 더해 자신의 약한 지식의 뿌리를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인문 교양 서적이긴 하지만 독자는 자기 계발서를 선택하듯 이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포지셔닝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인문형 자기 계발서라는 표현을 만든 이유입니다.

실제 저자의 목적도 유사했습니다. 저자의 동네 친구 중에는 대학에 가지 않은 친구가 많은데, 이들과 대화할 때 공통분모가 너무 없더랍니다. 이들과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만들되, 그 안에 자신의 의견을 더 붙여보자는 게 저자의 의도입니다.
이홍 : 앞서 장 대표께서 살짝 언급하신 것처럼, 이 책의 저자는 숨기고자 합니다만 실제로는 자신의 계급적 입장을 곳곳에서 드러냅니다. '결국 우리는 계급에 반하는 멍청한 투표를 하고 있고, 그 결과 신자유주의가 범람함에 따라 피폐한 삶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것이며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지만 역사는 결국 진보의 어젠다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위 말하는 진보 진영의 논리를 드러내고 있어요. 감춰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교양을 표방한 정치·사회 분야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순한 교양형, 더군다나 자기 계발서로 포지셔닝을 고민했다는 부분은 설득력이 약하고 궁금증만 불러옵니다. 물론 뭐든 자기 계발이 아닌 것 없지만요.

아무튼 이 책이 40만 부나 팔린 힘이 거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소위 말하는 색깔 없는 지식의 집합체에 불과한 책이었다면 오히려 외면 받았을 겁니다. 이 책을 읽고 입소문 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대신 해 줬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을 겁니다.
한빛비즈 : 채사장은 중립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방송에 나와서는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추종자로 칭하기도 하고요. (웃음)
장은수 : 마치 1980~90년대에 대학생 운동권 새내기의 필독서였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박세길 지음, 돌베개 펴냄)나 <철학에세이>(조성오 지음, 동녘 펴냄)의 21세기 버전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자기 색이 뚜렷한데도 다른 인문 서적에 비해 이 책이 부담 없이 다가온 이유를 편집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의 편집상 특징으로 세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

첫째, 책에 삽입된 도식입니다. 펜 스케치로 내용을 요약했는데, 굉장히 강력하죠. 논술 강의를 듣는 효과가 나요. 책을 읽고 나면 도식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아마 많은 편집자들이 이 재미있는 도표, 도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두 번째로는 중간 정리를 잘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책의 각 챕터가 마무리될 때마다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부분이 담겨 있습니다. 만일 편집부에서 이 부분을 기획하셨다면, 책의 성공에 상당한 기여를 하신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간 정리 내용이 좋다보니, 시간 부족한 사람은 중간 정리만 봐도 될 것 같은 수준입니다. 틈날 때마다 조금씩 콘텐츠를 즐기는 요즈음 소비 성향에 맞추어 콘텐츠를 조각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편집 장치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고 봅니다.

세 번째로는 역시 대화체입니다. 문어체 지식보다 구어체 지식이 입문 독자에게 익숙합니다. <고민하는 힘>(강상중 지음, 사계절 펴냄)에서 보듯이,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시도됐습니다. 물론 출판물을 구어체로 만들어 저자와 독자 사이의 비판적 거리를 없앤다는 단점도 있지만요.
한빛비즈 : 불행히도 말씀하신 내용 전부 편집자의 몫이 아닙니다. (웃음)

일동 : 아…. 이런 섭섭한 부분이! 하긴 저자가 좋은 의견을 내도 틀어버리는 편집자도 많으니까요. 하하하.

한빛비즈 : 저자가 논술 강사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습니다. 이분이 강사 출신이다 보니 지금도 판서가 편하십니다. 그래서 판서로 정리한 내용이 도식으로 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큰 주제를 다루다보니 중간마다 다시 되새기는 게 가능하게끔 했습니다. 원래 채사장의 강의 스타일을 그대로 책에 옮겨놓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홍 : 장 대표께서 앞서 베스트셀러의 조건을 말씀해주셨는데요, '독자의 언어로 쓰라'는 것 또한 베스트셀러의 기본 공식입니다. 잘못하면 대중추수주의가 되겠으나, 결국 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호흡이 맞아떨어져야 좋은 책이 되지요. <지대넓얕>은 독자의 사고에 철저히 맞춰준 책입니다.

