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찢어지고, 다리 부러져도...산재는 없다!
머리 찢어지고, 다리 부러져도...산재는 없다!
[조선소 잔혹사] 일하다 다쳐도 '개인 부담', 산재 처리는 '그림의 떡'
2015.08.13 14:53:18
머리 찢어지고, 다리 부러져도...산재는 없다!
조선소에서의 10년. 돌아 보면, 참 많은 죽음들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LPG 운반선 탱크 안에서 용접을 하다가 잠시 햇빛을 쐬러 밖으로 나온 시간, 탱크에서 "마귀처럼 피어나는" 연기를 목격했다. 화재였다. "형님 빵 먹으러 나오세요"라는 외침은 "빨리 도망쳐 나오라"는 절규로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간식 먹으며 잠깐 쉬자"고 이야기했던, 어깨를 맞대고 일했던 동료는 결국 살아서 배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떠난 동료만 해도 지난 10년 동안 여럿이다.

그 역시도 몇 번의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다. 일하다가 머리가 찢어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허리가 다친 것만 해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산재보험 처리를 한 적은 없다. 하고 싶어도, 울산 조선소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없었다.

"여기, 현대중공업은 우리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건설한 곳이에요." 11년차 조선소 용접공 김영배(52) 씨의 말이다.


산재 처리 요구하자 "살려 달라"고 한 하청업체 소장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을 했지만, 제가 다쳤다는 사실은 원청 안전과에 신고조차 되지 않았더라고요. 사람이 다치면 바로 보고가 올라가야 하는데, 다쳐도 다친 게 아닌 걸로 취급된 겁니다."

지난해 8월, 현대미포조선 하청 노동자인 김 씨는 작업 중 2미터 높이의 족장(발판)에서 추락했다. 공정이 바쁘다는 관리자의 재촉에, 퇴근도 미룬 채 서둘러 업무를 마쳐야 하는 날이었다.

용접일이 보통 그렇듯, 그날도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불똥은 김 씨의 작업화 속으로도 들어갔다. 화상을 입을까 작업화를 벗으려는 찰나, 그를 받치고 있던 족장이 무너졌다. 그는 족장과 함께 추락해 곳곳에 쌓여있던 장비들에 부딪혔다.

▲족장 위에서 작업 중인 조선소 노동자. ⓒ프레시안(여정민)

높은 곳에서도 용접 등의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조선소 작업 현장 곳곳에는 족장이 설치돼 있지만, 당시 족장은 단단하게 고박되지 않고 풀려 있는 상태였다. '예고된 사고'였다.

비교적 높은 곳에서의 추락은 아니었기에 처음엔 가벼운 타박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움직이기도,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갈비뼈 골절이었다.

병원에 입원을 했다. 사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하청업체 총무가 전화를 걸어왔다. '얼마나 다쳤나, 몸은 괜찮나'가 첫 질문이 아니었다. 총무는 "이제까지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수십 명의 골절 환자를 봤지만, 입원 환자는 당신이 처음"이라며 타박부터 했다.

"저도 처음부터 산재 처리를 요구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중공업 다니면서 여러번 다쳤지만, 산재 처리를 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현장 하청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나 때문에 회사에 피해를 줄 수 없으니까"

일하다 다쳐도, 일단은 숨겨라. 그게 조선소 사내하청의 불문율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산재는 은폐된다. 그라인더에 손을 찢겨도, 높은 곳에서 떨어져 골절상을 입어도 "집에서 다쳤다"며 자비로 처리하거나 공상(회사가 산재보험 처리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재해를 입은 노동자의 치료비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 처리하는 식이다. 일단 산재를 신청하면 해당 하청업체를 떠나야 하는 조선소 사내하청의 '보이지 않는 법칙' 때문이다.

"원청은 '무재해 달성'을 위해 하청을 압박하고, 하청은 원청으로부터 더 많은 물량을 따내고 재계약을 맺기 위해 산재를 숨기는 겁니다. 그런데 노동자가 산재보험 처리를 하면, 더 이상 산재를 숨길 수 없잖아요. 그럼 산재 신청한 노동자만 그 업체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는 거죠."

최근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산재 은폐 실태조사'를 진행해온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하창민 지회장의 말이다.

사고 후 산재 처리를 원하던 김 씨 역시 결국 회사의 '압박', 혹은 '읍소'에 의해 공상 처리하기로 했다. 그가 처음 산재 처리를 언급하자, 사고 이후 일주일 넘게 연락이 없던 업체 소장이 찾아와 "살려 달라"고 했다. 당시 해당 하청업체는 산재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현대重 사내하청 노동자 절반 이상이 '다쳐도 개인이 병원비 부담'

오히려 김 씨는 운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회사와의 지난한 '협상' 끝에, 치료비 전액과 입원 기간 중 임금의 100%를 지급 받았다. 산재보험 미가입이라는 회사의 귀책 사유가 분명했던 탓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산재 처리를 요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한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실시한 '산재 위험 직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산재를 경험한 조선업계 사내하청 노동자 127명 중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노동자는 7.2%에 그쳤다. 60%가 공상 처리했고, 치료비를 직접 부담한 사람이 28%, 아예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응답도 4.8%에 달했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은 이유(복수 응답)에 대해선 '원·하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79명)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하청업체가 산재보험 처리를 못하게 강요해서'(52명)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현대중공업만 떼어놓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했다. 지난해 4월 현대중공업노조와 사내하청지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사내하청 노동 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업무상 재해와 관련해 '개인이 처리했다'라는 응답이 50.4%로 절반을 넘었다. 공상 처리했다는 응답은 43.7%였고, 산재 처리를 통해 치료받았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산재 처리가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역시 절반 이상인 50.9%가 '해고, 업체 폐업, 블랙리스트 등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라고 답했다. '원청의 압력으로 업체에서 공상을 강요하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22.3%로 그 다음으로 많았고, '산재 신청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17.0%로 뒤를 이었다.