다만 저는 장 대표께서 말씀하신 '장점'에 대해 약간 다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정리가 지나치게 친절해 오히려 동어반복이 눈에 띕니다. 중간 정리에 최종 정리, 이에 더해 각 챕터의 문장 안에서도 내용이 반복 정리됩니다. 앞서 강의 스타일의 책임을 우리가 지적했죠? <지대넓얕>은 선생님이 같은 내용을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절대 이거 잊어버리지 마!' 하고 가르치는 전형적인 참고서형 서술 방식을 취합니다. 학원이 예상 문제집 만들 때 쓰는 방식이죠.

장은수 : 그걸 독자들이 좋아하죠. 아까 얘기된 '독자의 언어'니까요! 

이홍 : 네, 맞습니다. <지대넓얕>은 인문서에 실용적 스타일의 서술과 편집 방식을 도입한 사례입니다. 아마 다른 인문서 출판사가 <지대넓얕>을 엄청나게 유사 벤치마킹하리라 생각합니다. 여태까지의 인문서는 아무리 쉽게 쓴다한들 표현만 고민했지, 서술 방식이나 편집 방식을 고려하지는 않았거든요. 이제 또 다른 연구 대상 방식이 나온 것 같습니다.

<지대넓얕>이 남긴 과제는? "더 쉬운 인문 서적"

▲"앞으로 '예술적 대화를 위한 넓얕'이나 '정치적 대화를 위한 넓얕'도 가능하겠지요." (장은수) ⓒ프레시안(최형락)

장은수 : 편집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각각의 편집소를 조합해서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 책은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자기 계발서라기보다 인문 실용서에 가깝다고 보는데, 이 분야에 좋은 본보기가 될 편집 사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인문학을 정보 공학적으로 처리해 독자가 보기 쉽도록 정리해 주는 분야에는 아직 약한 편입니다. 이 책에서 시도된 다양한 편집 노력이 상아탑과 대중 사이의 엄청나게 벌어진 거리를 본격적으로 메우기 시작하는 촉발점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가령, 미국의 경우 더미스(for Dummies) 시리즈('The XXX for Dummies'라는 이름의 통일된 제목으로 나오는 지식 실용서)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컴퓨터 관련 서적으로 출발했지만 이제 인문학까지 다루고 있지요. 과찬인지 모르겠지만, <지대넓얕>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 아닌가 합니다. 저자가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말이지요.

이홍 :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보죠. 과거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센델 지음, 김명철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열풍 후 오히려 도덕이나 정의와 관련된 책이 전멸해버렸습니다. '깔때기 효과'라고도 하고 '홍수 현상'이라고도 하지요. 이슈와 수요를 혼자 독차지하면 시장은 오히려 몰락합니다. 하나의 흐름이 나와서 온 들판을 적셔준다면 긍정적이지만, 오히려 홍수처럼 다 쓸어 가버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지대넓얕> 이후를 이야기해야 할 때라는 겁니다. 이 책은 단비가 될까요, 아니면 홍수가 될까요?

장은수 : <지대넓얕>은 <정의란 무엇인가>와 차이가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끝까지 읽은 독자가 얼마나 될까요?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반면 <지대넓얕>의 완독률은 매우 높지 않을까요?

이홍 : 기존의 인문 서적 충성 독자가 <지대넓얕>을 집중적으로 읽었다면 홍수 효과가 있겠지요. 하지만 인문 서적 독자가 아니었던 이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다른 계층으로 확장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 40만 명이 어떤 시장 포지션에 있던 사람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란 이야기죠.

여기서 논의가 좀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지대넓얕>의 구매자를 세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그간 우리 출판계가 쉽게 얻기 어려웠던 귀중한 데이터가 될 거예요. 한빛비즈가 지금처럼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이 책 한 권의 성공으로만 끝내지 말고 독자 분석을 깊이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대넓얕>이 남긴 이후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은수 :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는 느낌입니다. 인문학과 자기 계발서 사이가 아닌, 그간 한국 출판계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했던 인문학과 실용서 사이의 시장이 개척됐다고 할까요. 이제 이 책의 성공 요인을 잘 분석한다면 앞으로 '예술적 대화를 위한 넓얕'이나 '정치적 대화를 위한 넓얕'도 가능하겠지요.

이홍 선생의 의문에 답한다면, 기존 인문학 독자가 이 책을 읽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1990년대에 프랑스 철학 입문서로 꼽혔던 <오늘의 프랑스 철학 사상>(크리스티앙 데캉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을 읽은 사람과 이 책의 독자는 다를 겁니다. 홍수는 아니라는 거지요.

이런 시장이 더 커져야 본격 인문학 시장도 같이 성장합니다. 이웃 일본만 해도 지식과 실용이 결합된 서적 시장이 거대합니다. 1970년대까지의 폭풍 성장기가 지난 이후 일본 출판계는 지식을 어떻게 독자에게 가장 낮은 형태로 가공해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출판의 헤게모니가 저자에서 편집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이 있었지요.

<지대넓얕>이 앞으로 우리 출판 시장도 이처럼 편집자 중심으로 이동하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지대넓얕>의 편집 성공 요인은 저자 개인의 능력이었지만요.  이 책의 성공을 본받아 앞으로 편집자가 좋은 편집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답답한 출판 현실의 작은 탈출구가 생길 수 있을 겁니다.

이홍 : 잘못된 방식으로 <지대넓얕>의 성공을 모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 지음, 웅진닷컴 펴냄) 이후 이른바 '한권 시리즈' 붐이 일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성공이 오히려 열권으로 충실히 열독해야 할 시장까지 죽여 버렸습니다. 그나마도 시장을 고사시키지 않았다는 긍정 평가의 반대에는 정말 좋은 책을 읽고자 했던 독자들을 실망시키고 떠나게 했다는 반성도 있습니다.

장은수 : 이 책을 놓고서 <한겨레>는 노명우 아주대학교 교수(사회학)의 발언을 인용해서 "(지적 탐구의) 입구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환영할 일이지만 여기가 종착점이 된다면 서글플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홍 선생께서 같은 우려를 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홍 : 네, 맞습니다.

장은수 : 결국 이에 대한 해답도 편집자에게 달려 있지 않을까요?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붐 이후 수없이 많은 편집자의 도전이 있었습니다. 휴머니스트의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가 있고, 사계절의 <역사신문>도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의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 편집자가 어떤 소명의식으로 이 시장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독자의 존재가 확인되면, 지식을 어떻게 독자와 잘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이냐에 대한 열망을 품어야죠. 저는 이야말로 '편집자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가 이 새로운 시장에서 '나는 10권짜리 책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어'라고 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제시해야 하느냐를 고민해야 합니다.

"책이 나오기 전에 팔아라"

이홍 : '한권으로 읽는…' 시리즈가 시장에 나온 지 20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시리즈가 시장에 유의미하게 작동한 건 사실이지만, 사실 그 이후 새로운 기획이 꾸준히 나온 건 아닙니다. 책은 많았지만 판도를 바꿀 정말 새로운 시도는 없었다는 거죠. 안주하면서 유사 복제를 반복하는 동안 얕은 기획이 트렌드 기획으로 호평되는 기현상까지 낳고 있습니다.

<지대넓얕>이 아직 기획의 힘이 죽지 않았음을 입증했다면, '그 다음의 기획은 무엇이냐'는 과제를 다음 편집자들이 안게 되었습니다.

이제 교보문고의 판매 데이터를 한번 살펴보죠. 이 책은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전체 판매량의 60%가 약간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이 데이터가 의미가 있네요. 보통의 경우, 수도권 판매 비중이 70~80%에 달하거든요. 유의미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은수 : 여성 독자 비중은 52%밖에 되지 않네요. 보통 인문 서적의 경우 여성 독자 비중이 70%가량인데요.