결국 원청 눈치를 보는 하청업체들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노동자에게 공상 혹은 개인 부담을 요구하고, 노동자는 고용 불안 때문에 회사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악순환의 반복되는 셈이다.

"하청 노동자 입장에선 회사가 공상으로 하자며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거죠. 이러다가 치료가 끝나고 몸 상태가 회복되더라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일할 수 있을까, 그런 불안감이요."

하청업체 역시 울상이다. 노동자의 요구대로 산재보험 처리를 하고 싶어도, 원청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중공업의 한 하청업체 대표는 <프레시안>과 만나 "이제까지 꼬박꼬박 낸 산재보험료가 아까워서라도 회사 생돈을 들이는 공상이 아닌, 산재 처리를 하고 싶다"면서 "하지만 산재 처리 했을 경우 (원청) 부서장으로부터 유무언의 압력을 받고, 재계약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데 어쩔 수 없다. 업체 사장들이라고 해서 함께 일하는 직원이 다쳤다는데 산재 은폐하라고 하고 싶겠나"라고 하소연했다. 

▲한 하청 노동자가 높은 곳에서 안전 장치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죽음의 조선소'가 감면받은 천문학적 산재보험료

이런 식으로 현대중공업이 감면받은 산재보험료는 지난 2013년 한 해에만 170억 원에 달한다. 최근 5년간(2009~2013년)의 감면 액수를 따지면 약 1000억 원에 이른다. 하청노동자의 산재 사고가 아무리 많아도, 원청 소속 정규직 노동자의 산재만 적으면 보험료를 할인받는 구조 탓이다. 그래서 점점 위험 작업에 하청 노동자들이 쏠리는 '위험의 외주화'가 가속화 된다.   

때문에 사망 등 중대재해 집계를 개별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을 기준으로 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창민 지회장은 "원청이 모든 공정을 관리하는데, 10일이 걸리는 일을 5일 안에 빨리 끝내라고 하청을 닥달하면서 안전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아무리 하청 노동자가 많이 죽어도 원청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하 지회장은 "지난해 사망 사고가 속출하자 현대중공업 안전 관리자들이 현장을 돌면서 안전 규정을 안 지키는 노동자들에게 일종의 '벌점 스티커'를 발부하는데, 하청 노동자들은 안전 관리자들이 나타나면 숨기 바쁘다"면서 "본인 안전을 신경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에게 걸리면 빨리 일을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의 안전 규정보다는 고용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도 "작업 중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청 노동자의 현실"이라고 했다.

"지난해 트랜스포트 신호수가 악천후 속에서 일을 하다가 바다에 빠져 숨진 사건이 있었어요. 날은 어둡고 비바람은 거세다 보니, 시야 확보가 잘 안 되는 상황에서 바다에 추락한 거죠. 안전 펜스 하나만 설치돼 있었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에요.

이 사고 소식이 전해지니까, 직영과 하청 노동자들의 반응이 좀 달랐어요. 직영 정규직들은 '왜 날씨가 안 좋은데 작업을 중단하지 않고 일했느냐'면서 답답하다는 반응이었던 반면에, 하청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인 것을 알지면 거부하면 잘리는데 어떻게 거부하느냐'는 반응이었어요. 위험 작업을 거부하거나 다쳤을 때 산재를 신청하면 곧바로 해고 등의 불이익을 받으니, 대부분의 하청 노동자들은 안전보다는 고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거죠. 위험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일하는데, 운이 좋으면 사는 것이고, 나쁘면 죽는 거고."


지난 한 해, 13명의 하청 노동자가 울산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 등 계열사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현대중공업에서만 9명)한 달에 한 명 꼴이다.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의 조선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고,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실시와 현대중공업의 재발 방지 대책도 나왔지만, 이를 비웃듯 올해 상반기에도 두 명의 하청 노동자가 연이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제대로 된 안전 장치만 마련돼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전형적인 '재래식 사고'였다. 김 씨는 "족장 아래 쪽에 추락방지용 그물 하나만 설치돼 있었다면 나 역시 다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원청이나 하청이나 빨리 물량을 끝내고 이익을 극대화 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지, 작업 중 안전 시설을 설치하는 등 작업자들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 일을 빨리 마치기가 바쁜데 언제 안전 시설을 설치하고 있겠나"라고 했다. 그는 "이런 식의 공정이 바뀌지 않는 한, 현대중공업의 산재는 절대 줄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밖에서 봤을 때 현대중공업은 정말 거대하고 좋은 기업이죠. 그런데 그 이면엔, 수 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이 서려 있습니다. 죽음으로 이뤄낸 조선소가 이곳이에요. 정주영이 잘나서, 정몽준이 대단해서 만들어진 현대가 아닙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건설한 현대...저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다시 김 씨의 말이다.


sun@pressian.com 다른 글 보기