이홍 : <지대넓얕>이 기본적으로 남성 취향의 책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장은수 : 연령대별 결과도 조금 흥미롭네요. 저는 데이터를 보기 전에는 30대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40대, 20대 순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20대가 40대를 능가했네요. 팟캐스트 영향이 강하게 미친 것 같습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20대 독자가 더 늘어날 수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일단 불이 40대로 옮겨간 다음에는 역류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쉽네요. 20대에서 더 큰 파괴력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책이 제시하는 정도의 프레임은 우리 세대 그러니까 40대에게는 익숙합니다. 하지만 20대에게는 조금 낯설지 않을까요? 역으로 보면 '20대를 위한 넓얕', '10대를 위한 넓얕'과 같은 시리즈 기획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홍 : <지대넓얕>에서 다루는 기본 전제가 1980년대 학생 운동권에서 의식화 교육을 할 때의 단골 메뉴입니다. 사회 구성체 논쟁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를 다른 형태의 글쓰기로 바꾼 거죠.

팟캐스트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쪽으로 주제를 옮겨봅시다. 출판사에서도 이 책 성공 요인의 하나로 팟캐스트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제 엄청난 인기니까요. 반대로 보자면, 이 책의 마케팅 요인에 팟캐스트를 제외한 특별한 요소가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책을 낸다면 기획 단계에서 독자 타깃에 대한 고민이 많기 마련인데, 팟캐스트의 성공이 이를 다 해결해버린 느낌입니다. 계획된 게 아니라면 바닥에 떨어진 걸 추수한 것에 불과해요. 잘 팔렸으니 모든 과정을 미화하는 짜 맞추기 분석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장은수 : 기존 한국 출판 유통을 보면 위탁 판매 방식을 쓰지요. 서점에서 책이 판매돼야만 수익이 발생하고, 판매되지 못한 책은 재고로 남게 됩니다. 결국 위탁이란 서점이 책을 오래 갖고 있으면서 독자에게 팔고, 출판사는 팔린 결과만 돈으로 회수하는 방식인 셈입니다. 세계 출판계에서 이와 같은 유통 방식은 한국과 일본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 방식으로 출판사가 이익률을 높이려면 서점이 책을 오래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서점 수가 줄어들어 진열 공간도 부족한 데다, 출간된 지 2주, 3주 만에 책을 반품해버리는 경우가 일상적입니다. 독자가 새 책의 존재를 알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죠. 그러니 팔리는 책, 이미 발견성이 확보된 책만 팔리거나 출간 후 미디어 등에서 밀어붙이는 책만 살아남는 겁니다.

팟캐스트로 대표되는 <지대넓얕>의 성공은 출판사의 마케팅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꼭 팟캐스트에 주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핵심은 '책이 나오기 전에 알린다'는 거죠.

지금까지 출판 마케팅은 모두 '책이 나온 다음 알린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출판(사실 이미 시작됐지만요)은 '책이 나오기 전에 알리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대넓얕>은 우리에게 이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의 경우, '출판 6개월 전부터 마케팅을 시작하라'는 게 출판 마케팅의 상식입니다. 출판의 프레임 자체가 변한 겁니다. 출판 조직도 이에 맞추어 구조 조정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출판사에 6개월 전부터 책을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 있나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팟캐스트 자체는 사실 그다지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은 아닙니다. 검색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대에, 팟캐스트가 검색을 통해 발견되기는 정말 어려우니까요. 따라서 미래의 출판사는 기본적으로 자체 콘텐츠 기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 콘텐츠를 발신하는 수단이 팟캐스트냐 페이스북이냐 트위터냐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수단으로 활용할 자체 콘텐츠 기지가 없다면 어떤 회사도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을 겁니다.

이홍 : 출판 영업 마인드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여태까지 우리 출판사들의 영업 대상은 독자가 아니라 서점이었습니다. 최종 소비자인 독자의 유입을 서점에 맡겨버린 거죠. 사실 이게 참 편리하고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 동안 우리 출판 시장을 보면 한 책의 베스트셀러 영광으로 끝나버리고, 지속적으로 그 힘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시장을 관성적 구조로만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지대넓얕>을 읽은 40만 명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다시 견인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들에게 다음에 읽혀 줄 책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느냐를 계량적으로 밝힐 순 없겠지만, 팟캐스트는 이런 출판사의 마인드를 바꿀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긍정적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습니다. <지대넓얕>이 팟캐스트를 통해 거둔 성과는 다른 출판사에도 '최종 독자를 상대로 어떤 마케팅을 고민할 것이냐', '어떻게 서점과 독자 사이에서 마케팅 관계를 정립할 것이냐'에 대한 답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장은수 : 출판사의 거래 방식은 사실상 비투비(B2B, Business to Business, 기업과 기업 간 거래)였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회사도 B2B로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비투시(B2C, Business to Consumer, 기업이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거래)로 갈 것이냐 복합 기업화할 것이냐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적으로 혁신해야 하는 수준의 조직적 결단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출판사들은 '내용을 다 노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이홍) ⓒ프레시안(최형락)

이홍 :
이에 더해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신간을 마케팅한다면 무엇을 얼마나 채워야 하느냐는 겁니다. 답은 콘텐츠입니다.

여태까지 출판사들은 '내용을 다 노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이제 해야 합니다. 집필만 독자 친화적으로 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독자에게 책의 본질적 가치를 미리, 얼마나 잘 설명하느냐에 따라 책의 전체적인 평가나 판매가 좌우될 겁니다. 이런 점에서 <지대넓얕>은 여태 우리가 아쉽게 느꼈던 부분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책입니다. 이는 만약 판매 성과가 나빴다고 해도 결코 폄하되거나 소홀하게 다뤄서는 안 되는 부분이죠.

결국 오래된 마케팅 관습을 깨야 한다는 결론으로 우리의 이야기가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출판사가 우리 생각에 '맞아'라고 하면서도 못하죠. 관성적 습관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한빛비즈는 그나마 독자 관리를 잘 하는 출판사입니다. 한빛비즈는 영리한 출판사니까, 우리가 말한 '이 책의 다음 의미'를 다음 책에서도 잘 작동시키지 않을까요? (웃음) 그런데 팟캐스트 마케팅을 사전 염두에 뒀나요?
한빛비즈 : 저희가 팟캐스트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3년 전입니다. 그 당시 출판사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마케팅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신문 광고를 이어가려니 한계가 너무 뚜렷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가 직접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만들어 회사 내부 이야기도 하고, 신간이 나오면 저자를 불러 방송도 진행하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팟캐스트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 팟캐스트를 학습했던 경험이 <지대넓얕>의 마케팅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원고를 처음 확보할 때부터 팟캐스트가 이 책의 마케팅을 견인하리라는 생각이 뚜렷했습니다. 팟캐스트를 통한 사전 마케팅의 가치가 콘텐츠만큼 힘을 발휘하리라고 봤습니다.
<지대넓얕>의 다음은 무엇?

이홍 :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일 팟캐스트 없이 이 책이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장은수 : 지금보다 인문서 독자들에게 더 격렬하게 비판받지 않았을까요?

이 책의 중요한 시사점은 원고 작성과 출판 사이에 팟캐스트라는 사전 마케팅이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책의 타깃 독자 확보, 사전 노출, 책의 포지션 문제가 모두 해결됐습니다. 역으로 보면, 출판사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논의하는 지점인 '새로운 마케팅'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의해야 할 지점입니다. 유명 팟캐스트를 책으로 내는 건 엄밀히 말해 출판사의 자산이라 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가 그 플랫폼의 핵심이 아니니까요. <지대넓얕>에는 독자와 출판사가 소통할 수 있는 장치가 없습니다. 결국 이 책의 독자는 한빛비즈의 독자가 아니라 채사장의 독자일 뿐입니다.

<지대넓얕>의 성공 이후 출판사들이 '잘 나가는 팟캐스트 또 없어'하는 생각만 할까 걱정됩니다. 한빛비즈도 채사장과 공동으로 마케팅 플랫폼을 만들어서 움직이자는 식의 고민을 할 텐데, 만일 대형 출판사가 크게 질러서 채사장을 데려가 버리면 어떻게 할 건가요? 문학동네는 이지성과 공동으로 아예 출판사를 하나 차렸죠.

앞으로 출판사는 플랫폼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 기업이 된다는 건 단순히 '기획은 출판사가 하고 독자는 출판사가 보내주는 걸 받기만 하면 되지'가 아닙니다. 출판사가 독자와의 쌍방향 소통마저 넘어서는 다중 소통의 장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다중 소통을 일으키는 가치를 '연결 가치'라고 하는데, 앞으로 콘텐츠 기업이 제공해줄 수 있는 건 연결 가치밖에 없습니다. 독자는 연결 가치를 제공해주기만 하면 이를 다른 연결에 활용하면서 알아서 보답합니다.

이홍 : 강력한 저자를 데려가서 저자 브랜드를 만드는 게 비도덕적인 건 아니죠. 하지만 모든 출판사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출판사가 어떻게 해야 직접 독자와 만날 수 있느냐로 질문이 모이게 됩니다.

인문서는 출판사나 저자에 대한 충성도가 대체로 높은 장르죠. 과학도 그렇고요. 그런데 자기 계발서는 독자 충성도가 낮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한빛비즈는 어떻게 해야 <지대넓얕>의 독자들을 끌고 갈 수 있을까요?

장은수 : 넥서스는 거의 최초로 20대 직장인 실용서를 냈죠. 그리고 그 독자들을 계속 끌고 가고 있습니다. 길벗은 '무작정 따라 하기' 시리즈로 다루는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죠. 이처럼 출판사가 자기 브랜드화를 통해 독자를 직접 관리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빛비즈도 이런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홍 :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단계입니다. 앞서도 얘기가 됐지만, <지대넓얕>의 성공을 보고 무수히 많은 유사 기획이 나올 겁니다. 많은 출판사가 팟캐스트를 뒤질 테고요. 이 책의 다음 버전은 무엇일까요?

장은수 : 정보 공학적 탐구가 중요합니다. 한 예로 '인포그래픽과 인문학은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고민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인포그래픽을 단순히 장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지식 책. 가령 '칸트의 3대 비판'을 이런 스타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할 법합니다.

이홍 : 독자는 어떤 책에서든 삶과 정서를 원합니다. 인간의 삶을 다루지 않는 책이란 없으니까요. 이를 백과사전식으로 나열만 해선 안 됩니다. 독자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야죠. 그런데 대체로 우리 인문서들은 너무 정리만 잘 하려고 합니다. 요즘 '오포세대'로 불리는 청년의 문제에 대해, 대개의 인문서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 줄 테니, 너는 알아서 문제를 인지하고 고민해'라는 식입니다. 당장 생명 유지에도 급급한 사람은 떠날 수밖에 없죠.

우리의 책이 좀 더 당대의 현실로 들어와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한계와 내용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지대넓얕>이 매력적인 건 이 부분입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제의식만 있다면 인포그래픽이든 웹툰이든, 뭘 사용하든 좋겠죠.

물론 모든 책이 이렇게 갈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책이 가진 의미를 더 진중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책을 안 읽는 많은 분이 하시는 얘기가 '역사책이 밥 먹여주느냐'는 거죠. 밥 먹여주는 책이 많아져야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학문의 가치를 실용적으로만 재단하는 싸구려 사고'라고 해버리기엔, 이미 우리가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밥 먹여주는 정치, 밥 먹여주는 철학책이 필요합니다.

장은수 : 첫 대담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출판사에도, 무엇보다 독자에게 유익한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이홍 : 다음에 더 좋은 책으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이니 장르 소설 어떨까요? (웃음)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채사장 지음, 한빛비즈 펴냄).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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